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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든 사람 3명이 창 든 사람 1명에게 오히려 압도당함.

익명_663270
496 0 61

https://youtu.be/dDG4R9P5KbA

 

유명 검도 유튜버의 실험 결과 검 든 사람 3명이 창 든 사람 1명에게 오히려 압도당하는 결과가 나왔다.

180~200cm 정도 되는 단창의 경우 대부분의 도검을 길이로 압도한다.

먼저 일본도(여기서의 일본도는 폴암급인 오오타치는 제외) VS 창의 경우, 일본도는 창자루를 타고들어가는 기술(하시카가리)이 있다. 하지만 일본도 자체가 너무 짧아 사용하기 힘들다. 또한 창은 일본도가 치고들어오지 못하게 계속 공격을 날릴 것이다. 장애물이 많은 지형이 아닌 이상, 일본도로는 창을 이기기 어렵다.

롱소드 역시 일본도와 마찬가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롱소드가 카타나보다 더 길긴 하지만, 아무리 길어도 130cm를 넘지 않는 롱소드로는 180~200cm가 일반적인 창을 이기기 힘들다.

레이피어는 긴 사거리를 적극적으로 쓸수 있는 찌르기를 주력으로 쓰다보니 어느정도 비빌법해보이지만 창든 쪽이 창의 끝에 가까운 부분을 잡아 사거리를 더 늘려버리면 그만이며 둘의 질량차이가 압도적이라 창과 부딪히면 단검이 된다. 물론 현대 기술로 만든 레이피어라면 부러지진 않는다. Mythbusters의 칼날 자르기 실험에선 (현대 기술로 만든) 레이피어가 휘기만 했다. 해당 에피소드에 대한 설명 http://m.imdb.com/title/tt0852842/synopsis 동영상을 못 찾아 비슷한 예제로 대체 https://youtu.be/cFRxZod-i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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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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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익명_814893Best
그렇게 평가한 건 임진 초기 때 이야기지.
무예도보통지가 언제 만들었는지 너 모름?
그리고 밑의 게이 말대로 왜검, 교전, 쌍수도 빼고는 다 조선, 명나라 무기술인데?
심지어 왜검, 교전, 쌍수도도 조선의 실정에 맞게 재정립한거.
13:24
24.02.17.
best 익명_700743Best

임진왜란 때 검술은 개자검술이잖아.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자빠졌네.
너 개자검술(介子劍術)과 소기검술(素肌劍術)란 말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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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자검술은 갑주를 착용한 상태에서 검을 운용하기 때문에 보법의 한계성과 기술의 한계성을 보인다. 한계성이라는 것은 특화된 기술을 보인다는 것이지 그 기술이 뒤떨어 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부분의 보법은 삼각보법이라 부르는 다리를 넓게 벌린 상태에서의 안정적인 자세를 취한다.


개자검술의 운용은 투구와 어깨의 갑주 때문에 머리위로 높게 검을 들수 없었기에 거기에 맞는 기술 들이 발달하였으며 그 기술의 종류는 많지 않은 투박하고 강하게 치는 기술들이 많다.


소기검술의 경우는 검술의 부흥기에 들어오면서 발달 하였는데, 타 유파와의 대련,자체 유파도장내에서의 효과적인 수련을 위해 보호구와 죽도 검도로의 발전을 가져왔다. 죽도 검도가 유행하면서 많은 개자검술 유파들도 이를 받아 들이는데 검의 길이 바뀐다는 이유로 가토리 신도류와 같이 죽도검도를 채용하지 않은 유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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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검도는 메이지 시대 여러 일본 고류 검술 유파가 모여 검술 수련 방법 중 하나인 격검(撃劍)을 경기화하고 다양한 검술 체계를 규격화한 것을 유래한건데, 뭔 임진왜란 운운하냐?

 

심지어 1950년에는 무도로서의 검도가 아닌 스포츠로서의 성격을 강조해서 전일본요경기연맹을 창립하는데, 요경기(撓競技)라는 것은 펜싱마스크 비슷하게 만든 방어구와 죽도를 사용하는 검도 비슷한 스포츠였어. 즉 검도가 아니라 펜싱 비슷한 스포츠라고 변명하기 위해서 검도의 경기적 측면만 강조한 변형이고. 또한 이 당시 '대일본제국검도형'의 명칭 또한 일본검도형(日本剣道形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이른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미군의 점령이 끝나고 검도 금지령도 무효화되었다. 1952년 검도연맹이 설립되면서 검도가 부활했고, 1954년에는 요경기연맹과 검도연맹이 합쳐져 전일본검도연맹(全日本剣道連盟, 줄여 전검련)이 된다. 전검련은 전쟁후 민주화의 흐름에 따라 과거 전쟁수행을 위한 무사도 정신을 강조하던 잔재를 없애면서 검도를 민주적인 대중 스포츠로 만들고자 했다. 현대에는 죽도 대련 중심 스포츠로 크게 개량되어서 도구와 규칙 등 이유로 진검대결과의 차이점이 존재하고 무도적 성격도 강조되지만, 검도는 스포츠인가 무도인가 하는 논쟁이 생겼어.

