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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박치기와 날파람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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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전 글에 날파람 이야기가 있어서 저도 올려봐요.출처는 홈피는 아니고, 우리 몸짓 이야기에서 운동하는 지인이 한글 파일로 가지고 있는 걸 복사해서 올려요.

보고서에 인터뷰 내용이 꽤 있는데 너무 재미져서, 인터뷰에 나오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되어있어서 공유해도 되나봐요.. 아니면.. 지워지나,,? ㅜㅜ

 

 

 

● 인터뷰 2차 

인터뷰에 도움을 주신 두 분을 간력하게 소개한다. 

(선생4 / 현 74세) 이 선생님이라 불리는 선생4는 평안도가 고향이신 부친에게 어릴 적 날파람을 배웠고, 10대 후반부터는 복싱을 하시면서 기술 연구를 꾸준히 하셨다. 

이 선생님의 부친은 '뛰어 받기'와 '주먹 박기'로 유명하셨는데, 특히 '뛰어 받기'는 머리보다 어깨를 많이 쓰셨다고 한다. 

 

(선생5 / 현 75세) 선생5는 은퇴하신 원로 목사님이시다.  조부(1888년~1968년)가 날파람으로 유명하셨는데, 평양 대부흥으로 복음을 접하기 전까지 날파람 고수들을 만나기 위해 편싸움판을 자주 찾아다니셨다. 

1960년도 무렵 날파람을 다시 수련하려 한 실향민(평안도 출신)들이 꼭 만나고 싶어 했던 분이었다. 

날파람에 관련해서 가장 많이 알고 계신 분이기도 했다. 

 

 

◇기자: 두 분도 오랜만에 만나시는 거죠? 

 

◇선생4: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둘째 결혼식 때 봤으니까, 한 5년 되었네요. 

 

◇선생5: 그렇죠. 그것보다 이형이 외국을 자주 나가니까, 바빠서 보기가 어려워요. 여기 X대표님 때문에 보는 거지. 

이형하고 X대표님은 옛날에 한번 만났다면서, 

 

◇기자: 네, 2007년에 저하고 저 아는 선배랑 한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배가 저한테, 이런 게 있으니 부산을 가보자 해서, 그때 제가 다른 사업도 하고 있고 그러니까, 관심이 있어도 부산까지 왔다 갔다 할 염두가 안 나더라구요. 

 

◇선생4: 그때라고 뭐가 다르나, 가르쳐 주고 할 그게 없었는데, 이번에도 X장로한테서 날파람 어쩌고저쩌고 이야기가 딱 나오는 순간, 아 저기 어디 무술단체구나. 그런데 어떻게 알고 찾았지? 했는데, X대표 얼굴 보니까 기억이 나더라고,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없었는데, 선교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선생5: 하나님의 뜻인가, 우리가 날파람이나 박치기 이야기를 이렇게 하게 된 게 35년? 36년 만이네요. 그죠? 

 

◇선생4: 네, 그정도 될겁니다. 

 

◇기자: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선교 관련 흔적을 찾아본다는 게 이렇게 이야기들이 연결될지 전혀 상상을 못했거든요. 

 

◇선생5: 우리도 마찬가지지. 이야기가 그렇게 갈 줄 알았나, 날파람이니 난다리니 하는 게 한국 선교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신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조금 쓰일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장로님 두 분하고, X장로님 아들, XXX장로님, 나, 여기 이형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번에 X대표님이 수집하신 기술로 만약에, 이건 만약이니까 혹시라도 문화재 같은 걸 신청한다면 우리는 반대에요. 

문화재라고 부를 수 있고, 자손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그 형태, 그 원래 모습을 가진 분들은 이제 없다고 봐요. 

저기 택견이나 씨름 같은 거 보면, 문화재로 되어있잖아요. 

지금까지 기술이 오염되지 않고 전해져서 그렇겠죠? 그런데 날파람은 이미 100년 전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많이 섞였어요. 

그 만나보셨겠지만, 저기 두 장로님, 90이 넘으셔서 어찌 보면 가장 오래전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 분들인데, 사실 그분들이 기억하는 날파람 기술이 3, 4가지 밖에 안돼요. 

그분들도 옛날에 권투, 유도 같은 걸 하시면서 많이 잊으셨다고,  

 

◇선생4: 난다리 세대라고 봐야지. 

 

◇선생5: 그렇죠. 날파람이 아니라, 해방 이후에 부산에 피난 와서 난다리를 하신 거지. 

그러니까 차라리 X대표님이 이걸로 보급을 하시거나 사람들에게 알리 실 거면, 평안도 박치기나 난다리로 알리는 게 맞는 것 같해요. 

우리는 거기에 얹어 갈 생각은 전혀 없어요. 

 

◇선생4: 지금 정리한 기술이 날파람 6개, 난다리 4개 

 

◇기자: 네, 난다리는 크게 4개, 세부적으로 나누면 10개가 됩니다. 

 

◇선생4: 훈련법은, 

 

◇기자: 훈련법은 6가지 입니다. 

 

◇선생5: 훈련법이 중요해요. 그게 장수에도 좋을거라고, 어른들 봐요. 정정하시잖아. 

 

◇기자: 네, 맞습니다. 젊은 사람들뿐만아니라, 실버 운동으로도 훌륭할 것 같습니다. 

강도만 조금 낮춰서 하면 될 것 같거든요. 

 

◇선생4: 목사님, 저 훈련법이 목사님 조부때는 저 모양이 아니죠? 

