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기다리다 지쳐서 직접 써보는 택견 소설 - Prologe

익명_04220681
64 0 1

22세기에 들어가기 전, 지구의 문명은 상상했던 대부분을 이뤘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은 예기치 못한 변화를 불러온다. 생존과 경쟁에서 벗어난 후 현격한 인구감소가 발생한 것이다. 단일 개체의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없어졌기 때문인지 이 현상은 전 인류적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세계의 인구감소가 전 인류를 통합하려는 야욕을 가진 독재자들을 부추겼다. 그들의 눈에 비친 아주 작은 가능성은 불씨가 되어 세계 곳곳으로 전쟁의 열기를 번지게 했다. 타들어 가는 도화선이 지나는 길목에는 대한민국도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인류는 멸망을 향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긴장상태가 지속되자 인류는 다시금 생명력을 되찾았다. 전란 속에 베이비붐이 재현되어 인구가 급증하였고, 지켜야 할 존재가 늘어난 인류는 대대적인 전쟁을 종결했다.

 

전쟁이 끝나고 세계의 국경이 재구성되었다. 가장 먼저 수습된 것은 전쟁을 시작한 패권국들이었고, 정작 황폐화된 작은 나라들은 책임져 주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상황은 처참했다. 분열된 국가. 회복되지 못한 영토. 과잉된 인구. 믿을 거라고는 첨단을 달리던 기술밖에 없었다. 희박한 자원과 첨단 기술의 부조화는 인간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냈다.

 

 

청년이 살아가고 있는 곳은 그런 공간이었다.

 

 

길거리에 내놓아진 청년은 오늘도 식량 공장의 재고를 훔치려다 발각되어 테이저건에 지져진 채로 쓰레기장에 내버려졌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선 법적인 구금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옛날엔 테이저건도 함부로 못 쓰고, 죄지으면 감옥에서 콩밥이라도 줬다던데... 뭣같은 세상.’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이 사회의 시스템에서 몸뚱이만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살아가기 위해선 맷집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오래 굶은 청년은 그러지 못했다.

 

이제는 방법이 없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한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는 자진해서 투기장의 개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주 가끔 부랑자들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권력자들이 있다. 마치 잠자리나 개미를 제멋대로 가지고 놀며 즐거워하는 아이처럼. 아주 이 사회의 벌레들을 모아놓고 싸움 붙이는 자들. 그들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놀잇감이 되면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

 

놀아나는 건 정말 빌어먹게 싫지만 지금의 삶도 시궁창이긴 마찬가지니까. 가서 맞아죽나, 여기서 굶어죽나 마찬가지지.. . 시발!’

 

때마침 그의 귓가에 자경단의 쓰레기 수거 차량 소리가 들렸다.

 

“SCG 21XXㄹ312 투기장 자진 입장하겠다! 잡아가 시발!”

 

그의 말에 차가 멈추고 사람이 내린다. 전 국민이 도청을 당하는 세상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좌표 CG 307XX 598XX, 물자 구분 M, 1구 확보.

 

"수신양호, 이전 구간에서 확보한 1구와 함께 GH스타디움으로 수송 바람"

 

짧은 무전이 들리고 나서 가까워지는 걸음소리가 들렸다. 이내 사람 같지 않은 차가운 손이 그를 끌어올려 쓰레기 더미 위에 싣는다.

 

"행선지를 변경합니다. 좌표를 불러주세요"

 

"CG 242XX 593XX 운구로를 이용."

 

"가용한 다리를 통해서 5구역으로 안내합니다"

 

청년은 일정한 운율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을 옮겨가는 존재도 기계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사는 이 세상에 신물이 낫다.

 

지랄.. 밥이나 줘

 

 
신고공유스크랩

한달이 지난 게시글은 로그인한 사용자만 토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공유

퍼머링크

삭제

"기다리다 지쳐서 직접 써보는 택견 소..."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