 

현대 검도에는 시합시 진검 싸움에선 소용없는 동작들이 있고, 소드 레슬링 같은 몸싸움도 없고, 다른 무기를 상대하는 방법도 모르는 상태야.


되려, 임진왜란 당시 개자검술을 쓰던 사무라이들이라면 현대 검도보고 "이게 무슨 어린아이들 놀이인가?"할꺼다. 이런 평가는 내 개인적 평가가 아니라 현지 일본의 전통검술가들에게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말이다. 일본 현지의 검술가들은 검도를 무술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경기 형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판국에 뭐? 현대 검도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내려오던 일본 고유의 검도??

임진왜란 당시 사무라이들이 이 소리를 들었으면 대가리를 부셨겠다.
이건 뭐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귓동냥으로 대충 들은걸로 뇌피셜하고 있네. ㅉ

무술사 전반에 대한 기본 지식 좀 챙기고 아는 척을 해라.

 

참고로 위의 항왜들이 어린아이 놀이 같다는 말은, 주로 쌍수도 같은 양손검 형태에다 기본적으로 6척 5촌은 되는 긴 칼 쓰던 왜군들 입장을 고려해야지. 그들 입장에선 주로 한손검(외수쌍수 겸용이긴 하지만, 왜란직전까진 칼의 길이가 지속적으로 짧아짐)에 짧은 칼을 쓰는 조선군의 모습이 얘들 놀이 같다고 할 만 했을꺼고.

https://youtu.be/e9wVeK_L13o

이런 긴 칼을 쓰던 사람들 입장에선 자기네들이 쓰는 칼의 절반 정도되는 칼이 얘들 장난감으로 보일만도 했겠지.

그리고 이건 척계광이 민간인끼리의 소규모 분쟁에서나 먹힐 짧고 값싸고 약한 무기를 엄연한 군대에서 요령 피우고 장부 채우는 용도로 쓰는 것을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의 비판이다. 비판을 할려면 좀 제대로, 영양가 있게 좀 해라.

 

무예도보통지가 언제 만들어진지도 모르고 임진 초기 때 일화를 가지고 조롱하는 모습 보니 수준 참 알만하다.

19:14
24.02.17.
1등 익명_260290
저래서 진법이 중요하다는구나를 깨닳음
10:36
24.02.07.
익명_293406

엄청 중요하지. 사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백병전에 강한 이유를 검술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전국시대 때 숙달된 진법능력이 더 큰 이유지. 애초에 도검류가 전장에서 보조무기(오오타치같은 폴암류에 가까운 무기는 제외하고)에 불과한데, 그거 잘 다룬다고 백병전에서 강할리가...

19:38
24.02.07.
익명_787244
당연히 진법과 경험차이도 있고 평균적인 병사 개인기량으로 볼 때는 일본군이 백병전 능력에서 우위였던 것은 맞음 무기 리치도 일본군이 전국시대 때 쓰던 칼과 창보다 훨씬 짧게 하고갔는데도 조선 검,창 보다 길었던거 보면 전술,전략,지형,무기,경험,진법 등 여러 요소가 다 섞여있음
23:38
24.02.16.
익명_787244
물론 조선군에도 검술과 창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지만 평균으로 잡을때 일본이 더 우위였던건 맞음.그리고 당시에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충격받고 많은 피해를 입은 무기는 조총과 일본도라고 명백히 기록되있음.그러니까 조선에서도 소승자총통과 조총을 만들고 환도 길이도 늘리고 일본도 카운터 월도 협도 편곤을 대거 쓴거 아니겠음
23:41
24.02.16.
익명_952463
일본군의 백병전 능력이 더 우위라는 걸 부정하는게 아님. 백병전에선 진법이 병사 개개인의 전투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거.
23:46
24.02.16.