 

◇선생5: 아니죠.  

 

◇기자: 제가 그게 궁금했습니다. 훈련법이 다양한게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선생5: 점찍기는 이름부터 달랐어요. 옛날에는 튀어 오르기, 솟구치기 이렇게 불렀다고, 처음에는 지금 본 모습처럼 하다가 다리에 힘이 붙으면 지게를 지고, 거기다 모래 주머니를 올리고 점찍기를 했다고 들었어요. 

 

◇기자: 지게를 지고요?  

 

◇선생4: 다리 힘이 엄청난거지. 

 

◇선생5: 그래서 저기, 날파람 기술들 보면 다 앞으로 튀어 나가는 기술들이 많죠. 

그렇게 몇 미터를 튀어 나가는 기술들은 대부분 편싸움할 때, 패싸움이지. 거기에 특화된 기술들이라고 보면 돼요. 

그런 편싸움이 없어지면서 1대1 같은, 저기 상대를 빨리 제압해야 하는 호신술 형태로 바뀐게 해방 후 난다리 같은 거지. 

 

◇선생4: 나도 옛날에 아버지나, 그 장로님한테 배울 때는 복싱 기술이 있었거든, 잽하고 원투 같은 게 있었다고, 그러니 뭐 이미 날파람이라고 보기 어렵지. 

 

◇기자: 네, 저도 의아하긴 했습니다. 

 

◇선생5: 또 재밌는 훈련 중에 월담이 있는데, 이건 할아버님 말씀 들어보면 당시에 많이 했나봐. 

 

◇선생4: 재밌으니까, 나도 저거 하다가 많이 혼났다. 

 

◇기자: 월담이면 담 넘는거요? 벽넘고? 

 

◇선생5: 그래요. 이걸 어떻게 하냐면, 점찍기나 주머니 치기를 빠르게 하는 애들을 모아서 편싸움에 끼워 넣기 전에 시키는 훈련인데, 훈련이면서 테스트지. 

왜 옛날 집들은 시내 말고, 변두리로 나가면 담이 낮고 기와로 된 집들이 많았어요. 

그 당시에는, 또 그런 집들이 담 하나 사이로 붙어 있다 보니까, 여러 집들이 붙어 있는 거지. 그런 집들 중에서 5채 정도 담이 붙어 있는 집을 뛰어넘는 거라. 

 

◇기자: 담이 붙어 있는 집들을 넘는 다는거죠? 

 

◇선생4: 담 끝에서 시작해서 5채 집 담을 넘든, 저기 지붕 기와를 타든 상관없이 빨리 넘어서 마지막 담벼락을 딱 넘으면 끝나는기라. 

 

◇선생5: 그런데, 이게 재밌는 게, 당일까지 어느 집 담을 넘을 건지는 미리 얘기를 안 하지. 그래서 담을 넘다 보면, 담 밑에 장독이 있어서 그거 밟고 넘어지고, 어디 마당에는 어른들이 타작을 하는데, 애가 담을 넘어오니 몽둥이 들고 쫓아오고, 또 몸이 날랜 애들은 지붕을 타고 옆집으로 넘어가는데, 기와가 빠지면서 떨어져가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난리가 났을 거 아니에요. 

그 와중에도 감각이 좋은 애들은 그런 장독을 밟고 담을 넘고, 지붕으로도 올라갔다가, 아주 재치 있게 집 5채를 넘는 거지. 

 

◇기자: 와, 무슨 장애물 경기 최고 난이도 같은 느낌이네요. 요즘 파쿠르같이, 

 

◇선생5: 여기서 뽑힌 애들을 데리고 편싸움을 하는 거에요. 이 패싸움이라는 게, 하다 보면 혼자서 여럿을 상대해야 되고, 또 상황이 좋지 않으면 도망도 가야 하니까, 그런 능력이 필요한 거지. 

아까 얘기한 점찍기도 잘하는 사람들은 지게를 지고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 훈련을 많이 한 날파람꾼들이 나중에 저기, 봇짐이나 짐을 메고 기차나 전차 같은데 뛰어서 올라타고 그랬다고, 

 

◇기자: 지금 이런 내용들이 다 목사님 조부께서 경험 하신 것들이죠? 

 

◇선생5: 그렇죠. 나나 여기 이형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못봤지. 어릴 때 골목에서 흉내만 냈지. 

 

◇기자: 두 분이 처음 만난 건 언제시죠? 

 

◇선생4: 우리는 집안 어른들 때문에 자연스레 만났지. 보자. 나는 기억하는게 1960년도? 그쯤인데, 

 

◇선생5: 그렇죠. 그쯤이지. 

당시에 고향분들이 여기 부산에 정착하면서 핍박이 많았거든요. 지금 국제시장이나 자갈치 같은 곳에는 당시에 부산 깡패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뭐 자주 마찰이 생기지. 

그러니까 옛날에 날파람이나 주먹 좀 썼다고 하는 어른들이 모이다 보니까, 우리 세대도 자연히 연결이 된 거죠. 

 

◇선생4: 그때 어른들이 여기 목사님 조부를 뵙고 싶어했거든, 많이 아시니까, 

 

◇선생5: 그런데 뭐, 할아버님도 신앙인이고, 아버지고 그랬으니, 무슨 싸움을 다시 배우니 마니 하는데, 거기에 동조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옛날에 이랬다저랬다 이야기만 전해주셨죠. 

