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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ter1 - 잿불(2)

익명_5879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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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소몰이 같은 안내에 따라 부랑자들은 단체 샤워장으로 이동했다. 부랑자들은 거센 물줄기에 의해 씻겨지고 거친 캔버스 천 같은 옷을 받아 입었다. 군중 속에서 청년은 자아를 잊어갔다. 아니 차라리 빨리 잊었으면 했는지도 모른다. 옷을 갈아입힌 후에 개인당 빵 하나씩이 주어졌을 때, 부랑자들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기꺼이 내놓았다. 우리에서 사육되는 가축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벌레들... 욱!”

 

청년은 권력자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자 헛구역질이 났다.

 

‘여기 모인 모든 부랑자들은 권력자들이 발라놓은 꿀에 이끌려 모였다가 팔, 다리 다 잘린 모습으로 놀아나다 죽겠지. 싫증이 나면 한순간에 짓이기서 죽일 거야.’

 

그는 그런 공상에 빠져,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장발에 상처투성이인 노인이 다가왔다. 노인은 다짜고짜 청년의 머리를 후렸다.

 

“청승 떨지 말고 처먹어, 눈에 띌수록 빨리 죽어”

 

노인은 고개로 기둥 뒤편에 모인 안내자를 가리켰다. 그곳에서 안내자들은 탄을 장전하고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빵을 한 입 베어 물자, 청년 또한 다른 부랑자들과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허겁지겁 빵 하나를 다 먹는 동안 노인은 청년에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빵을 청년에게 마저 주었다. 청년은 허기짐을 못 이겨 빵을 받았지만 노인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때 노인이 말했다.

 

“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고 있어”

 

청년은 미친 노년의 넋두리에 답하고 싶지 않았다.

 

“자네는 어떻지? 여기에 무얼 가지고 왔지? 혹시..”

 

“아 아니에요. 전 아무것도 없지만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청년은 더 이상 귀찮은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무얼 가지고 있다고 허풍 떨지는 않는군”

 

‘좆됐다’

 

청년은 이상한 노인의 눈에 들어버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정직한 건 장점이지”

 

노인은 그런 그를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름은 있나?”

 

노인은 답변을 바라지 않고 물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청년의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

 

“…유진…”

 

별다른 이름 없이 지냈던 그는 그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을 내뱉었다. 스스로가 이름 없는 부랑자들과는 다르다는 생각, 자신이 한 명의 인간이라는 아집이 그런 대답을 하게 했다.

 

“그럼 유진, 다음에 또 찾아오지”

 

“그때까지 당신이 살아있다면 말이지”

 

노인이 자리를 뜨며 유진에게 인사했지만, 유진은 비아냥거릴 따름이었다.

 

유진은 사실 앞으로 노인을 볼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치고 받으며 서로를 죽이려 드는 이곳에서는 건장한 청년도 오래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나만은 다를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는 유진처럼 밖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유진은 당연히 노인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노인은 두 부류의 사람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유진은 그 사실을 노인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자네는 가진 게 많군

 

노인이 일반 성인의 두 배에 이르는 체격을 가진 남성을 앞에 두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할 때 매서운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투기장에 오르기도 전 시비가 붙은 것이다. 배급을 받는 자리에서 남의 식량을 빼앗아 독식하는 남성을 꾸짖는 모양이었다. 모두가 노인이 죽음을 재촉한다고 생각했다.

 

-‘

 

그렇기에 다음 순간 노인의 움직임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다. 한순간에 거대한 남성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을 질끈 감았던 유진은 눈을 뜨고 보게 된 풍경을 믿을 수 없었다.

 

노인이 자신의 세배는 되는 체구의 남성을 일방적으로 구타하고 있었다. 한쪽 팔을 붙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저앉은 남성을 패는 모습은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아앗, ... 미친 영감이! 그만!”

 

점점 눈이 풀려가는 남성은 한탄스러운 외마디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모두에게 달갑진 않았다. 투기장의 부랑자들은 처음에는 반전에 놀라 환호했으나, 점차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 노인이 자신들의 경쟁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모습이 마냥 흥미로워 보였던 것은 단 두 사람, 유진과 CCTV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던 5구역의 권력자뿐이었다.

 

그만! 거기까지! 소란을 일으킨 두 사람은 독방으로 격리하겠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군. 뭐 좋아 예상 못한 것도 아니야, 대신 이런 볼거리를 여기서 소모하면 안 되지. 일주일의 회복 기간을 주겠다.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제대로 붙어라.”

 

권력자가 스피커를 통해서 신이 난 듯 떠들었다. 그의 말은 절대적이었기에 모두 이내 방으로 돌아갔다.

 

가진 것...’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빨리 안들어가?”

 

그러다 총을 든 관리인의 통제가 있고서야 방으로 돌아갔다.

 

분명 봤어, 저항을 하지 않은 게 아니야 노인이 제압한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기술? 그런 거로 가능한 건가?’

 

힘에 대한 동경이나 위인에 대한 추앙 같은 게 아니었다. 유진을 고양시킨 것은 단 한 가지, 목격했지만 믿기 힘든 사실 때문이었다.

 

“유약한 체구의 저 노인이 한다면,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도 할 수 있어

 

유진은 자신이 깨닫게 된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스스로의 인생이 달라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끼이이- !’

 

모든 방의 철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자동잠금 장치가 낡아 소음이 심했다. 이미 잠들 준비를 하던 이들의 불평과 아우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유진은 그와 별개로 잠에 들지 못했다. 유진은 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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