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주의/리메이크]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2화 - 송덕기. 그리고 현대 택견의 시작 -
** 이 글은 루리웹에 연재되었던 택견 근현대사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버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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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시리즈
오싹오싹 택견 시리즈 |
- 조선 최후의 택견꾼 송덕기 옹-
택견을 논함에 있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택견꾼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뿌리. 최후의 택견 그랜드마스터.
다들 아시겠지만 이 분이 없었다면 택견은 전설 속의 무술로 남을 뻔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6.25 전쟁까지. 끝없이 부침이 있던 한국 근현대사였고, 그 때문에 수많은 전통문화가 멸문의 화를 입었지만 택견은 다행스럽게도 송덕기 옹께서 평생에 걸쳐 홀로나마 택견을 다듬고, 지켜오신 덕분에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택견이 현대 대한민국에 전해지기까지의 송덕기 옹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1893년 1월 19일 현재의 서울 사직 공원 옆 필운동에서 관리였던 송태희(宋泰熙)의 2남 3녀 중 막내로 출생. 고모님들이 궁녀셨을 정도로 나름 끗발 있는 중인집안 출신.(조선 후기쯤 되면 궁녀들의 대부분이 한양의 중인계층에서 뽑혔다 합니다.)
- 13세부터 친형에게 3년간 택견을 배웠고, 실력이 제법인 것을 본 아버지가 16세부터 필운동에 살던 당대의 유명한 택견꾼 임호(林虎) 선생에게 입문시켜 동문 10여명과 함께 윗대 택견을 전수 받음.
- 10대 후반부터 택견판에 나가 누상동, 애오개 등의 택견꾼들과 겨루었으며 특징은 솟구치는 발길질로 인기가 좋았다고 하심. 임호 선생에게 택견을 집중적을 배운 기간은 4년간이며, 그 이후로도 활쏘기, 축구 같은 다른 운동들을 병행하며 스승인 임호 선생이 타계하실 때까지 십수년간 택견을 사사.
- 17세에 혼인을 하셨으나 안타깝게도 자식을 보지는 못하셨다고 함.
- 1916년 ,24세에 군에 입대하여 2년간 복무하였으며, 그 복무 기간 동안 부하들에게 택견을 가르치기도 하셨다고.
- 일제가 택견을 금지한 이후로는 집안이 만류하여 개인의 기예로만 간직하셨는데 그럴 법도 한 것이 택견을 한다는 이유로 순사들이 따라다녔고, 그 감시가 오죽 심했는지 송덕기 옹께서 활을 쏘시던 활터(황학정)에까지 따라 들어오려 하기에 냅다 걷어차고서 뒷산인 인왕산으로 도망치셨다는 일화마저 있으셨던 듯.
- 광복 후 전통 무술에 관심을 보이던 이승만 정부가 송덕기 옹을 초대해, 1958년 이승만 생일 기념 행사로 열린 경찰무도대회에서 택견 시범을 보이심.
(그렇습니다. 다들 익히 아실 이 분이 맞습니다.)
택견 근대사에 있어서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 기념 행사는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 기념 경찰무도회를 위해 남한 전역의 전통 무술가들을 소집하라는 명령에 유일하게 응한 것이 송덕기 옹의 택견이었기 때문입니다. 택견이 씨름/국궁과 더불어 한국의 뼈대 있는 전통무술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한 마중물이 된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어쨌든 송덕기 옹께선 당시 시연에 조선 유일의 전통무술 택견의 수련자로서 임호 선생의 다른 제자 한 분(안타깝게도 이 분께선 술독에 빠져 사시느라 몸이 이미 오래 전에 망가지셨기에 시연 이후 얼마 안 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시연을 보이셨고, 그 결과 택견에 관심을 가진 태권도 등의 무술사범들이 조금씩 배우러 오게 되었는데 이때 가장 처음으로 가르침을 받은 인물이 이른바 태권도 5대관 중 하나인 YMCA권법부 출신으로 당시 경무대 무술 사범을 지내던 박철희 사범이셨습니다.
