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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한중일 삼국 무술 형질 비교 - 태껸, 가라테, 중국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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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pitbullman/223309207569

 

앞서 올린 태껸과 중국 무술 비교 글을 쓰다 가라테가 떠올랐다.

가라테는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일본의 무술로 그 기원과 유래는 아직 자세히 밝혀진 건 없다.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중국 남부의 무술이 전해지며 발전했거나, 오키나와 전래 무술과의 결합으로 새롭게 발전했다는 등 여러 설들이 있다. 내가 조사해본 바로는 중국의 백학권 같은 일부 무술의 자세와 동작 등을 동영상으로 비교해보면 가라테와 거의 똑같은 느낌을 주는 걸로 보아, 오키나와 자체적인 무술과의 결합이나 새로운 발전보다는 그냥 중국의 예전 무술 일부가 고스란히 전해져 명칭만 바뀌거나 일부 과정이 바뀐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가라테도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를 거쳐 오키나와 와 일본 본토의 스타일이 제각각 달라졌으니 중국의 무술이 가라테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았다 정도로만 해석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반면 가라테의 일부 자세와 동작들은 태국의 무아이 보란, 그러니까 예전 무에타이의 자세와 닮은 것이 있으므로 중국과 동남아의 무술 형질이 서로 어느 정도 주고받은 것이 있다고 보인다. 중국의 무술이 과거 오키나와를 포함, 동남아 일부에 영향을 주었다면 그 흔적은 고스란히 아직도 남아 전해진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나는 중국의 무술이 일본 가라테에 영향을 줬다는 증거로 카타를 꼽는다.

가라테의 카타를 보면 모두 중국 무술 투로의 형태가 떠오른다. 조사해본 바로는 일본의 과거 가라테는 직접 치고받는 대결을 벌일 때마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사망자도 나와 이걸 완화시키기 위해 카타를 선보이는 대결이 나왔다고 한다.

중국 무술의 투로를 선보이는 것과 같아보이는 이 대결로 부상자들이 나오지 않고 카타의 내용을 통해 당시 가라테의 안목 있던 사람들로 인해 저 사람 혹은 소속 도장의 실력을 가늠하여 누가 더 뛰어난가를 가렸던 것 같다.

이런 식의 대결은 중국에서도 치뤄진 것 같다.

내가 조사했던 어느 일본의 중국 무술 관련 일화를 살펴보면 자신이 중국 베이징의 어느 유명 노사의 제자가 되어 태극권을 했었는데 어느날 해당 태극권 관련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일종의 그들만의 잔치가 열려 초대를 받아 갔었다고 한다.

그 일본인은 거기서 또 다른 유명 노사의 제자와 추수 대결을 하였는데 충분히 멀리 날리거나 내동댕이 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임에도 안전하게 제압을 하는 선에서 그쳤다고 한다. 그러자 추수가 끝난 뒤에 그 노사가 직접 찾아와 감사함을 표했다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제자를 일방적으로 패배시켜 모욕감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중국 특유의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라고 느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상대를 압도적으로 패배하게 만들면 패한 쪽 관계자는 모욕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실력의 우위가 있음을 과시하지 않고 간단히 제압하는 선에서 좋게 끝내면 패한 쪽 누구도 모욕감을 느끼지 않고 서로 좋은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그게 감사하다고 찾아와 인사를 했다는 것인데 난 이걸 보면서 중국의 과거 무술 대결이란 모두 이런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특유의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라면 반드시 무술도 그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대결이라고 한들, 실전이라는 관념의 실체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죽고 죽이는 싸움이 아닌 이런 식의 대결로 서로의 실력을 안목이 있는 사람들만 확인하고 우위를 가려내는 걸로 끝내는 것 아니었을까?

어차피 중국 본토에서 죽고 죽이는 싸움이 벌어진다면 너도 나도 흉기 들고 설쳐댔을 텐데 그 과정이 대단했을 리도 없거니와 (과거 한국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동남아 등지에서도 죽고 죽이는 싸움에는 반드시 너도 나도 흉기가 동반되었으니 실전 대결이란 알고 보면 유치하고 허망한 것이었다.