당연히 진법이랑 전략 전술이 제일 중요하지 일기토나 소규모 전투가 아니라 전쟁인데 근데 전쟁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다는거 전에 조선군 백병전 글에도 똑같은 글 썻는데 같은 게이인가보네

23:52
24.02.16.
익명_814893
백병전에 국한해서 백병전에서도 진법이 검술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데 왜 니 멋대로 전쟁 전반으로 확장해서 전쟁에는 수 많은 변수들이 있다는 걸로 헛다리 짙냐? 내가 지금 그걸 부정함?
13:26
24.02.17.
익명_952463
그 기록들은 행간과 맥락을 더 살펴봐야 함. 물론 일본군의 조총과 일본도가 충격을 준 건 맞음. 근데, 조총은 몰라도 오오타치도 아닌 일반 카타나가 당시 명이나 조선에게 충격을 준 건 아님.
23:48
24.02.16.
당시 조선이나 명 기록 보면 일본 카타나나 검술에 충격받은 기록이 한 두개가 아닌데 무슨 소리임
23:50
24.02.16.
익명_858992

내가 충격을 줬다는 걸 부정하는게 아님. 충격을 주긴 했는데, 그게 너무 과장됐다는 거지. 내가 보기에 그런 사료들의 행간이나 맥락을 보면 백병전에서 진형, 진법의 대전략이나 현장 지휘에서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 본인들의 책임을 병사 개개인의 능력부족으로 자기네들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임.

 

일본검술이 대단한 건 맞고, 당시 일본군이 백병전을 잘 한 것도 맞는데, 일본군이 백병전을 잘 한 이유가 일본검술에 있다는 논리는 허구에 가까움. 백병전에서도 중요한 건 진형, 진법이지, 개인의 무술실력이 아니거든. 백병전의 승패가 병사 개인의 무술실력으로 결판난다고 하면 진형, 진법을 다루는 상층부의 책임이 흐려지는 거. 그래서 내가 일본군의 검술을 띄워주는 사료들에 대해서 좀 비판적임.

00:14
24.02.17.
익명_858992
중립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음. 여러 의견들 중 양 극단에 있는 두 의견들만의 중간을 중립이라 하거나, 모든 의견들을 포함해서 평균을 내기, 또는 의견을 낸 사람들의 수를 고려할 수 있음. 각자의 편을 번갈아가며 들어주는 것이 곧 중립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상적 용어와 달리 중도 자체는 논리학에서는 비형식적 오류가 됨. 그냥 내 관점은 이런거라고 생각하셈.
00:34
24.02.17.

 소신있는 이유와 근거없이 그냥 눈치나 보면서 각자 편 번갈아가며 들어주는건 중립이 아니라 박쥐고

00:43
24.02.17.
익명_814893
내가 소신이나 근거 없이 박쥐 짓을 한게 아니잖아? 나는 분명히 내가 다루는 논점은 이러한 거고, 내 관점은 이러하고 내 주장은 이러하다고 명확히 했는데.
13:28
24.02.17.
허구라고 보는 건 너님이 너무 억측하는거고 검술도 일부영향은 있다 봐야지
00:34
24.02.17.
익명_858992
일부 영향은 있더라도 그게 백병전의 승패를 결정할 정도는 아님. 만약 그렇다면 그건 허구에 가까운거지.

의외로 임진왜란 당시 백병전으로 일본군을 털어버린 전투. [진주성 전투]
https://yugakkwon.com/taekkyeon/207013

백병전에서도 절대 중요한 요소, 진법
https://yugakkwon.com/taekkyeon/190029
00:37
24.02.17.
영향이 있는데 승패를 결정할 정도는 아니라는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르겠네
00:40
24.02.17.
익명_858992

영향이 있는거하고 승패를 결정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임.
니가 어떤 질환에 걸릴 유전자가 있다고 반드시 그 질환에 걸리는 건 아닌 것 처럼.

그냥 니가 내 글에 기분 나빠서 막걸리 타령하는거지.

00:41
24.02.17.
승패가 결정되는데는 수많은 요소가 있음.병력의 질,지휘관의 능력,정보,전장,보급,날씨,군의 사기,지원 병력,병사들의 경험기량,지형,심리전,기만전술,첩보 등 등 이 수많은 천,지,인의 요소들이 다 복잡하게 얽혀서 작용되는게 전쟁의 승패다. 이 하나 하나들이 다 중요한데 승패를 결정안한다는게 무슨 말이냐
00:54
24.02.17.
익명_851854

중요한 요소가 그렇게 많다는 각 요소마다 승패를 결정하는 지분이 다 다르고 우선순위도 존재한다는 뜻임. 그 수 많은 요소들이 죄다 일률적으로 똑같은 중요도를 가진다고 생각함? 그리고 자꾸 헛다리 짙는데, 나는 지금 백병전에서 검술보다 진법이 더 승패를 결정하는데 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는거임. 근데 왜 자꾸 전쟁 전반사항으로 이야기가 확장됨?

