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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er9 – 이중지련泥中之鳶(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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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은 영창에서 나오는 날 11번이 바라보았던 벽을 보았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회색 맞은편 창문에서 새어 나온 빛이 어리고 있었다. 네모난 창에 십자형 창틀이 있었기에 그 모양이 마치 나비 같기도 방패 같기도 했다.

 

유진은 그 공간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11번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동안 끼니를 때울 수 있게 도와준 것과 대화를 나눠 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생각해보니, 마지막에 해줬던 말도 징계를 받고 있는 나를 위로해준 거였더라고. 과민반응 해서 미안해.”

 

유진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말투에서 친한 티를 냈다.

 

그런 거 아니니까 고마울 거 없어

 

11번은 무뚝뚝하게 받아넘기며 자리를 떴지만, 유진은 그러려니 했다.

 

그 뒤로는 다시 정신없이 훈련에 매진했다. 교관은 생존기술과 전술적 행동에 대한 것들을 수도 없이 강조했다.

 

전장에서 보고는 가장 중요하다. 전쟁은 통신에서 시작해서 통신으로 끝난다고 해도 괴언이 아니다. 너희가 보고를 안 하면 우리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작전지역의 상황을 모른다면 본대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겠지

 

이 기간 동안의 교관의 말들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각 분대에서도 머리가 좋은 이들이 통신을 담당했다. 분대장도 같은 교육을 받았지만, 지도를 보고 지휘를 하는 일도 겸해야 했기에 보조가 필요했다.

 

체계에 대한 이해가 쌓여갈수록 유격대원들의 움직임도 노련해져 갔다. 단기간의 훈련이다 보니 미숙한 면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훈련에서 보여 준 정연한 모습은 꽤나 믿음직해 보였다.

 

유격대원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게 보이는군

 

멀리서 지켜보던 중대장이 말했다.

 

네 각자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 것 같습니다.”

 

교관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오만은 좋지 않지만, 그 정도의 믿음은 있어야겠지. 지휘관이 자리하지 못하는 판국에 자네들이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저희야 원래 중대 편제인데, 유사시에 이 정도 임무는 마땅히 할 수 있습니다.”

 

교관의 말대로, 그들은 전면전을 담당하는 일반 지상군이 아니었다. 그들은 적지 종심에 들어가 싸우는 특수부대였다. 다양한 변수가 가득한 적지에서 공격을 목표하기에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집단이었다.

 

그래 여건이 어떻든 본격적인 작전이라는 것을 명심하게. 대대장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 건 이미 알고 있겠지?”

 

, 직접 다녀가시기도 했습니다.”

 

그런가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지만 그 정도로 중요한 사안에 결부되어 있다는 것만 알고 있게.”

 

공식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전투, 위험부담이 큰 만큼 거대한 이익이 얽혀있는 전투, 그것이 이번 작전이었다. 부랑자들을 받아들여 전투원으로 운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중대장이 떠나고 교관은 오묘한 표정으로 유격대원들 앞에 섰다.

 

그것 밖에 못하나!”

 

아닙니다-!”

 

그는 썩 유쾌한 어투로 중대원들을 다그쳤다. 그에게는 지금의 결과가 결코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지만 마지막만큼은 사기를 높여주고 싶었다.

 

많이 나아졌지만, 딱 그 정도다. 너희는 아직 전쟁에서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미안하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싸워라!”

 

예 알겠습니다-!”

 

망설임이 엿보이는 교관의 말에 일동 정적으로 화답했다. 교관은 고개를 숙이고 모자로 눈을 가렸다. 그는 미처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속으로 삼켰다. 너희가 오만함을 느끼게 만든 게 바로 자신이라고. 윗분들은 너희가 거기에 전사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그런 말들이었다.

 

그럼 이제 명령이 있기 전까지, 몸을 풀어놓아야 겠지?”

 

교관은 의문스러운 물음을 던졌다.

 

좋습니다!”

 

교관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머뭇거리던 중대원들 속에서 누군지 모를 한 인원의 목소리가 외롭게 울렸다. 모두가 눈치를 보던 와중에 교관이 웃으며 답했다.

 

그래? 그러면 언제든 나갈 수 있게 훈련주랑 같은 강도의 일과를 주면 되겠네

 

-”

 

윽 소리 낸 놈 나와!”

 

하하하

 

이놈들 봐라? 장난하는 거 같아? 막사 찍고 온다 선착 순 실시!”

 

으아아--!”

다 같이 뛰고 있는 와중에 미소가 번졌다. 가장 힘들었던 때와 다름없는 대화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웃고 있었다. 교관도 유격대원들도 모두.

 

내일부터는 자율 체력단련 시간을 마련해주겠다. 각자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방법은 너희들에게 맡긴다. 훈련장을 뛰든, 공을 가지고 놀든, 근력을 키우든 알아서 해라. 대신 다치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비전투 손실은 알아서 피해라. , 투기장에서 온 놈들이라고 쌈박질하다가 걸리면 그놈들도 죽는다. 중간에 참호전투 시간을 마련하여 우승자에게 포상할 테니 힘이 남아도는 놈들은 그거나 준비하도록. 이상.”

 

교관이 열심히 뛰고 있는 유격대원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무심한 듯 던진 그 말에 제법 흥미로운 소식들이 담겨 있었다. 유격대원들 모두 그 소식을 놓칠 리가 없었고, 그들은 모처럼 들뜬 마음을 가지고 막사에 돌아왔다. 좋은 의미로 잠을 설치는 놈들도 많았다. 내일 무얼하고 시간을 보낼지 기대하며 떠들다 얼차려를 받는 경우도 속출했다. 그만큼 이례적으로 기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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