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육을 호평하는 식민지인 (구술사를 볼 때 주의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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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14 ~ 1945년까지 30년 넘게 미크로네시아 지역 대부분(사이판, 팔라우 등을 포함)을 통치했음.
이 지역은 조선, 대만과는 달리 국제연맹의 위임 통치령으로 통치가 시작됐고, 그래서 통치 방식도 조선이나 대만과는 차이가 많았는데
먼저 지역 원주민들은 조선인이나 대만인과 달리 일본 국적이 없었고, 일본인과 같은 학교, 교육과정을 다닐 수가 없었음. (일본인 취급이 아니었으므로 일본군 입대도 불가능함)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크로네시아에서 일본 교육 제도를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겠음.
일본은 이 지역 원주민(이하 도민으로 서술) 8세 아동에게 의무 교육을 부여했는데, 이 도민 아동들이 다니는 학교의 명칭은 '공학교'로 의무 3년(본과), 추가 2년(본습과)으로 구성돼 있었고, 일본인으로 치면 '초등학교'에 해당함.
일본은 도민의 '문명화'를 위해 학용품, 의류, 식료품을 대부분 지급하며 의무 교육 보급을 위해 노력했고 그 덕에 1935년 기준 팔라우의 취학률은 97.72%로 매우 높은 편이었음. (다만 다른 지역은 취학률이 높지 못했음. 팔라우는 행정기관이 위치한 곳이라 다른 지역보다 취학률이 높은 것으로 추측)
수업 내용을 보면 수업 시간의 절반이 '일본어' 교육이었고
그 외 역사, 지리, 이과, 농업, 수공 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역사나 지리는 '일본'에 대해 가르쳐 동화 정책의 성격이, 농업이나 수공은 도민을 써먹기 위한 실용적인 성격이 있었다고 보임. 그리고 여자 아이들은 '가사'라는 과목이 있었음
그리고 일본의 문화에 익숙해지라는 의도로 '본습과'에 진학한 도민들이 방과후에 일본인 가정에서 집안일을 돕고 용돈을 받는 '연습생'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돈을 주고 저축하는 건 화폐 경제에 익숙해지라는 의도도 있었을 거임. 얍은 돌 돈을, 팔라우는 조개 돈을 써서..)

(아마 남양군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을 '남양 신사')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한 후로는 동화 정책의 성격이 훨씬 강해져서 1934년부터는 학교에서 궁성 요배, 신사 참배, 기미가요 제창, 황국신민서사 선언, 일본어 사용 강제 등이 실시됐다.
그리고 그 시절 교육답게 체벌이 매우 강했다. 매로 맞거나 걸상을 드는 건 물론이고 머리에서 피가 날 때까지 맞거나, 연필 등으로 손톱 밑을 쑤시는 경우도 있었다고
(이건 나도 학교 다닐 때 당했는데)
자 공학교는 이 정도면 알아본 것 같고, 그러면 공학교를 졸업하면 어떤 학교로 진학했을까?

유감스럽게 그 이상 진학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
공학교를 졸업한 후 가능한 선택지는 딱 두개인데
1. 일본인 후원자를 찾아, 일본 제국의 학교로 유학하는 것. 이 방식으로 구제중학교를 졸업한 원주민은 극소수 존재한다.
2. 시험을 통과해서 목공도재견습소에 진학하는 것 (목공은 대충 실업학교 정도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1년에 30명 정도가 입학했다. 뭐 자동차 분해 조립까지 가르쳤다니 당시 도민들이 배울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교육인듯)
당연히 둘 다 존나 가능성이 낮아서 공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의 도민이 더 이상 교육받지 못하고 바로 취업했다.
이것까지 읽으면 일본 교육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게 아무 것도 없어 보이지만 막상 일본 학교를 졸업한 원주민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일본 학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 Ubal Tellei [그는 멜레케옥 추장 혈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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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도덕 교육에 중점을 두었던 겁니다. 정직함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시간 엄수와 근면성실함도 강조됐죠.
