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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 택견과 수박, 검술, 씨름의 관계에 대한 추론

익명_577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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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못이지만 나름 주워들은 것들 기반으로 개인적인 추론을 말해보려 함.

대충대충 가는 느낌이라 전개가 좀 과격하긴 할 거임ㅋㅋ

 

먼저 택견과 수박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겠음.

 

우리가 흔히 택견을 수박과 연결시키는 근거는 1798년에 저술된 재물보(才物譜)에서 단어 변(卞)에 대한 설명으로 "수박(手搏)을 변(卞), 각력(角力)을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의 탁견과 같다."라고 서술한 데 있음. 그런데 사실 재물보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더 있음.

 

"厮撲 捽挍之類, 亦탁견", "手搏 仝○今之슈벽, 雖與此不同, 而當用此字"

"시박, 졸교의 종류로 역시 탁견이다.", "수박, 같다. 지금의 슈벽은 비록 이것과는 같지 않지만 마땅히 이 글자를 써야한다."

이는 재물보 초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판본의 내용임. (참고 출처: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48303)

 

시박과 졸교는 씨름 정도로 보면 되는데 이건 후술하기로 하고, 먼저 수박부터 살펴보고자 함.

 

일단 보면 "手搏 仝"이라면서 수박이 무언가와 같다고 얘기함. 앞서 변과 시박을 탁견으로 풀이한 것을 고려하면 수박 역시 탁견으로 설명한 것일 가능성이 있음. 혹은 이미 변(卞)에서 수박에 대한 설명은 했으니까 생략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상술한 수박과 각력, 탁견 설명의 연장선 정도로 볼 수 있어서 사실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님.

 

중요한 건 추가로 언급되는 "지금의 슈벽은 비록 이것과 같지 않지만 마땅히 이 글자를 써야한다."라는 슈벽에 대한 문구로 보임. 판본에 따라선 수벽이라고도 하는데, 이 문장의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함.

 

먼저 말 그대로 수벽과 수박 사이에 차이는 있지만, 수박이라고 해야 한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임. 이럴 경우 수벽은 수박에서 변형된 부분도 있으나, 수박으로 봐도 되는 무술 정도로 볼 수 있음.

 

혹은, 지금은 슈벽이라 쓰고 부르지만, 원래는 수박이라고 쓰는 게 맞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음. 요컨대 명칭, 표기의 다름을 지적했다고 보는 것임. 슈벽, 수벽이란 용어는 손바닥, 손뼉이 한자로 치환된 단어로 보이는데, 예로부터 내려오는 한자인 수박(手搏)이 더 옳은 표기라고 생각하는 건 이상하지 않음. 애초에 재물보 자체가 어휘집이니까 표기 등을 지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문장 자체가 수박이라는 '글자'에 집중하고 있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렇게 볼 경우 수벽과 수박을 동일시했다는 의미도 됨.

 

또 재물보는 판본이 여럿 있는데, 개중에는 手搏仝今之수벽當用此字, 수박은 지금의 수벽과 같다, 마땅히 이 글자를 써야한다라면서 대놓고 수벽과 수박을 동일시한 필사본도 있음. 이는 비록 재물보 원문의 서술은 아니긴 하지만, 최소한 이 필사본의 저자는 이렇게 줄여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단 것임. 참고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봄.

 

그리고 어느 쪽이든 확실한 건 저자인 이만영은 수벽과 수박이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여겼다는 점임. 수벽이 수박과 관련 없다면 굳이 수벽을 언급하고, 수벽을 마땅히 수박이라고 써야 한다는 서술을 넣었을 리 없음.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당시에 '수벽'이라는 무술도 행해졌으며, 이는 수박과 동일시됐거나, 적어도 수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졌다고 볼 수 있음.

 

물론 이를 조선 전기의 수박과 연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있을 수 있음. 재물보 이전의 수박에 대한 기록은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마지막이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론 가능성 있다고 생각함. 계속 행해지던 풍습이나 문화라고 해도 문헌 기록에선 제대로 안 남거나, 띄엄띄엄 나타나는 건 꽤 흔한 일임. 글을 아는 식자층이 그것을 기록에 남기고자 했는가, 흥미가 있었는가에 따라서도 기록의 양은 달라지고.