 

◇기자: XXX장로님이 그러셨거든요. 부친인 X장로님께서 목사님 조부께 자주 인사드리러 갔었다고, 

 

◇선생5: XXX장로님은 진짜 유명했죠. 여기 경상도나 아래쪽에서는 오래 전에 시라소니라는 인물을 어떻게 알고 있었냐면, 키도 작고 왜소했다. 뭐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건 내 생각인데, 아마 XXX장로님으로 착각한 게 아닌가, 싶어요. 

 

◇선생4: 하도 사람들이 시라소니 아니냐고 하니까, 장로님이 왜 그랬다입니까. 저기 진짜는 서울 산다고,  

 

◇선생5: 아, 그랬죠. 진짜는 저기 서울가면 있다고, 

 

◇기자: 아, 들었습니다. 당시 싸움 좀 하시는 평안도 분들의 멘트 같은 거였다고, 진짜는 서울에 있어요. 재밌네요.  

 

◇선생5: 그런데 여기 이형 부친하고, X장로님은 무슨 주먹 생활을 하신 분들이 아니라, 그냥 장사하는 분들이었어요. 은둔 고수? 뭐 그런 느낌이 있는, 

 

◇기자: 그래서 그 흔적을 더 찾기 어려운게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4: 여기 X대표님도 서울에서 자주 못 내려와요. 목사님이 많이 들려주셔야돼요. 

 

◇기자: 아하, 뭐가 또 있을까요? 담 넘는 건 실제 경기로 재연해 봐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선생5: 민속촌 같은 데서 하면 되죠. 담 넘어 마당 안에 상황들을 조금씩 바꿔주면서, 그렇죠? 

 

◇선생4: 장독 위치도 바꾸고, 장애물도 더 두고 하면 재밌겠네. 

 

◇기자: 재밌을 것 같습니다. 

 

◇선생5: 진짜 편싸움은 사람들이 다치니까, 주머니 치기도 재밌죠. 

허리에 복주머니나 노리개를 차고 있다가, 순식간에 뺏으면 되니까, 

 

◇기자: 저희도 지금 해보고 있는데, 동체 시력이나 손의 스피드 올리는데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선생5: 이제 월담에서 뽑힌 애들을 모아서 모서리 다지기를 시키죠. 육모(머리)가 단단해야 하니까, 주먹 단련도 시키고, 또 혼자 여럿을 상대해야 하니까 '가지 치기'도 해야 되고. 

이런 것들이 날파람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봐요. 

이제 담력을 길러야죠. 실력이 좋으면 뭐해요. 뺨 한대 맞고 기죽어서 아무 것도 못하면 소용이 없지. 

나이 많은 형들이 몽둥이 하나씩 쥐여주고, 산에 묘지로 보내서 하루 자고 내려오게 하는 건데, 

 

◇기자: 아, 그런 것도 시킵니까? 지금 유령의 집 같네요. 

 

◇선생5: 그렇죠. 그런데 아이들을 함께 두는 게 아니라 너는 여기 있어라. 너는 저기 있어라 이렇게 다 떼어놓지. 그래야 훈련이 되니까. 

그러면 이제 밤에 형들이 몰래 올라가서 더 겁을 주지. 귀신 소리도 내고, 별 장난을 다 치면서, 저 뭐야, 공포 분위기를 더 조장하지. 

이렇게 담을 키워서 나는 귀신도 무섭지 않다. 이렇게 자신감을 넣어주는 거죠. 

 

◇기자: 재밌네요. 

 

◇선생4: 간이 작으면 패싸움을 못하지. 여기저기 곡소리 나고 픽픽 쓰러지면, 무서워서 내뺀다고, 

 

◇선생5: 그니까 옛날 어른들이 크게 두 종류였던 것 같해요. 당시 평안도 부모들, 자식이 어디서 맞고 다니면, 저기 가서 날파람이라도 배워라. 하던가, 아니면 반대로 날파람 하는 애들 만나거나 노는 판에는 가지 마라. 나쁜 거 배워서 신세 망친다. 이런 부모들, 뭐 그런 분위기였지.  

 

◇선생4: 그래서 그런가, 월담이나 짚고 넘는 거, 이런 걸 많이 시켜서 그런지, 옛날에 편싸움하다가 일본 순사가 나타나면 도망치는 게 너무 빨라가지고, 일본 순사들이 잡지를 못했다고 

 

◇선생5: 뭐, 일리 있죠. 발이 하도 빠르니까, 

 

◇기자: 짚고 넘는거요? 월담 기술입니까? 

 

◇선생5: 그게 뭐나면, X대표님은 어릴 때 그거 해봤죠? 저기 말뚝박기, 벽에 한 사람 등지고, 고 밑에 애들 허리 숙이고 줄줄이 붙어있으면 뛰어서 등에 올라타고, 

 

◇기자: 아, 네 많이 했습니다. 진짜 많이 했죠. 

 

◇선생5: 그거에요. 그런데 다른게 뭐냐면, 벽에 등지고 서는 건 없고, 그냥 한 명만 애들이 뛰어넘는 건데, 처음에는 웅크리고 있는 걸 넘고, 그건 뭐 손 집을 것도 없지. 

그다음에 조금 더 높이고, 또 더 높이고 하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서서, 고개만 살짝 숙이면 애들이 뛰어가서 그 서있는 친구 어깨를 딱 짚으면서 뛰어넘는 거지. 

 

◇기자: 완전히 서 있는 사람을요? 

