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이 천시되던 이유는 후기 조선군이 천예화되어서로 보인다
익명_310580
3202 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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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이상 군복무하면 면천이다보니 노비들이 군에 존나게 몰려왔다더라.
수어청 같은 경우엔 병력 6300명 중 무려 6000명이 노비였다 하니.
제일 대우가 좋았던 훈련도감도 같은 흐름을 탔고.
이런 상태로 100년이 넘게 지속됐으니 군인 = 천한 출신의 상것들이란 인식이 고착화되고
하급 무관들만의 문화였던 택견도 덤터기로 무시당했던 것으로 보임.
게다가 지금도 금기시되는 도박, 치정 결투, 남색질 등에 툭하면 연루되어 있었으니 사대부문화에 낄 수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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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
24.10.28.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 했던 당사자들 기억을 참고해야겠지.
정선생님 말씀의 요지는 택견이 단순히 민중의 신명나는 놀이문화이고 사대문 밖에서도 행해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 필운동에서 태평로로 이어지는 지역은 한량들이 주로 모여 살던 지역으로 그 곳의 택견이 가장 세었으며 그 외 지역으로는 현재의 을지로 6가 옛 훈련원 근처의 군인들과 남산 지역의 한량들이 더러 택견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는 하층민은 택견수련을 할 수 없었고 최소한 중인 이상이나 양반인 한량과 무반(武班) 출신들이 즐겨했던 비교적 고급문화가 바로 택견이라고 하셨다. 그 당시 택견은 아주 강하고 살벌하여 궁중의 호위무사들이나 지역의 강자들이 수련했던 아주 강력한 무예라는 것이다.
https://www.taekyun.org/posts/column/28
정선생님 말씀의 요지는 택견이 단순히 민중의 신명나는 놀이문화이고 사대문 밖에서도 행해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 필운동에서 태평로로 이어지는 지역은 한량들이 주로 모여 살던 지역으로 그 곳의 택견이 가장 세었으며 그 외 지역으로는 현재의 을지로 6가 옛 훈련원 근처의 군인들과 남산 지역의 한량들이 더러 택견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는 하층민은 택견수련을 할 수 없었고 최소한 중인 이상이나 양반인 한량과 무반(武班) 출신들이 즐겨했던 비교적 고급문화가 바로 택견이라고 하셨다. 그 당시 택견은 아주 강하고 살벌하여 궁중의 호위무사들이나 지역의 강자들이 수련했던 아주 강력한 무예라는 것이다.
https://www.taekyun.org/posts/column/28
20:21
24.10.28.






저기에 양반이 중인을 싫어한 것까지 더해지면 지체 높은 사대부의 입장에선 아예 상종을 못할 문화였다고 봐야겠네.
병사(천민, 양민) + 하급무관 + 중인(별감)들 위주로 향유되었던 게 택견이니.. 아예 상극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