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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주의/리메이크]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5화 - 대고소시대와 돌아온 송덕기 택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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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시리즈


1화. 소개 

2화. 송덕기. 그리고 현대 택견의 시작

3화. 두 거인의 죽음과 혼란기의 개막

4화. 대한택견협회의 부상과 이면의 문제점

5화. 대고소시대와 돌아온 송덕기 택견

6화. 결련택견협회의 비상

7화. 통합 대회와 대한택견연맹의 체육회 가입

8화. 황금기의 뒷면과 또 다른 계승자

9화. 결련택견협회의 내전과 윗대태껸의 등장

10화. 태껸춤과 정통성 논쟁 상편

11화. 태껸춤과 정통성 논쟁 하편

12화. 옛법택견의 짧은 봄

13화. 서울시 문화재 결련택견과 택견진흥법

 


오싹오싹 택견 시리즈


1화. 택견 4대 협회의 간략한 특징 요약

2화. 택견은 왜 주먹이 아니라 발차기부터 배웠을까?

3화. 택견에도 개파조사가 있다?!

4화. 놀이인가 무술인가? 기록을 통해 알아보는 구한말 택견

5화. 택견과 석전의 상관 관계

6화. 제 1회 택견 대회와 사라진 활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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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머리가 둘 이면 서로 싸우느라 뭘 못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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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문화재 보유 단체가 되었음에도 문화재 택견(충주택견)은 끝없는 내분에 휩싸여 문화재 보유 단체라는 브랜드 가치를 100퍼센트 활용하지 못하였고, 급기야 전수관의 숫자마저 후발주자인 대한택견연맹에게 추월 당하기까지 하면서 상대적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인간문화재 관련 문제로 신나게 멱살잡이를 하고 있던 문화재 택견에게 한 장의 고소장이 날아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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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독점하는 충주택견의 불법적 행태를 규탄한다!"

 

당혹스럽게도, 그것은 대한택견협회가 문화재 택견에게 던진 결투 신청서였습니다.

 

1. 문화재는 국가 차원에서 보전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상황에서나 지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택견연맹의 노력에 의해 현재 택견은 더 이상 보호가 필요하지 않는 수준까지 널리 퍼졌으며, 이는 더 이상 택견이 문화재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2. 충주 택견은 본디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던 송덕기 택견을 온전하게 계승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충주택견은 문화재로 있을 자격이 없는 조직이다. 오히려 송덕기 택견은 본 대한택견협회가 더욱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다.

 

3. 이렇듯 현재 문화재 택견은 온갖 문제들로 점철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대한택견협회는 문화재 재심사를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소송의 취지는 대략 위와 같았습니다. 세세한 사항은 좀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략적인 얼개는 얼추 맞을 겁니다.

 

그리고 대한택견의 고소장에 대한 문화재 택견의 반응은 당연히 아래와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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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살다가 별 소리를 다 듣습니다.

 

지정된 문화재를 취소하란 것도 어이가 없는데 단기 사범 캠프에서 3개월 배워서 나간 본인들이 송덕기 옹의 택견을 더 잘 계승하고 있다는 주장은 또 뭐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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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이런 초유의 사태에 인간문화재 문제로 갈등을 벌이던 문화재 택견은 즉각적인 협력체계에 들어갔으며, 대한택견협회의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에 대해 함께 대응하기로 입을 모았습니다.

 

물론 여전히 내부에 불씨가 남아있는 '일시적' 협력이기는 하였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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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좌우합작도 대충 비슷했으니까 그렇다고 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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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대망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뭐... 소송에서 승소하였다면 지금 문화재 택견이 남아있지 않거나, 혹은 대한택견이 문화재를 먹고 있었겠지요?

 

짐작하셨다시피 대한택견협회는 소송에서 졌습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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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소장의 내용 자체가 여러모로 무리수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문화재는 국가 차원에서 이것을 보전하여 후대에게 넘겨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정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 문화재가 널리 퍼졌다고 한들 그것을 해제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것이었죠.

 

무엇보다 2번 주장이 겨눈 방향성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


이미 여러번 언급하였습니다만 당시 문화재 택견의 구성원들은 '공식적으로' 신한승 선생의 아래대 택견을 계승하는 계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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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택견협회/택견보존회는 전부 신한승 옹의 택견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송덕기 옹의 위대 택견의 계보가 끊어졌기에 위대/아래대 택견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과거의 행정 처리 과정에서의 문제를 중점으로 삼아 다투고자 했다면 모를까, 충주택견이 송덕기 옹의 택견을 올바르게 계승하지 못하였으므로 문화재 보유 자격을 박탈당해야 하며 그 대신 송덕기 택견을 더 잘 계승한 대한택견협회가 문화재 택견의 새로운 보유 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 논리밖에는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요컨대 쟁점을 잘못 잡은 데다가 요구사항조차 무리수였던 것이죠.

