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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무인들의 근력 수준을 나타내는 6균의 활(육균궁)

익명_06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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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cafe.daum.net/kukmoonyun/JRHv/83

 

육균궁과 안고(공자의 제자)

 

1. 안고

안고는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입니다. (논어에는 등장하지 않음.)

그는 육균궁(180근, 238파운드)을 당겨 쏘았다고 합니다.


☞ 참고사항 : 안고, 위키백과, 

https://ko.m.wikipedia.org/wiki/%EC%95%88%EA%B3%A0_(%EC%B6%98%EC%B6%94)

 

八年春王正月(팔년춘왕정월) : 정공 8년 봄 정월에
公侵齊(공침제) : 노나라 정공이 제나라를 침략하여
門于陽州(문우양주) : 양주의 성문을 공격하였는데
士皆坐列曰(사개좌열왈) : 군대가 모두 열을 지어 그곳에 앉아 말하기를
顔高之弓六鈞(안고지궁육균) : "안고의 활은 180근의 무게가 나간다."고 하면서
皆取而傳觀之(개취이전관지) : 모두가 그 활을 돌려 보았다
陽州人出(양주인출) : 이때 양주 사람들이 나오자
顔高奪人弱弓(안고탈인약궁) : 한고가 급히 다른 약한 활을 빌리는 사이에
籍丘子鉏擊之(적구자서격지) : 제나라 사람 적구자서가 쏘아
與一人俱斃(여일인구폐) : 안고는 다른 한 사람과 함께 엎어졌다
偃且射子鉏(언차사자서) : 안고는 엎어지면서 적구자서를 쏘아
中頰殪(중협에) : 그의 뺨을 맞히어 적구자서는 죽었다

 

☞ 출처 : 춘추좌씨전 정공 8년,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sarang2006kr&logNo=50141566416&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trackingCode=external

 

아군이 자신의 육균궁을 돌려가며 구경하고 있는 사이에,

안고는 피습을 받았고, 급하게 남의 약한 활을 빌립니다.

자신에게 활을 쏜 적군을, 엎어지는 와중에도 약한 활로 쏘아 죽였습니다.


2. 한시에 표현된 육균궁 

 

1) 점필재집, 육량전

 

육량전(六兩箭)

금포에 해 비추어 붉은 도포 빛나는데 / 金鋪日照赭袍明
울짱의 앞 머리에 뇌고 소리 울리매 / 梐枑前頭雷鼓聲
둘둘씩 깍지 팔찌 차고 육균궁을 당기어라 / 兩兩決拾彎六鈞
활은 단단하고 촉은 무거워 억지로 버티누나 / 弓堅鏃重强支撑
힘센 자는 팔짝팔짝 뛰고 약한 자는 넘어지며 / 健者雀躍弱者仆
관과 패옥 떨어지고 먼지 바람 일어나는데 / 倒冠落佩風埃生
괄우전이 반공중에서 비스듬히 떨어지면은 / 括羽傾斜半空墜
자건 쓴 군졸이 자주 징을 두드리누나 / 紫巾之卒頻扣錚

 

☞ 출처 : 오산집 제2권 칠언율시,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258A_0020_010_0410_2013_001_XML

 

2) 오산집

 

한나라 비장이 공동으로 나가니 / 漢家飛將出崆峒
그 기운 서늘한 추풍을 격동했지 / 氣激金風颯爽中
칼집 속엔 삼척의 용검이 울어 대고 / 匣裏龍鳴三尺劍
허리춤엔 육균의 사궁(蛇弓)이 요동하네 / 腰間蛇動六勻弓
추모하며 의지한 건 소 감당과 비슷했고 / 追思人倚甘棠召
자랑 않은 그 명성은 풍 대수도 아래였지 / 不伐名高大樹馮
연연의 한 조각 비문을 읽어보면 / 看取燕然一片石
해동이 천고토록 그대를 칭송하리 / 海邦千古誦明公

 

☞ 출처 : 점필재집 시집 20권,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258A_0020_010_0410_2013_001_XML

 

위 시의 해석에는 육균사궁(=뱀처럼 구불구불한 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자의적인 해석에 가깝습니다.

 

풀이를 다음과 같이 하면,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匣裏龍鳴三尺劍  칼집에는  삼척검이 용처럼 울부짓고,

腰間蛇動六勻弓  허리춤엔 육균궁이  뱀처럼 요동하네,

 

3) 송파집, 염궁자운시아배

 

六經文字六匀弓。未必功名在此中。第向本原勤用力。臨瀛家世有淳風。

 

육경에 문자로 전해지니 180근의 육균궁이로다,
반드시 성공과 명예가 이 중에 있지 아니 할지니,
근본과 원리로 점차 나아가며 부지런히 노력하여,
집안 대대로 대해를 임하듯 순후한 풍속이 있다네.