 

임란시 일본의 전술은 삼첩진이라하여 세겹으로 줄을 서 맨 앞줄에 기치수(깃발수), 그 뒤에 조총수, 그 뒤에 창,검수 등이 진을 이뤄 공격한다. 먼저, 기치수들이 적의 시각을 혼란 시키며 좌우로 빠져 포위망을 구성하고, 이후 조총수들의 일제사격 그리고 적의 진열이 무너지면 창검수들이 쫓아가 살육하는 방식이야. 요컨대 상대의 진형과 진법을 무너뜨리고 자신들 포위망 진형과 진법은 유지된 상태여야 그나마 검술도 의미가 생기지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니가 전장의 지휘관이라 생각해보셈. 전쟁이 벌어지기 까지 시간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병사 개개인의 대인전투기술 향상과 병대 집단전술 능력 향상 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어떤걸 선택할래?

13:33
24.02.17.

그리고 임진왜란의 모든 전투가 진대진의 대결이나 대규모 총력전도 아니고 난전 유격전 수성전 공성전 해전 소규모 접전등 여러 형태가 있었다는걸 고려해야함

00:38
24.02.17.
익명_107159

난 백병전 이야기를 하는데 왜 임진왜란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하냐? 그리고 진법이란게 진 대 진이나 대규모 총력전에서만 쓰이는게 아냐. 백병전은 물론이거니와 니가 언급한 난전을 제외한 유격전, 수성전, 공성전, 해전, 소규모 접전에도 진법은 쓰여. 전략적으로 난전을 유도한 경우에는 병사 개개인의 무력이 중요하긴 한데, 기책에다 도박수에 가깝지.

13:58
24.02.17.
익명_858992

일본군이 백병전을 잘 한 이유는 현장 지휘관들의 양과 질이 당시 조선군보다 앞섰기 때문이지 검술실력 차이가 아님.

 

조선 수군은 왜군과의 백병전을 피하지 않았다.

https://www.fmkorea.com/best/6619152759

전략, 전술에 맞는 진형, 진법과 현장 지휘력에 따라서는 병사 개개인의 무술실력이 적군보다 모잘라도 백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음.(사자가 이끄는 100마리 양의 무리가 양이 이끄는 100마리 사자 무리를 이긴다는 말도 있잖음.)

 

조선 측 기록에서 일본검술을 띄워준 이유는 좆소기업 간부들이 본인들의 무능(무능한 현장 지휘력)을 아랫사람들의 무능(무능한 개개인의 무술실력) 탓으로 덮어씌우는 것과 비슷한 거.

임진 이후 조정에서 조총과 검술을 기마궁술보다 더 높게 치니까 오히려 실제 현장의 무사들이 분노함.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2908013_006

00:21
24.02.17.
모든 전투사례를 다 상관이 자기 무능함을 덮으려고 적군을 과장했다고 억측하는건 말이 안되는거고
그리고 계속 말했지만 무술실력 뿐만 아니라 전투에는 여러 변수가 있다고 누누히 말했음.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항우나 척준경처럼 개인의 기량 무력으로 전세를 바꾸는 무장들도 존재하고
00:33
24.02.17.
익명_858992
적군을 과장했다는게 아니라, 검술을 너무 띄워주는 걸 비판하는 거임.
그리고 항우나 척준경 같은 경우는 보병이 아닌 기병으로 더 활약한 사람들이잖음.
00:39
24.02.17.
항우 척준경은 보병이든 기병이든 다 무쌍찍은 인간들임. 그리고 그게 논점이 아닌데 왜 논점흐리기를 하냐
00:41
24.02.17.
익명_858992

논점 흐리기는 니가 하는거지. 백병전에서 보병과 기병의 역할도 다르고, 전술도 다른데. 그리고 백병전에서 병사 개개인의 전투실력보다 진법이 더 중요하다는게 내 주장이고 진법의 중요성을 검술의 중요성과 동일시 할 수 없다는게 내 주장인데, 항우나 척준경 같은 특이사례 끌고 오는게 논점흐리기다. 그리고 항우와 척준경은 결국 전쟁에서 졌잖아!

00:44
24.02.17.

전쟁에서 진거지 전투에서는 대부분 이겼다.그리고 항우가 진 건 군주로서 부족한 정치력과 전략의 부재로 진거고 고려의 여진정벌은 단순히 척준경 때문에 진게 아니라 고려가 여진 정벌하고 고토회복할 능력이 안되니까 그런거고

00:56
24.02.17.
익명_814893
항우나 척준경이 전세를 뒤집은 사례들이 기병으로서 전과지, 보병으로서의 전과들임? 먼 뚱딴지 같은 말꼬투리를 자꾸 잡냐? 그리고 분명히 말하는데, 항우나 척준경 같은 인류사 통틀어서 몇 없는 사례를 든 건 내가 아니라 너임.
13:38
24.02.17.

