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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ter7 - 불나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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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칸에 실려 온 부랑자들의 상태는 못 봐줄 지경이었다. 병력을 메우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는 취지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보단 너저분하게 실려 온 군수품에 가까웠다.

 

이거야 원, 이래서 기계를 쓰는 게 낫다니까. 일단 좀 씻겨서 저쪽으로 모아놔

 

현장 지휘관이 취한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투기장의 부랑자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시민으로 인정받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랬다.

 

유진은 무엇이 그들을 그와 같이 만드는지 궁금했다. 그토록 박대하면서도 이들이 저항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니면 저항해도 금새 제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를 보면 그럴 것도 같았다. 그러나 유진에게는 그깟 무기보다 충일이 보여준 무위가 더욱 인상 깊게 남아있었다. 충일이 무기를 든다면 누구보다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충일이 그들의 무기에 당해 누워있음에도 말이다.

 

왼쪽부터 12명씩 한 줄로 줄 세워

 

현장 지휘관의 통제에 따라 재정비한 부랑자들이 줄세워졌다. 유진도 그속에서 명령을 착실히 이행했다. 그는 힘의 논리에 굽혀가며 살아남았다.

 

너희들은 지금 서게 된 줄에 맞춰서 12명씩 한 개 분대로 행동하게 된다. 한 분대는 같이 생활하고 같은 목적으로 움직으로 움직인다. 언제 무얼 할지 모두 본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거 하나만은 명심해라. 이곳에서 돌출된 행동은 죽음과 직결된다. 알겠나?”

 

황폐한 전장의 한켠에서 위엄을 찾고자 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대답을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며 뒤돌아섰다.

 

그러자 그의 수족들이 부랑자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명령에 대한 복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군대를 겪어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그와 같은 이유는 순전한 억지였다. 그런 부당함에도 부랑자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투기장이라니 야만스럽기 그지 없군..”

 

막사에 돌아온 지휘관이 고상하게 말했다. 그들에게 가하고 있는 가학적인 교육방식을 생각하면 모순적인 발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싸움에는 죽음이 따른다. 여기서 있는 동안 수많은 사망자가 있었지. 안그러나?”

 

맞습니다

 

그의 부관이 호응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훈련을 한다. 싸움에 들어갈 때는 두 번째 기회를 생각하지 않아야 해. 똑바로 가르쳐.”

 

예 알겠습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하는 전쟁. 그 현장에 있어 왔던 지휘관은 이유없는 싸움을 싫어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사람을 잃어왔기에 더 이상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기 힘들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제대로 된 이유를 밝히지 않고 병력을 보내온 5구역의 처사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저런 오합지졸로 암살을 시도하려는 건 아니겠고, 죽으라고 보낸 건가?”

 

만일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그는 구역의 권력자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발달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항상 기계가 아닌 사람을 전장에 보내는 건지. 하물며 투기장에 있던 사람들이라니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자부심을 갖고 있던 군인의 모습이 자꾸 일그러져만 가는 것 같아 한스러웠다.

 

구역 안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얼 지키는 것인가? 우리는 왜 이곳에 있는가?’

 

그는 막사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이처럼 사색에 잠겼다. 그렇게 답도 없는 회한으로 사무쳐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무기력한 사람은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은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해소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장에서 가장 활력적인 사람이었다.

 

유진과 일행들은 모두 같은 것을 배우지 않았다. 그들은 정식군대가 아닌 게릴라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유격대원이 된다. 유격대원이 된다는 것은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는다는 거다.”

 

교관의 말에 부랑자들이 웅성거렸다. 교관은 눈 쌀을 찌푸리고 소리쳤다.

 

조용! 이 자리에서는 본 교관만 말한다.”

 

부랑자들은 큰소리에 긴장했지만, 전장의 앞에 서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한 듯 보였다.

 

좋아할 것들 없어, 유격대는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는 게 아니니까. 유격대는 제복을 입지 않고 대열에서 빠져서 움직인다. 다시 말해 너희는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독자적으로 움직이게 될 거라는 거다.”

 

부랑자들은 생각보다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표정을 보니 아직 이해를 못한 것 같군.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유격대는 주로 습격 임무를 부여받는다. 밤중에 적진에 투입되어 주요시설을 타격하고 요인을 암살 또는 납치하는 것이다.”

 

부랑자들은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이때 부랑자들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분명, 나만 이야기한다고 했을 텐데뭐지?”

 

죄송합니다한 가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저희가 습격을 할 때 엄호나 지원은 전혀 없는 겁니까?”

 

그 말에 교관이 흥미로운 눈빛을 했다.

 

뭐야 군대를 겪어 본 놈이 있었어? 재밌네아니지 안타까운 건가?”

 

교관이 옆의 부관에게 주절거렸다. 그리고 이내 대답했다.

 

습격 작전이 진행될 때, 본대는 적에게 식별되는 상황을 피하고자 거리를 두고 대기하고 있을 거다. 타깃의 사계가 확보되는 지형이 있다면 지원사격도 준비한다. 다만, 인원이 부족한 탓에 엄호조는 운영하지 않는다.”

 

부랑자들 사이에서 질문을 했던 이가 한층 더 심각한 쵸정을 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이가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죠?”

 

작전이 실패하면 우리를 구출하지 않고 내빼겠다는 거에요

 

그는 경솔하게 말했다. 그의 말은 줄지어 서 있는 부랑자들의 귀에 닿았고, 곧바로 그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시끄러워! 너희를 전장에 보낸 것부터가 죽으라고 보낸 거다. 살고 싶으면 교육하는 거 똑바로 들어서 작전에 성공해라! 너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교관이 소리쳤다. 그 이후 4주간은 체력훈련이 계속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체력만을 강조하며 몰아치는 일정에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체조와 달리기 같은 기본 체력훈련은 물론이고,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이동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등의 활동을 반복했다.

 

작전 나가기 전에 죽겠다차라리 실전에 보내줘

 

맞아 더 이상은 싫어..”

 

누군가의 넋두리에 모두가 공감했다. 흙바닥에서 계속해서 굴러다니다 보면 실제로 몸이 상하는 사람도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진의 생각은 달랐다.

 

이건 오히려 기회다. 확실히 피로하지만, 반복되는 활동 덕분에 체력도 붙고 있는 게 느껴져. 어줍짢게 바로 습격 작전을 겪느니 여기서 체력을 확실히 끌어올리는 게 나아

 

그리고 5주차가 되었을 때 비로소 무기를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이는 무기를 건네는 것의 위험성을 고려한 처사였다.

 

그러고 보니 몇 명이 없지 않아?”

 

며칠 전부터 안보였어

 

도망간 건가?”

 

도망갈 수가 있긴 해?”

 

도망이 아니었다. 4주간의 과정에서 한명 두명 야간면담이 실시되었고, 위험인물로 여겨지는 인원들이 분류된 것이다.

 

유진은 이러한 정황에 대해 눈치챘지만 그들의 처분까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돌발행동이 예측되는 인물들을 걸러냈다. 죽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임무를 부여받을까. 안전을 위해서는 전자를 전력 보존을 위해서라면 후자를 선택하겠지

 

유진은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섞여서 행동하기로 했다. 특히 군에 대해 뭔가 아는 듯한 한 사람에 주목했다. 부랑자들 사이에서 손을 들어 질문했던 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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