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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술] 『만기요람』 군정편에 적힌 군영별 시예에서의 권법. 그리고 의문점

익명_21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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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우린 이 글( https://yugakkwon.com/taekkyeon/271863 )을 통해 1795년 중순을 통과한 훈련도감의 병사들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수가 권법으로 시험을 통과하였음을 확인한 바가 있었음.

 

다만 조사를 좀 더 진행하던 과정에서 일전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불가피하게 몇 가지 정정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저 글의 메인 주제라 할 수 있을 훈련도감의 권법(拳法)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맨몸으로 치고 받는 그 권법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많이 커졌기 때문임.

 

아래의 내용은 『만기요람』의 군정편에 실린 훈련도감의 시예 가운데 중순(中旬)의 규정을 언급하고 있는 서술로

 


[훈련도감의 중순(中旬)]

○ 보군(보병)의 원과목은 아래와 같은 4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조총 6발 :  과녁을 명중하면 점수를 배로 계산한다. 
2) 유엽전 1순(5발) : 과녁을 명중하면 점수를 배로 계산한다. 
3) 검 1차인데 등패(籐牌)ㆍ낭선(狼筅)ㆍ장창(長槍)을 통틀어서 검이라 한다. 
4) 권법(拳法) 1차인데 곤방ㆍ보편(步鞭)을 통틀어 권법이라 한다.

 

이상 4종 과목을 통산하여 6점 이상이면 상상등, 5점 이상이면 상중등, 4점이면 상하등이 된다. 


( 출처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67A_0080_040_0070_2002_002_XML )

 

보다시피 이름 자체는 권법임에도 우리가 권법이라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맨손격투가 아니라, 곤방(곤봉)과 보편(편곤)을 합쳐서 권법이라 부른다고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

 

사실 냉병기가 여전히 현역인 시대에서 합격인원의 절반이 전부 도수격투로 무예 시험을 통과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좀 안 되긴 했었으니, 살짝 실망스러운 결과이긴 하지만 일단 수용하는 게 맞는 거겠지.

 

다만 동일한 『만기요람』의 군정편에 적힌 용호영(금군청)과 금위영(禁衛營), 그리고 어영청(御營廳)의 기록까지 함께 살펴보면 뭔가 애매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용호영의 중순(中旬)과 관무재(觀武才)]
○ 표하군 사수는 유엽전 1순을 발사하여 3시를 명중하여야 하며, 편전은 1순을 발사하여 2시를 명중하여야 한다. 
○ 용검수(用劍手)는 용검ㆍ쌍검ㆍ제독검ㆍ언월도ㆍ왜검ㆍ 교전본국검(交戰本國劍)ㆍ 예도(銳刀)를 합하여 일기(一技 : 하나의 기예)로 한다. 
○ 창수(槍手) 는 목장창ㆍ기창ㆍ당파ㆍ낭선ㆍ등패를 합하여 일기로 한다.
○ 권법수(拳法手) 는 권법ㆍ 보편곤(步鞭棍) ㆍ 협도(挾刀) ㆍ곤방ㆍ죽장창을 합하여 일기로 한다.


( 출처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67A_0080_030_0180_2002_002_XML )

 

보면 알겠지만 용호영은 편곤과 곤방을 권법수(拳法手)라는 대분류에 넣기는 하였으나 훈련도감과는 달리 협도와 죽장창을 추가하고 권법을 따로 분리해 놓았고,

 


[금위영의 관무재(觀武才)]
○ 보군에서 조총을 2발 명중한 자와 
교전ㆍ 예도(銳刀)ㆍ 언월도(偃月刀)ㆍ 제독검(提督劍)ㆍ 본국검(本國劍)ㆍ 기창(旗槍)ㆍ 협도(挾刀)ㆍ 등패(藤牌)ㆍ 낭선(狼筅)ㆍ 죽장창(竹長倉)ㆍ 당파(鐺鈀)ㆍ 보편곤(步鞭棍)ㆍ 권법(拳法)ㆍ방(棒) 등에서 상상등을 차지한 자는 모두 선발 상주한다. 