 

하지만 소송이 들어온 이상 검증은 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택견 문화재 등재 과정에서 문화재 택견 연구를 담당했던 오장환 교수와, 오장환 교수의 연구 결과를 문화재 조사보고서로 작성한 임동권 교수에게 문화재 택견을 재심사 할 것을 주문하였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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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통해 검증한 결과 문화재 택견은 대한택견연맹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지 아니하며, 대한택견연맹이 송덕기 택견을 계승했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본 법원은 대한택견협회의 해당 소송을 각하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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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발....)

 

 

정말이지.. 이보다 더 처참하게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수준의 결말이었습니다.

 

사실 소송이라는 게 이렇습니다.

 

이겨도 상처 뿐인 승리가 될 때도 있고, 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모든 걸 잃습니다.

 

이걸 모를 리도 없었을 텐데 대체 대한택견협회는 무엇을 믿고 이렇게 리스크가 큰 도박을 감행했던 걸까요?
 

 

분명한 건, 당시의 정황을 살펴보면 대한택견협회는 어떤 형태로던 문화재 택견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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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가 문제였을 뿐,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스무스하게 서울을 접수하고 기세 좋게 도장들을 확장해 나가는 대한택견협회의 행보는 내전으로 바빠 어지간한 일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던 충주의 경각심을 깨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위협적이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문화재 택견은 아래와 같은 뉘앙스의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국가가 인정한 문화재 택견이 아니면서 택견을 자칭하는 단체들은 전부 사이비이며 우린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네. 그렇습니다. 누가 봐도 대놓고 대한택견협회를 저격하는 성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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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 잘 나간다고 까부는데, 자꾸 이렇게 굴면 재미없어!)

 

 

지금이야 택견 단체들끼리 갈등을 빗어온 세월이 워낙 길다 보니, 어느 단체가 성명을 낸다고 해도 실제적인 후속 행동이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알기에 대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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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니 상상 속에서만 말이야 ^^'

 

위의 짤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저 당시엔 그렇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저 선언은 당시의 대한택견연맹의 입장에선 도저히 흘려 넘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재 택견을 제외하면 전부 사이비이며, 그런 사이비들이 택견을 계속해서 자칭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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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이 수준에 준하는 살인예고가 아닙니까?

 

(그런데 고작 3개월 배우고 협회 차렸으니 사이비는 맞지 않나? 읍읍...)

 

 

어쨌든 대한택견협회가 받아들이기에 저 선언은 사실상 충주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것이었을 겁니다. 

 

무려 국가가 보증하는 유일한 단체가 자신들을 정조준 하며 나섰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말이 그저 수사적 위협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실력 행사가 수반될 거라는 경고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무엇보다 대한체육회에 공식적으로 소속되어 국가의 보증을 받고 있는 현재와는 달리, 당시의 대한택견협회는 일개 사단법인에 불과한 단체였기에 정말로 충주가 문화재 타이틀을 이용해 각 잡고 패기 시작한다면 대한택견협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언론을 통한 여론전 외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라 보아도 좋았습니다.

 

이런 사항들을 고려하면 위의 소송이 조금은 달리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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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선빵이다!!!!)

 

 

이대로 충주가 후려치기를 손 놓고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때려서 상황의 주도권을 이쪽이 쥐겠다는 계획이었다면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이런 생각으로 전쟁을 시작했다가 개같이 망한 케이스가 수두룩하다는 게 함정이긴 합니다.

 

그리고 대한택견협회에게 있어 저 소송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만은 아니었습니다.

 

대한택견연맹 또한 나름 회심의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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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패 들고 지면 오함마 꺼내 들어야죠.)

 

 

그리고 그 회심의 카드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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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결련택견협회의 회장이 되는 젊은 도기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송덕기 옹의 택견과 일절 관계가 없던 대한택견협회가 소송장에서 뜬금없는 '송덕기 택견' 드립을 칠 수 있던 이유가 바로 도기현 회장이 대한택견협회에 힘을 보태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길래 도기현 회장이 대한택견협회의 편에 서 있었던 것일까요?

 

그 내막은 이랬습니다.

 

 

 

- 돌아온 송덕기 택견 -

 

1988년. 도기현 회장이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잠시 한국으로 귀국했을 당시의 송덕기 택견 계열의 상황을 표현하기엔 아래보다 적절한 짤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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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옹 사후 문화재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송덕기 옹의 후계자격 위치였던 전수장학생(이준서 선생)은 문화재 박탈 이후 행적이 묘연해졌으며,

 

도기현 회장과 함께 운동했던 친한 동생(최유근)이 '택견 보존회'를 이어 받아 1986년 서울 신촌 로타리 근방에 전수관을 열었지만 인지도 부족과 경영난에 의해 1년 만에 문을 닫고 만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운동한 동문들이 그 사이에 뿔뿔이 흩어진 건 보너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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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대환장 파티입니다. 뭘 해 보려 해도 함께 할 사람이 있어야 하던가 말던가 할 것 아닙니까(...)

