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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출신의 전직 택견 관장님의 발찰락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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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서호동에 있는 솔닮이라는 전수관에서 관장으로 일하셨다는 블로거 분을 우연히 찾게돼서 올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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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가 문협에서 강정동을 소재로 작성했다던 글의 원고입니다.

 

5. 지류 - 무武와 상무尙武의 자취, 그리고 내 무예 인생의 발원지

 

배달민족은 상무尙武의 민족이다. 대륙과 해양의 길목에서 수많은 외침에도 끝내 스스로를 지키며 싸워온 민족이다. 군인들만 싸우는 게 아니라 온 백성이 하나가 되어 죽자살자 싸우니 중국의 여러 왕조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끝내 식민지로 만들지 못한 민족이 한민족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상무尙武의 본능이 흐른다. 각 지역마다 토착 무예의 흔적들이 있고, 외침이 있으면 꼭 의병 봉기가 있었고, 민속놀이로 두 마을 간에 석전石戰(돌 팔매 싸움)이 빈번하게 행해졌던 민족이 우리 민족 아닌가!

 

나는 대학생 때부터 합기도를 시작으로 택견을 배워 두 메이저 협회에서 선수 생활도 했고 국가 지도자 자격을 딴 후 전수관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는 관장이기도 했으며, 무예의 스펙트럼을 넓히려 주짓수와 복싱을 배웠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복싱을 배우면서 택견을 잊지 않기 위해 몸 상태가 허락되는 만큼 연습하며 세계의 여러 무예와 격투기를 공부하고 있다. 살아온 생의 반이 훨씬 넘는 기간을 무武와 함께 살아왔다.

지금은 다리와 어깨, 팔 등의 부상과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예전처럼 택견에 전념하여 수련할 수가 없어 문화재 법인 소속 지도자 역할은 내려놓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이 돌아가신 스승님의 생전에 함께 고민하고 추구했던, 전통과 원형 고수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해 발전의 여지가 좁았던 협회 소속의 문화재 택견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더 실용적이게, 신체 컨디션이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범위의 택견, 시합을 위한 택견이 아니라 호신과 건강을 위한 택견을, 정체된 택견이 아니라 진화를 담은 "윤성조류 택견"을 구상하고 연구하며 공부하는 기회를 누리는 중이다. 원래 무예의 생명은 실용성에 근거한 끊임없는 진화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흡사 시를 쓰고 읽으며 시 공부하는 것과 같다.

 

왜 강정 이야기를 하는데 생뚱맞게 무예 이야기랴 싶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무인으로서 내 인생의 발원지가 바로 강정이었기 때문이다.

 

[1] 발찰락 - 택견과의 연관성

예선에 서홍동 살 때에 집 근처에 있던 서귀포 도서관에서 무예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전통무예와 풍속사의 연결을 다룬 책에서 우연히 제주도에도 "발찰락"이라는 택견과 관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놀이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게 되었다.

전기에 감전된다는 것이 그런 느낌이었을까?

"발찰락"은 먼 옛날의 것이 아니라 내가 강정 국민학교 다닐 때 친구 녀석들과 즐겨 했었던 놀이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지방의 택견 흔적과 관계있는 것이었다니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1977년 10월에 도순에서 아버지 고향인 강정으로 이사 온 후 1978년에 강정 국민학교로 4학년 때 전학을 갔는데 당시 도순과 강정은 위 아랫마을로써 상당히 지역감정이 깊었다. 그래서 도순에서 이사 온 나를 "도출내기"라 놀리는 강정 아이들과의 충돌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택했던 게 "태권도 3단"이라는 거짓말이었다. 당시 태권도장은 읍내에나 있었기 때문에 강정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녀석은 없었다. 다행히 그 거짓말은 한동안 먹혔고, 우리 학교에서 우리 학년만 두 학급이었는데 거의 한 달 동안은 두 학급 남자아이들은 아무도 나를 건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거짓말이 들통나고 만 게다.

바로 "발찰락" 때문에!

 

"발찰락", 혹은 "발로 찰락"이란 제주도 말로 "발로차기로 함"이란 뜻이다. "~ㄹ락"이란 말은 "~하기로 정하여 행함"을 의미하는 명사형어미 형태의 표현이다.

"발찰락"은 단순하다. 단순해서 오히려 원초적이다. 발로 얼굴이나 몸통 등 주로 상반신의 신체를 차는 것이다. 하반신을 차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신 "공쟁이"[태클이나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매치는 것 - 택견의 태질]은 가능했다. 단 손으로는 칠 수는 없고, 잡거나 밀치거나 발을 잡아 넘길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은 거의 항상 몸 앞에 내밀어 견제하거나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된다. 규칙이라야 막싸움처럼 손으로 때리는 것과 하반신을 차거나 바닥에서 뒹굴며 싸우는 것을 금할 뿐이다. 여기까지는 정말 실제 택견에서 품밟기와 활개 돌리기와 하반신을 차는 것만 배제한 상황과 거의 같다. 안전성과 유희성에다 실용성까지 갖춘 상당히 수준 높은 격투 유희다.

