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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석 선생님이 쓰신 송덕기 할아버님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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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naver.com/hyunaam/1388

원본 링크. 서민석 선생님이 쓰신 글임.

 

요즘 송덕기할아버님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뵈면서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먼저 저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드립니다.

저는 고용우선생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고 1 때 같은 반에서 만나 고3 때까지 계속 같은 반에 만나 고3 때에는 짝꿍으로

같이 과외공부도하며 잠잘 때를 빼놓고는 365일 같이 붙어 다니며 청소년을 보냈던 사이입니다.

무술은 아쉽게도 태껸은 수련하지 못했고, 제 아버님이 대한검도회 창립자이시고 검도 9단 범사로 우리나라 검도 최고단자

이셨기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보법부터 조금씩 배우며, 마치 매일 밥을 먹듯 검도수련이 내가 좋아서도 아니고 생활인 것처럼

착각하며 그리 검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대한검도회 사무국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검선도 8단으로 제 2대 총사범과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국민학교 5학년 때 사직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전쟁 중에 태어난 저의 친구들이야 당시 놀이걸이는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고, 사직공원과 인왕산에 놀러가는 게 유일한 놀이터였답니다.

어릴 적 동네를 뛰어다니다 보면 동네 어르신들을 뵈면 인사들을 하였지요.

후에 알았지만 당시 자주 인사를 드리던 분이 송덕기 할아버지셨습니다.

당시에 존함은 몰랐고 그냥 인자하시며, 한편으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무서운 할아버지셨습니다.

지금도 당신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당시 어린 우리들의 눈에는 동네경로당에서 왕초이셨다는 게 생각나는군요.

1969년도에 고3 과정을 끝내고 1970년 2월 졸업만을 남겨두고 있는 1월부터 저와 아버지는 아침새벽에 사직공원 옆의 스카이웨이

길을 오가며 운동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고용우선생도 몇 번 나의 아버지와 같이 만나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몇 달 후부턴 황학정 올라가는 길 오른쪽 산속에 두 명이 검도를 할 수 있는 터를 잡고 열심히 수련을 했었는데, 황학정을 보며

고용우선생 생각이 나서 아버지께 “ 용우가 저기 황학정에서 지난겨울부터 태껸을 배운다고 하네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렇니” 하시며 “일본 야와라가 태껸의 영향을 받았는데...”라고 말씀을 하신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당시 태껸에 대해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기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자세한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리고 몇 년 후에야 고용우 친구에게 황학정에서 태껸의 가르침을 주신분이 동네에서 인사를 드리던 할아버지셨다는 사실을 알고 나선 속으로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송덕기 할아버지가 누구시라는 걸 알았고, 친구가 수련한다는 태껸에 대해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우리 나이 또래야 국민학교 어릴 적에는 당수, 공수도란 소리만 들었지 솔직히 태껸이란 용어에 대해선 낯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친구 고용우는 거의 매일을 열심히 할아버지께 찾아가 배우던 모습도 생각나고, 그 덕에 황학정에 친구 따라 갔다 할아버지께 품밟기를 한 시간 정도 배웠던 생각이 나는군요.

당시 태껸의 동작에 대해 처음 접하지만 할아버지께서 품밟기를 보여주시며 자세히 알려주셨던 기억이 나며 참 유연하시고, 인자하게 설명해주셨던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당시에도 연세가 많으셨는데 당신께서 움직이시는 선의 움직임은 마치 꼬불꼬불한 산길을 가듯 아름다운 자연의 여유와 감동을 선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릴 적 자주 보았던 초가지붕의 그 부드러운 곡선이 연상됩니다.

제가 감히 송덕기 대(大)선생님의 동작을 뵈면서 이리 글을 쓴다는 것이 크나크게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지만 그 당시 저의 느낌이 생각나기에 적었을 뿐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3년 후에 사직동한옥집에 누가 문을 두드리기에 나가보았더니 할아버지셨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기에 놀란 건 사실이었습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요즘 용우가 일주일간 안 보이는데 무슨 일 있냐”시며 물어보신 생각이 나는군요.

무척이나 걱정하시는 얼굴이셨습니다.

제가 부모님과 분가하여 인천으로 이사 간 후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뵌 게 1984년인가? 1985년인가? 늦가을로 생각되네요.

제가 사무국장시절 당시엔 태권도에 비해 태껸이 여론에 너무 묻히는 것 같아 대한체육회 검도담당인 동아일보 기자를 데리고 황학정에 찾아가 할아버지를 인터뷰하여 기사가 났던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처음 만나는 이준서님도 계셨고, 다른 한분이 더 있었던 기억이 나며 당시 황학정 오른쪽 정자에서 기자와 저에게 고용우 친구가 타주었던 커피가 생각납니다.

할아버님은 거의 10년 만에 뵈었는데. 예전보다 많이 연로하셨음이 마음 아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할아버지께 맛난 식사대접 한 번 못했네요.

참으로 철없던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계시면 추운날씨에 따뜻한 꼬리곰탕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내년에 고용우선생 방한하면 반드시 산소에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씨앗은 우리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씨앗은 누가 무어라하해도 우리 땅에서, 우리 거름 속에서, 우리 바람을 맞으며 자란 것이어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큰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우리고유의 전통무술인 태껸이 각 유파를 떠나 하나가 되어 우리 한국인에게 희망을 주는 무술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서민석 선생님이 쓰신 글인데 못 본 사람들도 있을까봐 여기 올려뒀으니 한 번쯤 봐두는 것도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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