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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과 근대 무도의 성립

익명_354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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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으로 무사 계층이 해체되면서, 무사의 취미였던 무술도 옛 시대의 유물로 전락했고, 이를 배우려는 사람도 거의 사라짐.

하지만 메이지 중기로 접어들면서, 그동안의 극단적인 서구화주의에 대한 반성도 있어 일본 고유의 사상 문화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남. 그러한 상황 속에서 유술을 배우고 있던 가노 지고로는 이를 학교 체육에 도입하고 싶다고 생각함. 그래서 그때까지의 유술에 현대적인 스포츠 사고방식을 도입해, 안전하게 연습과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유도’라고 부르며 지도하기 시작함.

그 후, 청일·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그때까지의 유술과 검술이 청년들의 심신 단련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널리 인정받게 되었고, 마침내 중학교 체조 정규 과목으로 인정받게 됨. 명칭도 유술에서 유도로, 검술에서 검도로 바뀌어 감.

이처럼 메이지 시대에 한때 사라졌던 에도 시대 무술이 현대 스포츠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체계화되어, 안전하게 연습과 경기를 할 수 있게 되었음. 그리고 그것을 무도라고 부르게 된 것.

‘무도’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일본무도협의회가 정한 ‘무도헌장’에서는 무도가 ‘일본 고유의 쇼부 정신에 기초하고, 오랜 역사와 사회적 변천을 거쳐 기술에서 도(道)로 발전한 전통 문화’라고 규정하고, 그 목적을 ‘무술을 통한 심신 단련으로 인격을 닦고, 식견을 높이며, 유능한 인물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음.

이로 보아 전통무술과 현대 무도의 특징적 차이 중 첫 번째는 ‘무술을 통해 심신을 단련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음. 전통 무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무사도의 전통을 토대로 기술에서 도(道)로 발전해 온 것이 무도임.

두 번째 특징은 ‘체계화된 기술과 연습법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임. 옛 무술 그대로는 위험하므로, 그 안에 현대 스포츠의 사고방식을 도입해 안전하게 연습과 경기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음.

세 번째 특징은 ‘인격을 닦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임. 무도의 목적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해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대외적으로 말 할 수 있게 됨.

 

「고무도」란 메이지 유신 이전에 성립한 무술을 말함.

적을 살상하기 위한 실전적인 전투 기술로 무로마치 시대 에 기술화·체계화된 무술·무예, 무사도 등 수행를 의미함.

 

지육, 덕육, 체육을 겸비하고 예를 중시하는 무사 교육으로 구체적으로는 궁술, 마술, 창술, 검술, 유술, 포술, 봉술, 지술 등 「술」이 붙어 있는 것.

 

에도시대에는 '오토메류: 하나의 번에만 전승된 무술·무예의 유파'를 중심으로 궁술은 52, 검술은 718, 창술은 148, 유술은 179개의 유파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음.

 

에도시대(1603~1868)는 사무라이들이 사회의 최상위 지배 계층(사농공상 중 '사')으로서 명예와 특권을 누렸으나, 실제 생활면에서는 260여 년간 이어진 평화로 인해 경제적·사회적 곤란을 겪으며 '명목상의 지배층'으로 몰락해가는 이중적인 처지였음.

 

도쿠카와 막부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주자학을 당시의 공식적인 정치이데올로기로 설정하였으며(Draeger D.F., 1973:22), 무사들의 생활과 수련에는 그 이전에 유행하였던 선불교의 사상과 새로이 대두된 유교사상이 공존하게 됨. 이 당시 정권의 이데올로기인 유교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영향력이 강화된 유교가 막부에 의한 〈무가법도(武家法道)〉라는 규범으로 무사들의 삶에 직접 관여함. 당시 무사들의 의식과 윤리, 그리고 행동을 규정했던 제반규범과 가치관을 집약한 것이 무사도(武士道). 이러한 무사도의 이데올로기는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와 국수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침. 기(氣)는 생활태도에 그러한 이(理)는 윤리적 규범을 작용시켜, 군주=천황=국가를 위하여 모든 것, 즉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는 것이 바로 도쿠카와 무사도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내용임.


도쿠카와 시대에 이르러 유교가 정착되면서 무사들로 하여금 정신적인 교양임과 동시에 일상생활에서의 의식화된 예의범절을 강조하였고, 그들의 생활과 행위의 계율적 기반이 되었음. 이러한 유교의 영향은 무도 수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는데, 즉 무술의 형식화와 의식화가 그것임.


복잡한 예의와 의식의 강화로 기술적인 면에서는 형(型)이나 본(本)의 제정과 이러한 형과 본을 중심으로 한 수련양식의 유행으로 검술역시 다양한 유파들이 나타나고, 각 유파별로는 고유한 기술적 특징을 형으로 체계화시킴. 즉 형의 수련문화가 전승되는 시기가 이때부터임.

 

도쿠카와 막부시대의 검술은 초창기에는 진검수련이었으나 실제 전투가 없었을 시에는 형(型)혹은 본(本)연습에 중점을 둠. 이러한 형과 본위주의 수련은 다양한 유파를 낳게 했고, 검술을 배울 수 없었던 계층의 사람들에게까지 검술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이 당시에 많은 무사들이 새로운 직업으로 검술을 지도하는 기관이나 사범으로서 일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옴(스티븐 캐페너, 1998:50-51).

 

역설적으로 평화기에 이르러 전쟁용 무술의 필요성이 약해지자 오히려 민간무술의 발전이 본격적으로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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