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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검술과 검으로 유명했을까?

익명_95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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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mkorea.com/5706582011

 

말할 때에는 반드시 하늘을 두려워하고, 걸어갈 때에는 모두 길을 양보하였으니, 이는 대개 인현(仁賢)의 교화를 받아서 군자의 나라라는 이름에 실제로 부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에 새참을 내갈 때에도 변두(籩豆)를 갖추었으며, 장팔사모(丈八鍦矛)를 지게문에 기대어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신라의) 풍속이 비록 허리에 칼을 차는 것을 숭상하긴 하면서도 지과(止戈)의 뜻이 담긴 무(武)의 정신을 참으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양위표 讓位表
 
최치원이 진성여왕의 양위에 대해 당나라에 보낸 양위표 일부인데 자국의 풍속으로 집집마다 병장기를 세워놓고 도검 패용을 숭상하는 풍속이 있다고 말함.
 
나에게는 신이(神異)한 이가 준 신검(神劍)이 있는데, 어둠 속에서도 영묘한 소리를 내지. 칼을 아는 사람은 동해에서 온 것인 줄 아는데, 오는 날 밤새 비바람이 쳤지. …… 칼날에선 바람 소리 일고 먼지도 부서지며, 얼룩은 거의가 교룡의 피라네 …… (我有神劍異人與, 暗中往往精靈語. 識者知從東海來, 來時一夜因風雨. …… 刃邊颯颯塵沙缺, 瘢痕半是蛟龍血. ……) -<여제발신라검가(與弟渤新羅劍歌)>
 
당나라 시인인 이섭이 동생에게 신라에서 온 검을 선물로 주며 쓴 시임. 제목 자체가 「동생 '발'에게 신라검을 주며 부르는 노래」.
신검(神劒)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칼이 도착한 날 폭풍우가 치고 검풍이 일며 용의 피로 칼날에 얼룩이 진다 할 정도로 온갖 무협지스러운 과장으로 극찬을 하고 있음. 덤으로 칼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한반도산 물건이란 걸 알 거라는 문장을 보면 당나라 내에서 신라검이 겉모양만 봐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브랜드화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음.
 
책 내용을 알 수 없는 게 아쉽다.
 
여지승람에 이르기를 황창랑은 신라인이다. 전하는 말에는 7살에 백제에 들어가서 시중에서 칼춤을 추었는데 이를 구경하는 사람이 담을 이룬 것 같았다. 백제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불러서 마루에 올라와서 칼춤을 추도록 명하였다. 창랑이 이 기회를 타서 왕을 찔렀다. 이로 인하여 백제국인들이 그를 죽이니 라인(羅人, 신라인)들이 슬퍼하여 그의 얼굴 모습을 본떠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전한다고 한다.... (중략) 또 신라는 왜국과 이웃하여 그 검무가 분명히 전했을텐데 밝혀낼 수가 없다. 이제 황창랑을 우리나라 검술의 시초로 삼고자 한다. -무예도보통지 3권 본국검
 
18세기 조선에서 쓰여진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법 서문을 보면 뜬금없이 황창랑의 고사를 들며 검술의 시조로 삼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본국검법 자체는 신라와 아무 관련이 없지만 일종의 정신적 계승을 한다는 의미임. 이를 보면 최소 18세기까지는 조선 내에서 '신라 = 검술'이라는 역사적 이미지가 전해져 왔다는 것.
 
중세 이후 일본이 유독 검술일 발달한 것은 일본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기인했는데 신라의 사회상을 후대의 조선보다 오히려 일본과 더 유사해 보임. 기본적으로 전쟁이 잦았고, 유교는 아직 보급이 덜 되어 불교가 대세이고, 중앙집권이 약하고 호족들의 세가 강하고, 화랑들이 카미카제처럼 자살돌격을 하다 죽고, 왜구처럼 신라구들이 열도를 약탈하고, 계급이 철저히 고착되어 있어 전공을 세우지 않고서는 과거제와 같은 시험으로 출세가 불가능했고 인신공양 같은 잔혹한 풍습이 늦게까지 남아 있었음.
 
기독교를 믿는 유럽 기사, 발할라로 간다는 바이킹, 전국시대 일본 등 내세관이 확실하고 전쟁으로 뭔가를 얻을 수 있는 난세 사회에서는 무기술이 발달하게 마련인데 신라도 비슷한 환경이지 않았을까.
(참고로 유교는 특유의 문치교화와 현세지향적 세계관, 정교한 중앙집권제 때문에 유교가 발달할수록 문약해지기 쉬움. 일본도 에도 막부 이후로 성리학물이 들자 귀신같이 사무라이들이 관료화되면서 칼질을 전혀 못하는 나사빠진 사무라이들이 등장함)
 
신라뿐 아니라 고구려에 대해서 보면 한원 고려조에 “고구려 남자들은 허리에 은띠를 차는데, 왼쪽에는 숫돌을, 오른쪽에는 칼 다섯 자루를 달고 다닌다."는 말이 나온다. 또 고구려인들의 약탈이나 포악한 성질에 대한 중국측의 온갖 욕설은 차고 넘친다. 삼국의 풍습이 비슷비슷하다는 기록을 보면 고구려, 백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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