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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양반들도 택견 배웠냐?

익명_71763246
3200 0 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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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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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간단한 예시로 송덕기옹도 양반집 자제 출신이심.ㅋ

 

덤으로 밑에 건달, 깡패들 얘기들도 나와서 첨언하자면, 조선 시대에 도박장 같은 반쯤 불법인 작업장이 왜 단속에 안 걸리고 운영이 잘 됐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폭력 조직들 특성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음. 전부 어느 정도 양반이나 정부 뒷배를 갖고 있는 조직이었을 거란 소리지.ㅋ

18:14
22.08.26.
중인계층에서 흥하게 배우긴 했지만 중인들이 평인들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그럴 것이고, 진짜 이유는 다툼이 잦은 계층이기도 했기에 그럴것이고. 상황적으로 본다면 양인(양반)들 중 무반계층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왜냐면 택견이 흥했던 윗대에는.

인용하자면.

윗대(上村이라고 도함)는 광통교 위쪽에서 인왕산 아래에 이르는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에는 경아전(京衙前)이나 액예(掖隸)라고 하는 대전별감이나 무예별감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아랫대(下村이라고도 함)는 청계천 효경교 이하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흥인지문, 광희문, 영도교 부근이 택견이 행해진 대표적인 장소이다.택견 이미지아랫대에서 택견이 성행하게 된 것은 훈련원을 비롯한 군영(軍營)들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윗대에 택견을 하고. 아랫대에는 병사들 훈련하는 훈련원이 있어서 하고. 무인과 가까우면서 무인생활을 안하는 이들은 택견을 하지 않았나하는 추론이 가능하겠지.
16:58
22.08.26.
ㄹㅇ 그럴법도 한 게 우리가 인정이 없다, 인정이 넘치다 뭐다 할때 쓰는 말인 인정(人情)이 갑오개혁 이전만 해도 뇌물의 다른 표현이었음 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갑오개혁 이전 시대의 조선이 얼마나 끈끈한 사람간의 인정(人情)으로 돌아가는 사회였을지 대충 짐작이 가능하지 ㅋㅋ
19:55
22.08.26.
중인계층에서 흥하게 배우긴 했지만 중인들이 평인들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그럴 것이고, 진짜 이유는 다툼이 잦은 계층이기도 했기에 그럴것이고. 상황적으로 본다면 양인(양반)들 중 무반계층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왜냐면 택견이 흥했던 윗대에는.

인용하자면.

윗대(上村이라고 도함)는 광통교 위쪽에서 인왕산 아래에 이르는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에는 경아전(京衙前)이나 액예(掖隸)라고 하는 대전별감이나 무예별감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아랫대(下村이라고도 함)는 청계천 효경교 이하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흥인지문, 광희문, 영도교 부근이 택견이 행해진 대표적인 장소이다.택견 이미지아랫대에서 택견이 성행하게 된 것은 훈련원을 비롯한 군영(軍營)들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윗대에 택견을 하고. 아랫대에는 병사들 훈련하는 훈련원이 있어서 하고. 무인과 가까우면서 무인생활을 안하는 이들은 택견을 하지 않았나하는 추론이 가능하겠지.
16:58
22.08.26.

그냥 간단한 예시로 송덕기옹도 양반집 자제 출신이심.ㅋ

 

덤으로 밑에 건달, 깡패들 얘기들도 나와서 첨언하자면, 조선 시대에 도박장 같은 반쯤 불법인 작업장이 왜 단속에 안 걸리고 운영이 잘 됐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폭력 조직들 특성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음. 전부 어느 정도 양반이나 정부 뒷배를 갖고 있는 조직이었을 거란 소리지.ㅋ

18:14
22.08.26.
ㄹㅇ 그럴법도 한 게 우리가 인정이 없다, 인정이 넘치다 뭐다 할때 쓰는 말인 인정(人情)이 갑오개혁 이전만 해도 뇌물의 다른 표현이었음 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갑오개혁 이전 시대의 조선이 얼마나 끈끈한 사람간의 인정(人情)으로 돌아가는 사회였을지 대충 짐작이 가능하지 ㅋㅋ
19:55
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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