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JLH 새거 올라왔네
익명_353077
2602 0 5
https://taekkyeon.net/person/367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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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7
25.09.11.
와 내용이 뭐가 이렇게 많냐...
14:21
25.09.09.
윗대에는 택견에 작정한 자들만 있는거 같다. 뭐가 계속 나와
20:02
25.09.09.
강태경입니다. 소식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프로젝트 임호> 3화 :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인 임호 (3)
- 임호의 장인 윤정석과 보인학회
아래는 간추린 내용입니다.
1. 임호(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의 장인은 보인학교 초대 교장 윤정석이었다.
2. 보인학교는 1908년, 군대 해산 후 남은 시위대 무관들과 내수동 지역 원로들이 힘을 합쳐 만든 학교였다.
3. 윤정석은 ‘서민들의 학교’를 내세우며 교육·체육·기술을 함께 가르치고자 했다.
4. 개교를 위한 대중강연을 안창호가 해주었고, 고종의 측근 한규설, 지석영, 장지연은 개교식에서 축사하고, 주시경은 1년 동안 매주 강의를 해주었다.
5. 특히 1908년 5월, 도산 안창호는 내수동에서 군중강연을 열어 800명을 모으며 학교 설립에 불을 지폈는데, 이 이야기를 훗날 회고해준 사람이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을 남겨준 송덕기 옹이다.
6. 그 힘으로 1908년 6월에 보인학교, 9월 필운학교가 세워졌고, 송덕기는 필운학교 1기 입학생이었다. 공교롭게도 기존에 알려진 임호에게서 4년간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을 배우기 시작한 연도도 1908년이다.(임호는 필운동 사람이다)
7. 보인학교 설립에는 기생·예인들도 적극 참여해, 지역 문화와 체육 네트워크까지 한데 묶였다. 임호의 제자이자 당대 최고 피리명인 고재덕의 음악적 재능, 그리고 송덕기의 다재다능한 예인으로서의 기량도 이런 배경을 고려할 수 있다.
8. 이후 임호는 분원학교 교사로도 활동하며 교육·무예·조직 활동을 동시에 이어갔다.
9. 흥미롭게도, 임호(무장)는 1923년 상해에서 안창호·이승만·이시영으로부터 밀명을 받은 기록이 있다. 임호(태껸)은 윤정석의 데릴사위였다는 점에서 안창호와 직접적인 고리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윤정석을 매개로 독립협회-신민회 인사들과 연결되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관계성의 일치는 두 임호가 동일인일 가능성을 높인다.
10. 결국 임호(태껸)은 윤정석을 매개로 보인학회·필운학교·분원학교 등 독립협회-신민회 인사들의 실력양성운동(및 훗날의 무장독립운동)과 관계성을 직간접적으로 구축하며, 이는 임호(무장)과 동일인일 가능성을 높인다.
<프로젝트 임호> 3화 :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인 임호 (3)
- 임호의 장인 윤정석과 보인학회
아래는 간추린 내용입니다.
1. 임호(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의 장인은 보인학교 초대 교장 윤정석이었다.
2. 보인학교는 1908년, 군대 해산 후 남은 시위대 무관들과 내수동 지역 원로들이 힘을 합쳐 만든 학교였다.
3. 윤정석은 ‘서민들의 학교’를 내세우며 교육·체육·기술을 함께 가르치고자 했다.
4. 개교를 위한 대중강연을 안창호가 해주었고, 고종의 측근 한규설, 지석영, 장지연은 개교식에서 축사하고, 주시경은 1년 동안 매주 강의를 해주었다.
5. 특히 1908년 5월, 도산 안창호는 내수동에서 군중강연을 열어 800명을 모으며 학교 설립에 불을 지폈는데, 이 이야기를 훗날 회고해준 사람이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을 남겨준 송덕기 옹이다.
