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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일본도와 일본 검술이 고평가 받은 이유.

익명_105050
2768 0 37

https://www.fmkorea.com/best/6788788345

 

결론 : 종합하자면 외국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졌던 검술이 일본에서는 별 변화없이 계속 유지되었기에 외국과 일본이 접촉할 때마다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일본도와 검술을 너무 올려칠 필요도, 내려칠 필요도 없다는 재미없는 결론.

 

그리고 밑에 달린 인상 깊은 베댓 하나.

일론 머스크가 한 말이 떠오르네

'기술이 가만두면 알아서 발전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피라미드를 짓던 기술이 실전되고 로마의 하수도 기술이 잊혀졌듯이
기술은 방치되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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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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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393942
당장 결련에서 활개짓 사라진 것만 봐도 뭐... 안 쓰면 사라지는 게 당연한 거임 ㅇㅇ
09:07
24.03.29.
2등 익명_795542
안 쓰면 잊히는 거지. 댓글이 꽤 인상 깊네.
14:57
24.03.29.

냉전기까지는 군수업계 리드하던 유럽이 장기간의 평화로 군축했다가 노하우도 잃어버리고 븅신 되어서는 뒤늦게 한국 무기 수입하며 K9 대단해! 외치는 거 보면... 현대에도 반복되고 있는 역사지.

02:05
24.03.30.
근데 조선시대에 정조 때 까지만 해도 선비들이 죄다 칼차고 다녔는데 중간에 이상한 소리가 있네
02:11
24.03.31.

까마구둥지 블로그 보고 얘기하는 거 같은데 전혀요? 오히려 칼 차고 다닌 남명 조식 같은 선비가 별종 취급받음. 세종 때부터 무반들조차 칼 차기 싫어해서 세종대왕이 강제로 칼 차야 입궐 가능케 했는데 그마저도 성종 때 폐지됐는데 무슨.

까마구둥지의 그 글은 '생각보다 칼 차거나 칼을 소중히 한 선비들이 있었다' 정도이지 조선시대 내내 도검패용은 사대부들이 꺼려하는 풍습이었음.

03:48
24.03.31.
까마귀 둥지글 말고도 실록이나 다른기록들 보면 선비들 칼차고 다니거나 류승룡 조식 선생같이 칼 소지 하고 다니던 선비들의 실제 유물들도 많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19:54
24.04.01.
도검패용 문화가 주류문화였으면 기록에 안 남을 수가 없음. 선비들이 심의 입고 갓 쓰고 다녔다는 건 회화로도 썩어넘치게 많음. 왜? 주류문화니까. 조선시대 회화가 그렇게 많은데 환도패용한 묘사는 무반이거나 특정 행사가 있을 때뿐임. 옆동네 사무라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칼 차고 다닌 거랑 대조적이지. 조선시대는 숭문천무가 주류였고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
12:39
24.04.02.

무슨 조선이 숭문천무가 주류냐 ㅋㅋㅋㅋ 조선이 문을 더 중시한 나라는 맞아도 고려보단 무를 우대해줬음 고려에서는 문신이 무신직을 맡는건 가능했어도 무신이 문신직을 맡는건 불가능했고 군 지휘도 문신들이 맡았고 무신은 정규 시험으로 뽑지도 않았음. 올라갈 수있는 관직도 정3품이 최대였음.당시에 문을 더 중요시한건 조선만 그런게 아니라 명 청 일본 베트남 다 그랬고

