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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술] 대년군 제도와 아기수, 그리고 편쌈.

익명_546162
2802 2 15

https://yugakkwon.com/taekkyeon/253276
https://yugakkwon.com/taekkyeon/272179
https://yugakkwon.com/taekkyeon/271650

 

지금까지 우리는 조선 후기의 한양 인구 가운데 상당수를 군인 계층이 차지하였다는 사실과, 이러한 군인 계층이 몰릴 수밖에 없는 지역들(군영, 거주지)이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이 성행한 지역과 거의 겹친다는 것을 18~19세기 한양을 그린 지도를 통해 확인하였으며, 따라서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과 조선의 군영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었음.

 

그렇다면 이번 글에서는 어쩌면 당시 어린아이들도 즐겼다는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이 순수한 놀이 목적이 아닌, 군인이 되기 위한 무술 연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게 만드는 두 가지 제도. 대년군(待年軍)과 아기수(兒旗手)에 대해 알아보고자 함.

 

그렇다면 대체 이 두 제도가 대체 무엇이냐, 그 내용은 아래와 같음.

 


대년군 : 조선 후기 훈련도감 등의 군영에 병력의 보충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마련했던 예비군 제도. 16세 미만의 아들이나 동생이 되는 것이 원칙이며, 처음에는 훈련도감군의 자제들을 정규군으로 충원하는 제도로서 운영하였다.

 

즉 도감군의 자제들 가운데 적당한 자를 골라 장부에 기록해 두었다가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급료를 지급해서 무예를 연습하게 했다는 것이며, 그 뒤 시험에 합격하면 급료를 올려주고서 궐원이 생기거나 보충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정식으로 임명하였다. 


아기수 : 조선 후기 용호영(龍虎營), 훈련도감(訓鍊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 등의 군영에서 장교들이 부리던 어린 군사. 군영의 군병에서 결원이 생기면 아기수로 보충하기도 했으며, 대체로 군영의 원군(元軍)이나 여러 명목의 군병, 이른바 표하군(標下軍)의 일가이거나 가족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처음 군영에 들어오면 대체로 대년군(待年軍)으로 삼고 족록안(族錄案)에 편입시켜 놓았는데, 이 중 젊고 건실한 자는 장초군(壯抄軍)으로 선발하여 순차적으로 수문군(守門軍), 치중복마군(輜重卜馬軍), 포군(鋪軍), 금송군(禁松軍), 아기수 등에 보충하게 하였고, 군영의 원군에 결원이 생기면 그 이전까지 근무한 성적에 따라 올려서 원군으로 임명하였다. 
아기수도 시험을 치러 성적을 매기고 급료를 지급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아버지가 군영의 병사로 복무중인 집안이라면 아들이 대년군으로 편제가 되어 아직 어린 나이부터 아기수로 복무하거나, 대년군 신분으로 무예를 닦게 하다가 시험을 보아 군인으로 채용하던 것이 당시 조선사회였다는 말임.

 

실제로 훈련도감의 아기수들은 중순(中旬)에 무예 시험을 치러 성적을 매겼으며, 수문군·금송군·포군, 아기수는 검(劍) 1차와 육량전(六兩箭)을 시험 보았고, 아기수가 되지 못한 대년군 또한 자원하는 경우엔 응시를 허가하여 그 성적이 상상등(上上等)이면 포(布) 한 필, 상중등(上中等)이면 쌀 세 말을 지급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조선 말 군인 계층이 사실상 세습되었던 이유도 저 대년군 제도와 아기수 제도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길 거임.

 

"그래서 저 두 제도랑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이 무슨 상관임? 어딜 봐도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은 언급되어 있지 않는데?"

 

ㅇㅇ 맞음. 이 말처럼, 어딜 봐도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은 언급되어 있지 않음. 

 

그러나 저 대년군 제도에는 매우 중요한 암시 하나가 숨겨져 있는데, 바로 "도감군의 자제들 가운데 적당한 자를 골라 장부에 기록해 두었다" 는 부분임.

 

이것은 다시 말해 모든 병사들의 자제가 대년군은 아니었다는 의미이며, 그 대년군으로 뽑히는 자격인 '적당한 자'가 누구냐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

 

실제로 훈련도감에서는 병사들 중에 결원이 생기면 승호라는 제도를 통해 일정 주기마다 지방에서 포수들을 모집해 새롭게 충원하였으며, 그것 이외에도 주기적으로 한양의 민간인들 가운데 병사들을 모집하기도 했으니 말마따나 모든 훈련도감의 병사들이 형제나 자식을 대년군으로 등록을 하였다고 한다면 이러한 신규 모집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임.

