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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er7 - 불나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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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경력이 있는 부랑자. 그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유진은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지금부터 받는 총은 스스로 정비한다. 문제가 있는 지 여부는 스스로 확인해라. 11번이 나와서 시범을 보여줘.”

 

그는 1팀의 11번이었다. 교관이 그의 군 경력을 알게 된 이후 그의 번호는 자주 불리곤 했다. 부랑자들 사이에서 그의 입지는 커져 갔다. 부랑자들은 공공연하게 그를 의식하였고, 어느새 그의 존재는 식사 자리에서의 주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교관들 11번한테 너무 떠넘기는 거 아니야? 솔직히 자기들이 해야할 일이짆아

 

“11? 아무래도 찍힌 거 같던데

 

그래도 잘하잖아, 마냥 밉게 봐서 일을 시키는 건 아닐걸

 

의도가 어떻든 본인 입장에선 엄청 번거로울걸

 

일말의 연고 없이 불려온 부랑자들은 공통의 관심사로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속에 그들은 자신들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교관에 대한 반감을 그를 통해서 표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능한 인재에 대한 시기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그를 같은 유격대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기가 좀 살지

 

맞아, 아무도 여기 생활에 대해 몰랐으면 교관이 더 횡포를 부렸을 거야

 

교관도 눈치 보는 거 같던데? 알고보면 군대에선 11번이 더 선임인 거 아니야?”

 

이유는 단순했다. 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느끼는 연대감이 자신들이 무능하지 않다는 안도감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수상해

 

유진은 그에게 접근할 기회를 살폈다. 유진은 11번이 무제가 심어 놓은 사람일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어쩌면 11번도 현암과 인연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육시간 외에는 팀별로 생활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따로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성과없는 시간이 흘러가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오늘부터 교관은 여러분의 능력을 평가한다. 능력 여하에 따라 분대장을 선발할 것이다. 여태까지는 분대의 가장 앞번호 인원들이 그 역할을 하였지만, 실제 임무를 생각하면 그렇게 안일하게 결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본 교관이 직접 한 주간 여러분의 능력을 볼 것이다. 그러나 분대장 자리가 부담스럽다고 훈련을 소홀히 할 생각은 마라. 그 정신머리부터 뜯어 고쳐줄 테니.”

 

교관이 분대장을 새로 뽑는다고 말하자, 모두가 1분대의 분대장은 11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진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 유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분대장의 자격과 임무는 무엇입니까?”

 

분대장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분대를 통솔한다. 전술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와 분대원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임무 수행은 분대장의 현장 판단에 맡긴다. 단 하나, 보고체계만큼은 절대적으로 준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영리한 인재가 필요하지. 자세한 내용과 관련해서는 선발된 분대장들을 따로 불러 모아 별도의 교육을 실시 할 것이다.”

 

유진의 질문에 교관이 답했다. 부랑자들은 1에서 36번까지 번호를 받아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 36명의 인원을 3개 분대로 나눈 기준은 간단했다. 12명을 기준으로 끊어서 구분한 것이다. 11번은 1분대였으며 34번이었던 유진은 3분대였다.

 

분대장이 된다면 추가 교육시간에 11번을 만날 수 있다

 

유진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누구 보다 열심히 훈련에 참여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굴렀다.

 

너 몇 번이지?”

 

그렇게 지내기를 13일째 되던 날, 교관이 물었다. 강도 높은 구보에서 홀로 여유로운 모습으로 완주한 순간이었다.

 

“34번 입니다!”

 

유진은 기다렸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에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헐떡이거나 구역질을 하던 나머지 인원들이 유진을 돌아보았다. 그중에는 11번도 있었다.

 

부랑자들 사이에 유진이 3분대의 분대장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유진이 교관에게 따로 불려가고 나서 며칠 뒤의 일이었다. 밤중에 불침번을 함께 서는 인접번호들을 통해 이야기가 퍼진 것이었다.

 

너희 분대는 별 일 없어?”

 

똑같지아 너 유진이라는 놈 알아? 그놈...”