일본의 가라테에서도 서로 부상자, 사망자를 막기 위한 카타 대결로 서로간의 실력만 확인하여 서로 비교 후 우위를 가리는 걸로 승부를 냈다면 그 또한 중국의 무술에 영향을 받을 때 같이 전해진 아이디어 아니었을까? 중국의 무술들이 서로 강해서 싸우면 부상자, 사망자가 속출해서 추수 같은 안전한 대결로 우위를 가리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중국 특유의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로 무술 같은 힘의 우위를 가리는 것은 자칫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후환을 낳게 될 수 있으니 그걸 사전에 막기 위해 서로 좋은 관계로 감정 상하지 않고 끝내기 위한 목적으로 추수 같은 안전한 대결이 실전으로 표현된 것이라면 타당한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중국 무술이 가라테에 영향을 준 결정적인 증거이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태껸은 어떠한지 비교해보겠다. 한국의 태껸 즉 위대태껸을 살펴보면 중국 무술, 일본 가라테와 전혀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생물로 치면 외형으로 드러나는 형질 자체가 아예 다를뿐더러, 성품과 기질 같은 내면의 형질 또한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위대태껸은 오히려 현대 복싱과 무에타이의 모습과 당황스러울 만큼 닮은 요소가 많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위대태껸이 과거의 물건임에도 당대에 같이 성행했을 복싱과 무에타이의 모습과는 달리 현재 유행하는 복싱과 무에타이의 형질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위대태껸 하시는 분의 경험담에 따르면 다른 운동으로 시합 나갔을 때의 경험이 쌓인 내용이나 시합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을 위대태껸 처음 할 때 그대로 경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걸 있는 그대로 해석해보면 위대태껸의 현재 모습은 과거 조선에서 오늘날 스포츠처럼 성행했을 시합의 형태로 발전해온 결과물이라는 것이 된다.

직관적인 해석이지만, 위대태껸 자체가 직관적인 물건이므로 해석도 그에 맞춰서 한다.

이 부분이 나는 중국 무술의 영향은 오히려 위대태껸에는 없다고 봐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무술이 영향을 줬다면 어떤 형태로든 중국 무술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형질들이 위대태껸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자세나 동작 따위가 아닌 일본의 가라테 카타 대결과 중국의 추수 및 각종 연무 대결 같은 문화적 정체성을 말한다.

이는 분명 서로 다른 두 나라 간의 무언가 주고받는 과정에서 전해지거나 영향을 줬을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칠게 해석해보면 위대태껸은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의 모습이 어땠는지 알 수 없으나 그 후 과정에서 오늘날까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전혀 없이 조선만의 세계관을 토대로 발전되온 것이 된다.

물론 위대태껸이 만들어지던 초기에는 필요한 재료에 중국의 물건들이 들어갔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과정을 통해 나온 지금의 모습을 보면 중국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태권도의 품새는 과거 일본 가라테의 카타였지만 정작 발전 과정에서 두드러진 것은 품새가 아닌 태권도의 경기력이었다. 태권도의 경기력은 가라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오늘날 태권도와 가라테를 두고 가라테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대체 어디가 어떻게 받은 거냐는 질문이 나와도 될 정도로 다르다.

위대태껸이 처음 만들기 위해 누군가 연구를 하던 당시에는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았을 수는 있지만, 다른 가설로는 중국이 아닌 조선 이전의 나라였던 고려 시대에 전해오던 무술들을 토대로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로 태껸 관련 사료에 따르면 과거 고려의 수박을 지금은 태껸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어서다. 자세한 기록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거칠게 해석하면 고려의 수박이 조선에서는 태껸으로 불린다는 것으로 이는 곧 고려시대의 무언가가 조선에 영향을 주며 변화했다는 의미로 풀이 된다.

조선이 명나라를 사대했으니 태껸도 시작은 명나라의 무언가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라는 단정을 거두고 가능성을 모두 열어보면 조선 이전의 국가 고려는 조선과 달리 문무양도를 중시했던 만큼 고려시대에 남아있던 무술이 조선 시대로 넘어오며 어떤 변화를 거쳤고 그걸 토대로 누군가 새로 만든 것이 지금 남아있는 위대태껸이라는 가설도 나올 수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면 어떤 변화를 거쳐도 중국 무술에서 살펴볼 수 있는 어떤 문화적 관습이 위대태껸에도 있어야 한다. 오늘날 가라테에서는 그런 관습을 (카타 대결, 카타로 실력 파악 등) 엿볼 수 있으며, 자세와 동작마저 같은 것이 많고 아예 연습 과정도 같은 것들이 있던 반면, 위대태껸에는 그런 게 전혀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다.

오히려 위대태껸에 전해지는 내용들이 중국 무술이나 일본 가라테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세와 동작 일부가 비슷할 수는 있지만, 그런 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다 발견되는 공통된 흐름으로 특이점을 주장하긴 어렵다.

