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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역사] 훈련도감과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의 지역적/계층적 상관관계는

익명_45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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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aekkyeon.net/column/11525

 

2016년에 이미 윗대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에서 주요 연구과제 중 하나로써 언급된 바가 있긴 함.

 

그런데 그놈의 정통성 논쟁 때문에 저 중요한 떡밥이 소리소문 없이 묻힌 게 레전드...

 

어쨌든 위 글에 대해 약간의 첨언을 하자면, 아래의 이미지는 링크를 건 칼럼에 올라와 있는 지도들 중 하나에 색상별로 군영의 위치와 분영을 표시한 것인데, 특히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붉은 색으로 표시된 훈련도감의 본영과 분영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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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양 내외부의 군영들은 그림에 표시된 것 이외에도 꽤 많았다고 하지만 일단 그림 위주로 설명을 좀 하자면 우하단 동그라미 내에 있는 [하도감] 같은 경우는 한양 내에 있던 훈련도감의 분영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곳으로

 

https://yugakkwon.com/taekkyeon/253276

 

이 글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훈련원 인근에 무관들과 병사들이 많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이유가 저래서 그럼.

 

훈련도감은 도성 내 여러 곳에 분영을 두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병사들이 상시 주둔하는 분영인 하도감이 저 훈련원 옆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임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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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걸로 추정되는 김명근 선생님의 까기가 왕십리 일대의 아이들의 놀이였다고 하는데, 당시 아랫대로 구분되었던 지역에 훈련원과 훈련도감의 최대 분영인 하도감이 있었고 그곳에 출퇴근 하던 군관과 병사들의 주요 거주지가 남산과 왕십리 일대였다는 걸 떠올려 보면 뭔가 묘하다 할 수 있음.

 

그리고 왼쪽 위 동그라미는 훈련도감 본영이 위치해 있던 지역을 표시한 것인데 이건 아래 지도와 함께 볼 필요가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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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는 주민들의 직업과 계층에 따라 당대 한양의 거주지를 분류한 것으로,

붉은 색 박스 안은 훈련도감 본영과 서촌이 위치한 웃대 지역이고 푸른 색 박스 안은 훈련원과 하도감이 위치한 아랫대 일대를 표시한 것인데 흥미롭게도 주요 거주자들의 신분이 지역별로 확 갈리는 것을 알 수 있음. 


훈련도감 본영이 위치한 윗대 지역은 주요 거주민들이 하급 관리였고, 

훈련원과 하도감이 위치한 아랫대 지역은 주 거주민들이 하급 군인 주거지로 표시됨.

 

해당 논문을 쓴 저자는 한양의 신분구조를 아래와 같이 총 4가지로 구분을 하였는데, 

 

스크린샷 2024-12-12 111935.png

보다시피 이 4가지 계층에서 위 지도의 하급 관리는 2계층의 중인(잡과 출신, 무관, 경아전)으로 대응되며 하급 군인은 3계층인 하급 군병(갑사, 훈련도감의 직업군, 기타 군영 번상병)으로 대응된다는 것을 추론 가능함.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라 할 수 있는데

 

하나는 동일하게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본영과 분영의 구성원들의 신분과 계층이 분명하게 구분이 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본영은 중인 출신의 별감, 무관 위주. 하도감은 왕십리 일대에 거주한 병사 위주.)

 

다른 하나는 신분제 사회이기에 계층별로 향유하는 문화가 다른 것이 당연한 시대적 상황에서, 상이한 두 지역과 계층이 동일한 문화(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를 공유할 수 있던 것은 훈련도감이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말임.

 

요컨대 윗대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협회의 칼럼 글의 결론과 같이, 이렇듯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과 훈련도감을 위시한 조선의 군영들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였다고 보아야 함이 맞다 할 수 있으며,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의 기술/문화/전파의 과정 등을 추적하거나 연구를 하기 위해선 조선의 군영의 시스템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라 해야 할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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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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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334751
훈련도감의 군영들 간에 지역에 따라 구성원들의 신분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몰랐네. 이렇게 되면 윗대와 아랫대의 택견꾼들도 서로 신분이 달랐다는 얘긴데 상상력이 자극되는구만.
16:04
24.12.12.

ㅇㅇ 님 말마따나 훈련도감의 군영들 간에 지역에 따라 구성원들의 신분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 꽤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에 동의하는 게,

 

사족이 될 것 같아 본문엔 딱히 적지 않았지만, 조선이 신분제 사회였으며 지역별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신분이 달랐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보면 송덕기 옹께서 굳이 본인의 기예를 '웃대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이라 구분하여 지칭하신 점이나, 아랫대와 윗대의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꾼이 싸우게 되면 윗대의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꾼이 이긴다고 술회하셨던 일화 등이 매끄럽게 설명이 되기 때문임.

왜 그러냐면 별감직을 맡은 중인들과 군영의 무관들로 구성된 웃대 측에선 태껸이라는 공통된 문화를 함께 향유하면서도 한편으론 양인, 심하면 천민 출신까지 함께 섞여 있는 병사 계층으로 구성되어있는 아랫대하고는 신분/기술적 격차가 있다는 우월의식 내지는 구분의식이 있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거든.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도 특정 고수익 직종이 뒤틀린 우월의식을 갖는 경우가 쎄고 쎈 것만 봐도 신분제가 현역이었던 시대에 그런 관념이 없었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경우에 가깝지.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고 한다면 웃대/아랫대의 구분이 단순한 지역의 구분뿐만이 아니라 신분/직종을 망라한 개념적 구분이었단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게 될 경우 웃대와 아랫대는 단순한 지역적 구분이었을 뿐이며 둘 모두 동일한 태껸을 한 거라는 기존의 학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꽤나 중요한 연구 주제인 게 맞다고 본다.

16:46
24.12.12.
2등 익명_770494
이런 연구자료들이 태껸 재발굴 때 알았다면, 오늘날 태껸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려나?(이건 좀 자신이 없네...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한 신비주의와 천민자본주의에서 파생된 상술들이 난무했을 때니...)
17:57
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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