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용맹, 철학자-중장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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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하건대, 그런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통치하고,
제대로 통치받으려 할 것이며, 창의 폭풍 속에
서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믿음직하고 용감한 전우로서
꿋꿋하게 옆에 버티고 서 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668-671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사회는 상호간의 상시적인 전쟁 상태에 놓여 있었고 평화는 오히려 예외상태였다. Hanson에 의하면 폴리스는 대략 3년마다 두 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영구적인 삶의 조건이었고 당연하게도 그리스인들은 상무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고대 아테네 역시 마찬가지였고 시민이라면 누구나 군 복무가 요구되었다. 아고라와 체육관을 쏘다니며 사람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젊은이들을 홀리고 다니던 철학자 소크라테스 역시 아테네 시민이었고 중장보병으로 복무할 의무가 있었다. 때마침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기는 그리스 세계 그 전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끔찍한 대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이 시기 그리스의 전투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Hanson은 자신의 저서에서 전형적인 팔랑크스 사이의 충돌을 묘사하고 있다. 대개 8열의 종심을 이룬 빽빽히 밀집한 두 군대가 전장을 앞두고 서로 마주보고 선다. 신호가 떨어지면 서서히 전진하고 일정 거리에 이르러서는 창을 앞세운 양 군의 돌격이 시작된다. 거대한 질량체 둘이 함성소리와 함께 충돌하고 방패와 방패, 갑옷과 갑옷, 창과 창이 맞부딪히며 굉음이 울려퍼진다. 여기저기서 고함과 비명을 외치는 가운데 전열에서는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창으로 휘두르고 후열은 적의 대열을 무너뜨리기 위해 앞열을 방패로 힘껏 밀어 질량 공격을 가한다. 결국 어느 한 쪽 전열이 무너지게 되면 그 틈으로 침입한 전사들의 단병접전이 발생하고 틈이 확대되어 결국 패주하게 되면 일방적인 살육전이 시작된다.

<암피폴리스 전투. 소크라테스도 40대 후반의 나이에 이 전투에 참전했다>
적의 창들이 살기등등하게 빽빽히 솟아있는 창의 폭풍을 바라보며 생기는 공포와 중압감은 실제로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이상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아테네군은 공식적인 훈련도 없이 그때그때 소집되는 민병이었다. 전투를 직접 경험한 고대의 저자들은 팔랑크스 대열의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몸을 떠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진동처럼 보였다거나, 공포심으로 치아가 부딪혀 이가 딱딱거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평소 전투 태세를 갖출 때 들려야 할 갑옷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공포를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고대의 한 시인은 이들에게 후들거리는 다리를 땅에 박아 넣고 떨리는 이를 악물고 버티라는 참으로 유용한(?) 조언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 두 발 굳건히 땅을
딛고 서 있어라! 이를 앙다물고 각오를 다져라!
티르타이오스, 10.31-32

<스파르타 중장보병은 존재 자체만으로 적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군대가 무구(武具)와 대오를 갖추고 있다가 창을
들기도 전에 겁에 질려 흩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역시 디오뉘소스 신께서 보내시는 광기랍니다.
에우리피데스, 박코스의 여신도들 303-305
이러한 신체적-정신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군대는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도주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투키디데스와 크세노폰의 저작들에서는 창과 창이 맞붙기도 전에 한쪽 군대의 사기가 바닥나 궤주하는 사례들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전쟁 기계들의 나라인 스파르타 전사들의 치렁치렁 길게 기른 머리, 붉은 외투, 람다가 새겨진 방패, 피리 소리와 함께 질서정연하게 진군하는 독특한 관행은 그 자체로 공포감을 유발했고, 이 스파르타군이 돌격하면 상대방은 별다른 저항 없이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진료 기록에는 전장에서 돌아왔으나 피리 소리를 듣고 그만 미쳐버린 참전 용사의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전장의 공포에 마음이 무너진 병사들이 겪는 PTSD 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도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몸들이 서로 적으로 맞서서, 적을 무찌르겠다며 무장을 해서 청동과 철이, 어떤 것은 방어를 위해, 어떤 것은 공격을 위해, 적으로 맞선 대형을 이루자마자, 시각이 그것을 보게 되면, 동요하게 되어 영혼을 동요케 해서 종종 사람들은 앞으로 올 위험이 벌써 와 있기라도 한 양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가곤 합니다. [...] 그렇게 두려움은 생각을 꺼 버리고 쫓아 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헛된 노고와 무서운 병과 치유할 수 없는 광기에 빠집니다.
