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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주의] 오싹오싹 택견 시리즈 2화. 택견은 왜 주먹이 아니라 발차기부터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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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시리즈


1화. 소개 

2화. 송덕기. 그리고 현대 택견의 시작

3화. 두 거인의 죽음과 혼란기의 개막

4화. 대한택견협회의 부상과 이면의 문제점

5화. 대고소시대와 돌아온 송덕기 택견

6화. 결련택견협회의 비상

7화. 통합 대회와 대한택견연맹의 체육회 가입

8화. 황금기의 뒷면과 또 다른 계승자

9화. 결련택견협회의 내전과 윗대태껸의 등장

10화. 태껸춤과 정통성 논쟁 상편

11화. 태껸춤과 정통성 논쟁 하편

12화. 옛법택견의 짧은 봄

13화. 서울시 문화재 결련택견과 택견진흥법

 


오싹오싹 택견 시리즈


1화. 택견 4대 협회의 간략한 특징 요약

2화. 택견은 왜 주먹이 아니라 발차기부터 배웠을까?

3화. 택견에도 개파조사가 있다?!

4화. 놀이인가 무술인가? 기록을 통해 알아보는 구한말 택견

5화. 택견과 석전의 상관 관계

6화. 제 1회 택견 대회와 사라진 활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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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상당 부분의 뇌피셜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100퍼센트 사실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므로 재미로 읽어주세요!

 

 

지금까지 수많은 매체들이 택견에 대해 다루어 왔지만, 아마 가장 대중에 덜 알려진 택견의 특이성을 들자면 그건 바로 손이 아닌 발기술을 가장 먼저 배우는 체계일 것입니다.

 

아랫발질 -> 중단차기 -> 상단차기 -> 태기질 & 활갯짓 -> 손질 이라는, 세계에서도 유래 없는 독특한 교육 체계를 택견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택견은 손이 아니라 발차기 부터 배우는 교육체계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해선 여러 설이 분분합니다만, 조심스럽게 추측이 가능한 가장 유력한 이유를 들자면 전근대에 기원을 둔 무술 중에서 탑클래스 급으로 경기화 및 비무장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적인 예시로, 전근대 맨손 무술들의 공통점을 들자면, 일반적으로 무기와의 연계를 염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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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데의 톤파 / 영춘권의 팔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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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키도의 무기술 / 레슬링의 소드 레슬링)

 

 

그리고 이러한 무술들이 공유한 몇 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발차기의 비중이 현대 격투기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다는 것이죠.

 

사실 이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현대와 같이 치안이 발달되지 않은 전근대 시대엔 호신을 위한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게 그닥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갈등 상황에서 쌍방이 손에 무기를 들고 있다고 가정하면 발로 상대를 두 번 찰 바에야 무기를 한 번 휘둘러서 상대를 병★신으로 만드는 게 훨씬 이득이란 건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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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해야 골절이 최고 아웃풋인 맨손과 맨발로 상대를 때리는 것보다 이런 무기(?)로 상대의 뚝배기를 후리는 게 100배는 더 효율적이다 이겁니다.)

 


하지만 전근대에 뿌리를 두었음에도 발차기에 큰 지분을 두고 있는 두개의 무술이 있습니다.

 

바로 무에타이가라데가 그것이지요.

 

사실 저 두 무술은 명백히 무기술이 전해지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차기의 비중이 굉장히 높은 편이며 그 이유는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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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타이 : 도박의 수단이자 마을 공동체의 유희로서 전승되어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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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테 : 일본인들에 의해 무기 사용이 금지되어 맨손무술화 되어버림.

 

 

뭔가 기시감이 들지 않습니까? 저 두 무술의 경우를 합치면 완벽하게 택견의 케이스에 부합합니다.

 

택견은 도박에서 사용되었으며 마을 공동체의 단합을 도모하는 유희로서 전승되어왔고, 그나마 언급이라도 된 무기술이 택견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육모술 밖에 없을 정도로 무기술과는 연이 없는 역사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발차기가 발달한 까닭 자체는 위의 예시들을 이용해 설명해낼 수 있을지라도 여전히  '왜 손이 아닌 발부터 배우는 커리큘럼이 생겨났나?' 라는 점은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외이게도, 그 힌트를 우린 중국권법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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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요오오오옷!!!)

 

 

중국권법은 일본의 고류 유술과 더불어 무기술의 비중이 매우 높아 대체로 발차기의 비중이 낮은 전근대 무술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흥미롭게도 무규칙에 가까운 상황에서 무기술이 아닌 맨손 싸움을 하게 되면 굉장히 발차기를 많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https://youtu.be/F8_Z3fpEnBw

(이건 1988년에 찍힌 팔극권 대련 영상입니다.

영상을 보면 발차기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확인 가능합니다.)

 

https://youtu.be/TT8HJ1-CrFI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대련을 해도 기술들이 좀 더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해졌다 뿐.