척준경이랑 항우는 전투중엔 거의 다 무쌍 찍었은데 무슨 소릴하는거임. 그리고 너야말로 잘 모르는데 전근대의 기병은 말타는거만 잘하는게 아니었음.말도 타고 창도 쓰고 칼도 쓰고 활도 쓰고 필요할때는 말에서 내려서 백병전도 하는 다재다능형 엘리트 군인이었음
그리고 나도 전쟁에서 전략 전술과 진법이 제일 중요하다는건 몇번이나 인정했다

00:59
24.02.17.
익명_814893
내가 언제 항우나 척준경이 보병으로 형편없다고 말했냐? 니가 개인 무력으로 전세를 바꾸는 무장들이라고 말하니까, 그건 기병으로서의 전과라고 말하는거잖아.
13:39
24.02.17.
2등 익명_518300
근데 가만 보면 1대1을 3번한 시합에 가까움. 창을 난생 처음 마주하기도 하고 여러명에서 한 명을 상대도 처음 해보니까 서로서로 꼬이고 거리도 못 잡고 총체적 난국. 익숙해질만큼 여러번 했으면 결과가 다르긴 할듯. 창이 좋은 무기긴해도 무적은 아니니까.
16:16
24.02.07.
익명_293406
근데, 3명이 서로 합을 맞추면 그건 검술보다 진법 문제로 넘어가는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함.
19:23
24.02.07.
익명_952463
꼭 대규모 군부대의 진형(陣形, formation)만이 진형이라 불리는 건 아님.
23:59
24.02.16.
익명_858992

몰?루? 근데, 3명이서 합 맞추면서 1:1이 아닌 다수 대 다수로 싸우는 방법을 진법이나 진형이라 안 부르면 뭐라고 불러야 함? 다른 표현이 있으면 알려줘.

00:09
24.02.17.
익명_814893

진법도 전술임. 소수의 병력이라도 적의 전력을 무력화 시키거나 아군의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한 병력 배치법은 개념적으로 다 진법에 해당한다고 생각함.

13:42
24.02.17.
정작 검술 없이 창술만으로 왜군 상대했던 조선, 명은 검술의 필요성을 깨닫고 적극 도입했단 게 아이러니.
23:24
24.02.07.
익명_643625

??? 뭔 헛소리임? 아무리 조선이 초기에 왜군에게 개발렸다고 해도 창술만으로 왜군 상대할 정도로 바보는 아님. 아니 애초에 어느 멍청한 나라가 창술만으로 외적하고 싸움? 활하고 대포는 폼임? 창 빼곤 근접전 무기가 없겠음? 무기로 쓸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서 싸우는거지?

 

하다못해 돌팔매질로 왜군을 격퇴한 사례도 있음. 죽령 방면 방어를 명받은 경상좌방어사 성응길이 긴급소집한 안동 석전꾼들로 안동에 접근하던 일본군 2군 선견대를 격퇴해 사흘 이상의 시간을 벌고 초조해진 가토 기요마사가 길을 바꿔 1군이 통과한 조령으로 향하게 만들었음.

 

명이나 조선이나 일본검이나 일본검술이 뛰어나서 기술적으로 받아들인거지 무슨 검술의 필요성을 그 때까지 몰랐다가 새삼 깨닫고 도입한게 아님.

 

게다가 일본검이나 일본검술은 만들기도 좀 까다롭고 기술숙달로 어려운 편이라 나중에는 일부 특수병종의 정예병들만 익혔음.

16:22
24.02.08.
왜란 초기에 조선군 주력 병기가 장검(=월도)랑 창밖에 없었던 건 사실임. 문종 때 이징옥의 건의로 환도의 길이가 단검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실전에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고 세조 때 팽배수 병과가 폐지되면서 군용 검술은 아예 사라짐. 명나라도 1560년에 척계광이 왜구한테서 빼앗은 카게류 문서 토대로 신유도법을 만들기 전에는 검술이랄 게 제대로 존재하지 않음. 형초장검이 봉술의 형태로 유대유의 검경에 남아 있긴 했지만 널리 퍼지지는 못했음. 1620년에 모원의란 학자가 무비지라는 종합군사서적을 쓰면서 명 전역을 샅샅이 뒤졌는데 검술을 찾지 못해 조선으로부터 조선세법을 들여올 정도였으니. 정작 조선세법도 민간에서나 전해졌지 조선 군영에서는 존재조차 몰라서 무비지 통해서 역수입해 만든 게 무예도보통지의 예도 24세.
15세기 초부터 16세기 말까지 약 200년의 기간 동안은 조선-명 모두 검술이 비실전적이라고 여겨서 맥이 끊기는 도검암흑기라 볼 수 있음. 왜 검술을 내쳤는지 이유는 모름. 대륙과 반도 모두 유목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원나라 이후 병법 흐름이 기마전 위주로 맞춰져서 그런 건 아닐까 추측할 뿐.
18:10
24.02.08.
익명_358900