위대태껸이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한국의 태껸에는 두 가지 춤이 전해진다. 그 중 하나가 태껸춤인데 나는 이것이 위대태껸은 중국 무술과는 상관 없는 별개의 것을 나타내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태껸춤이 중국 무술의 흔한 투로라던가, 일본 가라테의 카타였다면 다른 주장을 했겠지만, 내가 조사해본 바로는 위대태껸에서 말하는 태껸춤은 투로도, 카타도 아닌 다른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비슷한 것을 예로 들면 태국 무에타이의 와이크루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대태껸이란 물건의 생물학적 형질은 중국 무술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도 일본에도 이런 형태의 구성을 띄는 물건을 난 아직까지는 찾지 못했다. 태껸춤은 단지 할일없이 춤추려고 만들어낸 물건은 아닌 위대태껸의 전체 내용을 담고 있는 또 다른 도구인 것 같다.

그것에 대해 아직 자세한 건 알지 못하지만, 태껸춤은 위대태껸의 유전 형질이 중국에서 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로 보고 있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위대태껸이 중국 무술과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또 다른 춤이 있다.

허수아비 춤

위대태껸에 전해져오는 또 다른 춤으로 이것은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매달아 샌드백처럼 치는 연습이라고 한다. 난 이걸 처음 알면서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었다. 지금이야 복싱이든 무에타이든 샌드백 치는 게 당연한 거지만 위대태껸이 전해지던 시기는 100년 전이었다.

이 시기 동양의 다른 무술들을 보면 모두 나무를 치거나 나무로 만든 타격대를 치는 게 다였다. 그게 아니면 격파하는 것 등이 다였다. 무협지에 나오는 설정들이나 무협 영화에서 나오던 장면들을 보면 철사장을 단련한다던가, 손이 못생겨지도록 굳은 살을 배기게 해서 바위를 부수고 별 지랄 다하는 것들 생각하면 된다.

이런 설정놀음은 무려 2000년대 초중반에도 인터넷 도처에 널려 있었다.

지금은 안 할 것 같지만 인스타 찾아보면 지금도 하고 다니는 중국인들 널려 있다.

그거 본 서양인들이 영어로 개좆도 라고 욕하고 다니는 유명 영상을 검색해보면 다 나온다. 이런 짓을 100년 전에도 했으니 지금도 하는 거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대에 있던 위대태껸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허수아비 춤은 위대태껸이 중국 무술과는 전혀 상관 없는 별개의 물건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허수아비 춤의 형질은 현대 복싱과 무에타이에서 보는 샌드백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허수아비 춤은 과거 태껸을 하던 사람들의 세계관을 증명해주는 셈이다. 태껸을 하던 사람들은 어떤 연습을 해야 실용적이고 강한 건지 구분하고 살았던 것 같다. 또 다른 예로 송덕기 관련 발언을 찾아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송덕기가 고용우, 이준서 두 제자를 키운 뒤 그 후에 만난 제자가 누가 맨손으로 가마솥을 부쉈다고 놀란 듯 이야기를 하자 송덕기는 밥 해먹는 가마솥을 아깝게 왜 부수냐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같은 제자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는 손가락으로 못을 박는다더라 는 이야기를 하면 왜 손가락으로 못을 박냐고 반문했다는 이야기였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나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송덕기라는 인물의 세계관에는 분명 현대에 창작된 중국 무협 설정과는 달리 현실적인 강함은 바위를 부수고 손가락으로 못박기 쇼를 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느꼈다.

그 감각은 송덕기가 태껸을 처음 시작했던 그 윗대의 사람들로부터 이어졌을 것이다.

그 윗대의 사람들 또한 태껸을 처음 시작할 때 그 윗대의 사람들로부터 그런 관념들을 같이 이어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송덕기에게 전해지며 누가 바위를 부수네, 가마솥을 날렸네 라는 퍼포먼스를 듣고 놀란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바위를 부숴봤자 직접 싸워보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 수록 송덕기 같은 반응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위대태껸에서 중국 무술이나 일본 가라테처럼 뭔가 몸을 강하게 만든답시고 자학행위를 하지 않고 바위를 부수고 얼음도 부수고 기왓장도 부수고 뭐든 부수려는 퍼포먼스를 중시하긴 커녕 취급도 안 하는 태도는 분명 중국과 다른 세계관을 통해 발전해온 증거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복싱이나 무에타이를 하는 사람들은 중국 무술이나 일본 가라테처럼 단련을 하지도 않으며 그런 파괴 쇼를 해대지도 않는다. 그런 것은 자신들이 하는 것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다. 위대태껸이 이와 같은 관념을 100년 이전에도 갖고 있었다는 증거가 허수아비 춤이다.

