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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가 발차기 가지고 택견을 팔아먹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익명_62637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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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본인들 역사적 컴플렉스도 있고 YMCA 권법부 관련 관 같은 경우는 본인들이 송덕기 옹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가끔가다 가라데 기술들 시전하면서 택견 딴죽이라고 한다던지 곁차기라면서 영상 올리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근데 태권도 쪽에서 택견 들먹이면서 가라데는 발차기가 없는 무술이라던지 조선인들이 발차기를 가르친거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되는 사람들이 두명 정도 있다..  청도관 시조 이원국 이라던지 무덕관 시조 황기 그 둘이 불분명한 경력 들이밀며 택견을 배웠다고 주장을 한적이 있어서 그런거 같다...

 

가라데는 발차기가 없던 무술이 전혀 아니었다 1924년 송도관 영상을 보면 분명히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뒤차기(스피닝 아님) 발바닥으로 얼굴차기 아시바라이 개념에 스냅(케코미) 케아게(찍어누르기) 개념도 분명히 존재 했다

 

 

 

송도관에선 1930년대 중반부터 본인들 기반을 일본에서 잡으며 유도와 차별성을 두기위해 다른 관과는 다르게 후나코시 기고와 그의 제자들 주도로 발기술 연마와 연구를 활발히 했고 그 결과 카타상으로만 쓰고 실제로는 잘 안쓰던 발차기들을 실전에 도입하고 후리기 기술이나 스피닉 백 킥도 만들어 냈다.

거기서 기술들을 배운 후나코시 기고의 직계 제자 이원국이 한국에 귀국후 청도관을 세우고 거기서 발차기 위주의 수련들을 했고 한국내 가라데 열풍에 휩쓸려 중국 무술로 시작한 무덕관의 경우도 가라데로 전환하며 청도관 사범 고용 하고 황기 본인도 몰래 책보며 가라데를 연마했다고 하는데 발 기술 위주 수련하던 청도관 영향으로 무덕관도 발기술 위주의 수련 체계로 돌입

두 관에서 발기술 개발들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참고로 뒤돌려차기가 창무관 계통이 아닌 1963년 청도관 박종수 원로에 의해 탄생 하고 최홍희가 밀어주면서 뒤돌려차기 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내용도 있다. 이 두개 관 관장이 택견을 수련했다 블러핑을 치면서 본인들이 택견이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동류(시토류), 수도관 의 영향을 받았던 조선연무관(지도관)과 YMCA 권법부 경우는 발차기 수련이 없었다는 증언을 전 국기원 부원장 이자 지도관 3대 관장 이종우가 한적도 있고 이 두관 같은 경우는 발기술 을 청도관 무덕관과 교류하면서 활성화 시키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YMCA 권법부 계열 지도자들이 송덕기 옹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본인들 발질을 택견기술이라고 주장하는거 같다. WT 태권도를 주도하던 수도관 계통 지도관 출신들이 발차기 자체를 수련한적이 없으니 가라데가 발차기가 없다고 주장하고 조선인들이 일본건너가서 가라데에 발차기를 가르쳐 50년대 부터 가라데가 발차기를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이원국이나  황기도 불분명한  본인들 택견 수련 들먹이면서 택견이라 주장하니 저런 그림이 그려진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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