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얼굴 한 판 룰은 어떻게 신성불가침적 입지를 차지하게 되었나?

익명_45293506
188 1 2

간단하게 정리해주자면, 그건 저 규칙이 나온 이후 송덕기-신한승 옹을 주축으로 했던 택견계가 붕괴 후 혼란기에 빠져들었기 때문임.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얼굴 한 판 룰의 시작은 신한승옹과 이용복 총사의 택견 경기의 스포츠화(근대화) 추구였었고, 그 결과가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있었던 제 1회 택견경기였음.

 

그리고 그 결과는 이용복 총사 본인의 회고에도 나와 있듯 폭망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났음.

당연하게도 송덕기 옹 또한 경기의 형태를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았을뿐더러 저건 택견 경기가 아니라는 촌평까지 남기실 정도였으니 말은 다한 셈임.

 

다시 말해서 1회 택견 경기에서 승부를 가르기 위한 방법으로써 도입되었던 얼굴 한 판 룰은 지금과 같은 신성불가침적인 입지를 가질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는 말임.

그저 택견의 무도 스포츠화를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여러 창의적 시도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던 거.

 

그런데 문제는 1회 택견 경기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송덕기 옹과 신한승 옹이 차례로 돌아가셨다는 거였고, 택견의 스포츠화를 추진하였던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바로 그 「이용복 총사」였다는데 있음.

 

당연히 이용복 총사는 본인이 생각해낸 굉장히 놀이적인 개념인 얼굴 한 판 룰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충주는 충주대로 제자들 간의 내전 때문에 그 내막이 어찌되었던 신한승 옹 생전에 만들어진 룰에 감히 손을 댄다는 발상 자체를 할 수 없었음.

혹여 저 규칙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했다 하더라도 그 신한승 옹의 검수를 받은 룰에 이의를 제기한다 = 역적이다 프레임에 빠지기 딱 좋았고, 무엇보다 충주 내부의 알력다툼이 잦아든 것 자체가 상당히 최근의 일이었기 때문임.

 

그나마 도기현 회장의 결련택견협회가 대한택견에서 떨어져 나올 때 저 얼굴 한 판 룰과 결별한, 보다 근본 있는 형태의 경기를 추구했다면 원찬스였겠지만 실상 도기현 회장은 송덕기 옹 살아 생전 시절에조차 윗대 계열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얼굴 한 판 룰 규칙을 추종하던 인물이었던지라(...)

 

결국 얼굴 한 판 규칙은 이런 과정을 통해 뿌리내렸고 택견계의 수습 불가능한 골치덩이로 자리잡히고 말았음.

 

솔직히 대한택견이야 이용복 총사의 가르침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테니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지마는 충주같은 경우엔 굳이 더 이상 얼굴 한 판 룰을 고수할 필요가 없을텐데도 관성때문에 룰을 고수하는 느낌이 강하고, 결련은 도기현 회장 개인의 철학과 아랫글처럼 대한과 충주의 눈치를 살피느라 얼굴 한 판 룰을 못 버리고 있는 상황임.

 

정말 꼬여도 단단히 꼬인 문제라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댈 수는 있는 문제인지 싶음....

신고공유스크랩

한달이 지난 게시글은 로그인한 사용자만 토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공유

퍼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