"발찰락"은 강정 초등학교로 전학 간 이후 초등학교 시절 내내 참 빈번하게 했던 격투성 유희였다. 1:1로도 하지만 특히 편가르기 발찰락(편싸움 발찰락)을 주로 했다. 단체 격투 유희지만 아무나와 막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 상대를 정하여 1:1로 하되 여러 명이 하는 형식이 내가 했던 대부분의 편싸움 발찰락이다. 그렇기에 1:1 발찰락의 연장선이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철칙인 것은 아니라서 가끔은 상대를 정하지 않고 하는 경우도 행해졌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바로 옆에서 하는 친구의 팀과 공간적으로 섞일 때는 상황을 보며 옆의 상대팀을 공격하여 같은 팀을 돕기도 한다. 가끔은 이렇게 되면서 상대방이 바뀌기도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이런 경우는 흔하지가 않았다.

 

한때 무예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발찰락은 확실히 과격한 격투라기보다 기량의 과시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스트레스를 푸는 격투성 유희가 맞다. 딱히 승부를 낸다기보다는 몸끼리 엮어 즐기는 놀이다. 그래서 승부라는 것도 "어 제법 하는데", "거봐 내가 이겼지", "무슨, 내가 봐줘서 살살한 거지"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판단에 맡길 뿐이다. 승부가 목적이 아니라 견주면서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것이므로 구사하는 기술의 폭이나 다양성은 오히려 승부수에 얽매이는 일반적인 무예 경기 이상이다. 시합에서는 잡히거나 역공 당할 우려가 있어 잘 쓰지 않게되는 두발낭상이나 뛰어 차는 발질이 발찰락에서는 심심찮게 나온다. 일단 승부가 전제 되고 경기 진행을 위해 룰로 인한 제약이 생기면, 질 수 있는 요인이 되거나 경기에서 금지된 동작과 기술은 도태되고 이기는 방법에 관계된 동작들 위주로 특화되어 아무리 실용적인 격투 무예라 하더라도 스포츠가 돼버리지만, 승부를 떠나 유희와 기량 과시와 기세를 보여주는 격투 놀이의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무예 경기보다 더 무예 본연의 모습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놀이의 역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놀이의 성격을 띠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스파링 형식에 가깝다.

강정 초등학교에서 발찰락이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학교의 구조 때문일 것이다. 두개의 석조 교사가 기역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교무실은 동서로 길게 있는 교사의 중앙에 있었고 우리 교실은 교무실과 떨어진 동쪽에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데다 그 남쪽의 넓다란 공터는 교무실에서는 보면 교무실 앞에 심어진 배롱나무와 동쪽 교사와 그 앞 화단의 작은 수목들에 의해 가려지는 사각지대라 선생님에게 들킬 염려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무실 쪽 교사에 있었던 1반 친구들보다 우리 2반 애들이 더 많이 했다. 그리고 발찰락을 할 때면 몸이 작거나 약해서 발찰락에 끼워주지 않는 친구로 하여금 선생님이 오나 망을 보게 했으니 안심하고 즐길 수 있었다.

 

1:1로 하는 발찰락도 친한 친구와 재미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갈등이 고조된 당사자들끼리 막싸움으로 가지 않고 갈등을 정리하고 푸는 결투의 성격을 띄게 될 때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그 결과를 공증하고 과열되는 것을 막을 두세 명의 중립적인 친구가 보는 데서 한다. 물론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오나 망보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 경우의 발찰락은 편싸움 발찰락보다 훨씬 격렬하다. 주먹 사용은 공히 금기지만, 손으로 잡고 밀치고 감고 꺽는 것이나, 잡아 넘어뜨린 후 바닥에서 상대가 꼼짝 못하게 굳히기 위해 뒹구는 것도 어느 정도 용인되는 데다 이겨야 한다는 남학생들의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발찰락을 하다가 감정이 앞서 주먹을 쓰거나 처음부터 바닥 싸움으로 가려 하면 참관하던 친구들이 말리면서 반칙한 사람은 비겁자이며 패배자로 취급 당한다. 승부 방식이야 두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보통 발로 얼굴을 한두 차례 맞게 되거나 코피가 나면 실력차를 수궁할 수 밖에 없다. 또 얼굴을 맞지 않았다 해도 실력이 일방적일 경우 패자가 스스로 인정하고 포기하거나 보고있던 친구들이 말리며 승패를 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학교 올라가서는 발찰락은 할 여건이 못됐다. 다른 마을 친구들은 대부분 발찰락을 잘 몰랐고, 쉬는 시간에도 지도부 선배들과 학생부장 선생님이 항상 사각지대를 살폈기 때문에 할 여지가 없었다. 공부와 시험에 치이는데다 남녀합반이다 보니 자칫하면 여학생들에게도 문제아로 찍힐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하지않게 되었다. 그래도 중1때까지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1:1 발찰락은 가끔했었고, 우리집 근처에 있는"통물"은 당시 그 동네의 몇개 안 되는 가로등이 있고 길도 넓은데다가 바로 옆에 농사를 짓지 않는 버려진 공터가 있어서 우리 동네에서 좀 논다하는 중학교 고등학교 선배들이 밤에도 가끔 발찰락을 했던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물론 우리는 끼지도 못했지만

