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무예도보통지 무기 외에 조선군이 사용한 병기

익명_871415
2943 2 6

image.png

image.png

image.png

 

1. 삼릉장

 

무예청(무예별감)들이 쓰던 세모진 막대기. 삼모방망이라고 보면 된다.

 

만기요람에 따르면 무예별감 1/3이 삼릉장으로 무장했다고 한다.(나머지 2/3은 조총)

 

재밌는 건 저 승정원일기(인조 14년 12월 21일) 기사 보면 빙고의 건물을 헐어서 삼릉장을 잔뜩 만들어뒀다고 하는데

 

image.png

image.png

 

 

조선시대 빙고는 한강 근처에 있었고 강대매질꾼들이 긴 방망이를 잘 썼다고 함. 

 

삼릉장은 구한말 고종 시절까지 쓰였다고 한다.

 

image.png

2. 도끼

 

환도, 조총, 삼릉장과 같이 쓴 무기. 용호영 군기 목록에 77자루가 있었다고 하고 정조 시절 일성록 기록에도 장용영에서 50자루 새로 마련한 기록이 나온다.

 

무기로서는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은 거 같다. 군기를 마련하거나 보수한 기록에 환도 조총 같은 주력병기는 항상 나오지만 도끼는 드물게 나옴.

 

그래도 군입대 전까지는 일상적으로 사용한 도구일 테니 택견 도끼질은 여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신고공유스크랩

댓글 6

댓글 쓰기
1등 익명_581484
이렇게 보니까 나무 몽둥이 진짜 좋아했네 ㅋㅋㅋㅋㅋ
23:36
25.01.04.
3등 익명_697937
성에 침입한 적을 잡는 것에는 몽둥이만 한 것이 없다??? 이쯤 되면 칼보다 몽둥이 좋아한 거 맞나본데ㅋㅋㅋㅋㅋ
13:39
25.01.05.
익명_697759
칼보다 몽둥이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칼은 비싸고, 만들기도 어렵고, 관리도 힘들고, 배우는데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 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어서 그런 듯.

중세 유럽의 여러 검술가들도 쿼터스태프를 사용한 봉술을 가르치고는 했다. 장봉술은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을 가리지 않고 두루 등장하지만, 특히 영국이 쿼터스태프를 높이 샀기 때문에 현재도 상당히 '영국적인' 무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예를 들어 헨리 8세 시절에 설립된 일종의 소드마스터 길드인 'Company of Maisters of the Science of Defence'는 레이피어와 브로드소드 검법과 함께 쿼터스태프 전투법을 가르쳤다. 그만큼 당시 쿼터스태프가 어디에나 볼 수 있는 무기였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로빈 후드 설화에서도 근접전은 쿼터스태프라는 인상이 매우 강하다. 로빈 후드가 칼질을 한 사례는 얼마 없다. 어지간하면 무법자들끼리 일기토를 할 때도 쿼터스태프나 활 솜씨로 승부를 가렸다.

그리고 목봉이라서 화려하지 않고 다소 모양 빠지는 형태와는 달리 이 무기의 위력은 절대 약하지 않다. 결투에서 쿼터스태프를 지닌 수병이 검객 세 명을 순식간에 이겨버린 기록도 있다.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평범한 영국의 수병이 스페인의 데스트레자 검술을 익힌 레이피어 검객 세 명을 제압한 일이다.

중국 송나라도 금나라의 중장갑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나무에 금속테를 두른 봉으로 상대하여 금나라 중장갑기병을 전멸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즉, 봉은 갑옷을 입은 상대에게도 유효타를 날릴 수 있는 무기다. 칼로 자른다거나 하는 장면이 창작물에 나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튼튼한 나무로 만든 물건이라 칼로 좀 찍어서는 흠집밖에 안 난다. 오히려 잘리더라도 잘린 두 부분을 양손무기로 사용할 수 있고, 잘린 면에 따라 오히려 살상력이 생길 수도 있다. 그리고 현대의 발달된 고탄소강 도검으로도 짚단 묶음을 베려면 상당한 수련을 해야 하는데, 현대의 검보다 재질이 열등한 검으로 바싹 말리고 마감재까지 바른 하드우드 몽둥이를 내리치면 분명히 검이 휘고 이가 나갈 터, 검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검사의 입장에서는 이기더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성호 이익도 그의 책인 성호사설에서 "지금 향병(鄕兵)이 지니고 있는 칼은 모두 호미를 펴서 만든 것이어서 찍어도 베어지지 않고 몽둥이와 대항해도 반드시 꺾어지게 되니, 그 사용에 있어서는 도리어 나무 몽둥이만도 못하다. 옛날 이주영(爾朱榮)은 갈영(葛榮)과 싸울 때에 창과 칼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 몽둥이로 승리를 거두었으니, 사람도 훈련한 사람이 아니고 병기도 날카로운 병기가 아닐 바에는 차라리 몽둥이를 사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면서 '싸울 때는 물렁한 쇠칼보다 단단한 나무 몽둥이가 더 낫다'고 주장했다. 전근대 기술로 만들어진 칼이 현대공법으로 만들어진 싸구려 식칼보다도 못한 경우가 많고, 그나마 잘 만들어진 칼이라 해도 그것을 날카롭게 갈 정교한 숫돌이 거의 없었던 당대 사람들의 상황으로는 확실히 현실성이 있는 주장이었다. 현대에 들어와 기술이 발달되었음에도, 이미 완성된 도구를 가져다가 칼로 가공하기란 내구성이 안 좋아져서 피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물며 저 시대에 농기구를 가져다가 칼로 재가공했다면 고철 수준 품질일 게 뻔했다.
02:17
25.01.06.
익명_924746
당시의 무기 제조비용을 올려봅니다.

각궁 - 쌀 2가마 7두 5승
화살 - 일반 화살인 장전은 1부 (30발)에 쌀 1가마, 편전은 쌀 10 말
환도 - 쌀 2가마 5말
창 - 쌀 2가마, 단 삼지창과 요구창은 4가마 5말
조총 - 쌀 3가마 5말
갑옷 - 의복 내부에 쇠나 가죽 조각을 쇠못으로 박아 고정시킨 두정갑의 경우 쌀 16가마 10말 쇠투구는 4가마 5말, 합이 21가마..... (영의정 8달치 월급과 맞먹는군요.....)

이 시대 물가는 보통 쌀 1가마에 상평통보 4~5냥이었고 좁쌀 1가마는 3냥, 콩 1가마는 2냥, 소금 1가마는 2냥에서 비싸면 4.5냥, 무명이나 베 1필은 2냥 이었답니다.

참고로 군인 봉급은 훈련도감 기준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보병-- 매월 쌀 4말이 초봉, 그후 승급해서 최대 9말까지이다.

기병-- 매월 쌀 10말에 콩 3말, 말을 못받으면 쌀 9말로 깍는다.

여기에 봉족료(일종의 수당?)가 매년 무명 9필씩 나옵니다. 그외 패두등의 직책을 맡으면 쌀 1말에 좁쌀 2말, 겸사복(임금님 호위병)을 맡으면 쌀 3말의 추가 수당이 지급됩니다. 임금님 거동하시는데 따라가면 돈 4전을 준다는군요. (이 시절에도 수당으로 먹고 살았던거냐?)

그리고 참고로 당시 성인 남자의 쌀 소비량은 1끼에 7홉이었습니다. (세상에.....-_-)

[출처] [스크랩] 조선시대 무기 가격|작성자 존양v
14:58
25.01.06.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한달이 지난 게시글은 로그인한 사용자만 토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공유

퍼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