 

◇선생5: 그래요, 양손으로 어깨를 딱 짚고 다리를 좌우로 쫙 펴면서 훌쩍 넘지. 

 

◇선생4: 어릴 때 참 많이 했어요. 우리도, 이게 조금씩 올리면서 해보면 나중에 다 할 수 있어. 그런데 완전히 섰을 때는 조심해야 되는 게 머리에 걸려서 얼굴부터 바닥에 떨어질 수 있거든, 그러니까 차근차근해야지. 완전히 서서 할 때는 저, 서있는 사람이 고개를 살 짝 숙여주고,  

 

◇기자: 점프 같은 훈련이 참 많네요. 빨리 걷는 속보도 그렇고, 하체 훈련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선생5: 아마도 편싸움이나 또 저기 석전, 그런 거를 일제 때 단속을 하다 보니까, 도망 다니려고 연습을 한 건지, 원래 있던 훈련법인지는 모르겠는데, 할아버님께서는 당신 생각에 원래 군대 같은 데서 하던 훈련을, 

 

◇기자: 조선 시대요? 

 

◇선생5: 그렇죠. 뭐 그 전일 수도 있고, 그런 걸 민가에서 놀이로 따라한 게 아닌가, 뭐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그냥 추측이지. 

 

◇기자: 편싸움이 빨리 사라졌죠? 

 

◇선생4: 피해가 크니까, 사람도 죽고 하니 일본이 금지 시킨 거지. 아니 뭐, 일본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나라 정부라도 그걸 그냥 두겠어요?  

 

◇기자: 전통 무예로 다시 복원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그 말씀이시죠? 

 

◇선생5: 무예는 좋은 표현인데요. 뭐 무예일 수도 있겠지. 날파람이라는 그 안에 여러 가지 모습들이 있으니, 무예의 모습도 있겠죠. 

 

◇기자: 항상 보면 전통 무술은 실전성에 대해서 얘기가 나오거든요. 이게 되냐 안되냐부터, 뭐 말이 많다 보니까 현대식 격투 시스템을 도입해서 경기도 하고, 훈련도 하고 그러잖아요. 

 

◇선생4: 옛날에 돌아가신 X관장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날파람 연구할 때, X관장이 약간 그런 마음이 있었거든, 태권도에 박치기나 날파람, 뭐 난다리, 이런데 있는 기술들을 합쳐서 실전 격투기를 만들어 보려고 했었는데, 나는 반대했지. 

나도 권투를 오래 하면서 느낀 건, 링 위하고 길바닥은 다르다 거든, 달라요 이게, 

이번에 X대표님이 본 날파람이나 난다리 기술들은 딱 길바닥에서 쓰는 거라. 호신술이지. 말하자면, 그런데 이걸 링 위에서 경기처럼 한다. 이건 얘기가 틀리지. 

규칙을 어떻게 적용할 건데? 뭐 급소 차지 마라. 눈 찌르지 마라. 박치기로 코는 받지 마라. 목 울대 올리지 마라. 이런 규칙을 적용하면 그건 날파람도 아니고, 난다리도 아니잖아. 

 

◇기자: 우리식으로 연구해서 바꾸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선생4: 어떻게요? 링 위에서 규칙을 걸고 하는 경기는 한계가 있어요. 씨름은 경기로만 하니까, 씨름을 만약에 지금 저기 이종격투기처럼 한다면 우찌 되겠노, 샅바 잡으러 가다가 원투 맞거나, 무릎에 치이는 거지. 

그냥 지금 모양 그대로, 호신술 모양으로 알려지면 좋겠어요. 

 

◇선생5: 꼭 경기 처럼 한다면, 1대1로 하는 기술 말고, 월담을 저 장애물 경기처럼 한다던지, 박치기 시범을 보이던지 뭐 그런 것도 있으니까, 

 

◇기자: 박치기 시범이요? 

 

◇선생5: 옛날에는 동네잔치 같은 거 하면, 어른들이 편싸움은 못하게 하고, 지금처럼 시범이라고 봐야죠. 이런 걸 시키기도 했거든, 청년들한테 시켜가지고,  

뭐 예를 들면, 뛰어 받기나 가지치기, 뛰어 받기는 한 번에 얼마나 멀리 가서 목표를 받는지, 또 가지치기는 몇 명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치는지, 이런 거를 했어요. 

 

◇선생4: 주머니 치기도 했죠. 

 

◇선생5: 그래요. 주머니 치기도 복주머니 같은 거 차고 하고 

 

◇기자: 그런 경기들도 잘 만들면 재밌을 것 같네요. 조금 새로운 방향이네요. 

 

◇선생5: 옛날에는 씨름이나 택견 하는 사람들이 날파람을 따로 배우려고 평안도를 많이 찾았다고 해요. 박치기나 혼자서 여럿을 상대하는 기술은 날파람이 유명하다고 하니까, 여기저기 지방에서 찾아오는 거지. 그렇게 배운 박치기를 자기가 하는 무술에다 잘 녹여 넣는 거죠. 

심지어 YMCA같은 데서 권투나 레슬링 배우던 사람들도 박치기를 배우려고 했을 정도니까, 실전에 그만큼 활용도가 높았다는 거죠. 

 

◇기자: 전에 X장로님께서 그러셨거든요. 고향에서 택견을 못봤다. 그리고 날파람과 같다고 볼 수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셔서 

 

◇선생5: 그 어른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택견은 어떤지 내가 잘 몰라서 함부로 말을 못 하겠지만, 이번에 X대표께서 여러 사람 만나면서 느꼈을 겁니다. 