(택견꾼이 아니심에도 택견사에서 꽤나 자주 등장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김병수, 임창수 선생(두 분 모두 태권도 출신) 등께서 택견을 배우러 왔지만 다들 오랫동안 택견을 배우진 않으셨으며 잠시 거쳐 가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외에도 여럿 무술인들이 송덕기 옹께 택견을 배우곤 하였습니다만, 잠깐의 호기심 내지는 개인 사정상 오래 택견을 배우지 못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오늘날의 택견 협회들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은 전부 1969 ~ 1980년대 사이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송덕기 옹께 기술을 받고 있는 청년기의 고용우 선생(우))
대표적으로 1969년 같은 동네에 살던 고용우 선생(윗대태껸협회)이 십수년간 택견을 사사하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송덕기 옹과 함께 짚신을 신고 있는 신한승 선생(좌))
1980년 들어 충주의 신한승 옹(한국택견협회)이 택견을 문화재로 만들었으며,
1980년대 초에 이준서 선생(윗대태껸협회)이 전수 장학생 신분으로 택견을 사사하였고,
도기현 회장(결련택견협회)이 택견 동아리를 이끌며 약 4년간 사사하는 등,
송덕기 옹께선 노년임에도 이 분들에게 왕성하게 지도를 하셨으며, 1987년 7월 22일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도장리 무궁화공동묘원에 위치한 송덕기 옹의 묘
모두 엄혹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묵묵히 견뎌내시며 우리에게 택견을 전해주신 송덕기 옹께 감사의 묵념을 하는 건 어떨까요.)
묵념을 마치셨다면 오늘 글의 다른 주제인 현대 택견의 시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신한승 옹. 그리고 현대 택견의 시작 -
현대 택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신한승 옹이라는 분을 빼놓고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결련택견협회와 대한택견회에서 신한승 옹과 그 후계 단체를 두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고, 실제로 완전무결한 분이었다 보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긴 하지만 신한승 선생께선 택견사에 있어 엄청난 두 개의 흔적을 남기고 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택견의 문화재 등재와 얼굴 한 판 규칙이 그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택견은 신한승 옹의 노력 덕분에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문화, 기술이던 단 한 분밖에 전승자가 남지 않는다면 그것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필연입니다. 하지만 택견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것이 문화재가 될 수 있도록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한 신한승 옹의 노력 덕분에 택견은 대한민국의 전통무술로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남을 수 있었고, 대한택견회, 결련택견회 등 다른 단체들이 성장할 수 있을 기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국가 차원에서 이건 전승해야 해! 하고 인정한 [문화재] 였으니 말입니다.
신한승 옹의 노력이 없었다면 택견은 아마 높은 확률로 사멸되었거나, 전국에 도장이 많아야 한 두 개에 불과한 전통 무술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문화재 택견은 등재 당시부터 이미 여러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신한승 옹께서 택견을 송덕기 옹께 오래 배우신 분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싶으실 텐데 실제로 그러합니다. 신한승 옹의 택견을 계승하고 있는 한국택견협회에서도 신한승 선생이 송덕기 옹께 약 3년 동안 배우셨음을 인정하고 있을 정도로 이건 택견을 해 본 사람들 사이에선 꽤 유명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니기엔 불편한 진실입니다.
(음.. 어... 으음....)
이것이 불편한 진실인 이유는 일반적으로 어느 무술이던 3년은 해야 뉴비 티를 벗을 수 있고, 5~6년은 해야 그걸 좀 했다 하는 티가 나며,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수준이 되기 위해선 최소 10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한승 옹께선 송덕기 옹께 택견을 약 3년간 배우셨으니 뉴비 기간은 벗어나신 셈입니다만... 숙련자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뭐 이런 상황인 셈이지요.
https://youtu.be/Y-wr3cvB0m8
(그래서 그런가 자료로 남은 송덕기 옹과 신한승 옹의 택견 시연 모습을 보면 두 분의 움직임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신한승 옹이 무술 그 자체에 문외한인 분이셨던 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경력만 보면 농담이 아니라 그 어떤 택견 협회의 큰선생님들보다 화려하신 분이셨죠. 이 분께서 보유하신 타이틀만 해도 아래와 같거든요.
엘리트 레슬링 선출.
멜버른올림픽 레슬링 국대선발전 준우승.
강도관 유도 4단.
시 경찰 무도교관.
검도 사범(지도자)
대충 이 정도일까요. 이러한 경력이라면 엘리트 체육인들 가운데서도 상위권의 경력을 가지신 분에 속합니다. 거기다 일반적으로 어느 무술을 선수 급으로 수련을 했다고 하면 다른 무술을 처음 배움에 있어서 굉장히 빠르게 중요 포인트를 캐치하게 되기 때문에 신한승 선생의 3년이 무술 뉴비의 3년과 같다고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폄하가 되겠지요.
