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량전 언박싱 ENG.SUB.(heavy arrow 'yuknyangjeon') 조선무과시험 필수과목 육량전을 만나다!!
익명_46040466
2870 0 5
https://youtu.be/BRagvrPoOIA
쥰내 무거운 화살이라 그래서 얼마나 큰가 싶었더니 화살이 아니라 미사일인데...?
댓글 5
댓글 쓰기와... 겁나 살벌하게 생겼네 저거 맞으면 사람 몸뚱아리는 그냥 꿰뚫고 지나가겠네
22:06
23.06.03.
익명_56773053 에게

아예 다른 화살들하곤 사이즈부터 달라서 저 화살을 쏘는 용으로 만든 활이 아예 따로 있었다는듯...


육량전 전용 활인 육량궁(정량궁)이라는 이름이던데 워낙 장력이 세고 몸에 충격이 많이 와서 무과 시험에서 붙기 위해 저거 가지고 연습하다 골병드는 사람도 많았다는 기록도 남았다고 함 ㄷㄷ
22:21
23.06.03.
익명_56773053 에게
아닌게 아니라, 조선무관이 일본에 통신사 일행으로 갔을 때 육량전을 쓰는 육량궁 시범을 보였는데 가옥의 벽을 부수고 들어간 적도 있어서 쏘지 못 하게 된 일도 있음.
[육량전을 쏘는 활로 육량궁(六兩弓)이 있는데, 달리 육량대궁(六兩大弓) ∙ 정량궁(正兩弓) ∙ 천자궁(天字弓)이라고도 하였다. 통신사행 때 정사와 부사가 대동하는 군관 5명 가운데 육량전을 잘 쏘는 자와 평궁을 잘 쏘는 자 각각 1명을 데리고 갔다. 육량궁은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아니면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활로, 그 활과 화살의 육중한 모양을 일본인에게 보여줌으로써 조선의 국방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일종의 상징물이었다. 곧, 육량궁으로 발사한 육량전은 가옥의 벽을 부수고 들어갈 정도로 파괴력이 놀라웠기 때문에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보낼 때 평궁(平弓)을 다루는 자와 함께 육량궁을 잘 다루는 장사군관을 반드시 보내 국위를 떨쳤다. 1636년 10월 정사 임광(任絖) ∙ 부사 김세렴(金世濂) ∙ 종사관 황호(黃㦿) 등 통신사 일행이 도쿠가와 막부의 태평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아이노시마(藍島)에 머물고 있을 때, 지쿠젠 태수(筑前太守) 구로다 다다유키(黑田忠之)가 몰래 나와 육량궁(六兩弓) 화살을 보고 싶어 한 적이 있다. 같은 해 11월 오사카에서 군관(軍官)들이 활쏘기를 하였는데, 이때 육량궁의 강한 활을 일본관리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당겨 보고 시위를 벌리지 못하는 데 이르러서는 크게 탄복하였다. 1711년 통신사행 때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는 조선의 군관들이 천자궁과 육량전을 당기는 것을 보고 경탄한 적이 있다. 1748년 6월 10일 정사 홍계희(洪啓禧) ∙ 부사 남태기(南泰耆) ∙ 종사관 조명채(曺命采) 등 통신사 일행이 도쿠가와 이에시게(德川家重)의 습직(襲職)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에도 조쇼인(常照院)에서 사예(射藝)가 있었는데, 육량궁을 쏠 경우 사장(射場)의 길이가 매우 짧고 또 1719년 사행 때에 화살이 인가에 떨어져 집안으로 뚫고 들어간 일이 있어 쏘지 못하게 하였다.]
[육량전을 쏘는 활로 육량궁(六兩弓)이 있는데, 달리 육량대궁(六兩大弓) ∙ 정량궁(正兩弓) ∙ 천자궁(天字弓)이라고도 하였다. 통신사행 때 정사와 부사가 대동하는 군관 5명 가운데 육량전을 잘 쏘는 자와 평궁을 잘 쏘는 자 각각 1명을 데리고 갔다. 육량궁은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아니면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활로, 그 활과 화살의 육중한 모양을 일본인에게 보여줌으로써 조선의 국방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일종의 상징물이었다. 곧, 육량궁으로 발사한 육량전은 가옥의 벽을 부수고 들어갈 정도로 파괴력이 놀라웠기 때문에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보낼 때 평궁(平弓)을 다루는 자와 함께 육량궁을 잘 다루는 장사군관을 반드시 보내 국위를 떨쳤다. 1636년 10월 정사 임광(任絖) ∙ 부사 김세렴(金世濂) ∙ 종사관 황호(黃㦿) 등 통신사 일행이 도쿠가와 막부의 태평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아이노시마(藍島)에 머물고 있을 때, 지쿠젠 태수(筑前太守) 구로다 다다유키(黑田忠之)가 몰래 나와 육량궁(六兩弓) 화살을 보고 싶어 한 적이 있다. 같은 해 11월 오사카에서 군관(軍官)들이 활쏘기를 하였는데, 이때 육량궁의 강한 활을 일본관리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당겨 보고 시위를 벌리지 못하는 데 이르러서는 크게 탄복하였다. 1711년 통신사행 때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는 조선의 군관들이 천자궁과 육량전을 당기는 것을 보고 경탄한 적이 있다. 1748년 6월 10일 정사 홍계희(洪啓禧) ∙ 부사 남태기(南泰耆) ∙ 종사관 조명채(曺命采) 등 통신사 일행이 도쿠가와 이에시게(德川家重)의 습직(襲職)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에도 조쇼인(常照院)에서 사예(射藝)가 있었는데, 육량궁을 쏠 경우 사장(射場)의 길이가 매우 짧고 또 1719년 사행 때에 화살이 인가에 떨어져 집안으로 뚫고 들어간 일이 있어 쏘지 못하게 하였다.]
15:50
23.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