 

불빛이라곤 없는 황무지에서의 어둑한 밤을 뜬 눈으로 보내기 위해 가십거리가 필요했던 부랑자들에게 인접분대의 정보는 항상 거론되는 흥미거리였다. 유진의 활약은 25번에서 24번으로, 13번에서 12번으로 전달되어 모든 분대에서 주목하는 새로운 흥밋거리로 자리잡았다.

 

요즘 너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어

 

? 무슨 소문?”

 

유진은 그러한 사실을 자신이 불침번을 서는 날에서야 알았다. 훈련에 집중하느라 유진 답지 않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못한 것이다. 그날도 35번이 귀띔해주지 않았더라면 도심 속에서는 볼 수 없던 너구리, 두더지, 꿩 따위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을 터였다.

 

안일해져 있었다. 조심해야겠어

 

유진은 본래의 목적을 잊었던 것에 대해 반성했다. 그는 위기감을 놓친 결과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괴롭힐지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굳이 불안을 끌어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다시 무제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알아볼수록 11번 말고는 다른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유진은 그런 결론에 다다랐을 때, 자연스럽게 3분대장이 되었다. 1분대장인 11번과 2분대장인 28번과 함께 별도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의도치 않게 번거로운 일을 맡아 버렸네, 기왕 이렇게 된 거 같이 힘내보자

 

첫 번째 추가교육이 끝나고 먼저 말을 튼 건 2분대장이었다.

 

그래 피차 처음인 것들이 많을테니까. 서로 도와가면서 하면 조금이나마 덜 힘들 거야

 

유진은 2분대장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외로 1분대장은 친목을 다지려는 분위기를 피했다.

 

11번이 그런 태도를 보인 이유를 알게 된 건 2번의 추가교육이 더 있고 나서였다. 정보를 얻지 못해 초조해진 유진이 교관이 2분대장을 따로 불러낸 틈을 타 말을 붙였다.

 

너는 군대를 겪어 봤다고 했지? 그럼 우리랑 정보를 교환하는게 손해려나?”

 

 

11번은 군화 끈을 고쳐 묶다 유진을 흘끔 넘겨보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 미안, 비아냥 거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유진은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서 조금 후회했다. 그러나 11번에게서 처음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반딧불이, 벌새, 쏟아질 것 같은 별들..”

 

그게 무슨 말이야?”

 

고된 훈련을 받는 동안 정작 깊은 감명을 주는 것들은 그렇게 작고 애틋한 것들이었어

 

11번은 알듯 모를듯한 말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군대는 폐쇄적인 집단이라 처음 온 사람들은 헤맬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거면 돼. 백마디 말보다 한 번 현장을 겪어보는 게 중요한 공간이니까.”

 

네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유진은 11번의 말이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보단 군대에 빨리 적응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 전장은 파괴적이고 비윤리적이야. 그건 서로를 죽이려는 적 때문만이 아니야. 오히려 정반대의 면, 살기 위해 아군에게 취해야 하는 자신의 태도가 더 잔인하지.”

 

그건 어떤 거야?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모습을 가장할 때 생기는 비극이야. 희박한 가능성의 작전을 성공한다고 믿고 투입해야 하지. 난 그때도 분대장이었어, 그때도 분대원들을 속이고 전장에 뛰어들었지. 결과는참담했어

 

그걸미리 알아버린 걸 후회해?”

 

후회하지..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어

 

유진은 혼란스러웠다. 전장에 대한 공포감이 닥쳐오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11번이 무제가 보낸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혼란스러웠다. 그러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유진은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이곳에 다시 온 거야?”

 

그가 평범한 부랑자라면, ‘스스로 온 이유를 묻는 이 질문에 의아해할 것이다. 그가 다른 반응을 한다면, 그건 그가 무제가 보낸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라니... 그야...”

 

유진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침을 삼킬 때, 11번의 눈동자는 유진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교관과 이야기를 마친 2분대장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마저 하자

 

11번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입을 닫았다. 유진의 의혹은 더욱 깊어갔다. 그러나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11번을 보면서 혼란마저 깊어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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