1. --; 조선군 주력무기는 활이나 포 같은 원거리 무기와 기병임.(이건 임진 전기나 후기에도 마찬가지고 임진 이후에는 여기에 조총이 포함됨)


2. --; 애초에 도검은 전장에서 보조무기지 주력무기였던 적이 없음.(오오타치 같은 폴암류에 가까운 같은 무기들은 제외)


3. 아예 사라졌다는 건 과장임. 군용검술은 근근이 이어져 왔음.(모든 군영에서 보편적으로 전수되진 않았지만 일부 군영에서 계속 전수되었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아예 도검류 무기들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 무기 사용법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건 말이 안 됨.


4. 척계광 당시 오오타치 같은 대도(大刀)류 일본검술에 중국검술이 밀린거지, 중국검술이 존재 안 했다는 건 과장이다 못 해 헛소리임.

 

5. 척계광이 충격 먹은 건  오오타치임. 그래서 오오타치에 대항하기 위해 원앙진이라는 특수 진법을 사용했고. 그의 저서인 《기효신서》에는 왜구들이 5척이나 되는 큰 칼을 써서 무참히 도륙했다고 적음. 또한 중국의 큰 칼인 묘도 역시 오오타치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짐. 기효신서와 징비록 등의 묘사를 봐도 당시 명나라와 조선 측에서는 큰 충격을 준 건 장병기에 가까운 오오타치였음.


6. 명이나 조선에서 검술이 내쳐진 이유는 검술 자체가 전장에서 보조무기에 지나지 않는데다가 검 자체가 비싸기도 할 뿐더러 만들기도 까다롭고 관리도 어렵고, 익히기도 어렵기 때문임. 지휘관 입장에서나 병사들 입장에선 검을 익힐 시간에 그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무기들을 익히는게 더 나으니까.

 

왜 조선군은 일본군의 나기나타에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도입하지 않았을까?

https://m.blog.naver.com/kkumi17cs1013/221159945995

["상대의 무기나 전술이 좋다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적하고 비슷한 수준 밖에 안됨."]

19:59
24.02.08.
익명_276090

ㄴㄴ 이미 임진왜란때부터 항왜들한테 조총기술 전수받고 명나라에서 들여온 오스만 제 조총까지 써서 임진왜란 때부터 조선군도 조총썻다

23:45
24.02.16.
익명_952463
그 때는 아직 초기라서 주력무기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였음.

당시 조선은 당시 조총에 장점이 있음을 인지했지만 그 단점 역시 명확했기에 당장 양산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군기시에 보관해 놓았다고 한다. 실제로 조총은 사용법이 쉽긴 했지만 장전과 조준이 활에 비해 몇 배로 느렸고 사거리나 명중률에서 낫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임진왜란 이전 조선군의 주력은 여진족을 상대하는 북방군이었고, 그것도 농민병을 대거 징집하기보다는 갑사로 대표되는 전문 군인 집단 중심의 체제였다. 자연히 마상에서도 이동 표적을 상대로 쉽게 운용할 수 있고 지형적인 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활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고, 조총의 대량 운용 능력은 그다지 크게 각광받지 못했다. 뒤에도 서술하겠지만 조선군에는 구한말까지 극소수지만 궁병이 남아 있었다. 실록에 나온 대화를 보면 한쪽은 양산이 빠르고 쉽다는 점에 주안점을 둬 일본의 침략에 대비할 것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같은 조건이면 활이 유리한데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냐는 쪽으로 흘렀다.