6. 그 힘으로 1908년 6월에 보인학교, 9월 필운학교가 세워졌고, 송덕기는 필운학교 1기 입학생이었다. 공교롭게도 기존에 알려진 임호에게서 4년간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을 배우기 시작한 연도도 1908년이다.(임호는 필운동 사람이다)
7. 보인학교 설립에는 기생·예인들도 적극 참여해, 지역 문화와 체육 네트워크까지 한데 묶였다. 임호의 제자이자 당대 최고 피리명인 고재덕의 음악적 재능, 그리고 송덕기의 다재다능한 예인으로서의 기량도 이런 배경을 고려할 수 있다.
8. 이후 임호는 분원학교 교사로도 활동하며 교육·무예·조직 활동을 동시에 이어갔다.
9. 흥미롭게도, 임호(무장)는 1923년 상해에서 안창호·이승만·이시영으로부터 밀명을 받은 기록이 있다. 임호(태껸)은 윤정석의 데릴사위였다는 점에서 안창호와 직접적인 고리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윤정석을 매개로 독립협회-신민회 인사들과 연결되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관계성의 일치는 두 임호가 동일인일 가능성을 높인다.
10. 결국 임호(태껸)은 윤정석을 매개로 보인학회·필운학교·분원학교 등 독립협회-신민회 인사들의 실력양성운동(및 훗날의 무장독립운동)과 관계성을 직간접적으로 구축하며, 이는 임호(무장)과 동일인일 가능성을 높인다.
00:37
25.09.11.
익명_471061 에게
네네, 이필주 목사는 신민회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셨고, 신민회 와해 이후에 본격적인 목회자로 활동하면서 민족운동도 적극적으로 하지요. 이필주 목사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임호를 하는 중에 본격적으로 한번 다룰 것입니다. 여기서도 흥미로운 영역이 많습니다. 키워드는 '왕십리'입니다.
16:36
25.09.11.






<프로젝트 임호> 3화 :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인 임호 (3)
- 임호의 장인 윤정석과 보인학회
아래는 간추린 내용입니다.
1. 임호(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의 장인은 보인학교 초대 교장 윤정석이었다.
2. 보인학교는 1908년, 군대 해산 후 남은 시위대 무관들과 내수동 지역 원로들이 힘을 합쳐 만든 학교였다.
3. 윤정석은 ‘서민들의 학교’를 내세우며 교육·체육·기술을 함께 가르치고자 했다.
4. 개교를 위한 대중강연을 안창호가 해주었고, 고종의 측근 한규설, 지석영, 장지연은 개교식에서 축사하고, 주시경은 1년 동안 매주 강의를 해주었다.
5. 특히 1908년 5월, 도산 안창호는 내수동에서 군중강연을 열어 800명을 모으며 학교 설립에 불을 지폈는데, 이 이야기를 훗날 회고해준 사람이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을 남겨준 송덕기 옹이다.
6. 그 힘으로 1908년 6월에 보인학교, 9월 필운학교가 세워졌고, 송덕기는 필운학교 1기 입학생이었다. 공교롭게도 기존에 알려진 임호에게서 4년간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을 배우기 시작한 연도도 1908년이다.(임호는 필운동 사람이다)
7. 보인학교 설립에는 기생·예인들도 적극 참여해, 지역 문화와 체육 네트워크까지 한데 묶였다. 임호의 제자이자 당대 최고 피리명인 고재덕의 음악적 재능, 그리고 송덕기의 다재다능한 예인으로서의 기량도 이런 배경을 고려할 수 있다.
8. 이후 임호는 분원학교 교사로도 활동하며 교육·무예·조직 활동을 동시에 이어갔다.
9. 흥미롭게도, 임호(무장)는 1923년 상해에서 안창호·이승만·이시영으로부터 밀명을 받은 기록이 있다. 임호(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은 윤정석의 데릴사위였다는 점에서 안창호와 직접적인 고리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윤정석을 매개로 독립협회-신민회 인사들과 연결되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관계성의 일치는 두 임호가 동일인일 가능성을 높인다.
10. 결국 임호(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은 윤정석을 매개로 보인학회·필운학교·분원학교 등 독립협회-신민회 인사들의 실력양성운동(및 훗날의 무장독립운동)과 관계성을 직간접적으로 구축하며, 이는 임호(무장)과 동일인일 가능성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