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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택견이 쇠퇴한 이유로 추정될만한 힌트를

익명_52927527
3036 0 10

의외로 별감직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음.

 

위키에서 무예별감이란 직책에 대해 검색해보면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B%AC%B4%EC%98%88%EB%B3%84%EA%B0%90(%E6%AD%A6%E8%97%9D%E5%88%A5%E7%9B%A3)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신군대와 순검 제도를 도입하면서 무예별감은 기존의 군영군들과 같이 해체되었다.

라고 나와 있고.

 

https://taekkyeon.net/blog/28156?page=1&category=30629

이 글에선 송덕기 옹의 가족들을 만나고 들은 내용들로는 (송덕기 옹의)형님들이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택견은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고 하는데, 저 말을 반대로 뒤집어서 보면

 

"과거에 택견은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는 기예였다." 가 됨.

 

위의 무예별감의 폐지년도(1894)나 송덕기 옹의 형님들이 택견에 대해 내린 평가(시대에 맞지 않는다)를 종합해서 추측해 보면, 1894년 무예별감직이 폐지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택견은 출세, 혹은 먹고 살기 위해 익히는 기예로써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갑오개혁을 통해 무예별감직이 폐지되면서 중인계층에게 택견의 입지가 줄어들었던 게 아닐까 싶네.

 

더욱이 택견꾼들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걸로 보이는 색주가, 다른 이름으론 기생들이 갑오개혁을 통해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궁중과 지방관에 속한 관기가 해고되고, 1905년 여악의 폐지 그리고 1907년 관기제도가 폐지되는 과정을 통해 별감직 휘하에서 풀려나게 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무리 봐도 택견의 원수는 갑오개혁인 것 같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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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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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19878965
아직은 추측이지만 재미있는 발상인듯. 사실여부를 따지기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그 가설을 토대로 소설과 같은 컨텐츠를 뽑아낼 순 있을 거 같은데?
13:36
23.03.12.
익명_33359335
ㅇㅇ 택견이 사멸하게 된 게 비단 저 이유 뿐만은 아니겠지만 여러 복합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이긴 했을 것 같음.
13:55
23.03.12.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택견을 메인으로 놓고 보면 창작활동을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봄. 워낙 기록들이 남은 게 없는지라... 그래서 창작활동에 있어선 택견을 하였을 계층을 연구해보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함.
14:21
23.03.12.
기존에 나온 택견의 쇠퇴 이유가 이게 더 잘 설명이 되네.
14:25
23.03.12.
수련 인구가 군사, 중인계층에 한정되서 별로 많지도 않았던 게 심지어 그걸 익혀야 하는 이유마저 사라졌으면 뭐...
화승총이 보편화되면서 냉병기들이 사장되어버린 것처럼 사회적으로 택견을 수련할 메리트가 사라지니 저절로 수련자 수가 급감하는 절차를 밟았던 게 아닌가 싶음.
14:34
23.03.12.
택견의 원수는 일제 아니냐 그나마 이어지던거 다 폐지했는데
23:05
23.03.12.

할 사람은 했겠지 싶음. 소위 풍류남아라는 게 포장만 잘 했다 뿐이지 다 그런 종류이니(...)

23:21
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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