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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온 편쌈에 대한 이야기

익명_48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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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향(京鄕) 각처에 이른바 편싸움[便戰]이란 놀이가 있는데, 그 근본을 소급해 보면 이를 변증할 만한 근거가 있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보면,

 

“《한서(漢書)》 감연수전(甘延壽傳)에 ‘투석 발거(投石拔距) …… ’라고 한 주(注)에 ‘투석은 돌을 사람에게 던지는 것이다.’ 하였으니, 그 놀이 또한 오래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안동(安東)에서는 1월 16일에, 김해(金海)에서는 4월 8일과 단오(端午)에 장정들이 모두 모여 좌우(左右)로 편을 가른 다음 돌을 던져 승부를 겨루다가 죽거나 중상을 입어도 후회하지 않는데 이것을 석전이라 한다.

 

우리나라 중종(中宗)이 왜(倭)를 토벌할 때 이들을 뽑아 선봉(先鋒)을 삼았는데, 적군이 감히 덤비지 못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적들이 조총(鳥銃)을 사용했으므로 이들의 힘이 쓰이지 못했다.”

 

하였는데,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이 말을 인용하였고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의 《한도잡지(漢都雜志)》에도 이 놀이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자세하지는 못하고 대충만 언급되었으므로 이번에 단단히 변증하려 한다.

 

목봉(木棒)이란 18반(般)의 무기(武器) 가운데 간(鐧)과 과(撾) 같은 것이다.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 보이는 18반의 무기는 궁(弓)ㆍ노(弩)ㆍ창(鎗)ㆍ도(刀)ㆍ검(劍)ㆍ모(矛)ㆍ순(盾)ㆍ부(斧)ㆍ월(銊)ㆍ극(戟)ㆍ편(鞭)ㆍ간(鐧)ㆍ과(撾)ㆍ수(殳)ㆍ차(叉)ㆍ파두(把頭)ㆍ면승투삭(綿繩套索)ㆍ백타(白打)인데, 지금 편싸움에서 혹은 돌로 던지고 혹은 목봉으로 공격하므로 아울러 변증하려 한다.

 

...중략...

 

또 봉(棒)에 대하여는 《화한삼재도회》 병기류(兵器類)에 낭아봉(狼牙棒)이란 것이 보이는데 ‘봉의 이명(異名)으로는 윤(棆), 또는 저(杵), 또는 한(杆)이라 한다.’ 하였고, 그 주에 ‘철(鐵)로 그 윗부분을 싼 것을 가리봉(訶梨棒)이라 한다.’ 하였다. 내가 보건대 여러 사책(史策)에 ‘시석(矢石)을 회피하지 않는다.’ 또는 ‘시석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한 말이 있으니, 석전(石戰)은 예로부터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익의 《사설》에,

 

“사람이 무예(武藝)를 익히지 못했거나 무기가 예리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목봉(木棒)을 쓰는 편이 낫다. 지금 향병(鄕兵)들이 휴대하고 있는 검(劍)은 다 호미[鉏] 따위를 펴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베어도 절단되지 않고 목봉과 부딪쳐도 그만 부러지니 그 용도가 목봉만도 못하다. 옛날에 이주영(爾朱榮)이 갈영(葛榮)과 싸울 때 창이나 검을 쓰지 않고 목봉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니 목봉도 쓸 만한 무기이다.”

 

하였다. 지금의 석전놀이나 봉격(棒擊) 놀이는 그 위세가 매우 맹렬하여, 어느 한 부분을 맡을 만한 용기가 있어 보인다. 

 

만약 난세(亂世)를 만났을 때 그들의 죽음을 모르고 싸우는 용맹과 힘을 이용한다면 모두 하나가 백을 당해내게 될 것이니, 시무(時務)를 다루는 자는 이 점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상은 맨 먼저 그 근원부터 소급하고 다음에 그 용도를 인증하였다.

 

대저 이 풍속은 고려 시대부터 시작되어 본조(本朝)에 들어온 것으로, 상원절(上元節 정월 대보름)을 기하여 시골의 장정이나 어린이가 모여 편을 갈라 서로 대결하는데, 혹은 돌을 던지고 혹은 목봉을 사용하여 동서(東西)로 충돌하고 고함치면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또 눈이 부어오르고 눈알이 빠져나오며 머리가 깨지고 뇌장(腦漿)이 흘러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모래와 돌을 날리며 기세를 타 상대를 짓밟고 하나가 선창하면 여럿이 호응해서 기회를 보아 용맹을 뽐낸다. 어느 사람이,

 

“석전에 대하여는, 지금 서울의 만리교(萬里嶠)와 우교(牛嶠)에 편싸움 놀이가 가장 성행되고 있어, 비록 재상(宰相)이라 해도 길을 통제시키지 못하고 회피해서 가므로, 가끔 포도청에서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한다. 이 놀이에 대해 명나라 승암(升庵) 양신(楊愼)의 《단연총록(丹鉛總錄)》을 상고해 보면,

 

“송나라 때 한식절(寒食節)을 기하여 돌팔매질 놀이가 유행되어, 어린이들이 기왓장이나 돌을 날리는 놀이가 있었으니, 지금의 기왓장 던지는 놀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으니, 석전놀이에 그 유래가 있었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지은 석전시(石戰詩)를 《국요월령(菊堯月令)》에 넣었는데, 그 조사(措詞)가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나 사람이 어려서 타던 죽마(竹馬)를 그리듯이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 기록한다.

 

학 울고 까마귀 우짖는 소리 요란한데 / 風鶴暮鴉□是聲
동서로 충돌하는 그 기세 놀랍기도 하여라 / 東馳西突竟相驚
아 뉘 집의 천금 같은 아들인지 / 誰家愛惜千金子
머리 부서져도 팔 걷고 맞서누나 / 頭碎猶能左袒迎

 

하였으니, 이는 사실 그대로이다. 고인(古人)에게도 이 놀이를 읊은 시가 있겠으나 아직 널리 수록하지 못하고 후세 사람의 손을 기다린다.

 

출처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01A_0160_050_0050_2000_020_XML

 


 

베면 부러지는 어설픈 칼보다 목봉이 나으니 이거 전쟁에 쓰면 좋겠다.

사람이 초주검이 되어도 다들 물러서지 않고 격하게 싸운다. 는 평가가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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