발차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무기술끼리 싸울 때도 단검보다 장검이, 장검보다 창이 더 강하다는 공식이 있는 것처럼 상대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상대를 치는 것이 싸움을 리드할 수 있는 건 맨손 싸움에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서브컬쳐에서 접하는 팔극권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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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아는 만화, 권아의 한 장면)

 

 

이건 서브컬쳐 특유의 과장된 표현에 가깝고, 현실 보정을 끼얹으면 위의 영상과 같이 상대에게 근접하기 이전엔  멀리에서 발차기를 하는 게 당연한 거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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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과장된 액션에 가깝지만 성룡의 발차기가 중국권법에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복서가 킥복서를 이기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저 발차기의 유무인 게, 발차기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나보다 먼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날 공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발차기가 허용된)맨손 격투 경기가 오래 되면 될수록 발차기 기술에 대한 재발견과 중요도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UFC만 해도 오블리킥(택견의 밟기류 기술)에 대한 찬반논의가 뜨겁고, 쓰는 사람만 쓰던 카프킥이 주목받으며 과거만 해도 종합격투기에서 쓰기 어렵다고 평가받던 태권도가 어느 순간부터 발차기 스킬 장착용 무술로 호평받기 시작한 걸 보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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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블리 킥과 카프 킥 )

 

 

즉, 가장 빠르게 진화하고 트랜드가 시시각각 바뀐다는 MMA에서조차 발차기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된지 꽤 되었다는 것이죠.

 

https://youtu.be/7YDmJHI0O-w

(태권도 발차기가 UFC에서 쓰이기 시작하는 이유는? 발이 손보다 빠르다? ㄷㄷ)

 


하지만 이런 발차기의 유일한 단점이 바로 익히는데 효율이 속된 말로 정말 '지랄맞게' 안 좋다는 것이고, 실제로도 UFC에서 발차기를 잘 쓴다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태권도나 무에타이 같이 발차기가 자주 사용되는 격투기의 경력이 긴 사람들 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숙련을 위해 시간을 엄청나게 들여야 하는 기술이 바로 발차기라는 말이죠.

 

이런 것들을 미루어보면, 택견이 전근대 무술이면서 손질보다 발질을 더 먼저 배우는 커리큘럼을 가지게 된 건 바로 오랜 경기화를 통해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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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의 상징, 콜럼버스의 달걀)

 


발차기는 익히고 사용하는데 오랜 수련이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주먹질과 그래플링은 일종의 본능의 영역에 겹쳐 있습니다.

 

가장 원초적인 무술이 레슬링과 복싱이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유인원들이 싸울 때 주먹으로 후려치고, 서로 껴안고 뒹구는 걸 상상해 보십시오.)

 

따라서 아예 처음부터 발차기를 먼저 익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한 손과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발의 숙련 차이를 좁히고, 그 위에 손질과 태질을 얹는다는 발상을 우리의 조상들은 해 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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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경화 선생의 말에 따르면 손과 발의 숙련 차이를 좁히기 위해 발차기부터 익히는 거라고 송덕기 옹께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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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찍힌 아이들의 택견(?) 사진)

 

 

이 추론이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실제로 어린 아이들이 한 택견은 손을 이용한 타격은 없는 발차기 위주였을 거라고 짐작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어린 시절 동무끼리 "택견놀이"를 함으로써 발의 숙련도를 올리는 한편 태질의 기초를 익히고, 더 자라서 선생을 모시게 될 경우 품밟기부터 시작해서 놀이로 익혔던 발차기 기술들을 정교하게 가다듬은 다음 본격적으로 무술 기법으로서의 태질-손질 단계를 밟았던 게 바로 택견일 수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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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건 정확하게 송덕기 옹께서 밟은 루트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엔 형한테 놀이 처럼 배우셨다가 임호 선생께 정식으로 사사하고 16세에 택견 시합에 나가는 등, 본격적인 택견꾼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었거든요.)

 

 

물론 이 모든 추론이 단순히 제 뇌피셜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택견계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째서 전통적인 택견의 커리큘럼이 발질부터 배우는 지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 이거든요.

 

아니 그런데 충주측의 주장이라지만 송덕기 옹께서 숙련도를 위해서 발질부터 배운 거라고 하셨다 하면 그게 맞는 거 아닌가...? 뿌리 깊은 충주택견 혐오가 또...

 

 하지만 이런 식으로 "왜" 그랬는가를 추론하는 것도 엄언한 후손들의 몫입니다.

 

여러분, 몸으로 하는 운동 뿐만이 아니라 이런 훌륭한(?) 두뇌노동도 함께 즐길 수 있는 택견을 다들 한 번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직 택견엔 수많은 공백지들이 남아 있고,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화면 캡처 2024-02-15 103540.png

 

거기다 덤으로 끝나지 않는 협회들간의 예송논쟁도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어서 입문하세요!

 

와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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