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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3화 - 두 거인의 죽음과 혼란기의 개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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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시리즈


1화. 소개 

2화. 송덕기. 그리고 현대 택견의 시작

3화. 두 거인의 죽음과 혼란기의 개막

4화. 대한택견협회의 부상과 이면의 문제점

5화. 대고소시대와 돌아온 송덕기 택견

6화. 결련택견협회의 비상

7화. 통합 대회와 대한택견연맹의 체육회 가입

8화. 황금기의 뒷면과 또 다른 계승자

9화. 결련택견협회의 내전과 윗대태껸의 등장

10화. 태껸춤과 정통성 논쟁 상편

11화. 태껸춤과 정통성 논쟁 하편

12화. 옛법택견의 짧은 봄

13화. 서울시 문화재 결련택견과 택견진흥법

 


오싹오싹 택견 시리즈


1화. 택견 4대 협회의 간략한 특징 요약

2화. 택견은 왜 주먹이 아니라 발차기부터 배웠을까?

3화. 택견에도 개파조사가 있다?!

4화. 놀이인가 무술인가? 기록을 통해 알아보는 구한말 택견

5화. 택견과 석전의 상관 관계

6화. 제 1회 택견 경기와 실종된 활갯짓

 

 

- 두 거인의 죽음과 혼란기의 개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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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옹. 1987년 향년 94세 별세.

신한승 옹. 1987년 향년 64세 별세.

 

구한말에 태어나 평생 동안 택견을 지켜온 한 남자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택견을 대한민국의 문화재로 만든 한 남자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세상을 떠난 1987년.

 

이 해는 택견사에 있어 각 계파의 큰어르신들이 돌아가신 해임과 동시에 서로의 갈등을 중재해줄 수 있는 심리적 무게추가 사라진 해이기도 했습니다.

 

송덕기와 신한승, 두 거인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남겨진 것은 문화재 택견이라는 거대한 이권덩어리였고, 두 분의 갑작스런 병사는 아직 완벽하게 정리되지 못하였던 조직구조에 있어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도화선으로 작용했습니다.

 

가장 먼저 폭탄이 터진 곳은 바로 신한승 선생의 계파였던 아랫대 택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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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엽(좌) 선생과 정경화(우) 선생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이준서 선생만을 전수장학생으로 삼았던 송덕기 옹과는 달리 신한승 선생께선 생전 여러 명의 전수장학생을 두셨었고, 개중 가장 오랜 수련경력을 지닌 수련생이 박만엽 선생이었습니다. 신한승 선생께서 유언으로 후계자를 정하고 가셨던 것도 아니었기에 일반적인 경우라면 제자들 가운데 맏이라 할 수 있는 박만엽 선생이 자연스럽게 후계자의 위치에 앉아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택견은 문화재였고, 문화재는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는 게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인간문화재로 인정이 되기 위해선 전수장학생 경력을 5년 이상 수행했다는 증거자료가 있어야 했는데, 정작 박만엽 선생은 가장 오랜 수련경력에도 불구하고 그 기한을 채우지 못하여 자격이 안 되는 상황(당시 전수장학생 신분을 4년 6개월 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이었던 반면, 정경화 선생은 5년 이상 전수장학생 역할을 수행했다는 자료를 제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다음 대 인간문화재가 된 것은 박만엽 선생이 아니라 정경화 선생이었으며, 이러한 행정적 처사에 반발하여 아래대 택견은 언제 끝날지 모를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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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갈등이 오죽했으면 협회 자체가 반으로 쪼개질 정도였고,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봉합되지 못해 문화재 택견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 두 개의 협회가 있을 정도(한국택견협회/택견보존회)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수준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인 것은 조직이 반으로 쪼개졌음에도 아래대 택견은 차라리 상황이 나은 편에 속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인간문화재를 배출하는 데 성공한 아래대 택견과는 달리, 송덕기 옹의 윗대 택견은 아예 문화재 타이틀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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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하는 전개에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그렇습니다. 충격적이게도 문화재 택견의 레퍼런스 역할을 한 송덕기 옹의 택견이 정작 문화재에서 밀려나게 되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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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문화재 택견은 웃대/아래대로 나뉘어져 있지 않습니다.)

 

 

저 또한 어쩌다가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되었는가에 대해선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대략적이나마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분들이 쉬쉬하고 있는데다, 현재 이준서 선생이 속하고 계신 윗대태껸회에서도 저 부분에 대해서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며, 유일하게 당시의 일의 전말을 추정 가능하게 하는 서술이 나무위키에 있지만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엔 신뢰할 만한 매체가 아닌 것이 문제입니다.

 

다만 정황상 추정이 가능한 것은 송덕기 옹과 신한승 선생 사후에 문화재 택견을 둘러싸고 두 계파들 간에 갈등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며, 다수의 제자들을 키워내었던 아래대 택견에 비해 이준서 선생의 힘이 되어줄 만한 다른 네임드 제자들이 해외에 나가 있거나(고용우[미국 이민]/도기현[미국 유학]), 사회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대학생들 위주로 구성되어(도기현이 총무로 있던 서울택견계승회)  관련 행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웃대 택견이 문화재 내의 알력다툼에서 커다란 열세에 있었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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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더 이상 파 낼 능력도 없고, 듣기로 이 이상 들어가면 고소 들어올지도 모른답니다(...)

살려주세요!

 

 

어쨌든 실제 내막이 어떠했던 결과적으로 문화재에서 퇴출 되어버리고 만 것이 사실이었기에 송덕기 택견 계파 입장에선 정당한 권리를 도둑질당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고, 이는 차후 다루게 될 도기현 회장의 결련택견협회가 문화재 택견(충주택견)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게 만드는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오게 됩니다.

 

이 시리즈를 계속해서 읽다 보면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 메이저 3개 협회(대한/결련/충주) 중에서 충주택견에게 우호적인 협회가 없다시피 하다는 뉘앙스가 종종 등장할텐데, 개중에 유일한 문화재 택견이라는 입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면 이런 뒷사정이 있어 그렇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거 충주택견이야말로 빌런 아냐...?' 하는 생각이 다들 드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감히 단언하건데 아닙니다.아직 진짜는 나오지도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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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부터 한 입 먹을 때마다 목이 턱턱 막히는 고구마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4편 - 대한택견회의 부상과 이면의 문제점 - 에서 본격적인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택견의 근현대사를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o Be Continue-

 


 

여기까진 다 좋은데 다음 편부터 씹덕 테이스트를 어떻게 빼내지....(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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