20:07
24.04.17.
그 사무라이들도 에도 시대때 되면 칼 쓰는 법도 몰라서 장식으로 달고다니는 사무라이들이 다수였다
20:07
24.04.17.
한명회랑 류승룡이 무신이냐? 그리고 양반들을 문반 무반 이렇게 둘로 나누는건 의미가 없음.둘다 겸직하는 양반들도 많았어서
20:09
24.04.17.
비지류(碑誌類) 의정부 영의정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공(韓公) 신도비명 병서 계유년(1453, 단종1) 10월에 의병(義兵)을 일으키려 하는데, 한두 명이 의구심을 품고 군중을 저지하는 자가 있자 공이 칼을 뽑아 들고 크게 외치기를,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은 사람이라면 면하기 어려운데,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그래도 헛되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감히 다른 마음을 갖는 자는 벨 것이다.” 하였다. 이에 의사(義士)를 모집하여 드디어 원흉을 제거하였는데, 머리를 빗고 벼 사이의 잡초를 제거하듯이 하여 큰 난을 평정하였다.
사가문집
20:14
24.04.17.
말 타고 나가자니 진흙탕 길이 두려워 / 出門騎馬怕泥深, 권문세가를 날로 심방하지 못하노니 / 不向權門日訪尋, 칼 보며 술 마시면 한적하기 그지없고 / 看劍引杯閑寂寂, 책 베고 환약 지어라 늙음만 엄습해 오네 / 枕書丸藥老侵侵, 고독한 신세는 형체가 그림자 의지하고 / 伶仃身世形依影, 전원에 돌아갈 일은 마음에게 말하면서 / 歸去田園口語心, 요순 같은 임금 만들 꾀 없음이 부끄러워 / 堯舜慙無致君術, 백발의 사업을 조용히 읊조림에 부쳤다오 / 白頭事業付沈吟
사가문집
20:33
24.04.17.
사화가 일어나던 날 숙직하였는데, 밤 이경에 정원 서리(書吏)가 말하기를, “재상 두어 사람이 가만히 영추문(迎秋門)으로 숨어 들어왔고, 근정전(勤政殿)에 불빛이 있는데 군사가 에워싸고 서 있습니다.” 하였다. 숙직하던 승지 공서린(孔瑞麟)ㆍ윤자임(尹自任)ㆍ한림 이구(李構)와 함께 합문(閤門) 밖에 나아갔다. 잠깐 뒤에 내수(內豎) 신순강(申順剛)이 나와서 성운(成雲)을 부르니, 성운이 칼을 차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공이 붓을 쥐고 쫓아가니 신순강이 문지기를 시켜 잡인(雜人)을 금단하라고 하였다. 공이 성운의 띠를 거머쥐고 들어가려고 하니, 문지기가 공의 손을 쳐서 떼어 놓고 함께 붙들고 나왔다.
기묘록보유
20:35
24.04.17.

https://www.dailycc.net/news/photo/photos/20110729/art_1311161010.jpg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cmmn/wrtFileImageView.do?wrtSn=13216462&filePath=L2Rpc2sxL25ld2RhdGEvMjAxOS8yMS9DTFMxMDAwNC8xMzIxNjQ2Ml9XUlRfMjAxOTExMDhfMQ==&thumbAt=Y&thumbSe=b_tbumb&wrtTy=10004

이거랑 위에 댓글들 봐라

20:36
24.04.17.
익명_013772
그거 환도 같은 전투용 칼이 아니라 장도(粧刀 : 은장도 부류의 )같은 장식용 칼을 말하는거껄?

장도(粧刀) :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말하며, 허리춤에 차고 옷고름에 찬다 하여 패도(佩刀),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하여 낭도(囊刀)라고도 불렀다. 보통 '은'으로 세공된 물건이 많다 보니 '은장도'라고 흔히 불리우지만, 재질에 따라 다른 이름도 붙는다.

TV 사극의 영향으로, 정절을 잃을 위기에 처한 여성이 자결하기 위해 쓰는 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흔한데, 실제 쓰임새는 자결용이나 호신용 무기보다는 맥가이버칼 같은 다용도 도구에 가까웠다. 애초에 여성만 썼던 물건도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성별을 불문하고 패용하던 물건이었으며 남성이 장도를 패용한 옛날 사진도 볼 수 있다.
16:07
24.03.31.
무진년 전폐왕 우 14년(명 태조 홍무 21, 1388) 염흥방이 승복을 받으려고 국문을 참혹하게 하였으나, 조반이 굽히지 않고 욕하고 꾸짖으며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 국적(國賊)을 베고자 한다. 너와 나는 서로 송사(訟事)하는 자인데, 어찌 나를 국문하느냐?” 하였다. 염흥방이 더욱 노하여 사람을 시켜 그 입을 마구 치게 하였다. 수일 후에 우(우왕)가 최영의 집에 가서 조반의 옥사를 의논하였는데, 이날 조반을 풀어 주도록 명하고 의약(醫藥)을 내리고, 마침내 염흥방을 순군(巡軍)에 내리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이 명철하시다.” 하였다. 우가 조반의 일곱 살 먹은 아이를 불러 그 아버지의 한 바를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다만 칼을 빼어 시험하면서 말씀하시기를 ‘탐욕스러운 7~8인의 재상을 목 베어 나의 뜻을 시원하게 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자가 반드시 기한(飢寒)에 이르리라.’ 하더이다.” 하였다.
동사강목

조반이라는 문신임
20:12
24.04.17.
그리고 무슨 갑사랑 팽배수가 세조 때 폐지가 되냐 ㅋㅋㅋㅋ 좀 팸코발 역사왜곡 글 좀 안가지고 오면 안되나
02:13
24.03.31.
익명_013772
주제도 아니고 곁가지로 지나가듯이 언급된게 틀렸다고 역사왜곡이라 말하는 건 좀...
16:09
24.03.31.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twar&no=903114

