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자작소설] Chapter7 - 불나방(1)

익명_33112336
20 0 0

유진이 떠날 채비를 마치고 방을 나왔다. 관리자를 따라 거니는 길은 평소와 달리 조용했다. 유진을 포함한 서른 여섯 명만이 이 새벽을 기다렸다. 지난번 투기장 난입을 빌미로 경계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착출 된 것이다.

 

투기장의 사람들은 사실상 5구역에 소유된 노비와 같은 취급을 받았기에 의견을 물어보는 절차 따윈 없었다. 하지만 유진은 자신이 뽑힐 것을 알고 있었다. 무제가 떠나며 언질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뒤로 하고 무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 공백기 동안 유진은 매일 같이 자신이 배운 기술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일 당장 또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았다.

 

잠시 놓을뻔한 긴장이 되살아났다. 얼마 뒤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충일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고가 없었던 유진만이 멀리서 그 죽음을 애도했다유진은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점점 초조해지는 자신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자신을 둘러싼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이 무서웠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나약한 자신이 미웠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살고 싶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수도 없이 해봤음에도 말이다. 투기장 밖에서는 죽여달라는 말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아주 나약하고 정직한.

 

죽을 거 같아

 

아이러니했다. 몇 번이고 입 밖으로 내었던 그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와닿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떠오른 그 말은 초연하게 온몸을 울렸다. 서늘한 기운이 아주 깊은 곳에서 불안함을 끌어왔다. 심연의 괴물과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 뒤로 그의 눈에는 독기가 흘렀다.

 

올라타

 

관리자가 검은 천막이 둘러쳐진 탑차를 가리키고 말했다. 유진과 일행들은 아무 말 없이 짐이 적재된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흔들리는 차 안에서 각자의 사정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무상자만이 쉬지 않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한참을 가다가 차가 멈춰서고 차 밖을 거니는 소리가 났다. 볼일이라도 보게 해주는 것일까.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짐칸의 모두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량의 후미 쪽에 앉아있던 한 명이 천막을 들춰보았다.

 

-‘

 

절제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어딜 나오려고, 마려우면 안에 싸라 벌레들아. 나올 때 치우는 거 잊지 말고

 

위협 사격이었는지 그저 장난이었는지,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짐칸의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사로잡혔다. 총을 든 괴한과 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유진은 자신의 목을 움켜잡았다. 심장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몰려왔다. 아주 낯선 세상에 내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좁고 어두운 공감. 이전의 죽음의 감각이 다시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굳어 자기도 모르게 목을 졸랐다. 온몸이 비틀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숨이 다 넘어가기 전에 목에서 피가 났다. 다듬어지지 않은 손톱으로 몸에 생채기를 낸 것이다. 이때 이상하게도 피를 보고 안도감이 들었다.

 

아직 살아있구나

 

그런 이상한 생각이 들자 몸에 힘이 빠졌다. 유진은 극도의 긴장을 풀고 옅은 호흡을 내쉬었다.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유진만이 아니었다. 짐칸의 모두가 그렇게 희미해가는 의식 속에서 전선으로 끌려갔다.

 
신고공유스크랩

한달이 지난 게시글은 로그인한 사용자만 토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공유

퍼머링크

삭제

"[자작소설] Chapter7 - 불나방(1)"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