그러나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군은 효율적으로 조총을 운용한 일본군의 전술에 그 위력을 실감하고 양산에 들어갔다. 이는 임진왜란이 이전의 여진족 토벌이나 왜변과 달리 그야말로 총력전 수준의 혈전이었고 자연히 징집된 농민병들을 빠르게 무장시킬 수단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군의 높은 조총 보급률은 속오군으로 대표되는 동원 체제의 정비와도 크게 연관이 있다.
23:54
24.02.16.
아니 친구야 임진왜란 전쟁 진행중에 조총도 조선군 주력으로 자리잡히게 된거라고 전쟁일어나기전 말고
전쟁 일어나기 전에 조선군 개인 제식화기는 승자총통이지
23:55
24.02.16.
익명_858992
주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거지, 아직 임진 초기에는 주력무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였다고.
00:05
24.02.17.
조총병 대거 양산된게 여러 이유가 있는데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후에 국토 소실화되고 목장을 둔전으로 바꿔서 대거 경작하는 바람에 말먹이도 부족하고 군마보급이 어려워서 예전만큼 기병양산이 힘들어지니까 대체로 돈도 적게들고 병력도 빨리 뽑히는 조총병으로 대체된거지 ㅇㅇ
00:03
24.02.17.
익명_787244
조선이랑 명에 검술이 없다고 누가 그러냐? 조선과 명나라에도 옛날부터 독자적인 검술이 있었고 검 잘쓰는 무인들 많았음.무예도보통지만 봐도 그런 소리 못할텐데?
23:44
24.02.16.
익명_086342
무예도보통지 그거 일본 검도 기술들 모아가지고 cntrl c cntrl v 한건데?ㅋㅋㅋ
00:38
24.02.17.
조선 무술 명 무술 일본 무술 동아시아 삼국의 무술을 총집합해서 재편성한게 무예도보통지인데 능지 떨어지는 소릴하냐 ㅋㅋㅋㅋㅋㅋㅋ
01:01
24.02.17.
익명_086342
항왜들이 우리나라 검술 하는거 보고 이건 뭔 어린아이들 놀이인가? 한 말은 정말 개유명한데 잘도 총집합했겠노ㅋㅋㅋ
소드마스터 몇명 있다고 조선 명군이 검술 잘한것이 절대아님ㅋㅋㅋㅋ
03:10
24.02.17.
익명_814893
그렇게 평가한 건 임진 초기 때 이야기지.
무예도보통지가 언제 만들었는지 너 모름?
그리고 밑의 게이 말대로 왜검, 교전, 쌍수도 빼고는 다 조선, 명나라 무기술인데?
심지어 왜검, 교전, 쌍수도도 조선의 실정에 맞게 재정립한거.
13:24
24.02.17.

원래 동서고금 막론하고 사료에서 과장법이라는게 종종 쓰인다.그리고 조선 명나라의 검술이 진짜 어린 아이놀이였으면 조선 명나라 초기 때부터 전쟁에서 백병전에서 줘털렸러야 됬는데 조선 왕조실록보면 팽배수 한기가  장창수 5기를 이길정도라고  나와있음

14:23
24.02.17.
익명_086342
난 딱히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님 혹시 검도 배워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검도 배운 적이 있다면 님이 한 말은 절대 할 수 없음.
현대 검도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내려오던 일본 고유의 검도로부터 온 것인데, 검도를 배웠다면 당연히 알 내용임
검도를 배운 것과 안 배운 거랑은 일반인 대 MMA 상위리그 프로선수가 붙는 것 이상의 차이가 남.
심지어 당시 검도가 현재 우리나라 태권도마냥 전국적으로 보급이 잘 된 상황이었고 파병군들은 사범급 이상 즉 지금으로 치면 최소 3 4단 이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과장법이고 뭐고가 아니라, 당시 검술이 전무하다시피한 조선군 실력을 보고 "이게 무슨 어린아이들 놀이인가?"<<< 이건 100% 일본군 입장에선 보고 느낀 팩트 그대로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18:28
24.02.17.
익명_700743

임진왜란 때 검술은 개자검술이잖아.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자빠졌네.
너 개자검술(介子劍術)과 소기검술(素肌劍術)란 말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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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자검술은 갑주를 착용한 상태에서 검을 운용하기 때문에 보법의 한계성과 기술의 한계성을 보인다. 한계성이라는 것은 특화된 기술을 보인다는 것이지 그 기술이 뒤떨어 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부분의 보법은 삼각보법이라 부르는 다리를 넓게 벌린 상태에서의 안정적인 자세를 취한다.


개자검술의 운용은 투구와 어깨의 갑주 때문에 머리위로 높게 검을 들수 없었기에 거기에 맞는 기술 들이 발달하였으며 그 기술의 종류는 많지 않은 투박하고 강하게 치는 기술들이 많다.


