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Chapter6 - 방화(2)
복도에 점잖은 구두 소리가 울렸다. 업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관리자의 발소리였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으나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뚜벅 뚜벅, 딱”
그가 성주의 방문 앞에 섰다. 그는 노크를 하기 앞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얼핏 성난 표정이 스쳤다.
“들어와”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성주가 먼저 그를 불렀다.
관리자가 들어선 그곳에는 수십 개의 스크린이 있었다. 5구역 내부 곳곳에 설치한 CCTV가 보여주는 화면이었다. 그러한 장관을 바라보는 성주의 눈은 매섭고 차분했다. 구역 전체가 그의 통솔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빠득’
관리자의 치아에서 갈리는 소리가 났다. 관리자는 거대한 지역의 통제권을 가진 성주를 존경해왔다. 그가 아는 성주는 부지런하고 초연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사건들에서 보여준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것이 화가 났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혼란스럽게 만든단 말인가. 관리자는 감정을 삭히고 계속 생각해보았음에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영문을 모를 일투성이였다.
지금 이 호출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관리자는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그는 성주가 강조해서 하루도 빠뜨린 적 없는 구역 내 위생 상태 보존작업을 하다 왔기 때문이다.
“고장났더군”
“무엇이 말입니까?”
성주의 대답에 관리자는 당황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빠뜨린 것이 있는지 되짚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와 같이 모든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우야 내가 관리자 직함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무얼 해야 한다고 했지?”
관리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성주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
“대답해”
”아, 그,, 저…”
“왜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나?”
“아닙니다”
20년 만이었다. 성주의 아들과 친구로 지냈던 유년기에 들었던 강령이었다. 오래전 바로 이곳에서 성주는 그 이야기를 하며 사람을 죽였다. 그 사람은 당시의 관리자였던 지우의 아버지였다. 지우는 그 날을 잊고 싶었지만, 결코 잊지 못했다.
“거리를 잘 두어야 한다고... 그러셨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해야 하지만, 몰라야 할 것에 관심을 두면 안 된다고...”
지우는 살기 위해 기억 저편에 안 보이게 숨겨두었던 기억을 다시 꺼냈다.
“그래 번번히 무력한 모습 보이는 건 괜찮다고, 그냥 대기만 잘하라고 했잖아. 기계처럼”
기계처럼, 그 말이 지우의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고장 난 건 자신임이 분명했다.
“아닙니다. 전 그저 제가 존경하는 당신을 위해서 그랬던 겁니다. 아아.. 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됩니다. 왜 무제의 월권을 방치하십니까…”
관리자는 말을 이어가면서 스스로의 깨달았다.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마침내 성주가 권총을 꺼내 들자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 없었다.
‘탕-‘
관리자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의 피가 카펫을 붉게 물들였다. 성주는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혹시 모를 가능성을 방치하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게 그렇게 어렵나?”
성주가 더 이상 듣는 이가 없는 공간에서 외롭게 말했다.
지우는 그렇게 덧없이 죽었다.
성주는 죽은 관리자를 눈앞에서 바로 치우지 않았다. 한참을 바라보고 투덜거리다가 그와 대화하는 것처럼, 독백을 시작했다.
“내가 왜 무제의 만행을 두고 보냐고? 그러게… 이렇게 죽여버리면 편한데 왜 그러지를 못할까?”
성주가 혼자 질문하고 가볍게 웃었다.
“간단해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지.. 무슨 약점이냐고? 말해도 되나… “
그가 관리자의 시체를 흘겨보았다. 쓰러져 일어나지 않은 그 모습에 안심한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 죽었으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내가 규율을 어겼어. 1구역을 처지하려고 욕심을 부렸지. 그러다가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렸어. 사람은 죽이더라도 그건 건들면 안됐는데..”
성주는 잠시 말을 삼켰다. 그는 옆에 있던 잔에 술을 따랐다.
“살려두고 이야기할 걸 그랬나? 아니야 아무래도 그건 위험해. 사실 지금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거든. 비밀을 지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뭔줄 알아? 자신의 입을 조심하는 거야. 상대방을 못 믿어서가 아니야. 스스로 한 번 두 번 말하다 보면, 말하기가 쉬워지거든.”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지. 그만큼 초라한 것도 없어.”
그가 남은 술을 마저 마시곤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는 잔을 내려놓은 손을 전화기로 향했다.
“그대로 진행하지. 네가 어디까지 제멋대로 굴지 모르지만 어울려주겠어. 그래, 그 애송이들을 1구역의 경계로 보내는 데 동의한다고. 두 번 말하게 하지마.”
그는 할말을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귀에서 수화기가 떨어졌음에도 기분 나쁜 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진저리난다는 표정으로 회선을 바꿨다.
“무제가 해달라는 대로 해줘. 그리고 방을 치울 사람 한 명을 올려보내”
성주가 다시 권위를 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생각을 가다듬으며 머리를 쓸어 넘기자, 이마에 가득한 주름이 드러났다.
지우는 성주의 지시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투기장이 열릴 때도, 한주를 무대에 세울 때도, 충일에게 죄를 씌워 핍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성주는 그를 아꼈지만 그만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성주는 지우가 기어코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시체를 처리할 인력이 올 때까지 지우의 곁으로 가서 서 있었다. 기다리는 와중에 한 번은 구둣발로 이미 못쓰게 된 카펫을 들춰보았다. 바닥까지 피가 흥건했다. 카펫이 미처 다 빨아들이지 못한 것이 일렁였다. 성주의 눈에는 그 모습이 타오르는 불처럼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