( 출처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67A_0090_010_0100_2002_002_XML )

 

금위영 같은 경우 훈련도감, 용호영과는 달리 중순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국왕이 친히 보는 앞에서 무예 시험을 치루는 관무재에서 훈련도감과는 달리 시험 과목으로서 보편곤, 곤방, 권법을 분리하고 실시하였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으며,

 


[어영청의 관무재(觀武才)]
○ 보군의 본기는 사수는 유엽전과 편전, 포수는 조총이며, 
○ 검술의 본기는 제독검(提督劍)ㆍ언월도(偃月刀)ㆍ쌍검(雙劍)ㆍ본국검(本國劍)ㆍ용검(用劍), 
○ 특별 기예로는 죽장창(竹長槍)ㆍ기창(旗槍)ㆍ등패(籐牌)ㆍ낭선(狼筅)ㆍ목장창(木長槍)ㆍ당파(鐺鈀)ㆍ예도(銳刀)ㆍ협도(挾刀)ㆍ왜검 교전(倭劍交戰)ㆍ권법ㆍ방(棒)ㆍ보편곤(步鞭棍)을 모두 열거 상주하여 각 과목 가운데서 지정을 받아서 시취하고 선발 상주한다. 


( 출처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67A_0090_020_0100_2002_002_XML )

 

어영청 또한 권법과 곤방, 편곤을 각각 분리하여 시험 과목으로 삼았으되 다만 전부 상시 시험 과목이 아닌 특별 기예로 분류하였던 것이 차이가 날 뿐임을 확인 가능함.

 

image.png(이를 반영한 것처럼 『어영청중순등록』에서는 1808년을 기준으로 상시 시험 과목인 제독검의 합격자가 50퍼센트 이상인 걸 확인 가능하며, 다른 특별 기예 종목들도 적지만 합격자 숫자를 유지하는 것을 확인 가능하다.)

 

즉, 동시대의 다른 여러 군영들이 권법을 편곤, 곤방과 구분하여 하나의 기예로서 시험을 친 반면 유독 훈련도감만이 붕어 없는 붕어빵처럼 권법 없는 권법(...)을 시험치고 있었다는 것이 만기요람의 서술인 셈인데 이걸 신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image.png

(ㅅㅂ 혹시 적다가 빼먹은 거 아녀?)

 

어쨌든 훈련도감군의 절반에 달하는 중순 합격자가 도수격투로서의 권법 통과자였다고 하는 건 (만기요람의 서술자가 훈련도감의 권법 항목에서 권법을 실수로 누락시켰다고 가정하더라도) 사실상 자료를 오독한 결과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음 ㅇㅇ.

 

다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굳이 왜 [권법]이라는 명칭을 왜 붙였느냐인 건데... 이건 정말로 전공자가 나서야 결론이 날 것 같은 문제인지라 아직은 의문으로 남겨두는 게 맞을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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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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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875643
용호영의 권법수에 속한 무기들을 보면 곤방, 편곤, 협도의 쓰임이 모두 상대를 친다, 때린다에 가까우니 권법이라는 커다란 개념 안에 속한다고 여겼던 게 아닐까?
21:06
25.01.02.
저것뿐 아니라 다른 분류들도 혼돈의 극치임. 저기 만기요람에도 나와 있지만 '창수(槍手) 는 목장창ㆍ기창ㆍ당파ㆍ낭선ㆍ등패를 합하여 일기로 한다'인데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당파는 창도 아니고 쓰는 법도 완전히 다르고 등패는 뭐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인데 창이랑 같이 묶여 있고... 중순등록의 다른 내용을 봐도 본국검, 왜검교전, 예도가 기창이랑 같이 묶여 있질 않나... 어떤 무술적인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행정적 편의에 따라서 묶은 것으로 보임.
23:46
25.01.02.

일단 만기요람에 나온 각 군영별 장비 기록 중 화포와 재고장비를 제한, 실제 복무중인 인원이 소지하고 있던 개인장비(총, 활, 칼, 창병기)의 목록이 대략 아래와 같은데

 

image.png

 

시험과목이라는 등패는 모든 군영의 장비 목록에도 안 보이고, 곤방은 5개를 넘는 군영이 없을 뿐더러 월도나 협도도 대놓고 비주류라는 게 장비 숫자에서 보이는데다, 장창은 만명 단위의 군영에서 10개도 못 넘는 걸 보면 그냥 헛웃음만 나옴.

