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장소 여러분. 일전에 몇번 대학원 연구 주제 문제로 질문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개인적인 문제로 현재 휴학 중인데 최근 구하게 된 자료에 대해서 교수님께 상의 드리는 것 보다,( 휴학 중인데 여쭤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싶어... )
이곳에 계신 분들의 견해가 저에게는 더 필요한 듯하여 자료를 첨부하여 봅니다.
이런 자료를 찾으면서 조사해 보니 최근 결련택견협회의 서울시 문화재 지정 신청 관련해서 위대태껸협회에서 이의신청한 내역도 있더군요.
이건 또 무슨 일인지 또 다른 추측과 추론이 올라오지만 일단 그 부분은 생각이 정리되는대로 고민을 공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자료를 살피면서 드는 의구심들이 있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용복 회장님의 경우 신한승 선생님으로 부터 사사 후에 송덕기 선생님께 조사차 간 것으로 대부분 택견계에서 알고 있던데 그 반대인가요?
- 여러분들의 의견을 토대로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조사와 관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2. 도기현 선생님이 이용복 회장님에 비해 택견에 대한 이해 수준과 범위가 과연 더 우월했을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 실제 이용복 회장님이 하는 대한택견의 몸짓은 결련택견과 많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두분이 함께 움직인 점,
결련택견의 택견관에는 분명히 옛법이라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대한택견의 택견=놀이 이론을 참고하고 따랐는가 입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결련택견이 대한택견이나 한국택견이 가진 체계보다 넓은 범위의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용복 회장님의 택견에 대한 견해나 대한택견협회의 운영 방향이 달라지거나 택견 자체에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 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건 사족인데...
제가 있던 대한택견에서 도기현회장님을 처음 만나서 교류하며 서로 택견에 대한 시범을 보였을 때
정작 택견에대한 이해가 이용복 회장님이 더 높았다고 하는 풍문이 있었습니다. [카더라이니 명확한 조사도 필요합니다]
3. 1번과 2번에 대한 종합적인 의문으로 제가 올린 자료를 보면 주된 내용이 이용복을 기능보유자로, 도기현과 손일환을 전수보조자 또는 이수자로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제가 붙인 사족이 풍문으로 돌게 되는 어떤 빌미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는 제가 몸 담았던 대한택견에 반하는 연구가 될 수 있지만 저 역시 김영만 선생님처럼 단체에 얽메이지 않는 연구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지금은 대한택견을 하지 않고 일반체육관련에 있지만 연구는 이쪽으로 함께 하고 싶은 것이기에 여러분들의 깊은의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번 질문인, 어째서 도기현 회장은 결련택견의 옛법론이 있었음에도 대한택견의 택견=놀이 이론을 따랐느냐의 부분을 살짝 진지빨고 답해주자면, 이건 의외로 쉬운 문제임.
왜냐하면 결련의 옛법론이 윤곽이라도 잡히기 시작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며,
동시에 결련택견 협회를 차렸을 당시의 도 회장에겐 흔들림 없는 자신만의 택견론이 부재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임.
그리고 이건 송덕기-신한승 옹 사후 터져 버린 택견계의 혼란의 진정한 원인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함.
살아 생전 송덕기 옹께선 택견이 놀이이다-혹은 무술이다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남겨주셨지 않으셨고,
신한승 옹은 '택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에 대한 정의를 세우기에는 냉정하게 말해 권위와 정통성이 부재하신 분이었음.
대한택견이 그 틈새를 절묘하게 치고 들어온 단체라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거임.
아무튼 이 글을 읽는 게이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택견계의 혼란은 결국 사상의 부재, 혹은 사상적 아노미 상태에서 각 협회들끼리 자기들 나름의 사상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불거진 일인 셈인데,
도기현 회장은 이 가운데 명백한 후발주자였고, 무엇보다 충주-대한의 구성원들이 갈등을 통해 쌓아 올려 가던 택견 이론(사상)에 버금갈 만한 택견론을 지니지 못한 상태였음.
이는 도기현 회장이 택견의 역사나 이론 같은 부분을 송덕기 옹께 거의 듣지 못하였으며, 신한승 옹께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는 도 회장 본인의 회고를 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남.
즉 소위 '송덕기 택견론'이라는 어렴풋한 개념을 사상이라는 형태로 치환할 만한 능력도, 경력도 없는 상태였다는 이야기임.
그런데 당시 도기현 회장을 품은 것은 대한택견이었고,
무엇보다 당시의 충주택견은 신한승 옹 계열의 택견이 아닌 다른 택견에 대해서는 굉장히 배타적이며 폐쇄적인 태도를 취했음(사실 이건 정도의 차이지 지금도 비슷함).
심지어 택견 무술론을 외치며 택견 경기조차 무술로서의 택견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행위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나올 정도였던 게 당시의 충주택견이었으니 도기현 회장이 본인의 택견론의 기반을 어디에 둘 수밖에 없었는지는 너무나 뻔한 얘기임.
훗날 대한택견을 박차고 나와 결련택견 협회를 차리고, 협회를 운영하면서 타 협회와의 갈등-차별화를 위한 노력을 하면서 지금의 결련택견 협회 특유의 택견론을 만들며,
소위 '옛법론'을 통해 대한택견과의 사상적 유대에는 끝을 고하였음에도 여전히 택견=놀이론의 잔재가 결련택견협회 전반에 그 짙은 영향력을 드리우고 있는 까닭엔 바로 위와 같은 이유가 있는 거임.
고로 결론짓자면 대한민국 택견의 역사는 '택견이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 부재하였던 사상적 아노미에서 시작되었고,
도기현 회장은 그러한 '사상의 부재의 시대'에서 본인의 이론적 기반을 대한택견에서 차용했을 뿐이라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