(중략)
요즘 팔라우의 관습은 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팔라우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해 일하지 않고 돈을 위해서 일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어린이가 잘못하면, 혼내고 벌을 주었습니다만, 요즘에는 아이들을 혼내면 부모가 찾아와서 화를 냅니다.

2. Santos Ngirasechedui [그의 아버지는 동부 팔라우의 대추장이었음]
일본인 선생님들의 교육은 제 아버지의 가르침과 비슷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 잘못을 저지르면 가족에게 누가 된다는 사실 등요.
요즘은 민주주의 때문에 평민 출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자유라는 개념 때문에 팔라우의 관습이 훼손되고 있어요. 진짜 정치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추장)이 쫒겨나고 있습니다.
3. Joseph Ilengelkei [그는 가라드의 추장 혈통이다]
일본 교육은 좋았습니다. 제 생각엔, 태평양에서 최고였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건 우리의 생활에 아주 유용한 것들이었죠. 우리는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경쟁 역시 일본이 가르쳐 준 것이죠.
요즘 팔라우 아이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아요. 저는 학교에서 배운 걸 잘 간직했지만요. 하지만 저는 일본식으로 교육받아서 전후에 본 미국인들은 게으르고 어딘가 나사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본식으로 교육받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https://youtu.be/5zwJx9YlNoI
4. Nina Antonio
제 생각엔 일본 교육이 좋았습니다. 일본 교육은 무척 엄격해서 우리는 모든 걸 빨리 배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일본 교육이 너무 엄격했다고 말하지만, 제 생각엔 일본처럼 하는 게 더 좋습니다. 미국 교육을 좀 보세요! 제대로 되는 게 없잖아요? 그렇죠? 저는 아이들은 엄격하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책임감을 키울 수 없어요.
저는 그래서 일본 교육을 높게 평가합니다. 일본은 우리의 정신을 훈련시켰습니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인간은 인간다워야..
5. Obodei Iyar [그는 아이라이의 추장 혈통이다]
일본식 교육의 장점 중 하나는 일본인 선생님들이 우리의 실수와 약점에 대해 매우 직접적으로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선생님들도 우리에게 학습에 관심을 주셨습니다.
규칙이 있는 좋은 교육을 받으면 정보를 기억하기가 더 쉽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일본인 선생님들은 엄격해서 가끔 벌을 주기도 했지만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일본 시대에는 "킨로호시"(자원 봉사)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킨로호시의 정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추장들의 뜻에 따라 일했는데, 요즘 팔라우 사람들은 돈이 되는 일만 좋아합니다.

6. 마사아키 Emesiochl (팔라우 전 교육부 장관으로, 이 중 유일하게 미국 시대 때 태어남)
일본 학교가 체벌이 심했지만 아버지에 의하면, 일본 학교의 성과가 좋았습니다. 미국 학교는 12년을 다녀도 영어를 잘 못하죠. 하지만 일본 학교는 3년만 다녀도 일본어를 아주 잘하게 되었습니다.
7.
"일본 치하에서 성공을 거둔 도민들은 그들의 학창 시절을 애정으로, 일본인 교사들을 존경심으로 회상한다." [Memories of War 중 발췌]
"...일본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시대에 중심에 있던 사람들과 미국 학교를 졸업하고 권력을 얻게 된 사람들은 일본 시대와 미국 시대에 대해 매우 대조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미국 시대에 권력을 얻는 데 실패한 이들은 자신들이 일본 시대에서 잠재적으로 더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 [Memories of War 중 발췌]
모순점
일본 교육이 효율적이고 훌륭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대 학교를 졸업한 팔라우인의 직업은 대체로 매우 단순한 것들이었다. (가정부, 관공서의 티보이, 운전사, 양재, 제빵, 목수, 전화교환원 등등.. 일본 시대 내내 도민 정규 교사는 단 한 명이었고 남양청의 공무원은 아예 없었다.)
거기에 앞서 말했듯이 일본은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만을 제공했고 그 이상의 학교로 진학한 도민은 일본 시대 내내 극소수였음.
특히 가장 자랑할 만한 '일본어' 교육조차 '한자' 교육은 미비해서, 의사소통은 문제없었을 지언정 대부분의 도민은 어려운 글을 읽지 못했다.