거기다 신한승 옹의 후계 단체인 한국택견협회에서 설명하기론 신한승 옹께선 송덕기 옹 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다른 택견꾼들을 찾아다니시면서 택견을 배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주장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한다면 송덕기 옹의 택견과 느낌이 좀 다른 것도 나름의 설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https://youtu.be/3CNsoUEvoCw
(여담이지만 신한승 옹의 이러한 레슬링 경력 덕분인지 한국택견의 선수들은 태질(그래플링)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경기에서 나오는 그래플링 기술들이 가장 다양한 협회기도 하고요.)
하지만 문화재 택견의 등재과정에 있던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문화재 법령상 인간문화재 등재자는 종목당 1명이어야 했으므로, 스승(송덕기 옹)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정작 문화재 등재를 추진한 신한승 옹이 인간문화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한승 옹은 기적의 해결법을 만들어 내는데...
바로 문화재 택견을 웃대와 아랫대 둘로 분리시켜 등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송덕기 옹을 웃대 택견 인간문화재로, 신한승 선생 본인을 아랫대 택견 인간문화재로 등재시키는 거였죠.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실제로 택견이 웃대와 아랫대로 나뉘었던 건 맞지만(물론 이것도 뒷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구한말-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 대한민국에까지 살아남은 건 웃대 택견을 계승한 송덕기 옹의 택견뿐이었다는 겁니다. 위에서 말했듯 신한승 옹 또한 송덕기 옹께 택견을 배웠으니 아랫대 택견이 아니라 웃대 택견을 배운 것이고요.
그러니까 실제로는 형태가 어떤지, 기술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는 아랫대 택견의 이름을 끌어다 실제로는 하나였던 문화재를 둘로 나누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게 송덕기 옹과 신한승 선생 이 두 분이 살아 생전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말도 안 되는 찐빠가 터져버려서 그렇지(...)
거기에 앞선 두 개의 문제들 만큼이나 골때리는 병크가 하나 더 생기고 맙니다. 그런데 이건 신한승 선생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는 문화재청 자체의 문제였죠.
택견 무형문화재 지정 의뢰서와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제146호:택견 일부
쌈수 ① 낙함 ② 턱빼기 ③ 면치기(오광잽이) ④ 멱치기 ⑤ 항정치기 ⑥ 손따귀 ⑦ 주먹질 ⑧ 휘뚜루치기(마구치기) 등 결연택견의 쌈수가 있었으나 체육적 놀이로 가치가 없는 것 같아 생략 함.
오장환, 《택견 무형문화재 지정 의뢰서》
(??? : 이게 무슨 소리야! 명색이 전통무술인데 쌈수가 체육적 놀이로 가치가 없기에 생략한다니!)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당시 문화재청엔 전통무술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졌던 촌극이었습니다. 문화재의 기준에 전통 '놀이'는 있어도 전통 '무술' 항목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죠.
그렇다보니 문화재를 조사하는 조사원들의 관점이 택견을 무술이 아니라 놀이로 해석을 해 버렸던 겁니다. 그 결과 무술로서 중요시 되지 않을 수 없을 택견의 싸움수가 조명을 못 받고 졸지에 '체육적 가치가 없다' 취급을 받아버렸던 것이죠. 황당한 일이었지만,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손발을 유기적으로 호환하면서 상대를 치고 차는 기법들을 체육적 가치가 없으니 생략한다고 한 것...)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무술이라 하면 태권도나 가라데, 중국권법 같이 품새나 투로가 있는 것들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어서 그랬는지, 문화재위원들이 문화재가 되기 위해선 일종의 정형화된 형식이 필요하다며 신한승 선생께 택견의 '투로'를 '만들어와라' 라는 주문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대놓고 공무원들이 주작 요청을 한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세상에 공무원이 일처리 저런 식으로 하면 바로 신문고 부터 시작해서 민원 얻어맞고 부서 뒤집어집니다. 하지만 1980년대엔 이 나라가 어땠다? 대충 견적이 나오지 않습니까?
자질구레한 것들을 싹 빼고도 이 정도의 문제점을 들 수 있을 정도로 당시의 문화재 택견 등재 과정은 엉망진창이었고, 또한 이게 어떻게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하는 의문투성이 그 자체의 과정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런 점들이 다음 글에서 언급할 온갖 문제점들과 시너지들을 일으키면서 대폭발을 하게 되죠.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인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 두 거인의 죽음과 혼란기의 개막 - 편에서 이어 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