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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전에서도 절대 중요한 요소, 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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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생겨난 이후, 일정 궤도에 오른 대부분의 문명권들은 타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진형과 진법을 거의 필수적으로 익히고 싸웠다. 문명 수준이 발달하지 않은 부족이나 소규모 국가들은 진형을 통한 집단전투보다는 개인의 무용에 의존하는 전투를 하기도 했으나, 세력이 커지고 문명 수준이 어느 정도 발달하면 이들도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진형을 통한 전투를 추구하게 되었다.

 

병법서인 등단수지 (登壇須知)의 ‘진법’에서는 백병전이 전쟁의 주축을 이룬 고대에서는 진형이 승패를 판가름한다고 지적한다.

 

근대 이전, 특히 창, 칼 따위의 냉병기를 통한 전투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형과 진형을 통한 전투를 가장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사극에서는 이러한 진형을 짜고 싸우는 전투의 묘사가 사실상 없다시피하며, 회전이든 소규모 전투이든 진형 없이 양측 군대가 엉겨서 싸우는 난전만이 벌어짐은 물론 심지어는 그냥 주인공 장수의 무협활극 원맨쇼로 끝나기도 한다. 때문에 실제 당대 전투의 양상을 사극으로 이해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일단 진형이 유지된 상태에서의 전투 양상은 템포가 상당히 느리고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지루하다. 전근대 전투 대부분의 사상자는 전투를 치를 때가 아닌 한쪽의 군대가 무너져 패주할 때 나온다. 즉 진형이 유지된 상황에선 굉장히 적게 나온다는 것이다. 진행이 느릴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전투중에도 국지적으로 어느 한쪽이 밀려서 물러나거나 상호간에 잠시 물러설(눈치싸움) 경우 진형을 재정비하고 예비대와 교체해 다시 붙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병사로서 기용되는 엑스트라들을 진형을 재현하기 위해 별도로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한 시간과 비용 또한 추가로 소요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거의 모든 국내 사극에선 진형의 존재를 사실상 무시하는 경우가 대다수인지라, 당대 전투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진형의 존재를 시청자들은 대부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전근대 전투의 알파이자 오메가. 사실상 근대 이전의 전투는 전투에 참여한 양 측의 각 부대가 얼마나 진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갈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이는 특히 대규모의 군대가 맞부딪히는 회전에서 더더욱 중요하다. 진형이 무너진 부대는 통제가 불가능하고, 거의 100%의 확률로 그 부대의 병사들은 모랄빵이 터져 전력 외가 되어버리며, 옆 부대가 무너지는걸 본 인근의 다른 아군 부대의 사기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전투에 있어서는 지휘관의 전술적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한 축이 사실상 사라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진형 하나 때문에 전황 전체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는 셈이다.

 

당대 전투에서 진형을 이룬다는 것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난전을 위시한 개인 전투와 비교했을 때 매우 많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전투에 참여하는 병사들 간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꼭 진형이 존재해야만 나타나는 효과는 아니지만, 진형이란 하나의 군대가 여러 번의 전투에서 항시 훈련받고 계획한 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전투 이외의 상황에서도 병사들을 하나의 부대라는 이름 하에 생활하도록 하고, 전투 시에는 이러한 병사들이 같은 부대에 소속된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토대로 진형이라는 실질적인 단위를 통해 인지시킨다. 즉, 병사들의 공포감을 상쇄시키고, 사기 진작에 큰 효과를 가져온다. 나아가, 국가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징집된 병사들 또한 서로간의 면식이 없는 상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진형의 필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여러 명의 병사들이 밀집해 한 몸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과 비교해 지휘관의 통제와 명령 수행이 매우 용이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병사들의 묶음은 굉장한 질량의 상승 효과를 갖는다. 개인 간의 전투에서도 어느 한 쪽의 질량은 전투력에 상당한 보너스로 작용하는데, 여럿이 밀집해서 나타난 질량의 상승 효과는 빈약한 진형을 갖추었거나 아예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 상대에게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강력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진형을 이루게 되면 진형을 이루고 있는 병사 개개인은 좌우와 후면을 아군 병사들이 메우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오로지 전방의 적만을 상대할 수 있어 상당히 안전하게 싸울 수 있다. 즉, 병사들의 전투력과 안전성, 사기 진작과 통제의 용이함을 모두 갖도록 하는 것이 진형의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근대 전투의 주요 목표는 바로 적의 진형을 무너뜨리는 것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진형을 무너뜨리기 위한 여러 수단이 고안되었는데, 대체로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서 진형의 사각을 공격해 무너뜨리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고전적인 팔랑크스 방진은 기병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그냥 발빠른 군단병들이 틈이 생긴 곳으로 돌진하여 포위하는 것만으로도 무너졌다. 팔랑크스 방진이 도태된 이후에는 기병이 포위 역할을 맡았다. 망치와 모루가 기병의 기동력을 이용한 기본적인 포위 전술이다. 기병의 강력함은 기동력을 이용해 적의 진형을 돌파하고 포위하는 것에 있었다.

 

전근대 전쟁에서 진형의 특징은 당대의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 간의 사상자 차이가 유독 큰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는데, 일단 당대의 전투는 갑옷과 방패 등으로 무장하고 밀집된 진형에서 제한된 움직임만으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전투 중에는 사상자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정면에서 적과 마주치는 경우 서로가 서로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려 들기 때문에 어지간한 무장이나 전투력 차이로는 쉽게 적병 하나하나를 사살하기 어렵고, 양측의 전의가 충만하다면 이런 교착 상태는 쉽게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 저하로 인해 진형이 무너지고 한 쪽이 패주하는 순간, 싸움은 전의를 갖춘 양측의 동등한 싸움이 아닌, 저항 의지를 상실한 한쪽을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살육하는 양상이 되며, 패주하는 쪽의 갑옷이나 방패 등의 무장은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足軽 아시가루라고 불리우는 창병이 주축이었고, 개개인도 뛰어났지만 창병의 집합 전술의 완성도가 좋아서 백병전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인터넷에선 척계광의 원앙진이 1:10으로 싸우는 진법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앙진은 10명을 1개 분대로 삼아 난전 중에 똘똘 뭉쳐 서로의 약점을 커버해주고 합동전술을 펼치도록 만든 진법이지, 왜구 1명을 명군 10명이 상대하도록 만든 진법이 아니다.


왜구들도 바보들이 아닌데 명군10명에 지들 1명씩 배정해서 싸우지 않았다. 왜구들도 당연히 수적 우세를 위해 뭉쳐서 싸웠다. 원앙진 이전에는 왜구가 출몰하는 지방 명군들 질이 너무 떨어져 소수의 왜구들이 집단돌격만 해도 다수의 명군이 지레 겁먹고 흩어져 버렸지만 원앙진처럼 분대단위 전술이 도입되며 같은 조원을 믿고 버틸 수 있게 되어 대등한 전투가 가능해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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