고르기아스, 헬레네 찬가 16-17
소크라테스가 참전한 전쟁은 이런 살벌한 전쟁이었다. 그는 포티다이아 포위전(기원전 432-429년), 델리온 전투(기원전 424년), 암피폴리스 전투(기원전 422년)에서 중장보병으로 복무했다고 전해진다. 포티다이아 포위전에서 아테네군은 3년의 포위기간동안 보급 부족과 추위로 고통을 받았고 심각한 역병까지 돌아 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갔다. 델리온과 암피폴리스에서 아테네는 장군까지 사망할 정도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소크라테스는 불혹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델리온 전투에서 그는 40대 중후반이었다.) 이같은 가혹한 환경에서 중장보병으로 창과 무거운 방패를 들고 전열에 서야 했다.

<부상당한 알키비아데스를 구하는 소크라테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시민의 의무로서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 라는 수준을 넘어서, 전장에서 눈에 띄는 활약으로 이름을 날린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의 제자 알키비아데스는 포티다이아 전투에서 부상 입은 자신을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가운데 소크라테스만이 홀로 무기와 자신을 구해 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그 전투에서 알키비아데스는 용감히 싸운 공로로 감투상을 받았는데, 실은 그 상은 원래대로라면 소크라테스가 받아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제자가 상을 받도록 하는데 열심이었다고 한다(플라톤, 향연 220e). 의무를 다하면서도 세속적 명예에 초연했던 것이다.
아테네가 크게 패한 델리온 전투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주목할만한 활약을 보인다. 델리온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아테네군은 적의 기병과 경보병의 추격을 받으며 무질서하게 패주하게 된다(투키디데스 4.96).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는 대개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방패를 버리고 도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의 희극에서는 방패를 버리고 달아나는 비겁자들에 대한 실명 비판이 이루어지고는 했다. 그런데 알키비아데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동료인 라케스를 지키는 한편 유유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적이 덤벼오기라도 하면 단호하게 막아낼 태세로 질서있게 후퇴했다고 한다. 여기에 알키비아데스까지 합세하여 그들은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플라톤, 향연 221a-b).
라케스 : "그는 델리온에서의 퇴각에서 저와 함께 철수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말입니다, 어르신께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이고자 했다면, 우리나라는 올바르게 서 있을 것이고, 그때 그와 같은 참패를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플라톤, 라케스 181b
델리온 전투는 군대를 이끈 장군이었던 히포크라테스(유명한 그 의사와는 동명이인)의 전사와 함께 중장보병 천여명이 사망한 펠로폰네소스 개전 이래 아테네가 겪은 최악의 패배였다. 여기에서 훌륭히 처신한 소크라테스의 명성은 높아졌다. 델리온의 패배 몇달 뒤 아테네에서 이 특이한 철학자를 풍자하는 희극이 두 편이나 공연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과 지금은 실전된 아메이프시아스의 콘노스Κόννος).
소크라테스는 평소에도 기인으로 통했다. 크세노폰에 의하면 그는 매일 아고라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유명한 대화법으로 상대방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시인할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문답법은 젊은이들을 홀렸던 것 같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가 밝혀지면 격분하기 마련이었다. 철학자로서의 이런 특이한 면모 외에도 그는 신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검소하고 자제력이 몸이 밴 사람이었으며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얇은 외투 한 벌을 걸치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이같은 금욕적이면서 강건한 생활방식은 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고생을 견디는 일에 있어서 다른 모든 사람을 능가했으며, 보급이 끊겨 곡기를 끊고 지낼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 이를 견뎌내는데 있어서도 으뜸이었다고 회고한다(플라톤, 향연 219e-220a). 한번은 전장에 극심한 혹한과 함께 서리가 내려 아무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피치 못할 경우 옷을 단단히 껴입고 신발에도 양가죽과 털을 덧씌워 다니는 와중에 소크라테스 홀로 얇은 외투 한벌과 맨발로 태연히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220b). 그야말로 경이로운 인내심을 가진 철인Iron man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형을 언도받고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
전장에서도 한결같은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피 끓는 전사의 용맹이라기 보다는 세속을 초월한, 어쩌면 죽음까지 초월한 철학자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 같은 태도는 신에 대한 불경과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로 기소된 재판정에서의 항변에서도 드러나는데, 사형의 위기에 처한 소크라테스에게 누군가 너에게 죽음을 불러일으킨 그 행동이 수치스럽지 않느냐? 고 묻자 소크라테스는 대꾸한다.