날파람이나 난다리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하나같이 다 인정하시는 게, 1900년도 초부터 벌써 서양에서 온 권투나 레슬링, 또 저기 일본 유도 같은 기술들이 섞였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런데 택견이나 저기 씨름 같은거는 문화재로 되었다는 것이, 그런 해외에서 온 문물이 섞이지 않았으니 문화재가 된 거 아니겠어요? 

 

◇선생4: 그건 모르죠. 뭐 있는 그대로 하고 있는지, 섞였는지는 알 수 없어요. 

나는 그래요. 당시에 X관장이 박치기 같은 기술을 태권도에 섞는 게 왜 싫었냐면, 태권도가 결국 일본 가라데 영향을 받은 무술인데, 거기다 우리 것을 섞는다는 게 싫었어. 사실, 

 

◇선생5: X관장님도 참 귀한 분이었는데, 너무 일찍 가셨어요. 

 

◇기자: 그럼, 날파람을 경기화하는 건 반대 시네요. 글러브 끼고 보호장구하고 하는 그런 식은 안된다.라는 말씀이시죠? 

 

◇선생4: 그렇죠. 그냥 그대로 둬야지. 몰라, 또 누군가는 그런 것도 넣어서 경기를 만들지,  

 

◇기자: 지금 격투기 단체 중에 박치기를 하는 곳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날파람이나 난다리 처럼, 정말 다양하지는 않거든요. 저도 여러 가지 무술들을 참 많이 봐왔는데, 박치기를 이렇게 쓴다. 싸움을 이런 식으로 한다.라는 생각은 못 해봤거든요. 

 

◇선생4: 권투도 링 위에서 한방에 끝나는 경우도 많지만, 결국 보호장구가 많으면 이게 길어질 수 밖에 없거든, 그런데 날파람이나 난다리는 그냥 한 번에 끝나는 거에요. 여러번 칠 일이 없어. 한 명이랑 싸울지 몇 명이랑 싸울지 모르는 상황에서 빨리 끝내야지. 

 

◇선생5: 나도 조부한테 많이 들었는데, 옛날에 YMCA 같은 데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신식 체육 있잖아요. 그중에서 권투나 레슬링이 신기했나 봐. 

그래서 당시에 날파람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주 구경을 갔다더라고, 거기다 역기 같은 거 들고, 팔굽혀펴기도 하고, 이런 걸 보면서 큰 자극을 받은 거죠. 

동네에서 싸움 좀 하던 사람들인데, 서양인이 가지고 온 외국 싸움 기술이 얼마나 궁금했겠어요. 그렇게 가서 보니까 주먹을 잘 써. 빨라. 

그래서 날파람 좀 한다는 사람들이 도전을 많이 했는데, 주먹으로는 안되지. 그런데 박치기나 발차기는 쓰면 안 되고, 또 당시에 레슬링을 서양 유술이라고 가르쳤다데, 

어찌저찌 그런 걸 배운 사람들이 뭐 하겠어요? 자기 동네 가서 애들 모아놓고 또 가르치지. 

주먹은 이렇게 써라. 이렇게 피해라. 이렇게 막아라. 또 상대를 넘길 때는 이렇게 해라. 

뭐 이러면서 기술이 섞이고, 더 섬세해졌다고 봐야죠. 

또 반대로 권투나 레슬링 가르치던 사람들이 유명한 날파람꾼을 찾아가서 도전을 많이 했다고 해요. 실력이 궁금하니까, 그런데 박치기 같은 거는 상상도 못한 거지. 

순간 튀어 와서 들이 받는데, 이 위력이 엄청난 거라, 그래서 박치기를 배우려고 찾아다닌 경우도 많았고, 그러면서 그들도 기술이 섞였겠지. 

 

◇선생4: 왜, 그 이야기도 있잖아요. 예전에, 석전꾼들 

 

◇선생5: 석전꾼들이 당시에 선교사들이 야구하는거 보고, 너무 재밌으니까, 그거 배우고 싶어서 많이 찾아갔다더라고, 

 

◇기자: 석전꾼이 야구를요? 재밌네요. 다 투수를 해야 할텐데요. 

 

◇선생5: 또 옛날에 평양 대부흥 때, 당시에 유명한 날파람꾼들이나 석전꾼들이 손 씻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게 복음을 접하면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잖아요.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거지. 그런데 이 죄를 자복하는 내용 중에 사람을 때려죽인 고백이 많았거든, 

그게 대부분 날파람꾼이나 석전꾼 들이죠. 

그렇게 손을 씻고 예수를 믿는데, 반대로 이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가끔 있었어요. 

당시 평양 대부흥으로 전국 각지에서 복음을 들으러 왔거든, 저기 목포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구요. 그렇게 사람이 모이니, 저기 사람 모이는 곳에는 꼭 그런 사람들도 꼬이죠. 깡패들,  

소문듣고 교회 근처에서 장사를 하려고 교인으로 위장해서 숨어있는 거지. 

주로 뭐가 많았냐면, 멀리서 예배 듣는다고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싸게 집을 구할 수 있다. 뭐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한테 사기를 치는 거지. 

그럼 이제 허락을 받은 교회 청년들이 가서 혼을 내지. 

 

◇기자: 재밌습니다. 그냥 지나가기 아까운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선생4: 어디가서 듣겠노,  

 

◇기자: 그러니까요. 