 

☞ 출처 : 송파집, 염궁자운시아배,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913A_0090_010_0490_2010_B041_XML

 

☞ 참고사항 : 송파 이서우의 한시, 拈弓字韻試兒輩,

https://cafe.daum.net/kukmoonyun/JRHv/84

 

염궁자운시아배는 弓자 운을 아이에게 가르치키 위해서 지은 한시인데,

활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육경은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예기 역경을 의미합니다.

육경에서도 육균궁이라는 단어가 문자로 전해진 것 같습니다.

 

4) 한시 기타

國失無雙士。圓蒼決湃中。英雄萬人敵。材力六鈞弓。

 

☞ 출처 : 뇌계집,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75A_0050_010_0170_2003_A015_XML

 

千年綿歷超三代。萬戶安生軼九功。時値昇平猶講武。健兒皆佩六匀弓。

 

☞ 출처 : 사명자시집,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586A_0020_080_0260_2007_A269_XML

 

猛士腰間三筒箭。將軍臂上六匀弓。漢家拊髏廉頗在。衛霍休誇漠北空。

 

☞ 출처 : 우정집,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103A_0040_010_0040_2003_A018_XML

 

3. 만강대

 

세조실록에는 '만강대'라는 특수 부대가 나옵니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군사(軍士)로서 활 1백 20근(斤)을 당기는 자를 가려서 만강대(彎强隊)2653) 라 일컫고 행행(行幸)할 때에 시위(侍衛)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조선 초기에는 1근이 600g 정도이었으니, 120근의 활은 158파운드(72kg중) 이상의 강궁이었을 것입니다.

 

☞ 참고 사항 : 세조실록 제12권, 『병조의 건의로 활 1백 20근을 당기는 자를 가려 만강대라 하고 행행에 시위케 하다』,  http://sillok.history.go.kr/id/kga_10403029_001

 

☞ 참고 사항 : 이종봉, 『조선전기 도량형제 연구』, 국사관논총 제 95집, 국사편찬위원회, 2001년,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kn_095

 

4. 임명장에 표현된 육균궁

 

1) 최유공

 

운운. 기무를 관장하고 왕언을 출납하는 상서(尙書)는 비유하여 목구멍과 입술이라 이르고, 군사를 감독하고 왕을 호위하는 상장(上將)은 비유하면 손톱과 어금니 같다 한다. 지금 지체(支體)의 사용은 비록 갖추었으나 방어하는 설비가 무엇보다 급하다. 모름지기 사람 중에 특출한 자를 뽑아서 임금의 위엄을 더욱 높여야 한다.

 

모관(某官) 아무는 쇠덩이라도 씹을 수 있는 강한 배짱이요, 구름을 솟구치는 장한 기개다. 자방(子房)의 글 한 권을 배워 진작 마음 속에 간직하였고, 안고(顔高)처럼 육균(六鈞)의 활을 당겼지만 일찍이 그 수단을 드러내지 않았다. 

 

☞ 출처 : 최유공 위 정의대부 흥위위 상장군 판대부사 관고, 동문선 25권,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65A_0280_010_0190_2002_003_XML

 

최유공은 고려 후기 대장군입니다.

 

☞ 참고사항 : 최유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0528

 

2) 학정

 

처분을 받들어 통첩(通牒)한다.

 

활쏘기를 잘하는 것은 무예(武藝)에서 먼저 요구되는 바이다. 원숭이를 호읍(號泣)하게 하여

길이 아름다운 명성을 퍼뜨렸고, 기러기를 떨어뜨려서 묘한 기예를 후세에 전하였다. 더구나 다섯 손가락만으로 6균(勻)의 활을 마음대로 다룬 것으로 말하면, 어찌 고금(古今)을 뛰어넘을 뿐이겠는가. 그 공이 신령스럽고 그 기술이 성스럽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전건(前件) 관원은 일찍부터 활쏘기를 연마하면서 마음의 기틀에 잘 응하였다. 반드시 300근의 활을 당겼으며 70보의 거리에서 화살을 발사하였다. 기창(紀昌)이 만약 보았다면 필시 활을 활집에 넣었을 것이요, 여포(呂布)가 그를 만났다면 화살을 비껴 잡은 것을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미 비상한 기량(伎倆)을 지니고 있는 만큼, 오래도록 전해질 공적을 이룰 수 있겠기에, 활대(滑臺)의 옛 자계(資階)를 바꿔서 수원(隋苑)의 높은 자급(資級)으로 올리려 한다. 이에 아전병마사(衙前兵馬使)에 보충(補充)하는 바이다.

 

☞ 출처 : 학정을 아전병마사에 임명한 글, 계원필경 제14권,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001A_0150_010_0090_2011_002_XML

 

계원필경은 고운 최치원이 당나라에 재직 중에 지은 문집이기에, 학정은 중국의 장군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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