 

예를 들어 무당의 칼춤의 역사는 당연히 오래됐을 거임. 기원전부터 이어졌다고 해도 납득되지. 하지만 문헌 기록에선 구한 말 저술로 추정되는 무당 내력에서 처음 나온다고 함. 찾아보니까 1312년 '권단(權㫜) 묘지명'에 "행정 업무를 여유롭게 칼을 휘두르듯이 하여 일하는 움직임에 신명(神明)을 나타내니"라는 문구가 있던데, 이걸 무당이 칼춤 추면서 신명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비유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음.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무당내력 이전까지 거진 600년 동안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것임.

 

그리고 조선 시대에 마을 단위로 크게 성행한 석전 역시 기록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18세기 이전까진 식자층의 개인 기록에서 석전의 등장 빈도는 상당히 적었음.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이후부터 거의 200년 동안 손에 꼽는 수준임. 그마저도 왜란에서 척석군을 동원했던 것에 대한 기록인 경우도 많고.

 

수박 역시 비슷함. 재물보 이전에 수박을 언급한 주요 문헌들인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이 셋은 전부 국가 기록임. 고려 중기~조선 초기에도 개인 기록에선 수박에 대한 기록이 흔치 않음. 그리고 사실 택견도 기록 적은 건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함. 재물보 이후 거의 120년 가량 기록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그냥 택견이나 수박 같은 문화가 식자층이 기록으로 남길 만한 수준의 흥미를 끌지 못한 것으로 보임.

(물론 계속 전승됐다고 해도 시기에 따라서 수박의 세가 약해지는 등의 변화는 있었을 수 있음)

 

그리고 1921년에 저술된 해동죽지에는 '수벽치기'에 대한 기록이 존재함. 재물보의 수벽과 이름이 겹치고, 시기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수벽치기는 수벽과 동일한 것이거나 최소한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런데 해동죽지에선 수벽치기의 기원이 옛 검술이라고 설명함. 따라서 수벽은 검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음.

 

그런데 수벽이 검술에서 비롯됐다면 재물보에서 수벽과 밀접한 관계로 묘사되거나 아예 동일시된 수박 역시 검술을 기반으로 했다고 볼 수 있음. 그리고 더 나아가 수박과 각력의 합으로 서술된 택견도 무기술적 측면이 있을 가능성이 큼.

 

물론 여기까지는 문헌을 기반으로 한 추정일 뿐임. 그런데 실제로 최근 연구를 통해 택견에 무기술적 측면이 큰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 송덕기 옹도 택견에 무기술은 없냐는 질문에 자신이 방망이는 잘 다룬다며 기술을 보여주셨다고 하는 등 실제로 택견에는 무기술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따라서 재물보와 해동죽지에서 서술된 수벽과 수박, 택견 그리고 검술의 관계가 증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수박은 검술에서 비롯된 무술이라고 볼 수 있음.

 

그리고 현재는 택견과 군영 무예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간간히 나오고 있음. 군인들이 택견을 많이 익힌 것으로 추정되는 중이고, 실제로 무예도보통지의 무기술들과 기법이 통하는 게 있기 때문임. 다만 나는 택견에 대한 군영 무기술의 영향은 꽤 적을 것이라 생각함.

 

검술 하시는 분들이 택견과 무기술의 연관성에 대해 얘기한 것 중 하나가 "용어의 유사성은 무술 계보 파악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데, 택견에 존재하는 활갯짓, 수벽치기의 날개짓 등 팔을 날개에 빗대는 표현과 조선세법의 익(翼), 시(翅) 표현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라는 부분임.

 

다만 문제는 정작 저 날개 표현 외에는 택견과 무예도보통지 사이에는 용어, 형식적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점임.

 

택견이 군영 무예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보는 경우, 군영 무예와 용어적 유사성이 미미한 이유를 전근대의 무술 교습 문화에서 찾기도 함. 전근대에 무술을 익힐 때는 어렵고 거창한 기술명 없이 직관적이고 간단한 용어로 익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임.