 

◇선생5: 아까 전통 무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전에 동영상으로 한번 봤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인 데서 택견 시합을 하더라구요.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좋더라고, 

지금 저기 태권도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재밌고, 그렇게 다 모여서 판을 크게 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옆에서 택견하고, 저기 옆에서 씨름하고, 또 저 옆에서 날파람으로 월담이나 뛰어 받기 보여주고, 널뛰기도 하고 말이지. 

지금 와서 우리 전통 무술이 엄청 쎄다. 실전에 다 먹힌다. 이런 걸 강조할 필요는 없거든요. 

우리 조상들이 이런 걸 했었다.라는 게 중요한 거지. 이렇게 강했다.라는 건 그건 다른 이야기지. 

세월이 흐르면서 무술도 계속 발전을 안 하겠냐고, 하지. 자꾸 변할 거란 말이죠. 

그렇게 발전하고 변해야 하는 건 하고, 원래 모습 그대로 둬야 할 것은 둬야지. 

 

◇선생4: 그래 간혹 보면 말이야, 태권도랑 유도랑 붙는다든지, 저기 어디 영상 보니까 택견 하는 사람하고 권투랑 붙고, 요즘 그거 주짓수, 그런 거랑도 붙고 하더라고, 

만약에 그렇게 다른 무술끼리 붙어서 실전성을 증명할 거면, 글러브 끼고 하면 안 되지.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비기를 쓸려면 하나는 박살이 나야지.  

그래야 증명이 되는 거 아니냐 말이야. 

내 말은, 그렇게 이런저런 무술들하고 경기를 하면서 실전성을 평가하는 건 아니다. 이거지. 

그냥 기술을 주고받으면서 스타일을 보는 거지. 실전성을 논할 거면 글러브도 끼지 말고 규칙도 없이 해야지. 

태권도가 유도한테 졌다고 태권도 실전성을 가지고 따지면 안 되는 거고, 유도가 아무리 뛰어나도 태권도 4단한테 불알 한 번 맞아보라고, 그건 죽지. 

택견이 저기 뭐야, 주짓수한테 졌다고 그걸 따지면 안되는거라고, 택견 고수가 눈이라도 찔러버리면 그건 끝나는거라,  

지금 나온 전통무술이라는 단체가 어디까지 진짜 전해져온거고, 어디까지가 뭐 만들어진건지, 

 

◇선생5: 창작이나 복원 

 

◇선생4: 그렇지. 창작, 너무 실전성으로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걸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재산이고, 대단한 거지. 

날파람 보라고, 그 옛날 100년 전에 벌써 실전 실전 하면서 이것저것 섞다 보니 이제는 원래 모습을 모른다고, 안타깝잖아. 

X대표도 만나봐서 알겠지만, 내일모레 100살이 다 되어가는 어른들도 진짜 모습이 맞나, 하시잖아. 이게 뭐꼬, 이건 아니지. 

 

◇선생5: 우리 할아버님이 1888년생이신데, 돌아가시기 전에 그러셨어요. 

이게 예수 믿기 전인데, 당시에 형님을 따라서 서울을 가셨다가 거기 YMCA를 가서 권투하고 기계체조, 뭐 그런 걸 보신 거라,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해요. 

너무 신선했겠죠. 주먹 쓰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일부러 며칠 머무르면서 조금 배우셨어요. 그리고 다시 고향 왔다가 또 내려가서 배우고, 그래서 그때 배우신 권투 기법을 고향에서, 이제 같은 동네에서 날파람 하던 친구들하고 교류를 하셨거든요. 

벌써 이때부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싸움꾼 눈에는 싸움 기술들만 보인 거지. 

 

◇기자: 아까 말씀드린 건데, 왜 X장로님이 고향에서 택견을 본 적이 없다. 그러셨잖아요. 

목사님 조부께서는 어떻게 택견을 알고 계셨습니까? 

 

◇선생5: 알고 계셨죠. 택견 하는 사람들 하고 교류도 하셨고, 당시에 날파람에 박치기가 유명하니까, 박치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다른 분야에 있는 분들이 자주 찾아오셨나 봐요. 

택견, 그리고 저기 함경도에서 몽둥이, 그 뭐죠? 

 

◇선생4: 육모 방망이요? 

 

◇선생5: 네, 네 그거 육모 방망이 쓰는 사람들, 또 씨름 하는 사람들이 찾아왔죠. 

 

◇기자: 박치기를 배우러 오신거네요. 그 외 편싸움 기법 같은 것도 배우시고 하셨겠죠. 

 

◇선생5: 박치기도 배우고, 서로 기술 교류도 하고 그랬던 것 같해요. 

어른들 말씀 들어보면, 과거에 서양 운동이 흘러들어가기 전만 해도 지역별 싸움 스타일이 명확했나 보더라구요. 

뭐 평안도는 박치기, 함경도는 주먹이나 몽둥이, 아래 당시 경성? 지금 서울, 경기도 뭐 이쪽은 발차기, 경상도나 전라도는 팔 힘이 좋아서 씨름꾼이 많았다 하고,  

 

◇선생4: 옛날에 우리 아버지한테 들었나, 장로님한테 들었나, 그 강원도에 뭐 유명하다고, 뭐죠? 목사님이 얘기하셨던 것 같은데, 

 

◇선생5: 우리 아버지? 강원도에, 아, 그거 수박, 

 

◇기자: 수박이요? 그건 맨손 무술이라고 여러 문헌에 나오는 것 같던데요. 