 

어찌되었건 송덕기 옹의 제자였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던 젊은 날의 도기현 회장은 이대로 송덕기 옹의 택견이 잊혀지는 걸 바라지 않았고, 고민 끝에 과거의 인연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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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맞아. 형이야.)

 

네. 대한택견협회의 이용복 총사에게 말입니다.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이였지만 사실 이 둘은 송덕기 옹께서 살아 계실 적부터 서로 안면이 있는 관계였습니다.

 

그 계기에 대해 설명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질테니 이 부분은 추후 외전으로 다루겠습니다만,

 

어쨌든 도기현 회장은 전수관이 망하고 사분오열된 택견보존회를 '결련택견계승회'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규합하는 한편 대한택견협회와의 교류를 지속해나갔으며, 동문 제자들과 함께 송덕기 옹의 택견을 정리하기도 하는 등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1995년. 대한택견협회가 충주택견에 소송을 걸자도기현 회장은  송덕기 옹의 제자 신분으로서 법원에 탄원서를 쓰는 등, 대한택견협회의 편에 서 문화재 택견을 공격하는 데 앞장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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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누군가는 호가호위를 한 거다, 혹은 아직 어린 나이에 이용복 회장에게 꼭두각시처럼 놀아난 거다 라고 평하기도 합니다만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당시의 도기현 회장의 입장에선 이렇게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눈 뜨고 코 베인 것 마냥 억울하게 문화재를 빼았겼는데, 악마와 손을 잡는 한이 있어도 우선 빼앗긴 권리부터 되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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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택견의 정당한 권리를 도둑질 해간 문화재 택견을 부순다!)

 

 

그러나 결국 소송은 실패했고, 재심사를 거쳐 정당한 권리를 되찾겠다는 부푼 희망은 그저 한때의 꿈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대한택견협회와 한 편이 되어 소송에 참여하였기에 문화재 택견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도기현 회장에게 남은 길은 사실상 두 개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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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을 골라도 ㅈ망이다)

 

 

소수밖에 남지 않은 결련택견계승회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 인원 부족에 허덕이던가, 아니면 대한택견협회와의 협력을 더 강화해 본디 대한택견협회가 가지지 못했던 기술적 정통성을 더해주는 토템이 되던가 말이죠.

 

상황을 아는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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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현 회장의 행동력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소송이 시작되었던 1995년으로부터 5년이 지난, 2000년 8월 29일.

 

도기현 회장은 구 서울택견보존회 출신들과 대한택견연맹에서 본인을 따라온 사람들을 데리고  '사단법인 결련택견협회'를 설립하는 것으로 송덕기 택견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선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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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택견 3대 단체(충주/결련/대한)가 정립되는 순간이자,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중반까지 이어지는 격동의 택견 삼국지가 막을 올리는 것을 알리는 효시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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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대한택견협회에선 어떻게 사람을 빼갈 수 있느냐며 길길히 날뛰었습니다만,

결련택견협회는 이를 깔끔하게 무시하는 것으로 답햇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택견판의 천하삼분지계가 마침내 완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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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 과정에 이런저런 부침이 있었으나 송덕기 옹 사후 사실상 망한 것이나 다름없던 송덕기 택견은 도기현 회장의 노력에 힘입어 13년만에 다시금 택견의 뼈대 있는 두 계파 중 하나로서 우뚝 서게 됩니다. 

 

택견 근현대사(史)에 있어 도기현 회장의 가장 큰 공을 말하자면 '가장 어두운 순간에 필요한 일을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스승의 기예가 잊혀지는 것을 기어코 막아내는 데 성공하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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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패술을 선보이는 도기현 회장)

 

 

비록 도기현 회장이 추후 다루어질 일련의 사건에서 보여준 적절치 않은 처신들 때문에 현재에 들어 여러모로 부정적인 재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문화재 박탈 이래 잿더미만 남은 한국의 송덕기 계열 택견을 수습하고, 택견의 양대 계파로서의 입지를 회복 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는 부분 만큼은 올바르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인물이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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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이 평가를 받는 것만큼 과 또한 마찬가지로 평가를 받아야 공평하겠죠.

도기현 회장님의 과에 대해선 해당 파트에서 가감 없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준비해온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택견 근현대사의 초반부의 빅 이벤트. 대한 vs 한택/보존회 의 진검승부였던 대고소 시대와 결련택견협회의 등장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다음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6편 - 결련택견협회의 비상 - 편에서는 결련택견협회가 어떻게 메이저 3대 협회의 입지를 굽힐 수 있었는지에 대한 상황 설명과 그 과정에 대해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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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귀여운 추천 강도 보고 가세요~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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