 

일례로 명나라 장도술의 진전살적, 향전격적 같은 용어들 역시 어떻게 베라 같은 식의 그냥 지시문들이라고 함. 택견의 주요 향유층 역시 어려운 한문 용어와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하급 군인 등으로 추정되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한문으로 기록된 검보라는 베이스가 있는 이상, 그 용어가 거의 반영되지 않는 건 어색한 면이 있음.

 

게다가 당시 조선에선 무예도보통지처럼 한문+세(勢) 형식으로 무술 자세를 표현하는 게 꽤 보편적이기도 했음. 일례로 장도의 용어들도 조선에선 진전살적세 같은 식으로 바뀜. 세종 실록에서도 창술의 동작을 착창세(着槍勢), 배창세(背槍勢) 등으로 표현한 것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오래된 용법으로 보임. 무예도보통지언해에서도 한문 세명이 그대로 사용된 부분들이 많고, 택견에서도 '고대세'라는 세명을 확인 가능함.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당시 택견 향유층에겐 무예도보통지식 용어들은 꽤 익숙했을 가능성이 큼. 따라서 군영 무예가 택견에 영향을 끼쳤을 경우 용어에도 그 영향이 나타나야 자연스러움. 하지만 실제로 택견과 군영 무예 사이에는 용어적 공통점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군영 무예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함.

(수벽치기 역시 대충 훑어보기론 무예도보통지 느낌은 딱히 없었음.)

 

택견과 수벽치기의 날개 개념 역시 마찬가지임. 만약 이게 조선세법의 영향이라면 이는 검보에 실린 한문 세명들의 의미를 세세하게 분석해서 무술에 반영했다는 뜻임. 그런데 지금처럼 용어나 형식적 공통점이 희미한 건 상당히 어색함. 따라서 팔을 날개로 보는 개념 역시 조선세법이나 군영 무예의 영향이라고 보긴 어려움.

 

다만 그럼에도 택견과 수벽의 날개 개념이 조선세법과 겹치는 것 자체는 사실임. 따라서 반대로 조선 전기의 수박에도 날개 개념이 존재했고, 조선세법이 그 영향을 받은 것일 가능성은 있다고 볼 수 있음. 수박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 초중기의 기록에서 주로 나타남. 그런데 조선세법 역시 이와 비슷한 시기에 행해진 것으로 추정됨. 따라서 조선세법과 수박은 시대가 겹친다고 볼 수 있음. 이 둘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그리고 이는 수박이 검술 기반의 무술이며 수벽과 택견이 조선 전기의 수박과 관계가 깊을 것이란 추정에 더 힘을 실어주기도 함.

 

또 사실 애초에 수박이 검술 베이스라면, 굳이 용어와 형식이 다른 군영 무기술에서 그 기원을 찾을 필요가 적어지는 점도 큼. 검술을 베이스로 했다면 웬만한 보편적인 검술적 기법은 원래부터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심지어 조선 초기에는 갑사 같은 정예 군인의 취재 종목으로도 사용했을 정도니까.

 

물론 택견 자체는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행해졌고, 향유층 역시 군인 계층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을 순 있음. 다만 같은 기술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그 기원을 군영으로 두긴 어렵고, 기본적으로 수박으로부터 이어진 측면이 클 것이란 얘기임.

 

그리고 택견 말고도 전승된 전통 무술일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무술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 위에서도 언급된 수벽치기와 경상도 지역에서 행해졌다는 잽이수에 대해 살펴볼까 함.

 

일단 수벽치기는 현재 해당 단체에서 기천과 함께 교습, 연구 중인데, 새로 창시한 형, 투로 같은 것들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내력을 밝히는 등 구별하고 있음. 그래서 수벽치기의 원형 자체는 확인 가능한데, 상기했듯이 날개나 날개짓이란 개념이 존재하고 품밟기와 유사한 보법도 있는 것으로 보임. 해동죽지의 기록처럼 앉아서 하는 훈련법도 존재함.

 

잽이수 같은 경우 지금 교습이 이루어지고 있진 않음. 그래도 전승자 분이 설명하신 잽이수의 특징을 정리하자면 지금의 택견(대한택견)과 달리 급소 타격에 적극적이고, 손기술이나 유술기가 많다고 함. 그리고 활갯짓, 품밟기와 비슷한 기술도 확실히 존재함.