세조 때 공신들 땅 나눠주겠다고 팽배수 같은 전문군병을 양인개병으로 바꿔놨는데 이게 폐지나 다름없지. 역사왜곡은 니가 하고 있네
04:53
24.04.01.
제발 dc 펨코 이딴 글 좀 걸러서봐라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kumi17cs1013&logNo=221819756919&referrerCode=0&searchKeyword=%EC%84%B8%EC%A1%B0%20%EA%B0%91%EC%82%AC

오로라라고 조선사 전공한 애가 쓴 글임
20:05
24.04.01.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kumi17cs1013&logNo=221249506617&referrerCode=0&searchKeyword=%EA%B0%91%EC%82%AC
나중에 오히려 갑사가 더 늘어났구만 뭔 소리임
20:08
24.04.01.
애초에 민간에서는 양반 중인 검계 한량 아닌이상 칼 쓸일도 없고 군에서는 조선 전기에 기병이 주력이었으니까 마상용 칼로 편하게 쓰려고 환도 줄인 적은 있어도 군에서 검술을 천시한 적은 없음 본국검 예도만 봐도 다 조선 검술인데
02:25
24.03.31.
익명_687568
조선은 활 중심이었고 창검술을 뒷전에 미룬건 맞지. 당장 사학과 교수들도 그렇게 말하고 가르치고 책에도 그렇게 저술돼있는게 많고
임진왜란 당시 상소문이나 보고서들 보면 상당히 딸린다는 언급이 많은데
03:19
24.03.31.

여진족 왜구가 주적이여서 활 화포 기병을 조선군 주력으로 했다고 모든 조선군이 검과 창을 천시하고 기피했다고 하는건 모순이지 

그리고 기병들 같은 경우는 동서양 막론하고 창 칼 활 도끼 폴암 백병전 기병전 전부 다 가능했던 엘리트 군인들임

19:40
24.04.01.
선조실록에 명백하게 군에서 검술을 천시해서 전승이 끊어졌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본국검 예도는 왜군한테 썰리고 난 후에 뒤늦게 만들어진 거고. 그 이후에도 검술 인기는 별로 없어서 19세기 초 무과 응시자 목록 보면 그 본국검 예도는 응시자가 거의 없고 제일 간단한 제독검, 쌍수도밖에 없음. 몇몇 임금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했을 뿐이지 조선시대 내내 검술 천시가 기본 문화였음.
03:53
24.03.31.
일부 군영에서 그런걸 왜 조선군 전체가 검술을 천시하고 소실한거처럼 일반화를 하냐?
22:38
24.04.17.

이미 임진왜란 이후에 동양 서양 막론하고 다 화약무기가 전쟁터에서 주력으로 자리잡았고 그때부터 조선군 주력은 포수였는데 검을 주력으로 쓰겠음? 원래도 보조용이었는데?근데 보조로 쓴 걸 천시했다고 하냐?하물며 19세기때인데 그걸 근거라고 떠드네
https://m.blog.naver.com/kkumi17cs1013/221221296724
https://m.blog.naver.com/kkumi17cs1013/221072071465

22:56
24.04.17.
익명_013772

군에서는 검술을 천시하진 않았지만 경시된 측면이 있기는 함.
그리고 이게 군영마다 검술에 대한 입장들이 좀 달라서 한 마디로 단정하긴 어렵네.

16:12
24.03.31.

애초에 조선군에서 환도는 보조무기 취급이었음.
지금 대한민국 국군에서 권총은 보조무기로나 쓰는거랑 똑같은건데 그걸 천시했다고 해석하면 어이가 없지 그냥 쓰는 용도가 다른건데

19:49
24.04.01.
익명_943364
어느 나라든 칼은 전쟁에서 대개 보조무기지. 비싸기도 하고...
12:09
24.04.02.
익명_334613
군영 편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사대부의 교양으로 검술을 익혀야 한다는 게 없었음. 유럽 일본은 그런 게 있었지만.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쓰는 그런 수준임.
12:29
24.04.02.

 

https://m.blog.naver.com/kkumi17cs1013/221477324223

 

https://m.blog.naver.com/kkumi17cs1013/221653317529

 

https://m.blog.naver.com/kkumi17cs1013/221239254717

 

https://m.blog.naver.com/kkumi17cs1013/221286780429

이런거 보고말해라

20:39
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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