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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하군이란?

익명_786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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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수들 대부분이 표하군 일가 출신이라고 해서 좀 더 찾아봄.

 

https://blog.naver.com/allalaallala/221594517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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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하군은 칠색 표하군이란 이름으로 묶이기도 하는데, 그 구성은 뇌자, 순령수, 대기수, 취고수, 당보수, 등롱수, 군막수 입니다. 이 7가지 표하군이 가장 중요한 표하군입니다.

 

뇌자는 주장이나 곤장을 들고, 순령수는 영기나 순시기를 들거나,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두 표하군은 군중을 압도해서 기강을 잡는 역할과 지휘관 옆에서 호위를 도맡았습니다.

 

대기수는 여러가지 깃발을 드는 병종이고, 취고수는 군악으로 군령을 전달하고, 사기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당보수는 행군시 군대의 앞에서 적이 있는가 정탐하는 척후병이고, 황색의 당보기로 신호를 전달합니다. 등롱수는 야간에 등롱을 담당하고, 군막수는 숙영시 군막 설치를 담당하는 병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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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reanhistory.org/archive/view/3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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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 중 훈련도감(訓鍊都監) 군인만이 상비병(常備兵)이었고 나머지 군문은 농촌에서 번갈아 올라오는 번상병(番上兵)을 주축으로 하면서 일부 직업적 표하군(標下軍) - 요즘도 남대문이나 각 궁궐 주변에서 주말마다 벌어지는 ‘수문장 교대식’이라는 희한한 퍼레이드에는 ‘공익요원’들이 병사로 분장하여 깃발을 들고 다닌다. 표하군(標下軍)이란 총칼 대신에 깃발을 들고 부대의 위세를 돋우는 ‘직업군인’들을 말한다 - 을 끼워 넣어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비군이든 번상병이든 정부 재정이나 봉족(奉足) - 중세판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농민’들이 서울에서 ‘군복무’하는 동안 지출해야 할 여비, 숙식비와 그가 집을 비움으로써 남은 가족들이 겪어야 할 경제적 곤란에 대한 ‘보상비’를 담당하는 이웃 농민들 - 이 내는 군포(軍布)만으로 필요한 군비(軍備)를 다 충당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 사이에는 ‘걷을 때는 넉넉히, 내줄 때는 짜게’라는 오래된 ‘관행’이 자리 잡고 있었을 터이지만. 왕조 정부가 도성에서 근무하는 군병(軍兵)들의 쪼들리는 살림을 조금이라도 펴 주기 위해 짜낸 묘안은 그들에게 ‘장사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군인들은 국가의 배려 덕분에 보수로 받은 군포(軍布) - 당시 훈련도감 군인들이 받은 군포(軍布)는 최상급 품질을 자랑했다 - 를 바로 내다 팔거나 처자(妻子)를 시켜 띠, 대님, 댕기 등으로 가공하게 해서는 내다 팔았다.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또 비슷한 일을 찾아 문어발처럼 뻗어나가는 법. 이윽고 군인(軍人)들은 돈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든’ 취급하면서 본격적인 장사꾼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 무렵 서울의 군제(軍制)는 병농일치제(兵農一致制)가 아니라 병상일치제(兵商一致制)에 입각하여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 난전(亂廛) 문제는 이들 병졸 장사치들로부터 발단했지만, 곧 다른 사람들이 난전(亂廛) 대열에 합류했다. 시전(市廛) 상인들이 병졸 장사치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배후에 막강한 군문(軍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힘 있는 기관이 군문(軍門)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병졸(兵卒)들의 봉록(俸祿)만 적었던 것도 아니다. 여러 관서의 일꾼들 - 각사하예(各司下隸) - 과 각 궁방(宮房)의 겸종(傔從)과 노복(奴僕)들이 슬금슬금 장사길에 발을 딛기 시작했다. 덩달아 이들이 취급하는 물종(物終)도 갈수록 늘어나 필경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지경이 되었다.

 

  여기저기에서, 이 물건 저 물건을 들고 지고, 자기 것이 최고라고 외치는 장사꾼들 틈에서 누가 병졸(兵卒)이고 누가 하예(下隸)인지를 알아볼 도리는 없었다. 그런 마당에야 훈련도감군이 아니면 어떻고 사복시나 내수사 하예가 아니면 어떠하며 모모궁 노복(奴僕)이 아니면 또 어떠한가. 필경에는 아무런 ‘줄’도 ‘빽’도 없는 사람들도 이 판에 끼어들었다. 물론 잘못 걸리면 가진 물건 몽땅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치도곤을 맞았지만, 그런걸 겁낼 양이면 애초에 서울 깍정이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인가받은 장사꾼과 무면허 장사꾼들 - 언제나 그렇듯이, 이들을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은 시전(市廛)에는 눈엣가시였다. 시전 상인들은 정부에 호소하여 금난전권(禁難廛權)을 얻어냈지만, 수십년 동안 엄청난 송사(訟事) 거리를 남기고 힘 없고 빽 없는 불쌍한 장사꾼들만 거덜냈을 뿐, 난전(亂廛)을 뿌리뽑지는 못했다.

