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너무 국뽕이긴 한데 이런 알못으로서 이런 망상도 해본적 있음;;
검술 얘기를 보고 좀 너무 앞서나간 상상도 해봤는데,
조선에 민간무술이 없던 이유가 탄압 뭐 그런 문제가 아니라. 중국, 일본, 동남아처럼 각지에 많이 있었는데 초고속으로 발전해서 하나로 수렴된걸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나라 전통무술이 일단은
기본공, 투로, 상대수련, 자유대련 + 무기술, 양생 이런식으로 과정을 밟는데, 택견은 투로, 카타, 품새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적거나 아예 다른걸 다 배운 후에 습득한다고 할정도임.
여기서 든 생각이, 다른 아시아 무술처럼 무기술(호패, 검, 단봉, 석전등등)까지 포함하는 다수의 전통무술 유파가 있었는데, 이미 자유대련법의 경기화가 너무 발달해서 현대격투기처럼 하나의 스포츠 수준까지 진보가 끝난 단계였다면?
경기에서의 승리라는 명확한 목표는 효율성을 추구하게 하고 훈련법의 변화도 생겼을것임.
룰이 정해진 고정된 환경(경기)가 생기니 기술체계도 거기에 맞춰 수렴될거고.
때문에 전형적인 전통무술의 수련법에서 벗어나서 중국 근현대의 의권, 혹은 현대 스포츠 격투기와 같은 기본기, 상호훈련, 자유대련 이라는 과정으로 변모한거임.
투로는 기본적으로 그 무술의 모든 분야(호신,격투,양생,무기술)을 전부 염두에 두고 혼자서 신체를 조율하기위해 만들어진 수련법임.
그런데 당장 다음 경기에서 이겨야하는데 무기술까지 염두에 둔 수련을 할 수는 없으니까 룰에 입각한 대인 격투능력 향상에 집중하고자 수련과정을 수정한거지.
때문에 탈 품새 현상이 일어난거 아닐까?
즉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가 근대화 언저리에 완성한 무술->스포츠 의 진보를 조선시대에 끝내놓고 기술발전단계로 이미 접어들어있었던걸수도 있지 않을까?
댓글 5
댓글 쓰기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춤이 투로라면 보통 다른무술처럼 그걸 먼저배울것같은데 다른 모든것을 할줄 알게 된 다음에 배우는 이유가 뭘까 하다가 이런 생각까지 해봄.
품새가 없다거나 비중이 작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데 또 혼자 품새처럼 하는 수련이고, 또 맨 나중에 배운다고 하니...
원래는 먼저 배우는것인데, 경기화가 일찍 이루어져서 나중으로 밀린거라면, 이게 다른 무술에 비해 경기화 까지의 빠른 발전을 이룬 증거가 아닐까 해서.
+말해준것처럼 이 투로의 비중이라는것이 결국 해당 유파가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그 수와 디테일이 달라지는것 같기도 함. 중국만 해도 영춘권은 딸랑 세개인데, 칠성당랑권은 열개가 넘어가니, 이게 같은 국가 안에서도 해당 유파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확 나는듯.
사실 그냥 길거리 싸움, 스트리트 파이팅 기술이라 복싱하고 비슷한 개념 아니였을까? 복싱도 막 절도있는 품세를 보여주지는 않잖아.
내가 느끼는 택견에 대한 이미지는 뭔가 고고한 쿵후같은 신비주의보다는 길거리 파이팅 느낌이 강해서.
출세하려면 유교경전 달달 외워서 과거를 봐야햇고
반면 일본은 출세하려면 다른방법도 있지만 검을 들어야했음
그러니 이런 차이가 생긴거지. 인재풀이 쏠릴수밖에없음






유파란 거 자체가 하나의 무술 브랜드이고 상업 기반이 깔려야 생길 수 있는 건데 조선이 그 정도로 상업이 발달하진 않았어서 글쎄... 애초에 전근대부터 문파, 유파 시스템이 존재했던 중국 일본이 특이한 거고 동남아 칼리 같은 유파들도 상업 발달한 근현대에야 생겨났다고 앎.
투로, 카타는 브랜드가 손상될 위험이 있는 대련을 꺼리는 유파에서나 독련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거고 일본에서도 죽도격검 위주로 하던 유파들은 카타 수련 잘 안 했음.
서양은 상업이 극한으로 발전했지만 유파의 브랜드 같은 게 없고 스파링 위주였다보니 투로 카타 없었고. 한 마디로 상업무술로서 브랜드 개념이 있냐 없냐의 차이라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