허수아비 춤에 관련해서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위대태껸 조사에서 나온 것인데 예전 태껸을 나무로 배웠던 사람들 발에 맞으면 다치지만, 짚으로 배웠던 사람들 발에 맞으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카더라 통신 같지만, 허수아비 춤을 보면서 저기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검증이 더 필요하지만) 위대태껸은 당대에 중국 무술과는 전혀 다른 관념을 추구했던 증거 사료로 쓰일 수 있다.

중국 무술은 예나 지금이나 뭐든 강해보이고 크고 단단해보이는 것을 부수는 걸 좋아한다.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은 가라테도 그렇다. 실제로 내가 찾아본 가라테 관련 사료 중 가라테가 일본에 소개되기 전 오키나와에서도 기왓장을 격파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나는 이 격파가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거나 중국 무술이 오키나와에 전해질 때 넘어온 것이라고 추측한다. 반면에 위대태껸에는 이런 격파의 내용은 전혀 없으며 매우 실용적이고 직관적인 것만 추구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은 복싱을 했었기에 더 확실하게 와닿고 있다.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았다면 절대 이런 직관성을 추구하지 못한다. 내가 조사해본 중국 무술의 실체는 시합 형태에 나가기 위한 목적이라기 보다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주어진 설정에 맞춰 움직이는 체면 유지 목적이 더 가까웠다.

위대태껸의 내용 구성, 태껸춤, 허수아비 춤을 통해 중국 무술의 관련성이 없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여기에 하나 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중국 무술 관련 조사를 해보면 제자 1명에게만 전해주는 그런 설정들이 가끔 나온다. 이런 것은 일본쪽 가라테나 관련 무술 자료에서도 눈에 띄는데 이 또한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아 전해진 형질 증거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 1명에게만 전해주는 것을 뭔가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던데 나로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세계이지만, 이걸 소개하는 이유는 위대태껸이 중국 무술과 다른 또 다른 증거이기 때문이다.

내가 조사해본 바로는 위대태껸은 제자를 둘 때 최소한 2명은 둬야 하는 것이 조건처럼 전해지는 것 같았다. 태껸을 전할 때 제자들이 많을수록 좋겠지만, 제자가 없더라도 1명만 둬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 2명을 맞춰서 태껸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한데 1명에게만 태껸을 가르치면 그 남은 1명은 혼자서 태껸을 제대로 익힐 수 없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최소 2명은 되야 서로 연습을 하면서 실력을 계속 익혀나간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그렇다면 이것만 봐도 위대태껸은 중국 무술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띄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위대태껸은 혼자서 연습하는 것을 중시 하지 않고 반드시 연습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중시했다. 반면 중국의 무술들은 조사해보면 혼자 연습하는 것을 중시했다. 모두 투로를 통해 혼자 연습하는 것이 매우 많았다. 이는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았던 가라테에 고스란히 유전적 형질이 아직도 남아 전해진다.

가라테는 이것을 카타를 통해 혼자 연습하는 것을 중시한다. 아마 직접 싸우지 않고 서로 혼자 보여주는 연무 등으로 각자의 실력을 모두가 가늠한 뒤, 누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가리는 문화가 이런 형태를 촉진시킨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위대태껸은 이들과 정반대의 세계관을 가졌으니 혼자서는 태껸을 제대로 연습하지 못하니 반드시 상대 1명이 더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도 위대태껸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혼자 실력을 뽐내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상대와 겨뤄서 힘의 우위를 가려내는 시합 위주의 형태로 발전했다는 증거가 된다. 이는 곧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자세와 동작이 비슷하다고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를 따지려면 자세와 동작 같은 껍데기가 아닌 그 내면을 관통하는 정신적인 문화 혹은 세계관 어디에 중점을 뒀는지를 해석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위대태껸은 조사하면 할수록 중국 무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술로 보인다.

 

[출처] 한중일 삼국 무술 형질 비교 - 태껸, 가라테, 중국무술|작성자 비수

 

 


 

누구길래 이런 내용의 글들을 꾸준히 올리는 걸까 싶어서 알아봤더니 웹소설을 쓰는 작가님이 위대태껸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에 본인의 생각을 적는 글들이라 놀랐음. 

 

여담이지만 저번 글에서 전형적인 뇌피셜 글이라는 비판들이 많이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해석들이 많이 나와야 하나의 문화 컨텐츠로서 택견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음.

 

어쩌면 지금까지 택견판에 고나리질을 해온 철기나 '그 갤주' 같은 빌런들 때문에 우리가 너무 엄격해진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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