 

  그러나 무면허 장사꾼들이 뒤 보아주는 사람만 믿고 버젓이 시전가(市廛街) 한복판에서 사고 팔 만큼 후안무치(厚顔無恥)하지도 않았다. 병졸들이야 신분 자체가 국역(國役)을 지는 사람들이었으니 시전 상인과 같은 처지라고 주장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그 빽이나 연줄이 어찌 되었든 뒤가 구린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종로의 시전 자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 성벽 바로 바깥이나 안쪽에 난전(亂廛)을 벌였다. 난전(亂廛)이 모인 곳이 곧 난장(亂場)이니 ‘난장판’이 생겨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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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요람에서 '표하군 사수'라고 해서 궁수의 일종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부대 사기진작을 위한 깃발군을 일컫는거였음. 단순히 한 병과를 일컫는게 아닌 세부적으로 종류가 7가지 정도 있음. 깃발부대라고 해서 싸움도 못 하는 응원단 같은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첨언을 해두자면...

 

"과거의 전쟁에서는 깃발, 다시 말해 군기가 병력 그 자체를 의미했으며 기수 없는 백 명보다 기수가 있는 열 명의 부대가 더 강하다고 할 만큼 중요한 직책이었다. 당시 전쟁에서는 대형 유지가 생명인데,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깃발 밖에 없기에 부대가 결집하려면 무조건 깃발을 중심으로 모이는 방법 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눈에 잘 띄는데 중요하기까지 하니 그만큼 적의 공격이 집중되었고 빗발치는 화살과 총탄 속에서도 군기를 쳐들고 있을 만큼 눈에 뵈는 게 없는 대담한 자만이 기수가 될 수 있었다. 한 예로 오자병법에서는 "가장 용맹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는 군기를 쥐어주거나 군고(軍鼓)를 치게 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정예부대를 묘사할 때, 기수가 쓰러지면 그 주변에 있는 다른 병사가 군기를 받들고 그 병사가 전사하면 또 다른 병사가 달려들어서 군기를 세웠다는 서술이 종종 나온다. 

 

정예부대의 기수, 그리고 기수의 호위병으로 배치되었다는 것은 굉장한 명예였다. 고대 로마군에서는 전투 후 군기 근처에서 전사한 장병들은 '목숨을 바쳐서 군기와 기수를 지킨 용사'라는 의미에서 매우 후한 보상을 해주었다. 반면 군기를 버리고 도망간 기수는 단순히 도망친 죄가 아니라 집단 반란의 주동자 수준으로 큰 죄를 저지른 것과 같다고 여겨서 다른 동료들이 때려죽이는 극형에 처했다. 근대에도 기수 역할은 말단이라도 장교에게 맡기고 유능한 부사관과 병들을 뽑아서 각각 군기호위부사관과 군기호위대로 임명했는데, 이게 오늘날 계급으로서 각각 소위(ensign)와 상사(colour sergeant)가 되거나 의장대로서 군기호위대(colour guard)로 이어지기도 했다. 상당히 돋보이는 역할이니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기수을 신경 써서 뽑았는데, 일례로 일본군의 경우 기수 선발 조건은 품행 방정하고 성적이 우수한 엘리트일 뿐 아니라 장신, 수려한 외모, 그리고 동정일 것이 암묵의 룰이었다고 한다."

 

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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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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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102749
기수보니까 울트라마린이 생각나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2:13
25.01.15.

저 깃발 다루는 무술이 무예도보통지 기창(旗槍)임. 본문대로 군기 따잇당하면 난리나니까 군기수 호신용 무예를 따로 편성한 것. 그리고 무예도보통지에 많이 나오는 점(點, 아래로 찌르기), 마(摩, 가로로 휘두르기), 휘(揮,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기)는 원래 깃발 신호용 용어이기도 하고. 그래서 군기 제식이 조선군 무예 연구에 중요함.

13:09
25.01.15.

아기수들이 검1차와 육량전을 시험 본 이유를 이제 알겠네.

 

아기수 시험에서 검 1차는, 등패(籐牌)ㆍ낭선(狼筅)ㆍ장창(長槍)을 통트는 말인데,

재밌게도 이 병기들의 공통점은 원앙진의 구성 무기란 점과, 상당한 체격과 힘이 요구되는 무기들임.

 

원앙진의 구성은 분대장 한명이 깃발을 들고 등패(+요도)를 든 병사가 둘, 낭선이 둘 장창이 둘 당파가 둘, 화병(취사, 잡일)로 이루어져 있음.

000.webp아기수들은 대부분 깃발부대인 표하군 일가 출신이고, 원앙진에선 분대장이 깃발을 드는 기수임.

동서고금 막론하고 기수들 역시 상당한 체격과 힘이 요구되는게 일반적이고.

 

육량전 역시 마찬가지로 쏘는데 상당한 피지컬이 요구되는 무기임.

육량궁은 단지 무거운 화살을 멀리 쏘는 목적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힘이 강한 자를 선출하는 시험성 무기란 특색을 가지고 있음.

 

체격이란 훈련으로 어찌할 수 없는 유전적인 부분이라,

표하군 일가에서 그 자식들을 대를 이어가며 아기수로 뽑은게 아닌가 함.

 

결론 : 아기수 시험은 조선판 '피지컬100'이다.

13:16
25.01.15.
익명_206916
돌격을 알릴 때 가장 앞서서 달려나가야 하고, 깃발을 빼앗기는 걸 죽음보다 두려운 불명예로 여기고, 저격수들의 1순위 타겟으로 생존률이 바닥을 찍는 게 기수이니 아무나 뽑을 순 없지 ㄹㅇ
18:16
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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