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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ter6 - 방화(1)

익명_4246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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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무자비한 타격이 괴한을 기절시켰다. 먼지가 흩날리는 잿빛 풍경 속에서 유진의 주먹이 붉게 물들어 갔다. 비루한 행색을 한 괴한들과 부랑자들 모두 하나, 둘 난전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만, 이제 그만해

 

태호가 유진의 떨리는 주먹을 부여잡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명확한 의사가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유진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으..."

 

유진은 태호의 옷깃을 움켜쥐고 무너졌다.

 

"...다행이야"

 

그는 격해진 감정을 다 표현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정적이 잠시 머문 공간에 성주가 돌아왔다.

 

예상은 했지만, 개판이군. 어서 도로 집어쳐넣어!

 

성주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가 일갈하자 대동한 인력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싸움은 중재되고, 부랑자들과 자격단이 구분없이 제압되어 수용시설로 인도되었다. 

   

이걸로 너도 나에게 빚이 생긴 셈이다. 멋대로 구는 건 여기까지 하자고

 

에이 내가 가진 카드에 비할 바가 되나? 그래도 사정 봐준 만큼 협조는 해줄게

 

성주와 무제는 인파 속에서 지나치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게 다였다. 이 정도의 소란이 종결되는데 그 이상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없었다. 투기장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부랑자들의 침해당한 권리라던가 정신적 피해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유진은 성주의 수하에게 제압되어 끌려가면서 그들을 흘겨보았다. 새삼스럽게도 증오가 치솟았다. 이미 인권을 유린당하는 현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눈으로 보고 겪은 것은 달랐다. 자신이 손쓸 수 없이 휩쓸리고 있는 규칙과 구조를 누군가는 제멋대로 휘저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진저리가 났다.

 

그리고 결심했다. 증오의 대상을 처단할 힘을 갖겠노라고.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겠다고.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될 정도의 힘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그의 삶에 여태껏 없었던 목표를 부여한 순간이었다.

 

처절하게 살아서 꼭 내가 그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고 말겠어

 

유진이 그렇게 다짐하며 이를 갈고 있을 때, 무제가 그의 앞에 섰. 유진을 붙잡고 있던 남자는 성주의 눈치를 보더니 그 자리에 멈춰섰다. 무제와 대화할 시간동안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참... 대단하네요

 

유진이 비꼬았다.

 

그렇고 말고

 

그럼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될 수 있죠?”

 

"궁금해?"

 

"아무렴요"

 

무제는 고개를 돌려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미소가 번진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정도야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유진은 무제의 너무나도 쉬운 답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가 정말로 원한다면 조만간 내가 기회를 마련해줄게"

 

무제는 유진이 말을 잇지 못하는 동안 연이어 말했다.

 

"...."

 

"할거야?"

 

유진은 가만히 서서 무제를 노려보았다. 그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못믿는 눈치네"

 

"그럴만 하니까요"

 

"그래 그럼 내 계획을 들려줄게. 대신 이 자리에서 바로 답변을 해줘."

 

"그게 낫겠네요"

 

무제는 유진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한 수 물러서 제안을 했다.

 

“성주는 한동안 투기장을 운영하지 못할 거야. 사고를 수습하는데 많은 용력이 투입될 테고, 그동안 부랑자들을 관리하기도 힘들어지겠지. 그렇다면 투기장 보수작업에 들어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부로 방출 될 거야. 솔직히 말해서 너희가 그다지 쓸모있는 인력은 아니거든. 아무튼 그런 너희라도 필요로 하는 곳은 한정되어 있지... 너희는 분쟁지역에 투입될 거야

 

분쟁지역?

 

"그래 모르고 자랐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내가 너를 그곳으로 보내려고 하는 거기도 하고."

 

전쟁이라도 겪어보라는 건가요?

 

"눈치는 있네, 그런데 아직 멀었어"

 

유진은 무제의 선문답 같은 대화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말해주세요"

 

유진이 투정부리자. 무제는 건방지다는 듯이 유진의 목을 졸랐다. 시야의 사각에서 올라온 손아귀가 빠르고 정확하게 울대를 움켜쥐었다. 마치 뱀처럼. 

 

"커..커헉"

 

"확실히 어린 티를 내는구나"

 

무제는 유진의 목에 핏대가 설 때까지 지켜보았다. 고문 기구를 조이는 처형관이 된 것마냥 내려보는 그의 시선이 유진의 호흡을 뺐어 갔다.

 

"내가 바라는 건 더 단순하고 정확한 거야"

 

유진은 시야가 흐려지는 와중에 무제의 말에 귀기울였다.

 

"전장에 가서 사람을 죽여보고 와... 그리고 ..."

 

유진은 그의 말을 채 끝까지 듣기 전에 의식을 잃었다. 무제는 그제야 손을 놓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손짓을 하여 성주의 수하가 유진을 데리고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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