 

◇선생5: 그 수박이라는 게, 지역별로 있었는데, 그게 평안도, 강원도, 지금 저기 부산 동래, 거기가 유명했다고,  

 

◇선생4: 여기 목사님 아버님이신 XXX목사님이 어릴 적에 아버지랑 본 적이 있다고 얘기를 해주셔서 기억이 나거든요.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면 죽는다고,  

 

◇선생5: 이제 기억이 나는데, 이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냐면, 이제 우리 조부께서 아까 말했죠. 서울 YMCA가서 권투를 배우는데, 그때 같이 배우던 강원도 사람이 수박을 하는 사람인데, 배우러 온거에요.  

수박이라는 게 손을 많이 쓰나 봐요. 그러니까 권투가 궁금했나 보더라고, 

그래서 우리 큰 할아버지죠? 형님이시니까, 공부 때문에 서울을 가시는데, 그때마다 며칠 식 있다고 오는데, 조부가 따라다니신 거지. 형님은 공부하고, 당신은 이제 거기 가서 권투 배우고, 그러다 알게 된 양반인데, 이 양반이 하루는 자기 벗이라고 또 소개를 해줘서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평안도 사람이다 말이지. 

그래서 그 같은 동향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강원도 사람처럼 수박 비슷한 걸 하다라는거죠. 당시에는 믿음이 없을 때니까, 밤새 셋이서 술을 마시고 그랬데요. 

 

◇기자: 수박은 어떤 형태였을까요? 손을 많이 쓴다고 들어서,  

 

◇선생5: 날파람에 '씌우기', '날 씌우기' 처럼 손바닥을 쓰는데, 단련을 많이 했는지, 손바닥에 굳은 살이 억수로 많았다고 하데요. 

박치기도 있기는 한데 날파람 처럼 많지는 않고, 조부 생각에는 그냥 평안도에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날파람인가, 하셨지. 

 

 

-------- 중 략 -------- 

 

 

◇기자: 옛날에 놀음판이나 내기판? 뭐 이런 게 성행을 했었다고 들었거든요. 날파람은 편싸움으로 내기를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였을까요? 

 

◇선생5: 심했죠. 심각했다고 들었어요. 한창때는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즐비했고, 뭐 노름을 할 돈이 없으니 도둑질을 하고 강도질, 또 저기 당시 만주, 거기랑 밀수나 뭐 그런 것도 하고, 처자식까지 팔아먹고, 심했죠. 

우리 조부께서도 예수 믿기 전까지 논을 몇 개 해 드셨다고, 

어느 정도였냐면, 자기 자식 약을 사러 가는 길에 날파람이 있다고 하면, 거기에 가서 돈을 걸 정도로, 미쳐버린 거지. 

나도 일본이라고 하면, 마음에 약간의 응어리 같은 게 있거든요. 당연히 사랑으로 품고 기도해야 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과거 역사를 생각하면 울분이 있지. 

그런데 또 반대로 잘한 것도 있어요. 그 중 하나가 날파람을 근절 시킨 거, 

 

◇선생4: 우리 아버지도 아주 잠깐이었지만, 참, 노름은 못 끝는다잖아. 

 

◇선생5: 가끔 보면 우리 역사를 좋은 말로 포장하는 경우를 보거든요. 얼마나 많습니까, 어른을 공경하고, 정이 많고, 예를 알고, 애국심도 투철하고, 뭐 그런 분도 있겠지만, 아닌 분이 더 많았던 시절이에요. 

날파람꾼이었던 조부나 또 부친의 눈으로 본 당시 조선? 대한민국은 사람 살 곳이 아니었어요.  

일제 강점기에 있으면서 억압받고 사는 것도 사는 거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그리 힘들지 않았다고 했어요. 원래 신분이 낮으면 억압을 받고 살아서 차이를 못 느꼈죠. 

오히려 당시 싸움꾼들은 일제 강점기가 더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신분의 차이도 없어졌고, 돈만 있으면 양반 못지않게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당시에 날파람 좀 한다는 사람들 중에 예수 믿고 손 씻은 사람도 있고, 또 신학문을 배워서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이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을 찾아가서 순사가 되거나 군인이 되거나, 그런 식으로 일본인들 밑에 일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싸움 좀 한다면 써주거든, 돈도 벌고, 또 자기를 무시하던 양반들 찾아가서 행패 부리고, 

 

◇기자: 다른 쪽도 그랬을까요? 택견이나 씨름이나 이런 쪽도, 

 

◇선생5: 그건 모르죠. 날파람이 거칠고 위험한 놀이로 변해버린 건 당시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한번 양반이면 계속 양반이고, 천민들은 평생 눌려서 사니까, 

천민들의 스트레스 해소 같은 거였겠죠. 날파람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데, 날파람이 너무 알려지지 않아서 이상했거든요. 지금 나와있는 다른 전통 무술들은 누구한테 전수를 받고 전해졌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전통 무예하는 사람들이 날파람에 관해서 찾으려고 여기저기 많이 알아봤을 텐데요. 

 

◇선생4: 아니 찾아왔죠. 90년대 초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는 왔지. 그런데 대부분 똑같해. 건달 아니면 무술 단체라, 얼마 줄 테니 가르쳐 달라. 뭐 단체를 만드니까 같이 하자. 

이런 사람들이지. 