 

다만 사실 무술명 자체는 잽이수가 아닐 수도 있음. 배울 때 명칭도 따로 안 가르쳐주시고 "이렇게 목울대를 뜯으면 돼." 같은 식이었다고 함. 지금의 명칭은 신한승 옹 책 보고 잽이수와 지역이랑 특징이 겹쳐서 잽이수겠거니 하신 거라고.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잽이수라기 보단 잽이수(추정)이 더 맞긴 함ㅋㅋ 아마 처음부터 그럴듯한 무술명은 없었거나 무술명이 소실된 상태에서 기술만 전승된 것으로 보임.

 

어쨌든 대충 이러한데, 수벽치기와 잽이수는 특징적인 공통점이 있음. 바로 무기술 베이스란 점임.

 

https://www.youtube.com/watch?v=efCgexpEG1M

(참고 영상. 검술은 38초부터 나옴.)

수벽치기는 처음부터 맨손검술을 표방했음. 아예 목검이나 단봉으로 훈련하는 영상들도 찾아볼 수 있고, 1987년 기사에 따르면 접부채나 빗자루를 들고 기술을 수련하기도 했다 함.

 

https://www.youtube.com/watch?v=eOMYuGRW-Bw

잽이수의 경우 전승자분이 아예 택견과 잽이수 자체를 무기술로 보심. 택견의 품밟기는 무게 중심이 낮고, 좌우 스탠스 전환이 빈번한데 이런 게 다 무기술이라 그렇다고 함. 활갯짓 등 손짓도 무기술 측면이 크고.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어릴 때 잽이수를 배우면서 단봉을 들고 배우기도 했다고 함. 봉 길이는 라탄스틱보다 살짝 짧았다는 듯.

(필리핀 무술에서 쓰는 봉인데 평균 70cm 정도라 함.)

 

그리고 이 분 본업이 칼리 기반 호신술 강사신데, 흥미롭게도 칼리 유파 중에 '검술'을 기반으로 하는 페키티 티르시아 칼리가 택견, 잽이수와 유사성이 크다고 함. 활갯짓 같은 손짓도 겹치는 부분들이 있고, 특히 풋워크는 굼실 동작 같은 차이를 빼면 거의 같은 수준이라 하심.

https://www.youtube.com/watch?v=9xX_wmZc4lM

https://www.youtube.com/watch?v=zQfY-GFb2ys

(참고삼아 칼리 영상도 올림)

 

현재 이들이 전통 무술이 맞다고 확언하긴 어려움.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정황을 따져봤을 때 전통 무술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것도 사실임. 그리고 활갯짓, 품밟기와 유사한 기술이 있고, 무엇보다 무기술적 측면이 강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게 단순히 우연이라고 보긴 어려움. 비교 대상인 택견의 경우 무기술적 측면이 제대로 연구된 건 비교적 최근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지.

 

따라서 나는 이들이 전통 무술이 맞고, 상기한 기술적 공통점들은 이 무술들 역시 택견처럼 수박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함. 조선에서 다양한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무기+맨손 무술을 꼽으라면 수박 말곤 딱히 후보가 없음. 그리고 활갯짓, 품밟기는 그 자체로 무기술적인 측면이 큰 기술임을 감안하면 수박에도 비슷한 기술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 상기했듯이 날개 개념 역시 원래 수박에 있었을 확률이 크고.

 

따라서 수벽치기와 잽이수는 택견처럼 수박으로부터 이어진 무술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러우며, 이 역시 수박이 무기술 기반 무술임을 뒷받침하는 요소라고 생각함. 그리고 조선 후기에도 여러 지역에서 수박 계통의 무술들이 행해졌다고 볼 수 있음.

 

수박과 택견, 검술의 관계는 대충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다른 수박 계통 무술들과 비교했을 때의 택견의 특징에 대해서 논해보겠음.

 

일단 재물보를 보면 수박과 1대1로 비교된 수벽과 달리, 택견은 수박과 함께 각저(씨름) 역시 언급됨.​​​​​​​ 또한 "시박(廝搏)은 졸교(捽挍) 같은 종류인데, 또한 탁견이다"라고 서술함. 졸교는 씨름을 의미하는 단어임. 재물보 내에서도 졸교(捽挍), 질교(迭挍), 환교(擐挍) 등의 단어를 두고 씨름이라고 했고, 1690년에 저술된 역어유해에서도 졸교는 씨름이라 서술하고 있음. 시박(廝搏) 역시 전근대 동양에서 씨름 종류를 의미하는 단어 중 하나임.

