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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껸에도 나노리가 있었다더라

익명_651215
4155 1 2

https://youtu.be/heLsGYMDSpU

 

2분 20초에 선수 족보 읊는 게 나오는데 걍 최대한 전통색 내기 위한 연출인가 했더니 진짜 태껸(택견, Taekkyeon)판 전통이라네??

 

이걸 보면 태껸꾼, 더 넓게 나가 중인, 무관 계층의 정체성이 생각보다 매우 강했고 태껸은 그 정체성의 표출 수단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노리가 전형적인 무사문화인데 전근대에 혈통 거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는지 생각하면...

 

그도 그럴 게 2대 이상 복무하면 면천해주는 거 때문에 조선군 태반이 노비 출신이었는데 달리 말하면 신분 상승 욕구가 매우 강한 집단이란 거임.

 

저 시절 읊은 족보란 게 신뢰성이 별로 없긴 하지만... 어쨌든 문반 고위직으로 진출도 막혀 있고 결국 내세울 건 한양도성 내 상권 장악으로 쌓은 부와 태껸, 편싸움, 석전으로 무위 떨치는 것으로라도 자신의 뿌리가 잘났음을 어필하고 싶었단 거지.

 

조선 말기에 태껸판이 성행했던 거 자체가 신분제 및 군영의 붕괴, 상업 발달이 모두 맞물린 효과인 거.

 

그럼 팔장사이자 종친인 이수영은 뭐냐? 하면 종친도 마찬가지로 신분만 높지 관직 막힌 건 마찬가지라 어디서 이름 떨칠 만한 게 태껸, 편싸움 같은 거뿐이었음. 애초에 대원군이 끼고 다니던 천하장안도 그렇고 팔장사부터가 왕실이 비선으로 부리던 사조직이었으니...

 

이렇다면 당대에 태껸판 보는 인식이 좋지 않았던 것이나, 송덕기옹이 '깡패나 하던 무술'이라고 일축하거나 문화재로서 보존해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태껸꾼으로서 자부심은 상당하셨던 게 설명됨.

 

마피아의 오메르타라든가 야쿠자들이 사카즈키고토하면서 사무라이 코스프레라든가 외부에서는 그저 건달들 쌩쑈하는 거지만 그 집단 내에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인 거랑 마찬가지인 거지. 

 

편싸움도 격검대회마냥 1:1 비무결투로 시작한 것도 그렇고 무술유파스러운 예식인 태껸무고춤도 그렇고 구한말 태껸은 중국, 일본 같은 도장무술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던 걸로 보임. 윗대/아랫대의 기풍이 다른 거나 오군영별로 잘하는 무술이 갈렸던 거 보면 이미 유파화의 징조는 보이고 있었음.

 

그전에 나라가 망해서 결이 끊어져 버렸지만...

 

한 줄 요약: 태껸판에는 무사, 무도 문화의 싹이 자라고 있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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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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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은 시간 순서가 반대라고 봄. 싹이 자라고 있던 게 아니라 고려 무신정권 시절 무사 문화의 흔적기관이 태껸에 남아 있던 거겠지.

그 점도 글 쓰는 양반들이 태껸 언급하기 싫어했던 요소 중 하나일 테고.
19:06
24.11.19.
2등 익명_221575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 가문 이름을 대면서 싸움에 나서는 게 굉장히 전사 사회적인 행동이긴 하지. 양반들이 느끼기에는 쟤들 뭐냐,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20:51
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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