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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조선사회를 좀만 파 보면 편쌈에서 칼질이 나왔다는 게 딱히 이상할 일이 아닌 게

익명_232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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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적(明火賊)이라고, 등장 자체는 조선 초중기부터였지만 18~19세기에 크게 창궐한 대규모 강도떼가 있는데 이게 조금만 알아봐도 기겁할 내용 투성이임.

 

「銅錢이 유통된 이후로, 동전은 가볍고 저장에 용이하여 팔고 쓰는데 편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간활무뢰한 무리들이 黨을 만들어서 山澤에 몰려들었다. 그 규모가 작은 경우는 수십 명씩 무리를 이루어 한밤중에 횃불을 들고 마을을 약탈한다. 규모가 큰 경우는 백 명, 천 명으로 무리를 이루어 두목을 두기까지 하는데 守令 혹은 邊將이라 칭한다. 日傘을 펼치고 총포를 쏘아대며 대낮에 거리낌이 없이 錢貨를 약탈한다. 만약 약탈한 물품이 곡물과 같이 운반하기 어려운 물건이면 유개들에게 나누어 주고 스스로 義賊이라 칭한다.」

≪承政院日記≫636책, 영조 3년 윤 3월 16일

 

당시 기록을 보면 저 명화적이라는 도적떼는 최소가 40~50명이 몰려다니고, 분명한 우두머리가 있어서 조직의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데다, 심지어 백명, 천명이 모여들면 관아에 쳐들어 가서 붙잡힌 조직원들을 탈옥시키거나 아예 관군을 약탈하는 등, 분명히 강도떼의 범주를 넘어선 행동을 벌이게 됨. 

 

이런 사건들의 기반엔 토지겸병의 심화와 가혹한 수취제도에 의해 발생하게 된 대규모의 유민층의 등장이 있었는데, 그나마 조선이 나라꼴은 어찌저찌 유지하던 숙종 시절 대구에서 잡힌 도적집단과 그 주변인들을 조사한 결과가 

"아니, 얘들 전부 민증도 없고 주소지도 없는데요????" 였던 것만 봐도 얼마나 후기 조선 사회가 개판이었는지 짐작이 갈 거임.

 

그리고 저런 체제의 모순이 해결되기는 커녕, 훨씬 심화되고 악화된 조선 말쯤 가면 상품화폐 경제의 발달로 인해 향촌사회에서 퇴출된 유민들이 도시에 흡수되는 양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당연히 치안의 악화를 불러옴.

 

맨날 보던 사람들이 아니라 출신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뜨내기들이 도시로 몰려든 거고, 뜨내기 특. 「일 저지르면 튀면 그만임.」 이다 보니까 말 다 한 거지. 

 

이렇듯 출신도, 과거도 알 수 없는 유민들이 우르르 도시로 유입되고, 중앙의 행정력이 닿지 않는 지역에는 양반가와 관을 대놓고 털어먹는 도적떼가 창궐했던 것이 후기 조선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PJLH에서 나온 장사 이수영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던 도적떼 수괴의 목을 부러뜨린 일화나, 택견의 기술 중 팔짱끼기의 사용법 중 하나가 골목에서 튀어 나오는 칼침 대비용 기술이었다는 송덕기 옹의 증언이 전부 설명이 됨.

 

그러니까 저 시절 택견꾼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녔을 사람들은 전부 진짜배기 '생존자' 였다는 거임 ㅇㅇ. 그렇게 행세하고 다니려면 양반가 한 번 쯤은 털어본 전적을 가진 놈들이랑 좋던 싫던 부대껴야 했을테니 약한 사람들은 전부 '자연선택' 당했을 거란 거(...)

 

이런 험악한 발달과정을 거친 택견의 이미지를 하하호호 상생공영으로 씹창을 내 놓다니, 대한택견 이노옴..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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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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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802821

도적떼가 저렇게 많았는지는 몰랐네 ㄷㄷ

18:43
24.12.03.
2등 익명_380298

찾아보니까 저 시대 이전에도 어지간했더라 ㅋㅋㅋㅋ

 

농번기에는 농사꾼으로 일하다가 농한기엔 화적이 되어서 강도질 했다던데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로운 조선은 어디에...?

19:43
24.12.03.
3등 익명_531674
조선이 이렇게 씹창나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임? 처음부터 그랬으려나?
21:18
24.12.03.
익명_044273
조선도 국가의 행정력에 한계가 있는 전근대국가였던만큼 조선 초기부터 도적이나 민란이 빈번하긴 했는데 임란/호란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거기다 경신/을병 대기근 2연타를 맞게 되면서 사실상 국가 차원의 그로기 상태에 빠짐.

그나마 명군 라인에 든다 할 수 있는 영, 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겨우 회복세에 들었지만 1700년대 이후 농업, 공업기술이 발전되고, 그 결과 잉여생산물이 증가하게 되면서 상품경제화가 촉진되게 되는데 그 결과가 본문에 나온 유민들의 대규모 증가와 그로 인한 도시화였음.

그런 대격변의 시기에 하필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국가의 시스템이 변화하는 시대를 못 따라가면서 그만...
09:00
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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