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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ter1 - 잿불(5-1)

익명_8040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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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줍잖게 건 시비는 금방 결말이 났다. 거대한 체구 앞에서 발이 굳은 유진이 그대로 주먹을 얻어맞고 나자빠졌다. 고작 두어 번의 주먹질에 나타난 결과였다.

 

이런 별 볼 일 없는 놈이랑 붙어 먹느니 나를 가르쳐 주면 안되나?”

 

그쪽은 가진게 많다고 했어요

 

의기소침해진 유진이 대꾸했다

 

그 놈의 가진 거

 

태호는 못마땅한 듯 투덜거렸다. 유진은 잠시 말이 없다가 비수를 찌르는 것처럼 노인의 말을 꺼냈다.

 

지난번에 간수를 신경 썼다는 말, 교도소 출신이라서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하셨는데 맞아요?”

 

유진의 말에 태호는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치안이 마비된 이 사회에서 교도소에 들어갈 정도면 사람을 죽였나요? 아니면 특수폭행? 뭐가 됐든 한 번은 아니겠죠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태호는 더이상 유진을 무시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제가 아는 건 그러는 사이에 네 몸에 밴 습관이 너무 많다는 거 뿐이에요. 선생님은 그걸 하나하나 교정해주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으신 거구요

 

유진은 아직 침착했고, 일부러 태호를 도발해서 한 번 더 붙어볼 심산이었다.

 

시팔..”

 

유진이 슬그머니 일어나니 태호가 거슬리는 기색을 보이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날 밤 노인의 독방에 유진이 찾아왔다. 눈에 시퍼런 멍이 들어서 꽤나 우스운 모습이었다.

 

뭐가 잘못된 건지 알겠냐

 

발이 안 움직였어요. 걸었어야 했는데

 

땅을 밟는 게, 발을 떼는 게 중요한 이유가 그거다

 

연습 열심히 할 게요...”

 

유진이 어설프게 다짐했다. 유진이 투기장에 오르는 날짜가 잡힌 것은 그로부터 고작 3주 지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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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소년, 그러나 궂은일을 하고 자랐는지 꽤 다부진 몸을 하고 있었다. 얇은 몸에 갈라진 근육이 자리해 있었고 까무잡잡한 피부가 건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유진과 소년을 붙여놓은 건 호객을 위해 누군가가 의도한 것이 분명했다. 어린 남자의 피를 보고 싶어 하는 고약한 취미의 관객을 위해.

 

유진은 상대를 때리는 기술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투기장 위에서 그의 눈이 호기를 보였다. 오히려 그간 배운 것을 시험해보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 하겠어’

 

투기장의 반대편에선 소년 또한 두려운 기색은 없었다. 소년이 이러한 곳까지 오게 된 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진이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관리인들의 총구가 거두어지고 소년이 먼저 유진에게 뛰어들었다. 얼마나 진심으로 뛰어들었는지 유진이 피하자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그러나 그 모습은 결코 우스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위협적이었다.

 

소년은 여러 번 넘어지면서도 무섭게 다시 일어났다. 지치지 않는 체력은 그곳에 있는 누구보다 뛰어났다. 소년의 진지한 태도는 관객을 열광시켰다.

 

“그래! 그거야 여기서 죽어버려!”

 

장내에 있는 모두는 소년의 눈에서 광기를 보았다. 붙잡히는 순간 손톱과 이빨을 쓰는 것도 서슴치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치열하게 달려드는가. 어째서 그렇게 짐승처럼 싸우는가. 그런 당연한 질문은 이 공간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투기장의 부랑자들도 그저 광기에 취해 소년을 응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돌진을 피하는 것을 일관하고 있는 유진만이 이러한 풍경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아이는 누굴 죽이고 싶어 하는 거지?’

 

유진은 소년의 바로 앞을 수차례 스치며, 소년의 눈에 서린 다른 사람을 보았다.

 

유진은 노인에게 배운 것을 하나씩 떠올렸다. 겨우 걷는 법을 배운게 고작이었지만, 싸우는 법을 처음배우는 지금의 유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가르침이었다.

 

‘반보면 된다. 한 걸음의 반 그 거리면 떨어져 있는 상대의 어지간한 공격은 피할 수 있다.’

 

걷는 법에 대한 노인의 설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반보’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안정적인 자세를 찾고 난 후에 처음 가르쳐줬던 것.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고 또 들어가기 위한 기본이었다.

 

유진이 소년의 공격을 꾸준히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가르침 덕분이었다. 작은 동작으로 큰 동작을 피해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애매했다. 아직 다음단계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했으면 들어가야지’

 

유진의 기억 속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지, 아는데... 어떻게?”

 

유진은 혼잣말로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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