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항우의 무력에만 초점이 너무 꽂혀 가려지는 그의 지휘능력.

익명_079381
24 0 0

"초(楚)의 전사들은 한 명이 열 명을 당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고, 부르짖는 소리는 천지(天地)를 흔들었으며, 제후들의 군사들은 서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이미 진(秦)의 군사를 깨뜨리고 항우(項羽)는 제후들의 장수들을 불러 보았는데, 원문(轅門)으로 들어오는 제후들의 장수들 중 무릎으로 기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감히 올려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 항우의 지휘 능력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이다.

 

오강에 이르러서 말에 타지도 않고, 항우를 추격하던 5천의 기병 부대와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고 나오는데, 항우 혼자서 무려 수백명의 기병을 죽여버렸다고 하지만, 이건 그만큼 무력이 강했다는 비유적인 표현이지, 개인이 적 기병 수백명을 홀로 무찔렀다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판타지의 영역이니 가려서 들어야 한다.

 

거록대전, 전영을 물리친 전투, 팽성대전, 고릉 전투, 심지어 마지막 해하 전투조차도 측면 부대가 움직이기 전까지 항우는 한군을 몰아붙였다. 전술적 영역에서 그는 최고이자, 최강의 지휘관 중 한 명이었으며, 그 천부적인 군사적 능력으로 거병 후 고작 2년 만에 진의 멸망을 확정지으며 유방을 포함한 모든 제후들을 무릎 꿇리고 중국의 패자로 군림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이토록 단기간에 항우만큼 무지막지한 전공을 쌓아올린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술, 전략적 판단과 군사 지휘력 및 통솔 능력 또한 고대 아시아사 최고라 평가받을 정도인데, 아무리 초한전쟁 당시에 훈련받지 못한 농민군이 다수였다고는 하나 이는 항우의 초군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기에 항우의 지휘력과 통솔력이 빛을 발한 것으로 보인다.

병력의 질은 서로 비슷한데, 항우가 지휘하는 군대는 패기가 하늘을 찌르는 일당백의 용사들이 되는 반면 적 병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기만 했으니 항우의 무력은 물론이거니와 전투 지휘 능력 또한 대단했다는 방증이 된다.

 

무력과 통솔력 및 카리스마에 묻혀서 조명이 잘 안 되는 사실인데, 항우는 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영역의 전술적 능력 또한 최고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록 대전에서 적의 보급을 끊거나 한신보다도 먼저 병법에서 배수의 원리를 응용하는 등, 명장이라 일컬어지는 다른 장수들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결코 아래가 아니었다. 애초에 항우가 힘에만 의존했다면 유방, 장한, 한신, 팽월 같은 당대 최고의 명장들을 상대로 붙을 때마다 박살내진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저돌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전략적 후퇴 판단 역시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다. 수도 팽성이 점령당하자 지체 없이 원정군에서 정예만 추려서 구원군을 편성하고, 후방에서 편성한 전력을 거의 손실하지 않고 팽성으로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항우의 전술적 능력 및 판단력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시할 수 없다.

 

팽성대전에서 먼 거리를 신속하게 달려와 분산된 적을 기습해 각개 격파하는 전술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동성을 이용해서 적의 취약한 지점을 찔러 돌파한 뒤 그 여파로 혼란에 빠진 적을 분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나라 원정이나 유방과의 대치 상황에서도 최전선과 후방을 오가며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면, 야전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조차 없다. 상식적으로 따져도 오랜 행군에 지치고 공격하는 쪽이 든든한 요새에 의지해서 지키는 쪽보다 더 열세인 것은 당연한데, 항우는 병력의 일부만 추려 가서 광활한 중국 땅을 이리 저리 내달려서는 숨 쉴 틈도 없이 서쪽 성을 쳐부수고, 동쪽으로 다시 마구 달려와서는 또 쳐부쉈다. 단 한달 즈음 되는 동안 형양과 팽성을 왕복하며 그 와중에 전투까지 벌이는 식으로 무슨 순간이동을 하는 수준으로 움직이는데, 결국 유방 - 팽월의 기각지세를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똥개 훈련이라는 식의 조롱을 받는 것이지 이 기동전만 놓고 보면 항우의 전투 능력은 경이롭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다만 자주 언급되듯 항우는 정치적 실책, 인사상의 실책이 너무 많았고 특히 정치적 능력이 심히 결여되었다 보니 전술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좋지만 전략적 식견이 너무 없다로 평가될 수 밖에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전술적 능력이야 일개 개인의 무력이나 용병술로도 충분히 되지만 전략적 단계로 가면 정치적인 역학 관계나 앞날을 내다보는 식견도 필요한데, 항우의 능력 중 좋은게 딱 무력과 용병술 수준이니 전술가라면 모를까 전략가라고는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장수로서의 능력도 한쪽은 충분한데, 한쪽은 텅텅 빈 반쪽짜리 수준이다. 달리 말하자면 최고 지휘관으로는 부족하고 선봉이나 일선 지휘관이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신고공유스크랩

한달이 지난 게시글은 로그인한 사용자만 토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공유

퍼머링크

삭제

"항우의 무력에만 초점이 너무 꽂혀 가..."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