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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오싹오싹 택견 시리즈 - 택견과 석전의 상관 관계 -

익명_54638274
2658 0 10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3687648

 

이번 편도 재미있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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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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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익명_34431040
김영만 선생님의 택견 근현대사 연구에 묘사된 걸 보면, 몽둥이 들고 발차기하는 전문 석전꾼들이 왈자라고 불렸다는 내용이 나옴.

그리고 석전이 없을 때 왈자들이 하는 일=도박장 관리자 or 경비 이런 거 하는데, 이게 예전에 여기 나왔던 '별감'이라는 직책의 왕궁 경비대 은퇴 후 돈벌이로 알려진 일이랑 겹침.

즉, 문안 석전패=왈자=은퇴한 별감으로 이어지면서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과의 연결고리가 또 튀어 나옴.

이러면, 과거 송덕기 옹 인터뷰에서 '택견은 어떤 사람들이 주로 수련했나요?'란 질문에 농담하듯이 웃으시면서 '깡패'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설명이 됨.
15:22
23.11.09.
1등 익명_43533094
석전꾼으로 출전했던 택견꾼들이 많았나보네. 아예 문안 석전패의 특징이 발차기를 잘 썼다고 하면.
12:43
23.11.09.
익명_34431040
김영만 선생님의 택견 근현대사 연구에 묘사된 걸 보면, 몽둥이 들고 발차기하는 전문 석전꾼들이 왈자라고 불렸다는 내용이 나옴.

그리고 석전이 없을 때 왈자들이 하는 일=도박장 관리자 or 경비 이런 거 하는데, 이게 예전에 여기 나왔던 '별감'이라는 직책의 왕궁 경비대 은퇴 후 돈벌이로 알려진 일이랑 겹침.

즉, 문안 석전패=왈자=은퇴한 별감으로 이어지면서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과의 연결고리가 또 튀어 나옴.

이러면, 과거 송덕기 옹 인터뷰에서 '택견은 어떤 사람들이 주로 수련했나요?'란 질문에 농담하듯이 웃으시면서 '깡패'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설명이 됨.
15:22
23.11.09.
짱돌 던지고 몽둥이 들고 육박전 하는건 알았는데 방패수도 있고 슬링도 쓰는건 몰랐네 ㅋㅋㅋㅋ 거기다 말타고 기병돌격까지
누가 자꾸 조선을 문약한 나라라고 짖어대는거냐?
19:41
23.11.09.
근데 저 석전 시합전에 하는 격투랑 권투라고 지칭하는 맨손격투는 조선판 베어너클인가? 정확히 무슨 무술인지 좀 알수있었으면 좋겠네
21:42
23.11.09.
석전이 한양에서만 있던 것도 아니고 각 지방마다 크고 작게 했던 것들이라 한양에서 벌어진 석전 같은 경우엔 택견으로 승부를 겨뤘겠지만 지역별로 시합 전에 하는 격투 대회의 양상이 달랐을 가능성이 좀 큰 듯.

대표적으로 평양 같은 경우엔 날파람을 하는 사람들이 손을 섞어 봤겠지. 그리고 씨름으로도 승부를 봤다고 하니까 지역성을 가진 특별한 무술이 없는 동네에서는 씨름으로 승부를 보거나 하지 않았을까.
21:51
23.11.09.
석전 전에 하는 맨손격투도 좀 연구자료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개인적으로 저게 더 흥미롭다.
21:57
23.11.09.
익명_58179202
저기 댓글에 조선군이 약했다는 얘기가 있어서 추가하자면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군이 쭉쭉 밀렸던 것은
1. 조선은 4군 6진 정벌 이후 전쟁양상이 여진족 토벌을 통한 예방전쟁이나 자국 방위전에 초점이 맞춰짐. 전면전보단 여진과 왜구의 국지적인 침략에 대한 방어와 반란에 대비한 제승방략 체계를 썻는데 제승방략은 국가 대 국가 전면전을 상정할 때 적합한 체계가 아님.
2.당시 시대적 상황
전국 시대 이후 계속된 전쟁으로 일본내 치안이 굉장히 안좋아져 일본으로 파견된 조선 통신사들이 계속 실종되거나 죽어나가자 통신사 파견을 중지하게 됨.그 후 조선과 일본 서로 교류가 단절되면서 서로에 대한 정보도 단절되버림. 후에 전국 시대를 끝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일본을 양분한 히데요시가 조선을 교두보 삼아 명을 넘어 인도까지 점령하겠다는 정신나간 침략계획을 세웠고 그의 부인과 부하 장수들 모두 그의 침략계획을 현실성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조선 침략은 히데요시의 계획대로 진행됬고 역사상 유래가 없던 28만 병력의 대규모 해상원정이 시작됨.조선 정부도 바보는 아니었고 임란 전에 있던 을묘왜변과 니탕개의 난 때문에 국방력을 증강시키고 군대 강화에 힘써 침략에 대비했고 최대 3만~5만 정도 일본군의 국소적인 침략을 상정하고 대비했으나 현실은 28만 가량의 수많은 실전경험을 가진 베테랑 군인들이 처들어옴.
3.대규모 침략으로 처들어온 일본군은 조선의 방위체계에 맞춰 전술을 준비했고 조선군이 집결하기도 전에 치는 전략을 써서 죄다 흩어져버리게 만들었고 비정상적인 진격속도로 쭉쭉 밀어버림.
영남 지방에 있던 조선군들은 나름 고군분투 했으나 전력차이로 전부 전멸하거나 도망가버림.
4.조정에서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당시 북방에서 활약하던 신립을 충주로 내려보냈으나 전근대시대 정보와 통신기술 한계로 전략 실수,병력의 훈련도와 질적 수준 차이,지형 등 복합적인 이유로 탄금대에서 처참하게 패배 그 후 한양까지 가는 루트가 뻥 뚫리자 선조는 빠르게 빤스런하고 김명원에게 한강 사수를 맡겼으나 실패하고 신각장군이 해유령 전투에서 승전하기 전까지 육지에선 계속 패배했었음
23:17
23.11.09.
익명_58179202
후에 일본군의 공세와 보급에도 한계가 다다르고 조선군도 전열을 가다듬고 대대적으로 반격에 나섰으며 의병들도 각지에서 일어나고 조선 수군도 계속 승리하면서 일본군의 보급을 끊으면서 전세가 바뀌기 시작함. 실전경험도 중요한 요소긴 하지만 실전경험=전투력은 아니고 단순히 약했던 조선군이 실전경험만 거쳐서 세진게 아니라 일본군과의 전투를 거치면서 유격전 수성전 등 대응방법들을 찾기 시작했고 전세에도 영향을 미친거임
23:26
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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