 

따라서 택견은 씨름의 영향 역시 받았을 것이라 볼 수 있음. 손을 땅에 짚거나 넘어지면 진다는 경기 규칙도 씨름의 그것과 비슷하고.

 

다만 똑같이 씨름을 의미하는 단어임에도 졸교는 씨름으로, 시박은 택견으로 풀이한 게 의아할 수 있음. 그런데 이는 사실 이상한 점은 아님. 일단 전근대의 씨름은 지금보다 그 양상이 더 다양했던 것으로 추정됨. 일례로 지금도 김명근 선생의 놓고씨름이라는 샅바 없이 서서 하는 씨름이 전해짐. 그리고 씨름에서 어느 정도의 타격이 허용되는 경우 역시 있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음. 실제로 씨름 중 타격을 가한 사례를 실록이나 대동기문 등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음.

 

그런데 택견, 수벽치기, 잽이수 등의 기술 체계를 고려하면 수박에서도 유술은 중요했을 것으로 보임. 물론 무기의 움직임을 맨손으로 치환한 것인 만큼 중점은 타격에 있었을 확률이 크긴 하지만. (해동죽지에서도 수벽치기에 대해 "한 손이라도 법칙을 잃으면 타도(打倒) 당한다"라면서 타격에 중점을 둔 묘사가 나오고.)

 

따라서 수박은 타격 기반에 유술이 조합된 무술, 씨름은 타격이 어느 정도 허용되기도 했던 힘겨루기, 레슬링 계열의 무술이며 서로 어느 정도의 교집합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듯함. 애초에 당시에는 수박과 씨름을 같이 배운 경우가 많기도 했을 거고.

 

그리고 기본적으로 유술도 포함한 수박에 씨름의 요소가 합쳐진 만큼 택견은 유술적인 면모 역시 상당히 강했을 것이며, 씨름과도 가깝게 느껴졌을 것임. 그런데 재물보에서 택견과 비교된 시박(廝搏)이란 단어를 살펴보면, 이는 기본적으로 씨름을 의미하는 단어지만 '두드릴 박(搏)'이 들어가는 만큼 타격 역시 포함하고 있는 단어라고 볼 수 있음.

 

따라서 재물보의 저자는 졸교의 경우 순수하게 레슬링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 씨름으로 풀이했고, 시박은 타격을 포함한 레슬링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졸교(씨름)의 종류지만 택견에 가깝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임.

 

그리고 택견의 또다른 특징은 발차기가 발달했단 점임. 손기술과 유술 역시 중요하다곤 하지만 택견에서 다채로운 발차기 기술들을 빼놓긴 어려움. 해동죽지에서도 택견을 백기신통비각술이라 칭하는 등 예로부터 발차기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을 볼 수 있음. 이는 발차기의 비중이 (택견에 비해) 적다는 잽이수와 배 위로는 차지 않는다고 하는 수벽치기와는 차이가 있음.

 

그리고 택견은 수벽치기 등과는 다르게 커리큘럼에서 무기술을 따로 강조하진 않았다는 점도 흥미로움. 물론 택견은 군인들이 주로 익힌 것으로도 추정되고, 송덕기 옹께서도 방망이를 잘 쓰신다곤 하셨으니 무기술로 활용되지 않았다고 볼 순 없음. 게다가 석전의 매질꾼도 택견꾼의 비중이 컸을 거라 추정되기도 하고. 다만 최소한 19세기 후반에는 무기술 측면이 비교적 희석되고 맨손 격투기로서의 측면이 더 강조된 경향은 확실히 있다고 볼 수 있음.

 

마지막으로 택견은 당시에 경기로도 크게 성행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임.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택견은 무기술 기반이면서도 맨손 격투기로서의 측면이 크게 발달한 게 나름의 특징이라 볼 수 있음. 발차기는 주로 맨손 무술의 카테고리에서 더욱 중시되는 요소임. 택견에 영향을 줬을 씨름 역시 아무래도 맨손 격투 상태를 상정한 기술들이 일반적이었을 것이고. 이러한 점들이 발달했단 건 택견의 맨손 격투기로서의 측면이 컸다고 볼 수 있을 듯함. 물론 경기가 성행했단 점도 이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음.