 

개인무장인 환도를 제외하면 그나마 가장 많이 보이는 게 폴암류인 요구창이랑 편곤인데, 훈련도감의 개인장비 목록을 언급한 구절 중 [마군은 갑주ㆍ환도ㆍ통아ㆍ편곤이 각 1개씩, 장전 20, 편전 15. 교자궁ㆍ후궁(帷弓) 각 1개. 유삼(油衫) 1이다.] 라는 내용이 있는 걸 보면기병의 필수장비 겸 소모품적인 면모가 큰 장비라서 저렇게 많이 보유한 걸로 추정됨.

 

쨌든 실제 군영 장비랑 시험 내용을 서로 비교해 보니까 정말 저렇게 시험 본 게 맞나...? 같은 생각도 들고 뭔가뭔가다에요.

00:06
25.01.03.
익명_048380

이 표를 보니까 1795년에 훈련도감에서 치른 중순 합격자의 절반이 왜 권법으로 시험을 통과했는지 알것 같다.

훈련도감 소속 살수들의 장기가 권법(편곤)이었고, 포수나 사수들 중에서도 편곤을 다룰 줄 아는 병사들이 꽤 있던 모양임.

반면 지방에서 올라오는 번상병으로 구성되었다는 금위영이나 어영청에선 군 규모에 비해 편곤 비축량이 엄청 적은 걸 보면 편곤도 사실상 중앙군의 전유물에 가까웠던 느낌인 듯.

10:57
25.01.03.
익명_630243
창수 같은 경우엔 얘가 뭘 의미하는 지 알 것 같음.

등패 - 낭선 - 장창(기창) - 당파

딱 기효신서 원앙진 구성원인데?
10:09
25.01.03.
사실 저기서 제일 미스테리는 권법이 초학입예지문이라면서 공통필수과목이 아니라 개별과목으로 따로 시험쳐야 하고 심지어 상시도 아닌 특별로 분류되어 있고 권법수라는 병종도 또 따로 있단 거임. 이러면 통지의 기록과는 다르게 무기술을 익히기 전의 기본기 다지기용이 아니란 거고 진짜 그런 용도의 맨몸무술은 따로 있었단 소리인데 그게 수박이나 택견 아니었나 하는 게 본인 추정. 태조장권계 권법들이랑 택견이랑 비교해보면 엄청 다르기까지 하니...
23:53
25.01.02.
사실 태조장권 같은 무술 입문용 기본기를 왕 앞에서 시험 치는 용도로 써먹었다는 가정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함 ㅋㅋㅋㅋ
00:15
25.01.03.
익명_048380
본문의 만기요람 링크에 들어가 봤는데 보병도 조총이나 활쏘기만 잘 해서는 안 되고 개인 무예를 따로 익혀야 포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꾸준하게 강조하네.

훈련도감의 권법 부분은 해석을 잘못한 게 맞는 것 같지만 층진의 문제점을 병사의 무술 실력으로 보완하려던 게 조선이었다는 일전의 분석은 확실히 일리가 있는 듯함.
11:10
25.01.03.

맞음. 훈련도감의 관무재를 보면 "보군의 원과목에서 조총 2발 명중 혹은 2점. 검예(劍藝)ㆍ권법(拳法)과 특별 과목[別技]에서 왜검교전(倭劒交戰)ㆍ예도(銳刀)ㆍ협도(挾刀)에 상상등(上上等)을 획득한 자는 모두 선발하여 상주한다." 고 나와 있는데, 이건 모든 병사가 조총수가 될 수도 있고, 사수가 될 수도 있으며, 필요하면 살수로서 전열에 나가 싸울 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당시 조선군이 가졌다는 반증임.

아마 그래서 검술이 군영을 막론하고 인기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음. 현실적으로 포수나 사수가 휴대할 수 있는 냉병기는 환도 정도가 유일했을 테니 말임.

11:32
2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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