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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데가 일본무술이 된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익명_010502
3054 0 1

https://www.fmkorea.com/best/8301485132/8303833602#comment_8303833602

<= 가라데에 대한 오해가 좀 있는데, 일제시대 내내 가라데는 일본무술이 '되어가는 중'이였지, 일본무술이 '됐다'고 보기엔 여러모로 미흡했다.

 

애초에 오키나와에서조차 일반인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순이였고, 후나코시 기친이 일본에서 류큐의 무예가 인정받기 위해 본토로 진출했던게 1916년부터다. 이때 중국 색채가 나는 '당(唐)'자를 빼라는 일본 측의 주장에 이름을 대일본 권법 공수도로 바꾸게 되는데, 게이오기주쿠대학 공수부 기록으로 1929년 혹은 1930년쯤이라 이 것도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상당히 후대쯤의 일이다.

 

가라데가 일본 관공서에서 쓰던 무술이라고 세일즈포인트로 퍼져다는 주장도 근거가 사실상 없는게,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는 오무도(五武道)라 하여 전투에 실제로 활용 가능한 기술인 '유도·검도·궁도(활쏘기)·총검도(총검술)·사격도(사격)' 등 다섯 가지의 무도를 학교에서 훈련시킴으로써 군국주의와 신도(神道)에 근거한 무도 정신을 함양케 하고자 했다. 가라데는 오무도에 포함되지도 않았고 이제 막 유도를 벤치마킹해서 전통의 체계화와 근대화가 진행 중인 신흥무술이라 관공서와 커넥션이 있을리 만무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식민지라는 동질감 때문에 오키나와의 무술에 대해서 딱히 악감정이 있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무장 독립운동가 출신 중에는 유도가나 검도가 출신들도 드물지 않았고, 배우는데도 딱히 거림낌이 없었고 해방 후에는 대한유도학교(용인대 전신)도 창설되는데, 가라데만 특정해서 나쁘게 볼 리가 없다.(무술에 대해서 민족감정이 개입한 역사는 상당히 짧다. 사실상 거의 현대적 관점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

 

오히려 일본 내에서 평판이 안 좋았다. 사실 태평양전쟁 이전에는 일본 내에서 가라테의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았다. 유도가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제압하는 신사적인 전통무도라는 이미지가 있는 반면, 가라테는 깡패들이나 수련하는 싸움이란 선입견이 강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가라테 영화에서도 제목을 무도로서의 가라테가 아니라 그냥 공수치기라고 부를 정도였다. 따라서 가라테 수련자들은 일본을 떠나 미국, 러시아, 브라질 등의 해외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가라테가 온전히 일본 무술로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이런 해외 수련자들 덕에 '외국에서 유명한 일본 무술'의 이미지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가라테연맹 본부부터가 스페인에 있다.

 

전통성 확보할려고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에 발 거치는 태권도 후인들이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에 발 걸치지 않았더라도 딱히 해방이후에 먹고 살길 막막할 정도로 가라데의 입지가 곤란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초창기 가라데 관장들은 자신들이 배운 무술에 대해서 자부심이 상당한 분들이라 '간판만 바꿔달려고 했다'란 표현은 그 분들에겐 매우 모독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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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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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333048
일제강점기 배경의 액션만화에서 공수도가가 한국전통무술가 상대로 민족 간 명예를 걸고 싸웠다는 이야기가 현실성이 없는 이유.
15:57
2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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