 

수박 계통의 무술들을 정리하자면 대충 이렇지 않을까 싶음.

택견: 무기술을 기반으로 하긴 했으나, 씨름의 영향을 받거나 발차기가 발달하는 등 맨손 격투기 측면 역시 중요하게 발달한 수박 계통 무술

수벽: 수박과 동일시 되기도 하는 등 수박의 원형에 가깝다고 여겨진 수박 계통 무술

잽이수(추정): 남방이나 경상도 등지에서 익혀지던 수박 계통 무술.

 

외에도 품밟기나 활갯짓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전통 무술로 추정되는 무술들이 몇 가지 있긴 함. 하지만 내가 애초에 잘 모르기도 해서 그냥 일단 무기술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들 위주로만 비교했음. 다만 평안도 등에서 행해졌다는 날파람의 경우 택견처럼 석전에서 육모방망이를 휘두르기도 했단 얘기를 고려하면 무기술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음.

 

그리고 이건 여담에 가까운데, 수박은 수박(手搏) 말고도 수박(手拍)이라고 표기된 경우도 있음. 拍은 손뼉을 친다는 의미인데, '수벽' 역시 손뼉, 손바닥을 의미함.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원래 수박을 수벽, 수벽치기, 손바닥치기, 손뼉치기 같은 식으로도 불렀을 가능성이 있음. 수박치기라고 했을 수도 있고. 뭐 이건 진짜 여담이라 딱히 중요하진 않음ㅋㅋ

 

아무튼 대충 하고 싶은 말 요약)

1. 수박은 검술에서 비롯된 무술이다.

2. 수박과 각력(씨름)에서 비롯됐다고 하는 택견 역시 검술과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3. 실제로 현재 택견의 무기술적 측면이 진지하게 연구되고 있다. 

4. 택견에 대한 군영 무예의 영향은 크다고 보긴 어렵다.

5. 조선세법은 성립 과정에서 수박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6. 지금의 수벽치기, 잽이수(추정) 역시 조선 전기의 수박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7. 택견은 무기술적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맨손 격투기로서의 측면 또한 강하다.

 

물론 내가 아직 모르는 것들도 있을 수 있고, 그냥 틀렸을 수도 있음. 어디까지나 지금 확인되는 기록들과 무술들을 바탕으로 추정했을 때, 개인적으로 이럴 가능성이 클 것 같다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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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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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익명_577864 작성자

수박이 성행했던 당시의 기록이 없는 게 아쉽긴 한데, 그래도 여러 정황 따졌을 때 수박이 무기술과 관련 있는 건 맞을 듯함.

14:12
25.02.01.
고전권법들 자체가 무기술과 연동 안 되는 걸 찾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수박부터 저런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긴 함. 삼국~고려시대 수박부터 검술과 통하는 형태였을 것.
13:46
25.02.01.
1등 익명_020100
좋은 글이다...(감동. 오열. 기립박수)
13:35
25.02.01.
고전권법들 자체가 무기술과 연동 안 되는 걸 찾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수박부터 저런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긴 함. 삼국~고려시대 수박부터 검술과 통하는 형태였을 것.
13:46
25.02.01.

수박이 성행했던 당시의 기록이 없는 게 아쉽긴 한데, 그래도 여러 정황 따졌을 때 수박이 무기술과 관련 있는 건 맞을 듯함.

14:12
25.02.01.
3등 익명_580025
그럼 품밟기랑 활갯짓은 수박 시절부터 있던 기법이라고 봐야 할라나?
20:33
25.02.01.
지금은 사라진 을소플님의 블로그에는 조선세법이 최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글이 있습니다.
22:49
25.02.01.

oldswordplayer님 말씀하시는 거죠? 조선세법 성립 추정 년도를 고려 대까지도 잡을 수 있는 거면 조선세법이 만들어진 시기가 수박이 전국적으로 성행한 시기와 겹칠 가능성이 확실히 적지 않겠네요.

11:05
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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