“이보시오. 아름답지 않은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뭔가 조금이라도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자기가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는지 부정의한 일을 하고 있는지, 훌륭한 사람의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나쁜 사람의 행동을 하고 있는지만 따져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위험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고 당신이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당신의 바로 그 논변대로라면 반신(半神) 영웅들 가운데 트로이에서 삶을 마친 사람들이 형편없는 사람들이 될 테니까요."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28b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다짐할 때 죽음을 두려워했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일인가 아닌가이지 사느냐 죽느냐의 위험이 아니다.
누군가가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어떤 자리에 자기 자신을 배치했거나, 혹은 지휘관이 배치해 주었다면, 그게 어디든 그 자리에 남아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난 생각합니다. 죽음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수치스러운 것보다 먼저 계산에 넣는 일은 아예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테네인여러분, 내가 포테이다이아에서든 암피폴리스에서든 델리온에서든 나를 지휘하라고 여러분이 직접 뽑아 준 지휘관들이 나에게 명령을 내렸을 때는 다른 누구라도 그랬듯이 저 사람들이 명령한 그 자리에 남아서 죽을 위험을 무릅썼으면서, 이제 신이 명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즉 내가 생각하고 또 이해한 바에 따르면, 내가 지혜를 사랑하면서 그리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검토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신이 나에게 명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죽음이든 다른 어떤 일이든 두려워해서 배치된 자리를 떠난다고 한다면, 난 무서운 일을 저질러 버린 게 될 거예요.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28d-e
여기서 전쟁에서의 삶과 일상에서의 삶이 공명한다. 소크라테스는 전장에서도 죽음을 신경쓰지 않고 창과 방패를 들고 전열을 지켰다.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재판에서 사형으로 위협한다 할지라도 평소의 정의로운 삶의 태도를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파이돈에서 사형을 언도받아 죽는 그 순간까지도 소크라테스는 담담하게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죽음은 육체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주제를 논하고 있었다. 독배를 마시는 장면을 본 친구들이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자 오히려 친구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는데, 그에게는 죽음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의로운 삶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소크라테스는 용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면서 용기란 '대오를 지키면서 적들을 막아 내고자 하고 도망치지 않는 것(플라톤, 라케스 190e)'이라는 라케스의 의견을 기각한 적이 있는데, 전장에서 보여 준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용기 그 이상의 무언가이며 일상적인 삶에서도 관철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라케스의 단순한 정의에는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죽음조차 신경쓰지 않는 정의로운 삶의 태도를 철저하게 유지해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창과 방패를 들고 버텨야 했던 끔찍한 전쟁 한복판에서나 일상에서나 소크라테스는 일관된 태도로 삶을 이어갔다. 전장에서 보여준 소크라테스의 용맹은 단순한 무력이나 호전성이 아닌, 정의로운 삶을 관철하려는 태도가 전장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확실히 그는 철학자로서 전장에 섰고, 정의로운 삶의 원칙이 어디서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입증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여자와 남자가 전부 꼬이던 아테네의 유명한 미남이자 영앤리치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에게 홀딱 반해버린 이유일 것이다.
참고
• 강철웅 (옮긴이). (2023). 소피스트 단편 선집 1. 아카넷.
• 크세노폰. (2018). 소크라테스 회상록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 투퀴디데스. (201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 플라톤. (2020). 라케스 (한경자 역). 아카넷.
• 플라톤. (2020). 소크라테스의 변명 (강철웅 역). 아카넷.
• 플라톤. (2020). 파이돈 (전헌상 역). 아카넷.
• 플라톤. (2020). 향연 (강철웅 역). 아카넷.
• Hanson, V. D. (2009). The Western Way of War: Infantry Battle in Classical Greec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Tritle, L. (2021). Battle Trauma in Ancient Greece. In W. Heckel, F. S. Naiden, E. E. Garvin, & J. Vanderspoel (Eds.), A Companion to Greek Warfare (Chap. 23). Wiley-Blackwell.
• Monoson, S. S. (2014). Socrates in Combat: Trauma and Resilience in Plato’s Political Theory. In P. Meineck & D. Konstan (Eds.), Combat Trauma and the Axncient Greeks (pp. 131–162). Palgrave Macmillan.
• Monoson, S. S. (2016). Socrates' Military Service. In V. Caston & S.-M. Weineck (Eds.), Our Ancient Wars: Rethinking War through the Classics (pp. 96–117).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 Neils, J. (Ed.). (2021). _he Cambridge Companion to Ancient Athe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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