 

내가 몸 담았던 택견을 바탕으로 발찰락을 더듬어 나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육지의 다양한 지역에서 제주도로 내려와 거쳐간 상인들 일행(당시 상단에는 수행하며 도적 등으로부터 물건을 지키고 상인들을 보호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일종의 보디가드 역할의 무인들이 함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이나 무관, 혹은 유배 인사를 따라 들어온 수행 인원 중 무예에 능했던 사람 등에 의해 타지역의 택견이나 기타 무예의 기술이나 요소가 유입되어 혼합된 후 섬이라는 지리적 제한 안에서 독자적으로 현지화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현재의 택견은 서울 지역의 택견이 복원 발전된 것이고, 지역마다 날파름, 송도 수박, 함경도 수박, 수벽, 채기, 까기, 챕이(채비) 혹은 잽이, 수밝기, 속쇄, 박시싸움 등 다양한 명칭의 택견과 유사하거나 지역별로 자생 발전했던 무예들이 있었다. 어쩌면 한국전쟁으로 피난온 사람들이나 훈련병으로 들어왔던 사람들 중 몇몇이 알고 있던 택견이나 지방의 토착 무예의 요소가 유입되어 더해졌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안타깝게도 대정이나 강정 등 소수 지역 외에서는 발찰락의 흔적에 대해 자료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인터넷에서도 내가 쓴 자료와 내가 보았던 책, 그리고 대정 쪽에 살았던 분의 증언이 기록된 자료 밖에는 더 찾을 수가 없었다. 내 꿈 중의 하나는 이 발찰락이 사라지지 않도록 다시 발굴ㆍ복원하여 전승하는 것이다. 아직은 뇌리 속에 강정 초등학교 시절에 즐겼던 발찰락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2] 몰발차기

도순에서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강정에서 자주 했던 놀이 중 또 하나가 "몽생이(혹은 몰등) 타기" 혹은 "몰(아래아)발차기기"다. 말뚝박기형의 말타기와는 다르게 강정에서의 몽생이 타기는 움직이는 말(술래)의 등에 올라타는 것이고 말이 발로 차며 그것을 저지하는 형식이다. 어멍몰과 아방몰, 그리고 몽생이 이렇게 세 명이 한 마리의 말을 이루어 술래가 된다. 어멍말, 아방말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거나 상대의 몸을 잡고 서서 말머리 역할을 하고 몽생이는 몸을 숙여 그들 사이에 머리를 끼우고 양손으로 그들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안아 잡는다. 어멍말, 아방말도 말몸(몽생이)이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한손으로는 몽생이가 자신들을 두른 팔을 잡고 몽생이에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옆으로 왐쪄, 뒤로 왐쪄" 하며 동작을 유도하거나 직접 방향을 잡아 이동한다. 말몸에 해당하는 몽생이는 좌우 혹은 앞뒤로 어멍몰, 아방몰과 함께 움직이며 상대방이 자기에게 올라타지 못하게 옆으로, 뒤로 발을 마구 차는 것이다. 상대방들은 기회를 보며 몽생이 위에 올라탔다가 발에 맞지 않고 내려오거나 말몸이 무너지게 하면 된다. 만일 상대가 올라타거나 내리다 말몸의 발에 맞거나 몽생이에서 떨어져 몽생이 발에 닿으면 그 사람이 몽생이가 되고, 몽생이이었던 사람은 어멍몰, 어멍몰이었던 사람은 아방몰로 승격하며 아방몰은 자유로운 몸이 되어 몽생이에 올라타는 상대방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칭도 타는 사람 입장에서는 "몽생이 타기" 혹은 "몰등 타기", 발질을 하며 방어하는 몽생이의 입장에서는 "몰발차기"가 되는 것이다. 이 놀이에서는 옆발질이나 뒤 후리기, 뒷발질이 주된 발차기가 된다. 뛰어드는 상대를 제한된 시야에서 소리와 감각에 의존하여 순간적으로 발을 뻗는 것은 나중에 택견에서 순간 반응으로 옆발질하거나 뒤 후리기 등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합기도를 했을 때 내 특기 중 하나였던 뛰어돌아 뒤차기도 이때의 경험이 큰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어찌보면 나와 무예의 인연은 초등학교 코찔찔이때부터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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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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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런 분이 계신다니, 윗대 분들과도 컨택이 이루어지면 좋겠네.
20:46
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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