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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송덕기 옹의 가족분들이 이젠 택견으로 먹고 살 수 없다고

익명_79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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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aekkyeon.net/column/28156
송덕기 옹을 만류하셨다는데, 택견의 기술 속에 냉병기와 호환이 가능한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가정하니까 빠져 있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임.

 

왜 그러냐면 '이젠 택견으로 먹고 살 수 없다.' 는 건 반대로 말하면 과거에는 '택견을 잘 하면 먹고 살 수 있었다, 혹은 출세할 수 있었다.' 는 의미가 되는데, 이 경우 택견이 복싱 같은 순수 맨손 격투기술이었다고 하면 과거를 기준으로 봐도 저 택견으로 먹고 산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임.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현대를 기준으로 비유를 해 보면,

 

당장 UFC나 격투기 프로 리그가 활성화 되었고, 성공만 하면 억대 수입을 올리는 게 널리 알려진 지금에도 부모님들은 아들딸이 격투기 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그런 거 하지 마라. 커서 깡패가 되려고 하냐.' 라고 뜯어말리기 일수라는 건 다들 알지 않음?

 

하물며 양반은 못 되더라도 당시 조선에서 최소 중산층 수준의 생활환경과 지위를 가지고 있는 중인 계층 입장에서 택견으로 먹고 산다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어디 저잣거리 깡패들 마냥 상인들 보호세 뜯으면서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중인 계층이 하는 일들(역관, 의사, 별감 등등) 만큼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거나, 최소한 금전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벌 수 있어야 했을 거라는 건 당연한 얘기임. 

 

이런 걸 감안하고 보면 결국 중인 출신이 택견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나름 번듯한 직업군은 하나가 무관(병사)이고, 다른 하나는 무예별감 밖에 없는데, 여기서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게 되는 문제가 이것임.

 

'그래서 택견이 무관과 무예별감이 되는 데 무슨 도움이 됨?'(진짜모름)

 

사실 이건 나도 옛날부터 궁금했던 거였음.

 

검술 싸움에서 칼과 칼이 맞붙은 초 근접 상황이 되면 맨손격투를 잘 하는 사람일 수록 유리했겠지만, 일단 조선에서 무관이 되려면 1번이 활쏘기요, 2번이 기마술이요, 3번이 검술이니 택견과 같은 맨손 격투 기예는 아예 평가 대상조차 아닌 게 문제고.

 

그나마 왕실의 호위인 무예별감 같은 경우엔 훈련도감에서 무예 실력이 높은 병사를 특채해 가는 형식이었다 하니 상대적으로 무관보다는 맨손 격투가 끼어들 만한 여지가 있었겠으나, 그것도 결국 검술이나 궁술보다는 우선순위가 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그러니까 기존의 상식처럼 택견이 단순한 유희의 수단이었다거나, 기술적으로 무기술과 전혀 호환이 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도저히 아다리가 안 맞는다는 거임.

 

하지만 최근 조선 검술러와 윗대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협회가 검증 시도 중인 택견 기술과 무기술과의 연계성을 보면서 의문이 많이 해소되었는데, 품밟기도, 활갯짓도 전부 무기술과 호환이 될 수 있는 체계로 구성되었다면 '택견을 잘 한다 = 무기도 잘 다룬다' 는 전제가 성립되기 때문임.

 

그렇게 되면 한량, 별감, 무관들이 주로 택견을 하였다는 이유 또한 충분히 설명이 됨.

 

상식적으로다가, 무기술에 필요한 몸놀림이나 기법도 어느 정도 챙길 수 있으면서, 무기를 놓치거나 레슬링에 들어가야 할 때 필요한 맨손 싸움법도 함께 익힐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하면 안 하는 게 손해인 수준이지 않겠음?

 

실제로도 중국무술과 일본 고류 무술에서도 맨손격투에 무기술의 개념을 활용하는 경우들이 꽤 있는데(다들 알다시피 중국무술은 거의 전부가 이런 케이스임),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게 정확히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인 걸 생각해 보면 꽤나 의미심장하다 할 수 있겠음.

 

물론 위의 내용들은 아직 추론 단계일 뿐이고 공식적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꽤 많은 검증을 거쳐야 하겠지만,

 

대체 왜 있는 건지 추론만 분분하던 활갯짓의 구체적인 쓰임새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

그리고 한량, 무관, 별감들 사이에서 택견이 향유되고, 그것이 출세의 수단이 될 수 있던 직접적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추론이 가능해진 건 꽤나 고무적인 성과인 것 같음.

 

어쩌면 이 떡밥이 택견의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재구축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부디 많은 성과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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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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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군, 별순검 같은 신식군대와 신식경찰도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을 했다 하고 1905년까지는 기존의 씨름,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 무예도보통지 무기술들이 수행된 정황을 봐서는 공무원진출 막혀서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판이 위축되기 시작한 건 1905년 이후부터 보임. 유도와 검도가 각각 1903년, 1905년에 유입되고 그 즈음부터 일본군 헌병이 서울 치안을 장악함.

송덕기옹이 임호선생에게 사사 시작하면서 가족들에게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판 ㅈ망했다는 소리 들은 것도 딱 그 시점이고.
17:04
24.11.19.
best 익명_796378
저도 택견꾼들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
16:08
24.11.19.
1등 익명_059220

확실히 맨손무술 따로, 검술 따로 익히는 것보단 둘 다 한번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하는 게 효율적이긴 함.

말도 탈 줄 알아야 하고, 활도 잘 쏠 줄 알아야 하고, 심지어 총도 쏠 줄 알아야 하는 게 조선의 무관이었는데 언제 맨손무술까지 따로 배우고 있었겠냐고 아 ㅋㅋㅋ

13:55
24.11.19.
익명_796378
나도 동의하는 게, 스탭이 딱히 필요 없는 씨름이라면 모를까 기초 스탭(품밟기)부터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하는 택견을 안 그래도 바쁜 무인들이 순수 유희를 위해 익혔다고 하기엔 투자해야 할 시간 대비 리턴이 너무 작지 않았을까 하는 게 그간 내가 해 온 고민 중 하나였음.

하지만 조선검술러 말대로 품밟기도 검술에 응용이 가능하며, 활갯짓이 검술의 개념 하에 놓인 기법이라면 무인들이 택견을 익혀야 할 당위성이 생기기 때문에 군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훈련원, 왕십리 일대와 중인들이 모여 살던 서촌을 중심으로 택견이 성행하던 이유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 같음.
14:38
24.11.19.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데,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과 별감이 연결된 상태에서 별감직이 언제 사라졌는지만 따지면 됨.

예나 지금이나 돈 안 되는 일은 십년도 안 돼서 도태되는 법이지.
15:23
24.11.19.
말 자체는 맞는 말이지만 본문이 다루고 있는 건 별감과 무관들이 굳이 왜 택견을 했을까? 라는 점이라서 주제에 맞는 답변은 아닌 듯함 ㅋㅋ
15:35
24.11.19.
익명_796378
저도 택견꾼들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
16:08
24.11.19.
별기군, 별순검 같은 신식군대와 신식경찰도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을 했다 하고 1905년까지는 기존의 씨름,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 무예도보통지 무기술들이 수행된 정황을 봐서는 공무원진출 막혀서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판이 위축되기 시작한 건 1905년 이후부터 보임. 유도와 검도가 각각 1903년, 1905년에 유입되고 그 즈음부터 일본군 헌병이 서울 치안을 장악함.

송덕기옹이 임호선생에게 사사 시작하면서 가족들에게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판 ㅈ망했다는 소리 들은 것도 딱 그 시점이고.
17:04
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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