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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er12 – 기지(機智)

익명_42687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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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이 있었다.

 

, 털썩 ...

 

순서가 뒤바뀐 소음. 탄환이 도달하고 나서 들리는 늦은 격발음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아주 먼 거리에서의 저격. 유격대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디서 쏘았는가. 겨냥하고 쏜 것인가. 요행이 아니라면 또다시 총격이 있을 것인가. 대응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긴 한가. 시야가 점멸했다. 한순간 아주 높은 집중력으로 모든 것을 끌어 담다가, 또 다른 순간 빛을 빼앗긴 것 마냥 아무것도 담지 못하기도 했다. 하늘에서 내리꽂는 낙뢰. 켜졌다 꺼지는 전등. 불나방에 일렁이는 촛불, 그런 것들로 빗댈 수 있는 전경이었다.

 

그러나 난잡한 시야와 반대로 그들의 몸은 한 곳에서 굳어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기에 추가적인 단서를 얻기 위해 숨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시선만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적은 매우 신중했다. 위협사격 한 번을 하지 않았다. 1분대장은 최악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했다. 적이 유격대원들이 보급받은 화기의 사정거리 밖에 있는 경우가 가장 나빴다. 그것은 힘의 불균형을 의미했다. 비대칭 전력이 있다면 우회 외에는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우회란 단순히 피해가는 것이 아니다. 적은 도망가는 순간에도 봐주지 않는다. 그러니 전력을 지키기 위해선 서로 엄호하면서 축차적으로 빠져나가야만 한다. 누군가는 나머지 인원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대치해야한다는 것이다.

 

알지? 후방재집결이야

 

유격대원들은 상황에 따른 조치 방법을 숙지하고 있었다. 적지에 들어가는 특성상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전방으로 돌진하는 재집결 방식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미 지나온 안전이 확보된 길로 후퇴하여 다시 모인 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으로 정해두었다.

 

신호하면 사격 개시한다. 전방부터 빠진다.”

 

후방재집결에서도 경우에 수는 나뉜다. 전방에서 적이 나타났다면 선두에 있는 전방경계조가 대응사격을 하며 후방경계조가 가장 먼저 이동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열의 중간으로 탄이 날아왔다. 유진이 있는 후방경계조가 가장 마지막에 빠져야 한다.

 

유진은 덜컥 겁이 났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려왔다. 귓가에서 맥박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비겁해지지 마라. 너는 이미 사람을 죽였다. 그런 놈이 무슨 염치로 육신에 대한 미련을 가진단 말인가. 자신의 몸이 그토록 소중한가. 남이랑 뭐가 그리 다르기에.

 

하나만 생각하자.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반보. 한 발을 뗄 수만 있다면 된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걸음이 나가질 않았다. 어지러운 생각들로 머리가 아파온다. 가빠진 호흡. 귀를 떼리는 북소리. , . 지금 당장 숨이 막히고 심장이 멈춰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 하악

 

상황이 거기까지 치닫자 유진은 본능적으로 숨을 뱉으려 했다. 자신의 몸이라는 하나의 세상을 깨고 나가려 하는 것이었다. 꽉 다문 입과 빠드득 갈리는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소리는 그런 투쟁의 증명이었다.

 

지금이야!”

 

이익!”

 

1분대장의 신호에 유진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격에 가담했다. 엎드려 은폐하고 있던 몸을 일으켜 나무 뒤로 몸을 옮겨두고 허공으로 총알을 갈겼다.

 

총성이 주변을 울렸다. 누구도 쉽게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소음이었다. 유격대원들의 고막은 피가 날 것처럼 얼얼했고, 충혈된 눈에서는 눈물이 났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유진은 주변을 살펴야 했다. 자신의 지휘가 없다면 후방경계조 인원들이 유격대에 합류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개죽음은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되었다.

 

노출될 위험을 고사하면서 부지런히 상황을 통제했다. 마침내 자신의 유약한 외피를 부숴버렸다. 어설프게 굳어 있던 진흙덩어리가 바스라졌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서슬 퍼런 내면이 드러났다. 못난 도자기인 줄 알았던 것이 거푸집이었다.

 

한때 새에 빗대어졌던 이의 운명인 것일까. 날개 달린 생명이 무릇 그러하듯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 새 세상이 시작되었다. 더이상 자신을 감출 것이 없어지자 세상 앞에 당당하게 자신을 뽐낼 마음이 생겼다.

 

이동! 퇴출한다!“

 

포화 속에서 후방경계조가 빠져나왔다. 유진은 그 후미가 빠져나올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불길 속에서 달궈졌던 몸뚱이가 봐줄 만한 날붙이가 되어 번뜩였다. 검게 위장된 피부 위로 번들거리는 것이 강철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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