소기검술의 경우는 검술의 부흥기에 들어오면서 발달 하였는데, 타 유파와의 대련,자체 유파도장내에서의 효과적인 수련을 위해 보호구와 죽도 검도로의 발전을 가져왔다. 죽도 검도가 유행하면서 많은 개자검술 유파들도 이를 받아 들이는데 검의 길이 바뀐다는 이유로 가토리 신도류와 같이 죽도검도를 채용하지 않은 유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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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검도는 메이지 시대 여러 일본 고류 검술 유파가 모여 검술 수련 방법 중 하나인 격검(撃劍)을 경기화하고 다양한 검술 체계를 규격화한 것을 유래한건데, 뭔 임진왜란 운운하냐?

 

심지어 1950년에는 무도로서의 검도가 아닌 스포츠로서의 성격을 강조해서 전일본요경기연맹을 창립하는데, 요경기(撓競技)라는 것은 펜싱마스크 비슷하게 만든 방어구와 죽도를 사용하는 검도 비슷한 스포츠였어. 즉 검도가 아니라 펜싱 비슷한 스포츠라고 변명하기 위해서 검도의 경기적 측면만 강조한 변형이고. 또한 이 당시 '대일본제국검도형'의 명칭 또한 일본검도형(日本剣道形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이른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미군의 점령이 끝나고 검도 금지령도 무효화되었다. 1952년 검도연맹이 설립되면서 검도가 부활했고, 1954년에는 요경기연맹과 검도연맹이 합쳐져 전일본검도연맹(全日本剣道連盟, 줄여 전검련)이 된다. 전검련은 전쟁후 민주화의 흐름에 따라 과거 전쟁수행을 위한 무사도 정신을 강조하던 잔재를 없애면서 검도를 민주적인 대중 스포츠로 만들고자 했다. 현대에는 죽도 대련 중심 스포츠로 크게 개량되어서 도구와 규칙 등 이유로 진검대결과의 차이점이 존재하고 무도적 성격도 강조되지만, 검도는 스포츠인가 무도인가 하는 논쟁이 생겼어.

 

현대 검도에는 시합시 진검 싸움에선 소용없는 동작들이 있고, 소드 레슬링 같은 몸싸움도 없고, 다른 무기를 상대하는 방법도 모르는 상태야.


되려, 임진왜란 당시 개자검술을 쓰던 사무라이들이라면 현대 검도보고 "이게 무슨 어린아이들 놀이인가?"할꺼다. 이런 평가는 내 개인적 평가가 아니라 현지 일본의 전통검술가들에게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말이다. 일본 현지의 검술가들은 검도를 무술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경기 형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판국에 뭐? 현대 검도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내려오던 일본 고유의 검도??

임진왜란 당시 사무라이들이 이 소리를 들었으면 대가리를 부셨겠다.
이건 뭐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귓동냥으로 대충 들은걸로 뇌피셜하고 있네. ㅉ

무술사 전반에 대한 기본 지식 좀 챙기고 아는 척을 해라.

 

참고로 위의 항왜들이 어린아이 놀이 같다는 말은, 주로 쌍수도 같은 양손검 형태에다 기본적으로 6척 5촌은 되는 긴 칼 쓰던 왜군들 입장을 고려해야지. 그들 입장에선 주로 한손검(외수쌍수 겸용이긴 하지만, 왜란직전까진 칼의 길이가 지속적으로 짧아짐)에 짧은 칼을 쓰는 조선군의 모습이 얘들 놀이 같다고 할 만 했을꺼고.

https://youtu.be/e9wVeK_L13o

이런 긴 칼을 쓰던 사람들 입장에선 자기네들이 쓰는 칼의 절반 정도되는 칼이 얘들 장난감으로 보일만도 했겠지.

그리고 이건 척계광이 민간인끼리의 소규모 분쟁에서나 먹힐 짧고 값싸고 약한 무기를 엄연한 군대에서 요령 피우고 장부 채우는 용도로 쓰는 것을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의 비판이다. 비판을 할려면 좀 제대로, 영양가 있게 좀 해라.

 

무예도보통지가 언제 만들어진지도 모르고 임진 초기 때 일화를 가지고 조롱하는 모습 보니 수준 참 알만하다.

19:14
24.02.17.
왜검,교전, 쌍수도(이거도 정확히는 노다치의 영향을 받은 묘도에서 파생됨) 이 세 가지 빼고는 다 조선,명나라 무기술인데 ㅋㅋ 어디서 선동질이냐
01:08
24.02.17.
당장 정규군이 아닌 조선의 선비들도 궁술 검술 승마는 기본 소양으로 습득해서 임진왜란,병자호란,동학농민운동 등 나라에 큰일 생길때마다 고을 치안 지키고 의병일으키고 한건데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00:09
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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