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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무과의 군사무예 정착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

익명_42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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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73191

 

중략...

(마) 이시백이 아뢰기를, “근래 보니 拳法으로 손과 발을 운용하는 것을 익히고 있는데, 이는 실로 군졸들을 단련시키는 妙法(묘법)입니다” 라고 하니, 상이 이르기를, “劍을 운용하는 것과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자, 이시백이 아뢰기를, “일찍이 권법을 잘하는 자를 본 적이 있는데, 옆에 있는 壯士가 몽둥이로 치려 했으나 끝내 빈틈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손으로 치고 발로 차는 기술을 칼 같은 무기도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비록 권법을 잘한다고 해도 어찌 칼 같은 무기를 당할 수 있겠는가.” 하자, 이시백이 아뢰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李汝松(이여송)은 맨주먹으로 혼자서 적 수십 명을 대적하여 끝내 격퇴시켰다고 하며, 게다가 군졸들의 기운을 배양하는 데에 있어 참으로 兵家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李牧이 趙나라 장수였을 적에, 군졸들이 ‘돌을 던지며 멀리뛰기를 하고 있다.’라는 상황을 듣고는 ‘그 기운이 쓸 만 하겠구나.’라고 하면서, 마침내 나가 싸워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오늘날 또한 이목이 기운을 배양한 것처럼 한다면, 병사를 잘 양성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36)

 

위의 사료는 당시 국왕이었던 仁祖와 병조판서 李時白이 나눈 것으로 비록 권법이 무기사용 없이 맨손으로 적과 겨루는 무예이지만, 군졸들의 용맹함을 높이는데 가장 좋은 효과적인 방법이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권법은 조선군에 보급되면서 각개의 자세가 아닌 연결된 형의 방식으로 재구성되면서 토착화된 형태로 발전하였다.

 

중략...

 

(자) 권법으로써 말한다면 척계광의 보에는 반드시 두 상대가 있다. 두 상대란 갑이 탐마세를 지으면 을은 요단편세를 짓고, 갑이 칠성권세를 지으면 을은 기룡세를 취한다는 것 등과 같이 모두 공수 자연지세이며, 오늘의 법칙이 처음 모세를 짓고 다시 모세를 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여서 일통을 이룬다.
이미 본의를 잃었다가 또한 항차 갑을이 같이 한 자세를 취하여 마치 그림자가 그 형상을 따라 상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시측신세와 구류세 등 몇 자세에 지나지 않아서 끝나버린다. 두 상대가 메고 새로 치고 변화하여 이로 부터 거의 유희처럼 차례로 행해진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이로 인하여 구보(『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신보』)가 되었다. 그러나 식자는 당연히 열 가지 자세를 잃어버렸음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무예도보통지』)에는 그 비결을 증입한다.59)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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