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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학교의 졸업자 면단 속 임씨 성의 인물

익명_29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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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과의 관계성을 본 이상 임호라는 이름이 가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가 구국교육운동에 참여한 무관학교출신의 인물이라면 그 졸업생 명단으로 역 추적 할 수 있지 않을까?

 

https://namu.wiki/w/%EC%9C%A1%EA%B5%B0%EB%AC%B4%EA%B4%80%ED%95%99%EA%B5%90/%EC%A1%B8%EC%97%85%EC%9E%90%20%EB%AA%85%EB%8B%A8

 

우선 성은 바꾸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임씨 성을 가진 졸업자들을 보자

 

임영선林榮璿

임필호林弼鎬

임승한林承翰

 

눈에 들어오는 이름은 임필호

임0호라는 발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령방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호의 이명이

임병필인 것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detail.do?searchWord=%EC%9E%84%ED%98%B8&reSearchWord=&searchType=all&index=1&id=13069

 

임필호는 대한제국관원이력서에 비교적 인적사항이 잘 나와있다.

1881년 06월 16일 생으로 한성의 북쪽 마을의 고개(觀峴)에 거주

 

1. 1900년 8월 5일 – 무관학교 제2회 입학

2. 1903년 6월 20일 – 친위보병 제1연대 제3대대에서 견습 시작

3. 동년 9월 20일 – 육군무관학교 졸업증서를 받음

4. 1905년 4월 26일 – 진위보병 제3대대에서 견습 시작

 

그는 대한제국군의 육군 참위 직위에 올랐으며

그리고 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1907년 8월 남대문전투이다.

(군대 해산 요구와 1연대 1대대장 박승환 참령의 자결을 계기로 사위대가 일본군과 대항하여 벌인 전투.)

 

그의 보직은 근위 병력의 실무직으로 수도 방위 및 황실 경호를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그는 이 전투를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직을 당한다.

 

그 뒤로의 행보는 알 수없다.

 

그는 임호와 관련지을 수 있는 인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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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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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299730
임병필의 한자는 林秉弼이며 임필호와 같이 弼자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 한자는 필운동 할 때 그 한자이기도 합니다. 이름과 호에 주변 지명을 넣던 시대이니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썼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잠이 안와서 끄적여 보았습니다.
02:45
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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