 

더욱이 18~19세기의 한양의 경우엔 전통적 향촌 사회의 붕괴와 세도 정치의 여파로 인해 상경한 유민들이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많은 상황이었는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38_0050_0010_0010_0030 ) 부족하지만 비정기적이나마 들어오는 수입이 있고, 한양에서 장사를 함에도 시전 상인에게 규제받지 않는다는 소소한 특권이 있는 군인 신분은 신분 세탁이 필요한 천민 계층이나, 맨몸으로 상경을 한 유민들에게 있어 꽤나 매력적인 선택지였으리라 쉽게 짐작이 가능함.

 

따라서 이러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군인 집안으로서 대를 이어 군 복무를 하고자 한다면 주위에 군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여 대년군으로 '뽑혀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 되며, 대년군이 되기에 '적당한 자'로 평가받기 위한 방법이 바로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과 편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번 글의 골자라 할 수 있겠음.

 

실제로 구한말의 석전을 목격한 외국인들 가운데 이런 기록을 남긴 사람이 있는데

 


스크린샷 2025-01-07 174659.png

41)    H. N. Allen, Things Korean: A Collection of Sketches and Anecdotes, Missionary and Diplomatic, New York: Fleming H. Revell Co., 1908 ; 신복룡 옮김, 『조선 견문기』, 집문당, 1999, 119쪽.


(출처 :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07_0030_0030#ftid_41 )

 

요컨대 군인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창칼을 앞에 두고도 물러서지 않는 용맹이니, 돌과 몽둥이가 날아드는 석전(편쌈)에서 활개치고 다닐 수록 군인이 되기에 적합한 인재라는 인식이 당대 군인들 사이에 있었다는 얘기임.

 

거기다 당대 한양에서 편쌈과 함께하는 것이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이 두 가지를 잘 할 수록 주위로부터 군인으로서의 자질을 높게 평가받을 수 있었을 거란 결론이 나온다는 거지 ㅇㅇ.

 

이렇게 되면 어린 시절부터 군인 집안의 아이들이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을 배워야 했을 이유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고 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하급 군병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았던 왕십리에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의 일종으로 보이는 까기가 아이들의 놀이로서 이어져 내려올 만 했다고 할 수 있겠음.

 

어렸을 때부터 격투에 익숙해 져야 담도 커지고, 주변에 군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아이로 쉽게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테니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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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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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252920

이게 사실이라면 소실된 아랫대 태껸의 흔적(?)이 까기라고도 볼 수 있으려나?

20:37
25.01.07.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함. 일단 왕십리가 아랫대에 속하는 지역인데다 하급 군졸들이 몰려살았던 동네이기도 하니 역사적으로 보면 아랫대 태껸의 흔적이 까기라고 해도 크게 틀린 추론은 아닐 거임.
22:51
25.01.07.
2등 익명_185083
편쌈이 일종의 자격 테스트였을 수 있다니... 격했을 만 하구만.
23:07
25.01.07.
군에 입대하고 싶지만 맨몸으로 상경해서 연줄이 없는 유민 출신들도 군영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편쌈을 활용했을 킹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듯
12:41
25.01.08.
3등 익명_827304
취직 문제가 걸렸으면 어렸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시킬 만 하지
11:08
25.01.08.
19세기 한양 같은 경우엔 일자리는 없지만 사람은 많은 구조라... 군인 집안으로서 누리고 있는 소소한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꽤 절박했을지도 모름.
12:42
25.01.08.
익명_107828
이걸 보니 일본이 석전을 금지시킨 이유가 단순히 위험했기 때문만은 아니였네.
12:16
25.01.08.
위험한 것도 있고, 체제에 반하는 인사들이 모이기 쉬운 구조인 것도 있어서 금지했던 것 같음. 구한말 시점에 일어난 석전 같은 경우 많으면 만명까지 사람이 모였다던데 자칫 잘못하면 대규모 소요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판단했을 거임.
12:45
25.01.08.
일본은 지네 나라에서도 같은 이유로 격검흥행판 금지시키긴 했었지. 격검판 보러온 구경꾼 모인 틈을 타서 몰락한 사무라이들이 반정부 연설 하고 그랬어서.
13:57
25.01.08.
ㅇㅇ 하물며 참가자 전원이 몽둥이나 무릿매로 무장한 편쌈판이면 군대를 동원한 유혈 진압 외에는 답이 없어질 거라 안 막는 게 이상한 거...
14:17
25.01.08.
익명_221549
심지어 개화기 때는 일본도를 든 일본상인들이 몽둥이 든 조선포졸들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사례도 있다고 하니...
17:57
25.01.08.
익명_557448
'아기수는 검(劍) 1차와 육량전(六兩箭)을 시험 보았고'라는 구절이 좀 의미심장하네.
특히, 요즘 저장소 내에서 검술 떡밥이 나오고 나선 더더욱.
육량전을 시험 보았다는 내용도 의미심장하고...
10:29
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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