그러면 기억도 안난다. 다른 사람 찾아왔다. 아니면 그 분 일찍 돌아가셨다. 이러면서 피했죠. 

 

◇선생5: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나요. 협회를 만들고 단체를 만들고 하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들이 자꾸 나오는 거에요. 서북청년단이니, 또 옛날에 제주 4.3사건, 이제는 더 이상 어른들도 힘들고 싶지 않거든, 

또 X대표님도 신앙생활하시면서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섭리라고 하죠. 

잊어지는 게 섭리라고 봐요. 이 기술은 어찌저찌 드러날지 몰라도, 지금 처럼 선교 역사 때문에 드러나게 될지는 몰라도, 더 이상 관련된 사람들은 언급이 안되었으면 하는 거지. 

왜 하필 날파람을 기억하는 평안도 출신들이 여기 경남에 많이 살고, 또 왜 하필 그분들이 대부분 크리스천이고, 또 하필 그분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섭리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해요. 

또, 예전에 그 XXX장로님도 살아생전에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나중에 날파람을 협회나 단체로 만들면 그 안에서 또 말이 나오지 않겠냐, 이거지. 이게 맞다. 저게 맞다. 하면서 다투는 꼴이 반드시 생긴다. 그러니까 시작도 하지 말고, 입도 열지 마라. 이제 우리끼리 그만 싸우자. 그러셨다고, 

무슨 일까지 있었냐면, 옛날에 어디서 날파람을 가르친다고 해서 놀랐던 적이 있어요. 

기억나세요? 

 

◇선생4: 네, 80년도 후반인가, 90년도 인가,  

 

◇기자: 아, 고향분 중에 누가 설립을 하신거에요? 

 

◇선생5: 아니, 고향분도 아니고, 그냥 어디 무술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 창작한거라. 뭐 이랬을거다. 하면서,  

 

◇선생4: 그때 내가 거길 가봤다 아입니까. 가서 보니까, 무슨 민족정기를 담아서 기를 모으고, 호흡을 하고, 하늘에 에너지가 어쩌고저쩌고 하길래. 이게 뭐꼬 했지. 

뭐 10대째 날파람을 전수받았다고 하면서, 지금은 이름을 바꿔서 계속 다른 걸로 한다더만, 

 

◇기자: 아, 진짜요? 

 

◇선생5: 그런데도, 그걸 아시는 장로님이 당시에 그냥 두라고 하셨거든, 왜냐면 가서 따지는 순간, 옛날 날파람은 이렇다.라고 얘기를 하게 되니까, 그 정도로 하는데, 알려질 수 가 없죠. 

그리고 날파람이라는 표현은 사실 어른들도 거의 안써요. 이제, 

대부분 박치기 또는 난다리, 이렇게 표현하시죠. 

 

◇선생4: 민족 무예는 무슨, 그냥 싸움이지. 무예라고 하니까, 뭔가 그럴싸하게 들리기는 하는데, 싸움에 예의가 어디 있냐고, 맨손 싸움에 무기만 안 들면 그게 예의지. 

그런데 그때 거기 도장 입구에 보니까, 날파람은 예의부터 배워야 한다고 뭐 그렇게 써있어서, 한참 웃었다. 진짜, 

우리 식 싸움에 우리 식 예의는 이런 거지. 됐나? 됐다. 온나. 이거지. 

도복 차려입고 예의 지키고 하는 건 다 일본식이라고, 

 

◇선생5: 그래도 사람을 가르치는 곳에는 지킬 건 있어야죠. 스승에 대한 예의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이 선생님이 또 허울좋고, 과장시키고 이런 건 못 보시거든요. 

 

◇기자: 아, 네, 충분히 공감합니다. 

 

◇선생5: 지금 계속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전에 잠깐 들었는데, 태권도 9단들도 계시고, 목사님도 계신다고, 

 

◇기자: 네 맞습니다. 내년쯤 홈페이지나 유튜브로 소개를 할까 하거든요. 

 

◇선생5: 우리 몸짓 이야기라는게 선교 단체는 아니죠? 그냥 연구 단체에요? 

 

◇기자: 아, 연구 단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선교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구요. 현재는 10가지 정도 이야기를 가지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박치기 같은 무술은, 전에 말씀드린 육모 부리기 하고, 하나 더 있구요. 

그 외에는 요리도 있고, 다른 소재들도 있습니다. 

 

◇선생4: 요리는 그때 XX대학교랑 한다고 했던 그거?  

 

◇기자: 네, 요리는 그 학교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처럼 모으고 있죠. 

 

◇선생5: 그래요. 잘 되길 기도하께요. 우리만 알려지지 않으면 되니까, 

 

◇기자: 아, 걱정하지 마십쇼. 

 

◇선생4: 나중에 이걸로 돈벌면 XXX선교사 좀 도와주고, 거기 힘들다고, 

 

◇기자: 네, 알겠습니다.  

 

◇선생5: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식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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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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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557380
꿀잼인데 문제는 이거 어디서 배움??
19:03
4시간 전
2등 익명_593346
갈수록 재밌네~
진짜 당장 배우고 싶다~!
19:04
4시간 전
3등 익명_653151
월담, 대박, 우리도 조선 피지컬 100 한번 가자~
19:13
4시간 전
익명_985851
구체적인 동작 묘사 덕분에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생생함을 느꼈습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통 무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물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택견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날파람은 태권도보다 택견의 움직임과 더욱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듯합니다.

전통 무예의 가치와 매력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20:55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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