즉 일본 학교는 딱히 도민의 사회지위적 향상을 위해 교육을 베풀지도 않았고, 그래서 일본 학교를 호평하는 사람들의 말은 대단히 모순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위에 나온 내용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팔라우인들이 일본 교육에 세뇌돼서 저렇게 평가했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일뽕이면 역시 일본은 자애롭게 통치했는데 미개한 조센징들만 징징대는 ww 라고 느낄 수도 있을 거다.
본론 : 구술사를 볼 때 주의해야 할 점
다시 일본 학교에 대한 호평으로 돌아가서, 볼드체 친 부분만 읽어보자. 읽어보면 알겠지만, 결국 일본 교육을 호평함과 동시에 오늘날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그니까 일본 학교에 대한 평가는 해당 부분만 읽으면 '과거'에 대한 평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현재'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으로, 과거 그 자체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를 비판하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로 재해석된 것이다.
두 번째로 과거에 대한 평가를 하는 시간이 현재인 만큼, 그 사이에 있던 사건들이 그 시대를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일본 통치가 진행되고 동화 정책이 강화되면서 점점 원주민들(특히 당시 엘리트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추장 혈통의 원주민)은 자신을 일본 제국의 일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학교에서 일본 문화에 익숙해지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을 위해 일하는 것은 충성심을 입증할 중요한 기회였고, 여러 원주민들이 젊은 시절을 일본에 대해 배우고 일본을 위해 헌신하는 데 소모했다.
하지만 일본이 패전하면서, 젊은 시절에 한 모든 일들은 물거품이 되었고, 미국이 들어선 후 영어를 배우고 다시 시작하기엔 전쟁으로 너무 지치고 늙어버렸다. 이들은 미국 시대에 와서 경쟁력을 잃어버린 세대가 돼 버렸다 .
결국 미국 시대에 와서 '잃어버린 세대'가 된 이런 사람들은 일본 시대가 잠재적으로 자신들이 더 성공할 수 있던 시대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 밖에도 미국 시대에 겪은 모든 일들(대체로 부정적이었던)이 일본 학교를 포함해 일본 시대를 재평가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 Thaddeus Sampson
: "일본은 전쟁에서 이기면 많은 걸 해줄 거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은 전쟁에서 이기면 우리가 '2등 국민'이 될 거라고 말해줬습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면 우리 모두 일본인으로 만들어준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학자 : 일본이 그렇게 해줄 거라고 믿었습니까?)
일본이 그렇게 말해줬으니까요. 일본이 이기면, 저도 도쿄의 명문 학교에 다닐 거라고 말했습니다. 마샬인은 전쟁 전에 일본의 학교를 갈 수 없었거든요. 우리가 만약 일본과 계속 함께 했다면, 오키나와인도 1등 국민이, 우리가 그 대신 2등 국민의 자리를 차지했을 겁니다. 일본이 이겼다면, 우리도 보상을 얻었을 거예요."
즉, 구술사를 읽을 때는 회상은 어떤 식으로건 과거 뿐 아니라 현재까지 흘러온 배경, 그리고 현재가 반영된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읽어야 한다.
뭐 사실 엄격한 일본 교육에 대한 회상은 한국에서도 어른들이 학교에선 매가 필요하다, 군대가 잘 돌아가려면 부조리가 필요하다 이런 얘기할 때랑 비슷한 느낌도 든다.
출처
https://youtu.be/WfEKLc9Vztk
Memories of War
The Typhoon of War
Palauan Children under Japanese Rule Thier Oral Histories
근대 무술사 관련 구술사적 논문이나 인터뷰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
댓글 2
댓글 쓰기ㅇㅇ 구술 당사자 뿐만 아니라, 채록자가 먼저 '과거'에 '현재'를 대입해서 자료수집하는 경우도 있어서 검토에 재검토, 재재검토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하더라고. 구술사는 역사학 방법론의 하나지만, 사회과학 분야에서 주로 쓰이는데 이런 문제 때문에 자료해석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왕왕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